2012년 1월호

위장병에 좋은 산사 심장병 고혈압에도 특효

  • 입력2011-12-21 14: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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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장병에 좋은 산사 심장병 고혈압에도 특효
    산사(山査)나무 아래’라는 영화를 봤다. 베이징올림픽 개막공연을 연출했던 장이머우 감독의 최근 작품이다. 1960~70년대 문화혁명기 중국의 토속적인 시골 풍경을 배경으로 섬세하고 정감 어린 연출로 연인들의 순수하고 절절한 사랑을 그려냈다. 왜 장이머우가 거장인지 알겠다. 흔해빠진 러브스토리인데도 이렇게 가슴이 아리고 애틋해질 수 있다니.

    사랑한다는 말 한 마디 없어도 짧은 고갯짓, 흔들리는 눈빛 하나에 모든 것을 담았던 때가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마음의 울림이 그대로 전해지는 사랑. 조선조 여류시인 매창(梅窓)이 “송백(松柏)처럼 늘 푸르자 맹세하던 날, 님을 사랑하는 마음(恩情)은 바닷속처럼 깊기만 했다”라고 했을 때 바로 그런 사랑이다. 푸른 소나무 옆에서 눈길을 떨구고 있는 매창의 얼굴이 보이는 듯하다. 이걸 사랑의 동아시아적 방식이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의식과 육체가 서구적으로 도벽된 이 척박한 시대엔 까마득히 잊혀버린, 케케묵은 고릿적 사랑의 방식이다.

    장이머우는 매창의 송백 대신 산사나무를 상징으로 삼아 섬세한 연출로 우리에게 그런 사랑법이 한때 존재했음을 보여준다. 그가 그려낸 것은 시대의 아픔과 교직되며 피어난 순수하고 절절한 사랑이지만, 그 사랑법의 상실과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이 ‘상실의 시대’를 되돌아보게 하는 것이 진짜 주제였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에겐 그래서 영화의 행간에서 읽을 수 있는 게 적지 않았다.

    서양의 ‘메이 플라워’

    영화에서 산사나무는 두 연인의 순수한 사랑의 시작과 끝을 함께한다. 산사나무 아래서 둘의 사랑이 시작되고 끝난다. 그토록 보고 싶었던 산사나무 꽃이 필 무렵 남자는 그 나무 아래에 묻힌다. 사전을 들춰보니 산사나무의 꽃말이 ‘유일한 사랑’이다. 왜 하필 산사나무였을까 했더니 연관이 있다.



    동양의 산사나무는 주로 약재로 쓰는 나무다. 열매가 소화가 잘되게 하고 적체된 음식물을 내리는 건위제로 쓰인다. 신곡, 맥아와 함께 ‘삼선(三仙)’이라 불리는 소식약(消食藥)의 대표적인 약재다. ‘약방의 감초’보단 못하지만 감초만큼이나 많이 쓰인다. 한의사라는 직업적 관점에서는 약재로나 쓰지 사랑타령이 개입될 여지가 없는 나무다.

    장미과에 속하는 산사나무는 우리나라에선 ‘아가위나무’ 또는 ‘찔광이’라고 한다. 화창한 5월에 무성한 초록잎 사이로 흰 꽃무더기를 피워내는 산사나무는 사실 우리가 친숙하지 않아서 그렇지 청춘을 아름다운 순백의 사랑으로 유혹할 만한 나무다. 요즘은 공원의 조경수나 가로수로도 심기 때문에 산에 올라가지 않아도 그 꽃을 쉽게 볼 수 있다. 햇빛을 좋아해 양지바른 야산의 능선이나 숲 가장자리에서 잘 자란다. 영화에서도 양지바른 산 언덕배기에서 가지를 드리우고 연인들에게 그늘진 쉼터를 내줬다.

    8월경이면 구슬만한 열매들이 붉게 익는다. 꽃사과의 열매와 흡사하지만 열매 표면에 자디잔 흰 반점들이 점점이 박혀있고 꼭지 쪽에 꽃받침 자국이 남아있는 게 다르다. 사과나무와 한 족보여서 익은 열매는 새콤하고 달큼한 사과맛이 난다. 이 열매를 따다 씨앗을 제거하고 말린 것을 약재로 쓴다. 이를 산사육, 또는 산사자라고 하는데, 흔히들 그냥 산사라고 부른다. 당구자(棠毬子)라고도 한다.

