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낙원 _ 정윤수 지음, 궁리, 403쪽, 1만8000원
인본주의 지리학자 이-푸 투안은 “장소는 정감 어린 기록의 저장고이며 현재에 영감을 주는 찬란한 업적이다. 또한 장소는 영속적이며, 그리하여 자신의 연약함을 알고 어디에서나 우연과 변화를 느끼는 사람들을 안심시킨다”고 말했다.
뭐라고? 정감 어린 기록의 저장고? 영속적인 장소? 자기 내면의 현대 세계에 대한 불만을 가진 ‘연약’한 존재가 우연과 변화를 느끼면서도 ‘안심’하는 장소? 그런 곳이 어디 있는가?
나의 ‘인공낙원’은 이런 질문으로부터 시작한 책이다. ‘정감 어린 기록의 저장고’인 영속의 장소는 현대에 이르러 급격히 해체됐다.
생각해보자. 오늘날 왜 집집마다 냉장고에 음식이 남아 결국 버리게 되는가.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같이 나눠 먹는 풍습이 사라진 것도 중요한 이유가 된다. 전통 사회에서는 음식이 남을 까닭(돼지나 닭이 있으니까)이 없고 설령 그렇다 해도 마을 사람끼리 툇마루에 둘러앉아 나눠 먹었다. 그런데 오늘날, 아래층 아저씨가 밤 9시쯤 ‘찐고구마를 나눠 먹으려고 왔어요’ 하면서 초인종을 누른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겁부터 날 것이다.
내가 ‘인공낙원’에서 표현한 대로, 오늘날 도시는 거대해지고 인간은 왜소해졌다. 우리는 주눅 든 채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거대한 ‘인공낙원’ 사이로 걸어간다. 알렉시스 토크빌은 “다양성이 인류에게서 사라지고 있다. 똑같은 방식으로 행동하고, 생각하고, 느끼는 것은 이제 전 세계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고 썼는데, 이는 그가 1830년대의 서구를 묘사한 풍경이다. 그로부터 180여 년이 지난 오늘날, 광화문광장과 테헤란로와 송도신도시와 인천공항과 화려한 백화점과 형형색색의 테마파크에서, 그러니까 이 최첨단 시대의 ‘인공낙원’에서 우리는 과연 행복한 개인으로 존재하는가.
몇 해 전, 나는 그것이 몹시 궁금해 현장을 직접 방문하고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과 대화를 나눠보고 싶었다. 때마침 월간 ‘신동아’의 후의로 1년 가까이 대한민국의 거대 인공 공간을 취재할 수 있었다. 1년 동안의 연재를 마친 후, 다시 1년 정도의 시간을 들여 연재 때 미처 쓰지 못한 얘기와 너무 서둘러 얘기한 부분을 보완해 ‘인공낙원’을 출간할 수 있게 됐다.
도시공간에 대한 심미적 비평을 개척한 에드워드 렐프는 현대 도시가 기존의 익숙한 공간 체험을 완전히 해체하면서 이른바 ‘무장소성’으로 급변하는 것을 두고 “불행한 일이지만 불가피한 현대 기술 사회의 부작용이라고 비판하기는 쉽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은 현명하지도 정확하지도 않다”고 쓴 바 있다. 이런 지배적인 현상에 의해 인간과 공간의 진실된 교감이 점점 사라지는 현황을 제대로 판별하고 그 길이 아닌 우회로를 탐문하는 것, 그것이 중요하다고 렐프는 말했다. 나는 그것을 시도하기 위해 공항, 기차역, 광장, 경기장, 모텔, 백화점, 테마파크, 카지노, 모델하우스 등을 찾아다녔고 그 결과가 ‘인공낙원’이다.
