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문화 조화론 vs 서구화론
그 결과 량수밍은 1913년부터 불교에 심취해 불학(佛學)을 연구하는 한편 베르그송, 쇼펜하우어, 니체 등의 저서와 옌푸(嚴復)의 여러 서구 번역서를 읽었다. 그 결과물이 1916년 ‘동방잡지’에 발표한 ‘구원결의론(究元決疑論)’이다. 이 글을 계기로 1917년에 베이징대 총장 차이위안페이(蔡元培)의 초빙을 받아 베이징대에서 인도철학을 강의했다. 그러나 1918년 60세 생일 전날 부친 량지가 중국사회의 타락한 도덕기풍을 비판하면서 평소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세인에게 삼가 알림(敬告世人書)’이라는 장문의 유서를 남기고 자살했다. 충격을 받은 량수밍은 불교를 버리고 사회문제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갖게 된다. 동시에 베이징대에서 공자철학연구회를 설립하는 한편, 동서문화에 대한 연구와 강연을 진행하고 1921년 ‘동서문화와 철학’을 출판해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량수밍의 ‘동서문화와 철학’이 당시 학계에서 큰 반향을 일으킬 수 있었던 것은 19세기 중국 개혁과정의 문제점이 응축돼 있었기 때문이다. 또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그 자체가 세계적인 사상조류의 중심에 있었기 때문이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중국에는 서구 근대문명에 대한 비판적 사조를 이끌던 니체와 베르그송의 철학, 상호부조론을 제창한 무정부주의자 크로포트킨(Kropotkin), 대표적인 ‘생의 철학자’ 루돌프 오이켄(R. C. Eucken)의 사상이 소개됐고 듀이, 러셀, 타고르 등 사상가들과 일본의 와세다대 철학교수인 가네코 우마지(金子馬治)와 기타 레이키치(北聆吉), 그리고 ‘구유심영록(歐游心影錄)’을 발표한 량치차오(梁啓超) 등에 의해 제1차 세계대전이 사상적인 주제로 문제화됐다. 이들은 전후 세계사상과 문명의 전환을 전제로 세계개조의 방향을 모색했는데, 동서문화론 역시 바로 그러한 사상적 의제로 제기됐다.
그러나 이러한 사상적 조류의 전환 속에 제기된 중국의 동서문화론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졌다. 하나는 동방잡지 편집자 두야취안(杜亞泉)을 대표로 하는 ‘동서문화 조화론’이고, 다른 하나는 ‘신청년’의 편집자 천두슈(陳獨秀)와 후스(胡適) 등의 ‘서구화론’이었다. 두야취안은 동서문화를 각각 정적문화와 동적문화로 구분하고, 두 문화의 조화를 통해 동서문명의 위기와 중국 근대화의 이원성의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천두슈와 같은 서구화론자는 중국문명과 서구문명은 근본정신이 다르기 때문에 절충적 조화는 불가능하며, 중국이 취해야 할 태도는 중국문명에 대한 부정과 서구문명의 학습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논전은 심도 있는 분석을 보여주지는 못했지만, 5·4운동을 거치면서 ‘포스트 세계대전’ 시대에 중국 개조의 길과 관련된 다양한 사상분화를 야기했다.
문화 유형론과 세 가지 문화정향
량수밍의 동서문화론은 당시 다양한 동서문화의 비교 관점을 비판하며 자신의 독특한 입장을 구축했다. 여기서 ‘독특함’은 우선 그의 방법론에서 보여준다. 당시 동서문화론은 주로 ‘현상적’ 설명(즉 동적·정적, 자연정복, 과학, 민주, 산업 등) 또는 객관적 설명(인문지리적 설명)에 치우쳐 있었다. 그는 동서문화의 차이에 대한 발생학적 근본 원리나 총체적인 근거는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고, 이러한 현상적 차이점들을 초래한 보다 근본적인 원리로서 ‘문화의 방향’이라는 관념을 제기했다. 각 문화는 고유의 원리에 입각해 특정한 전개 방향을 지니고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문화의 고유한 성격과 그에 따른 발전 방향이라는 그의 관점은 역시 제1차 세계대전 기간 중에 동서 종교문화를 연구한 막스 베버나, 같은 시기 서구몰락의 원인을 분석한 슈펭글러에게 공히 보이는 특징이다. 이는 역사를 인식함에 있어 문화결정론은 아니더라도 문화의 정신적 특징으로부터 그 전개방향과 성격을 설명하려는 경향의 산물이다. 여기서 량수밍이 말하는 문화는 추상적인 관념이 아니라 인류(혹은 민족)의 생활양식이다. 나아가 량수밍은 생활에 대해 특수한 의미를 부여했는데, 그에 의하면 전체 우주는 하나의 생활이다. 우주는 고정된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찰나로 이루어진 생활의 지속이다. 그리고 생활의 근본은 ‘의욕’ 그 자체에 있다. 여기서 말하는 ‘의욕’은 바로 쇼펜하우어의 ‘의지(will)’ 개념에 가깝다. 전체 생명은 바로 이러한 ‘의욕’의 맹목적인 표현이다. 그리고 이러한 의지가 구체화되는 과정에서 부딪치는 장애와의 투쟁이 바로 생명의 과정이다.
즉 의욕은 생활세계에 대한 의욕이고, 생활세계에 대한 의욕은 바로 의욕 대상을 목표로 장애를 극복해가는 과정이다. 따라서 생활방식인 문화는 의욕의 그러한 대응방식이다. 문화의 차이는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서의 장애물의 차이와, 그로 인한 ‘의욕 방향’의 차이, 그리고 의욕이 그 만족을 방해하는 장애를 처리하는 방식의 차이점이다.
량수밍은 처리하는 방식에 따라 문화를 세 가지로, 즉 세 가지 정향(定向)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①첫 번째 정향 : 자신이 바라는 것을 얻으려 애쓰고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려 하는 것이다. 즉 분투하는 태도다. 문제에 부딪히면 늘 분투를 통해 국면을 바꾸어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려고 한다.
②두 번째 정향 : 문제에 부딪히면 해결하려 하지 않고 바로 그 상황에서 자기만족을 구한다. 즉 문제에 대응하는 방법은 단지 자기 의욕을 환경조건에 조화시키는 것일 뿐이다.
③세 번째 정향: 문제에 부딪히면 문제 혹은 욕구를 근본적으로 취소하려 한다. 즉 첫 번째처럼 국면을 개조하려 하지도 않고, 두 번째처럼 자기의 생각을 바꾸려하지도 않는다. 단지 문제를 근본적으로 취소하려고 한다. 이는 욕망에 대한 금욕적인 태도에 해당한다.
이와 같이 문제의 성격과 난이도에 따라 그것을 대하는 태도도 앞을 향한 분투, 조화론적 적응, 회피적 태도 세 가지로 정향된다. 량수밍은 이러한 각각의 태도가 지속적으로 누적되면 세 가지 생활양식, 즉 문화유형이 나타난다고 봤다. 그렇다면 문제의 성격과 그에 따른 대처 방안의 차이로 역사적으로 형성되어온 각각의 문화는 우열관계가 있을 수 없다. 모두 합리적인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세 가지 문화정향을 토대로 량수밍은 서구, 중국, 인도 문화의 성격을 비교, 분석한다. 특히 위 세 가지 정향은 각각 사유의 네 가지 차원(형이상학, 종교, 인식론, 인생철학)과 특정한 방식으로 관계를 맺는데, 그 결과 중국과 서구, 그리고 인도는 각기 다른 문화차원을 발전시켜왔다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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