    동양과 달리 산사나무는 유럽에서는 수많은 전설을 간직한 민속나무다. 유럽에서도 약재로 쓰긴 한다. 유럽 산사나무의 열매를 크라테거스(Crataegus)라고 하는데, 강심제로 많이 쓰인다. 그보다는 5월을 대표하는 나무로 삼아 ‘메이플라워(May flower)’라고 할 정도로 그 꽃의 아름다움에 취했다. 고대 희랍에선 산사나무 꽃이 희망의 상징으로 봄의 여신에게 바치는 꽃이었다. 지금도 5월1일이면 산사나무 꽃다발을 문에 매달아두는 풍습이 있다고 한다. 아테네 여인들은 산사나무 꽃을 행복의 상징으로 여겨 결혼식날 머리장식으로 썼고, 로마에서는 산사나무 가지가 마귀를 쫓아낸다고 생각해 아기 요람에 얹어두기도 했다. 영국에서도 5월이 되면 태양숭배와 관련된 축제를 열었는데 이때 활짝 피어나는 산사나무 꽃은 5월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전통주 산사춘 원료

    얼마 전 지인이 이 산사나무 열매를 한 자루 가득 가져왔다. 산에 갔더니 이 열매가 잔뜩 열려 있어서 땄다는 것. 꽃사과 열매는 아닌 듯하고 뭔지 잘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전통주 산사춘의 재료라고 했더니 산사주를 한번 만들어보겠단다. 그가 들고 온 열매는 검붉게 너무 잘 익어서 약재로 쓰기는 곤란했다. 산사는 적당히 익어 시고 떫을 때 따서 약용으로 쓴다. 또 오래 묵은 것일수록 약성이 좋다. 과육이 물컹해지도록 익으면 신맛이 거의 없다. 달달한 맛이 난다. 수분이 많아서 효소용으로 안성맞춤이었다. 알코올에 재어두면 곧바로 산사 와인, 즉 산사춘이 된다.

    산사와 관련된 옛이야기가 하나 있다. 어느 마을에 계모가 전 부인의 아들을 심하게 구박해 매일 설익은 밥을 주고 밭일을 시켰다. 흉칙한 계모는 아이를 병들게 해 일찍 죽게 하려는 속셈을 가지고 있었다. 설익은 밥을 매일 먹고 위장이 상해 점점 몸이 마르고 복통이 심해지게 된 아이는 산에 올라 슬피 울다 산사나무 열매를 보게 됐다. 붉게 익은 산사 열매가 먹음직스러워 이를 따 먹었더니 신통하게도 배도 아프지 않고 소화가 잘돼 속이 편해졌다. 아이는 이후 설익은 밥을 먹고는 꼭 산사 열매를 따 먹었다. 점점 살이 오르고 몸이 건강해졌다. 뒤에 이 이야기가 알려져 산사는 소화력을 돕고 위장병을 치료하는 데 긴요한 약으로 쓰이게 되었다는 것이다.

    ‘동의보감’에는 산사에 대해 “식적(食積)을 내리고 묵은 체증(滯症)을 푼다. 기가 뭉친 것과 적괴, 담괴, 혈괴 등 몸속에 뭉친 덩어리를 삭힌다. 비장을 튼튼히 한다. 답답하게 막힌 흉격을 연다. 이질을 다스린다. 종창이 빨리 곪아 터질 수 있게 한다”고 쓰고 있다.

    식적은 음식물이 소화되지 못하고 남은 노폐물 등을 가리키는 말이다. 평소 속이 더부룩하고 가슴이 답답하며 배가 아프고 가스가 잘 차고 대변을 시원하게 보지 못한다면 위와 장에 식적이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몸의 컨디션이 좋을 리 없다. 만성적인 피로 상태와 담음두통, 목덜미가 무겁고 아픈 항강증, 경우에 따라선 식적요통 등을 수반한다.

    노파심에서 하는 얘기지만, 이 식적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양방병원에 가서 내시경으로 진단한다면 바보짓이다. 한의학의 식적은 언어와 대상을 일대일로 대응시키는 서양의학의 실체론적 세계관과 부합하는 개념이 아니다. 증상과 상태의 집합이지 종양덩어리처럼 가시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주변에 만성적인 체증으로 고생하는 사람이 많은데, 내시경 진단을 받아봐야 서양의학은 체기(滯氣)의 존재를 밝혀내지 못한다. 체증 자체가 실체론적인 언어가 아니다. 이것은 서양의학이 이런 증상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없다는 말도 된다. 양방 병원에서는 위장에 염증이 없으니까 큰병이 아니다, 신경성이라는 말이나 듣기 십상이다.

    내시경으로 볼 수 없는 체증

    산사는 소화흡수 기능을 증진시키고 위장을 튼튼히 하는 최고의 건위제다. 현대인은 고기를 많이 먹고 식품첨가물이 들어간 빵이나 인스턴트식품을 많이 먹기 때문에 소화기질환을 달고 사는 이가 많다. 산사는 식적, 특히 육류의 과다섭취로 인해 육적(肉積)이 생겨 소화가 안 되고 늘 배가 더부룩한 증상을 다스리는 데 탁효가 있다. 산사의 과육에 지방분해효소가 많아서 지방이 많이 든 음식물을 잘 소화시키기 때문이다. 중국이나 우리나라에서도 예부터 이런 산사의 성분을 이용해 육류를 요리할 때 산사를 쓰기도 했다. 중국 송나라 때의 시인 소동파의 ‘물류상감지(物類相感誌)’에 “늙은 닭을 삶을 때 산사 열매를 넣으면 고기가 부드러워진다”는 기록이 있다.