정윤수 │문화평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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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로 수프만 생각했다 _ 요시다 아쓰히로 지음, 민경욱 옮김
직장을 그만두고 교외 작은 마을로 이사 간 청년이 사랑스러운 이웃들과 함께 삶의 진정한 행복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소설. 이사 직후, 마을에서 스치는 사람마다 죄다 같은 종이봉투를 들고 있다는 사실에 호기심을 느낀 주인공은 봉투의 출처를 찾다 샌드위치 가게 ‘트르와’를 알게 된다. 그곳의 맛있는 샌드위치에 역시 매료된 그는 ‘트르와’에 취직하면서 아내를 병으로 잃고 초등학생 아들과 함께 사는 주인 안도씨, ‘일정한 나이에 도달한 여성만이 지니는 매력을 지닌’ 영화친구 아오이씨 등 여러 이웃과 따뜻한 관계를 맺게 된다. 주인공에게 주어진 사명은 샌드위치에 어울릴 만한 수프를 개발하는 것. 시행착오가 반복되는 동안 그는 맛있는 것을 주위 사람들과 나누는 것이 우리 삶을 얼마나 풍요롭게 하는지 깨닫게 된다. 블루엘리펀트, 231쪽, 1만2000원
섬광예지력 _ 대니얼 버러스·존 데이비드 만 지음, 안진환·박슬라 옮김
순식간에 발휘되는 미래에 대한 통찰력,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접근법을 취함으로써 숨은 기회를 발견하고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미리 대응하는 능력을 ‘섬광예지력(flash foresight)’이라고 한다. 마이크로소프트, 도시바 등의 경영전략고문으로 일해온 대니얼 버러스와 비즈니스 분야 전문 저술가인 존 데이비드 만은 이 능력을 가지려면 ‘확실성에서 출발하라’는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가 ‘불확실한 것’에 집중할수록 성공적인 행동을 취할 수 있는 능력은 축소된다는 설명이다. “우리 모두가 불확실한 세계에 살고 있고 21세기에 접어들면서 그 어느 때보다 더욱 불확실해지고 있다는 통념을 믿고 받아들이면, 우리는 더욱 위험에 빠질 뿐이다. 그것은 근거 없는 신화일 뿐”이라는 주장이 인상적이다. 동아일보사, 431쪽, 1만6500원
세계의 운명을 바꿀 중국의 10년 _ 오일만 지음
서울신문 경제부 차장인 저자는 2002년부터 2005년까지 베이징특파원으로 일했다. 2010년에는 중국의 정치·경제·문화를 취재한 기획물 ‘신차이나 리포트’를 보도하기도 했다. 이 경험을 토대로 중국의 오늘을 생생하게 소개하고, 중국의 오늘을 만든 뿌리에 대해서도 탐색한다. 저자에 따르면 지난 30여 년의 개혁·개방정책을 통해 중국에는 ‘새로운 인간형’이 나타났다. ‘독립·자유·창조’를 인생의 코드로 삼은 중국의 신세대다. 통상 청춘세대로 불리는 15~24세의 청년층 인구는 2억5000만명 안팎. 매년 2000만명이 늘고 있으며 이들 중 45.3%가 14년(전문대) 이상의 교육을 받았다. 26.3%가 적어도 외국어 1개 이상을 구사한다. 이들은 중국 현대사에 등장한 어떤 젊은 세대보다 낙관적인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게 저자의 분석이다. 나남, 344쪽, 1만5000원
저자가 말하는 ‘내 책은…’
이희수 교수의 이슬람 _ 이희수 지음, 청아출판사, 552쪽, 1만8000원
우리는 이슬람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 57개국, 15억 인구에 달하는 세계 최대 단일 문화권을 온통 편견과 무지로 가득 채워놓고 글로벌이나 세계화를 부르짖는 모습을 보면서 이건 아니다 싶었다. 현장에 뿌리내리고 살아야 하는 인류학자로서 33년이란 긴 세월 동안 중동-이슬람권 전역에서 경험하고 목격한 실체적 진실과 미국과 서구가 국익 극대화를 위해 만들어놓은 정보 사이의 엄청난 간극을 어떻게 메울 것인가? 나의 오랜 숙제와 고민을 이 책에서 모두 펼쳐봤다.
헤지불라, 하마스, 이슬람 지하드 등은 서구에서는 극악한 테러집단이지만 이슬람권에서는 국제법적 정당성을 가진 정치 조직이다. 그들은 코카콜라보다는 펩시콜라를, 네슬레보다는 네스카페를 선호한다. 유대 자본이 들어있는 브랜드에 대한 거부감이 강하기 때문이다. ‘이슬람이 여성을 억압하는가?’ 하는 오랜 논란도 깨끗하게 정리하고 넘어가고 싶었다. 같은 이슬람 세계라도 한쪽에서는 간통죄와 사형제를 폐지하고 선거를 통해 여성 총리와 여성 대통령을 배출하는데, 다른 쪽에서는 여성 운전조차 범죄로 처벌한다. 이슬람 세계의 두 얼굴을 동시에 드러내 보이면서 독자가 통찰력과 균형감각을 가질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
나아가 테러, 석유, 건설이라는 3개의 키워드를 통해 중동을 조망했다. 이 지역이 신라시대부터 우리와 긴밀한 문화 교류를 해왔다는 사실을 이해하면 중동은 훨씬 친근하게 다가온다. 또 암흑시대에 있던 중세 유럽이 세계 최고 수준의 이슬람 학문과 과학 기술을 받아들여 르네상스를 꽃피울 수 있었다는 새로운 역사도 선보였다. 이 책은 550쪽이 넘는 분량으로, 21세기를 살아가는 한국 지성이 한 번쯤 반드시 읽어야 할 필독 인문 교양서로 꾸몄다.
9·11테러 이후 10년간 변화된 이슬람 세계와 최근 아랍 민주화 시위부터 출발해, 5000년 인류문명을 주도했던 중동의 잊힌 역사, 이슬람 종교의 가르침과 핵심 교리, 이슬람 여성의 진정한 모습, 문학·예술·건축에 이르는 풍성한 이슬람 문화의 실체, 이슬람 사람들의 통과의례와 일상적인 삶의 모습, 끊임없는 이슬람 세계의 분쟁 배경과 이해, 새롭게 떠오르는 시장으로서 비즈니스 수칙과 이슬람 경제 소개, 이슬람과 서구의 공존과 화해를 위한 접근 등이 담겨 있어 이 한 권으로 이슬람 세계와 그 문화를 압축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제는 우리가 세상의 중심이 되고, 우리가 인식의 주체가 돼 관념적이고 모호한 국익이 아닌, 실용적이고 실체적인 진실에 입각해 세상을 바라봐야 한다. 이 책은 그동안 버리고 잃어버렸던 새로운 세상 하나를 독자에게 선사할 것이다. 문화는 우열을 평가할 수 없으며, 단지 서로 다를 뿐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이슬람의 이해를 통해 다시 한 번 깨우치길 바란다.
이희수│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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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버거보다 맛있는 수학 이야기 _ 요시자와 미쓰오 지음, 김정환 옮김
일본 오비린대 수학과 교수인 저자는 일본 내 100여 개 초·중·고교를 다니며 수학의 즐거움과 유용성을 강의하는 방문 수업 활동을 해왔다. 이때 중·고생들에게 강의한 내용을 골라 묶은 책. 저자는 수학 재미를 한번 맛본 사람은 수학이 주는 희열을 잊지 못하고 자꾸 찾게 된다고 말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 그는 퀴즈를 내고 해설하는 방식으로 독자의 흥미를 유발한다. ‘거울처럼 명확한 숫자 이야기’ ‘복권보다 짜릿한 조합 이야기’ ‘마술처럼 신기한 변화 이야기’ ‘햄버거보다 맛있는 도형 이야기’ 등 네 개의 단원 안에는 ‘생일 알아맞히기 게임’ ‘2345년 1월1일은 무슨 요일일까’ ‘새해가 찾아오는 순간은 12월31일일까, 1월1일일까’ 같은 퀴즈가 가득하다. 부제는 ‘중·고등학생들도 열광하는 어느 대학교수의 수학놀이법’이다. 블루엘리펀트, 204쪽, 1만2000원