    산사는 장위의 소화흡수 기능이 많이 떨어져 식욕이 없고 조금만 먹어도 배가 부르고 음식이 내려가지 않는 증상에 효과가 좋다. 이로 인해 몸이 여위고 늘 변비에 시달릴 때 산사 40g에 맥아(엿기름) 40g, 빈랑 12g을 환제(丸劑)로 만들어 복용하면 큰 효과를 본다.

    쫄깃쫄깃한 맛을 내기 위해 빵이나 밀가루식품에 많이 첨가하는 식물성 단백질 ‘글루텐’은 소화장애를 일으키기 쉽다. 성인 100명 중 1명꼴로 글루텐 알레르기가 있다고도 한다. 이로부터 만성적인 소화불량과 복부의 팽만, 더부룩함, 복통, 설사, 변비 등 위장장애가 심하고 전신적인 피로감과 여드름, 기미 등의 피부질환을 호소하는 경우에도 위의 환제가 효과가 있다. 단, 위산과다가 심한 경우엔 쓰기 어렵다. 위장에서 소화효소의 분비를 촉진시키기 때문이다.

    여기까지가 소화가 잘되게 하고 적체된 음식물을 내리는 ‘소식약’으로서의 산사의 효능이다. 그런데 산사의 효능이 이 정도에 그친다면 요즘은 무척 섭섭한 일이 된다. 고혈압과 심장병, 동맥경화에 좋은 것은 물론, 콜레스테롤 수치까지 떨어뜨리는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한의학 용어로는 ‘활혈화어(活血化瘀)’의 효능이다.

    관상동맥의 경화로 인한 심장병의 경우 대부분 고혈압을 수반한다. 산사에는 혈관을 확장시키고 혈류의 저항을 줄여 혈압을 떨어뜨리는 배당체와 락톤, 플라보노이드 성분이 있어서 이를 개선하는 효과가 크다. 혈압을 내리는 산사의 효과는 생약이기 때문에 완만하긴 하나 지속성이 뛰어나다. 산사를 꾸준히 복용하면 그 효과가 매우 좋은 것으로 알려진다.

    요즘 산사의 이런 효능은 구미에서 더 주목받고 있다. 최근에는 산사나무 잎에서 추출한 물질이 울혈성 심부전 환자의 수명을 연장한 것으로 확인되기도 했다. 미국 심장학회는 산사나무 잎 추출물을 2681명의 환자에게 2년간 투여해 실험 했는데, 그 결과 6개월, 18개월 생존율이 크게 높아졌다. 일부 환자에서는 돌연 심장사도 지연되는 효과를 보였을 정도라고 한다. 예부터 산사를 강심제로 썼던 유럽에서는 이미 심부전 치료에 이를 이용하고 있다.

    콜레스테롤 수치 내려

    또 산사는 콜레스테롤을 줄이는 효과가 있다고 알려진 최근의 약물 중에서도 혈중지질을 떨어뜨리는 데 가장 큰 효과가 있는 약물로 알려지고 있다. 열매에 들어 있는 트리테르펜사포닌 성분은 콜레스테롤로 인한 동맥경화에 탁월한 효능을 보이는 것으로 임상에서 입증되었다. 이 성분은 혈압을 낮추는 데도 효과가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고혈압이나 심장병이 있는 사람은 산사를 보물처럼 여길 만하다. 흔히 관상동맥경화로 인한 심장질환과 협심증엔 잘 말린 산사열매 35~50g을 진하게 달여 하루 3회 정도 나눠 마시는 것이 좋다고 한다.

    전통적으로도 산사는 활혈화어, 곧 혈액의 순환을 돕고 몸속의 궂은 피를 없애는 약으로 쓰인다. 일반적으로 기혈이 약해진 임산부나 여성에게 많이 쓰인다. 산후에 오로(惡露)가 그치지 않고 어혈이 빠지지 않으면 복통이 심해지고 출혈이 멈추지 않게 된다. 산사는 자궁을 수축시키면서 어혈을 빼내기 때문에 임부의 자궁을 빨리 안정시키고 통증을 가라앉히고 출혈을 그치게 한다. 또 통경작용이 있어서 생리가 계속되고 하복부의 통증이 그치지 않을 때도 효과가 좋다. 우리 한의원에서도 이런 질환에 산사를 많이 쓴다.

    위장병에 좋은 산사 심장병 고혈압에도 특효
    김승호

    1960년 전남 해남 출생

    現 광주 자연마을한의원 원장

    前 동아일보 기자·송원대 교수


    산사 열매에는 식물성 교질인 콜로이드가 많아 끓여놓으면 묵처럼 잘 응고된다. 이 때문에 식품으로서도 이용가치가 있다. 예전에는 산사를 보드랍게 가루 내어 꿀에 타 떡을 만들기도 했다. 산사정과(正果)도 만들었다. 산사나무는 순백의 꽃도 눈길을 끌지만 잎사귀의 모양새도 매우 독특해 잎맥까지 파인 불규칙한 생김새가 인상적이다. 그래서 주변에서 한번만 보면 쉽게 산사나무를 구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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