사도세자가 꿈꾼 나라 _ 이덕일 지음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 ‘조선왕 독살사건’ 등의 저서를 통해 노론 중심 사관에 문제를 제기하며 논란의 중심으로 떠오른 저자의 새 책. 저자는 ‘사도세자의 죽음은 영조의 이상 성격과 사도세자의 정신병 충돌이 빚은 비극적인 결과’라고 기록한 혜경궁 홍씨의 ‘한중록’을 하나하나 반박하며, ‘사도세자 죽음의 진실’을 찾아나간다. 그에 따르면 “영조에게 세자는 개인적 비행을 저지른 ‘아들’이 아니라 아버지의 당파와 대립하는 자기 당파를 형성한, 즉 ‘정적(政敵)’”이었다. 이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저자는 영·정조대의 정치 지형과 당파 간의 이해관계 등을 치밀하게 분석하고, ‘영조실록’에서 사도세자를 성군의 자질을 지닌 인물로 기록한 내용 등을 찾아낸다. 책의 뒷부분에는 주요연표와 주요인물을 부록으로 실었다. 역사의 아침, 440쪽, 1만5000원
배드 사이언스 _ 벤 골드에이커 지음, 강미경 옮김
신문과 방송에서 쏟아져 나오는 과학 정보들, ‘감기 예방하려면 비타민C를 먹어라, 두뇌 발달에는 오메가3가 좋다, 항산화제가 노화를 막아준다…’ 등은 모두 사실일까. 영국 옥스퍼드 의대 출신의 현직 의사로 과학 저술가 겸 칼럼니스트인 저자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저자는 일반인이 과학을 잘 모른다는 사실을 악용해 엉터리 제품을 파는 의료인과 제약업자 등을 비판하면서 ‘돌팔이 의료인과 사이비 약품, 제약회사의 횡포와 언론의 엉터리 과학 기사’를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을 일러준다. 저자가 2003년부터 영국 ‘가디언’ 지에 연재한 칼럼을 묶어 펴낸 이 책은 2008년 출간 즉시 영국 아마존 논픽션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고, ‘타임스’ ‘텔레그래프’ ‘이코노미스트’ ‘옵서버’ ‘인디펜던트’ 등이 선정한 ‘올해의 책’으로 뽑혔다. 공존, 448쪽, 1만8000원
저자가 말하는 ‘내 책은…’
팍스 시니카 _ 신동준 지음, 이가서, 424쪽, 1만9000원
메이지유신 당시 일본 열도는 양이(洋夷)를 배우려는 열기로 후끈 달아올랐다. 서양 오랑캐의 식민지로 전락하지 않으려는 몸부림이었다. 조선 사대부들은 코웃음을 쳤다. 서양 오랑캐를 배우지 못해 안달하는 도이(島夷)로 간주한 것이다. 그 결과는 국가 패망이었다. 300년 전 왜란으로 백성을 어육(魚肉)으로 만드는 곤욕을 치르고도 좁은 울타리 안에 갇혀 야랑자대(夜郞自大)의 오만에 빠진 후과였다.
고금동서를 막론하고 개인이든 국가든 천하대세에 눈을 감은 채 현실에 안주하면 이내 패망할 수밖에 없다. 천지간에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오직 있다면 ‘주역’에서 설파했듯 모든 게 끊임없이 변한다는 변역(變易) 이치 하나뿐이다. 21세기 현재 우리는 점차 속도를 더해가며 지축을 뒤흔드는 변역의 한가운데에 서 있다. 바로 ‘팍스 시니카’의 도래다. 그 한복판에 한반도가 있다.
일찍이 러셀은 서구의 역사문화가 플라톤의 철학과 예수의 신학, 갈릴레오의 과학 위에 서 있다고 지적하면서 동양은 서양의 과학기술을 따라잡을 수 있으나 서양은 동양의 지혜를 배우는 데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성리학에 찌들었던 중국과 한국이 우주정거장을 만들고 IT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하드웨어를 자랑하는 현실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문제는 소프트웨어다. 많은 사람이 인문학적 접근을 얘기하는 이유다. 스티브 잡스의 죽음을 계기로 그 목소리가 더욱 높아지고 있다. 동양의 고전은 인문학의 보고(寶庫)다. 그러나 커다란 걸림돌이 있다. 구미에서 헤겔과 마르크스 및 베버의 세례를 받은 자들이 당사자다. 헤겔과 베버 등은 동양의 역사문화를 ‘아시아적 정체’와 ‘봉건전제정’으로 왜곡한 장본인들이다. 대학 강단과 언론계, 문화계를 지배하고 있는 헤겔과 베버의 제자들이 ‘팍스 시니카’를 중국의 것으로 돌리면서 ‘팍스 아메리카나’의 지속을 외치고 있다. 구한말 고루한 성리학자들이 위정척사(衛正斥邪)를 떠든 것과 닮았다.
21세기 현재까지 헤겔과 베버 등의 이론을 금과옥조로 삼는 것은 문화식민지를 자초하는 짓이다. 조선조 사대부들이 주희의 가르침을 절대시하다 패망한 역사가 있기에 더욱 그렇다. 그 누구도 장강의 뒷물결이 앞물결을 밀어내는 도도한 천하대세를 거스를 수는 없다. 마당의 오동나무 잎이 떨어지는 것은 계절이 바뀌는 전조다. 통일시대와 이후의 ‘동북아 허브시대’는 ‘팍스 시니카’ 속에서 결판날 수밖에 없다. 현명한 대처가 필요한 이유다.
중국은 지금 무서운 속도로 ‘세계의 공장’에서 ‘세계의 시장’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지경학(地經學)적 이점을 살려 선점할 필요가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사람들은 중국을 잘 알고 있다는 터무니없는 자만심에 빠져 있다. 전문가들도 일렁이는 파문만 보고 온갖 전망을 쏟아내고 있다. 이게 적중할 리 없다. 필자가 ‘팍스 시니카’를 펴낸 이유다.
신동준│21세기 정경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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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자야 잘 산다 _ 이종우 지음
‘성공하고 싶다면, 예뻐지고 싶다면, 건강하게 살고 싶다면 잠부터 점검하라!’는 부제가 붙은 책. 국내 개원의 가운데 처음으로 수면클리닉을 연 저자는 우리나라에 10명뿐인 국제수면전문의다. 그에 따르면 수면장애는 우리나라 성인 4명 중 1명이 겪는 흔한 질환. 하지만 이를 방치하면 소아는 얼굴 모양이 변하거나 성장에 지장을 받게 된다. 성인의 경우 당뇨병, 고혈압 등 각종 질환을 유발할 수도 있다. 저자는 ‘달게 잘 때 코를 곤다’ ‘열심히 공부하는 아이와 의지력이 강한 사람은 잠을 적게 잔다’ ‘수면호흡장애는 나이가 들면 자연적으로 생기게 마련이라 크게 문제될 게 없다’와 같은 ‘상식’이 잘못된 것임을 지적하면서 ‘내 몸에 맞는 적정 수면시간 찾는 법’ ‘잠을 준비하도록 몸에 신호를 주는 요령’ 등을 소개한다. 동아일보사, 218쪽, 1만2000원
바다가 죽은 날 _ 리키 오트 지음, 강윤재·조아라 옮김
1989년 3월 엑손 밸디즈 호는 알래스카 해상에서 암초와 충돌해 3000만 갤런의 기름을 유출했다. 이 사건을 현장에서 경험한 미국의 어부이자 해양독성학자, 사회활동가인 저자는 당시 방제작업에 참여한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기름 유출이 그들의 건강과 생태계에 미친 영향을 장기적으로 추적하며, 동시에 관련 재판기록을 꼼꼼히 조사해 이 보고서를 펴냈다. 그에 따르면 유출된 기름은 바다 생태계와 사람들의 건강뿐 아니라 인근 지역의 사회·문화·경제 등 모든 것을 송두리째 빼앗아간다. 석유는 기존의 예상보다 훨씬 오랫동안 바다에 남아 있었고, 야생 동물은 치명적인 손상을 입었다. 현재 알래스카 기름오염지역재단 등의 자문위원으로 활동 중인 저자는 이 책으로 벤저민 프랭클린 과학ㆍ환경 분야 도서상 등을 받았다. 소나무, 668쪽, 2만5000원
그리스 로마 에세이 _ 키케로 등 지음, 천병희 옮김
키케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세네카, 플루타르코스 등 공저자의 이름만으로도 무게감을 느끼게 하는 책이다. 키케로는 로마의 문인·철학자·정치가로 그리스의 사상을 로마 문명에 장착시켰다고 평가받는 인물. 아우렐리우스는 로마의 철인(哲人) 황제였고, 세네카는 로마 네로 황제 궁정의 정치가였다. 플루타르코스는 ‘플루타크 영웅전’의 저자로 역시 고대 로마의 대표적인 지성인으로 평가받는다. 인류의 삶과 사상에 큰 영향을 미친 이들의 걸작 에세이를 천병희 단국대 명예교수가 번역했다. 독일 북바덴 주정부가 시행하는 희랍어·라틴어검정시험에 합격한 역자는 그리스문학과 라틴문학 원전을 우리말로 옮기는 데 천착해온 인물. 이 책에는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세네카의 ‘인생의 짧음에 대하여’, 플루타르코스의 ‘결혼에 관한 조언’ 등을 담았다. 숲, 760쪽, 3만3000원
저자가 말하는 ‘내 책은…’
정조치세어록 _ 안대회 지음, 푸르메, 272쪽, 1만3800원
‘정조치세어록’은 정조(正祖·1752~1800, 재위 1776~1800) 대왕의 어록을 뽑아 번역하고 해설한 책이다. 필자는 2009년 정조가 심환지에게 보낸 어찰을 여러 학자와 함께 번역해 ‘정조어찰첩’을 간행했고, 그 다음해에는 그 어찰을 연구해 ‘정조의 비밀편지’를 간행한 바 있다. 이 책은 앞선 저술을 이어 정조를 더 깊이 이해해보려는 또 다른 시도다.
정조는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호학군주이자 개혁군주다. 정조대왕에게 매력을 느끼고 그를 깊이 알고 싶어하는 한국인이 많다. 반면 그 욕구를 충족시켜줄 만한 저작은 기대만큼 많지 않고, 또 방대한 저작과 사료를 일일이 읽는 것은 전문 연구자도 엄두가 나지 않는 일이다. 이 책은 그렇게 정조를 알고 싶어하는 사람의 독서를 돕고자 기획됐다. 1년여가 넘는 기간 경향신문에 연재한 뒤 몇 개월에 걸쳐 보완해 세상에 내놓았다. 정조가 만들고자 했던 나라의 모습과 통치자가 되는 길, 사람답게 사는 길을 그의 육성을 통해 접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책은 정조의 수많은 어록 중 정조의 생각을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을 골고루 뽑아 기획했다. 정조는 본래 글쓰기와 말하기를 좋아했다. 그렇기 때문에 방대한 규모의 저작을 남겼고, 각종 사료에는 수많은 말이 기록돼 있다. 유사 이래 통치자로서는 정조가 가장 많은 저작을 남겼는데, 대부분이 대필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쓴 것이다.
정조는 글과 말이란 수단을 활용해 사색당파로, 지역 간 이해관계로, 신분의 차별로 조각난 나라를 슬기롭게 통치했다. 정조는 신하나 백성으로 하여금 국왕이 우리를 사랑하고 보호한다는 믿음을 갖게 했고, 한 가지 재능만 갖고 있어도 국왕이 이를 인정해 자신을 기용할 것이라는 희망을 품게 했다. 건릉성제(健陵盛際·건릉은 정조의 왕릉 이름이고 성제는 융성한 시대라는 뜻)의 백성은 계층과 지역을 떠나 우리는 소외되지 않았다는 느낌을 가졌다. 그 같은 일체감을 심어준 것이 바로 정조의 말이다.
이 책은 치세(治世)라는 것에 초점을 맞추기는 했으나 그의 공부에 관한 생각과 인간 됨됨이 대한 점까지 엿볼 수 있도록 배려했다. 정조가 위대한 학자이자 사상가임을 어록을 통해 확인하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그는 정치와 사회, 국방만이 아니라 인생과 학문에 관해, 또한 어떻게 살아야 하고 어떻게 공부할 것인지에 대해서까지 친절하게 말하고 있다.
정조가 한 말은 그 시대의 증언이기도 하고, 지금도 여전히 건강한 의의를 지닌 말씀이기도 하다. 위대한 학자와 문인과 예술가를 배출한 건릉성제를 일군 밑바탕에 정조의 리더십과 건강한 인간미가 있었음을 그의 어록은 말해준다.
안대회│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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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의 사막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_ 슬라보예 지젝 지음, 이현우·김희진 옮김
‘9·11 테러 이후의 세계’라는 부제가 붙은 책. 저자는 ‘폭력이란 무엇인가’ ‘탈이데올로기 시대의 이데올로기’ 등의 책으로 ‘실천하는 이론가’라는 평가를 받아온 지식인이다. 그가 9·11 테러를 주제로 쓴 논문 다섯 편을 묶었다. 저자에 따르면 “9·11 테러는 우리의 평화로운 삶을 깨뜨리는 ‘악’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한계를 드러내는 자기파괴적이고 상징적인 사건”이다. 이 때문에 “우리가 채택해야 할 입장은 한마디로, 테러리즘과 맞서 싸워야 할 필요성을 수용하면서 동시에 테러리즘이라는 용어의 의미를 재정의하고 확장해 미국과 다른 서구 국가들의 행위(일부)도 거기에 포함되도록 하는 것”이라고 한다. ‘로쟈의 저공비행’이라는 서평 블로그를 통해 ‘지젝 전도사’로 이름을 얻은 이현우 한림대 연구교수 등이 번역을 맡았다. 자음과모음, 219쪽, 1만9000원
빈곤의 덫 걷어차기 _ 딘 칼런, 제이콥 아펠 지음, 신현규 옮김
예일대 경제학과 교수로 빈곤퇴치혁신기구(IPA)의 공동 설립자 겸 회장인 딘 칼런과 IPA에서 일하면서 서아프리카, 가나 등지의 빈곤 계층을 위한 무담보 소액대출 프로젝트를 수행한 제이콥 아펠 등 두 저자가 세계적인 부의 불균형과 빈곤 문제를 해결할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한 책. 저자들에 따르면 세계 인구의 절반인 30억명이 하루 2.5달러의 돈으로 연명한다. 이들을 돕기 위한 자산가들의 기부와 자선활동도 계속되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이들이 제시하는 것은 좀 더 명확하고 구체적인 행동이다. 예를 들어 케냐의 농부들은 비료를 권장량보다 적게 썼다. 농업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저자들은 농부의 주머니가 두둑해지는 추수기에 비료 쿠폰을 선불 판매했고, 이는 비료의 적정 사용과 생산성 상승으로 이어졌다. 청림출판, 398쪽, 1만7000원
치즈의 지구사 _ 앤드루 댈비 지음, 강경이 옮김, 주영하 감수
저자는 언어학자이자 역사학자로 ‘비잔틴의 맛’ ‘고대 음식의 모든 것’ ‘위험한 맛: 향료의 역사’ 같은 책을 써왔다. 그가 문명 세계의 음식 중 가장 역사가 오래된 치즈를 연구 주제로 삼아 발명부터 확산까지, 다양한 역사와 문화 이야기를 담았다. 저자에 따르면 “치즈 역사가들이 느끼는 좌절감은 훌륭한 치즈를 만들기 위한 무한히 다양한 과거의 기술과 정성이 거의 기록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몽도르, 고르곤졸라, 로크포르, 브리, 라귀올, 그뤼예르, 만체고, 체더, 르블로숑, 모차렐라 등 무수한 치즈 이름마다 담겨 있는 각각의 역사를 소개하기 위해 저자는 인간이 낙농을 시작한 기원전 400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 다양한 참고 문헌을 뒤진다. 여러 종류의 치즈와 치즈를 재료로 만든 요리 사진이 읽는 재미를 더한다. 휴머니스트, 235쪽, 1만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