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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 다큐 | 잃어버린 근대를 찾아서

밀려오는 개조의 물결 피어오르는 자각의 불길

1920년대 서울

  • 박윤석│unomonoo@gmail.com

밀려오는 개조의 물결 피어오르는 자각의 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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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중 기관별 행사 중에서 생활 정보가 될 만한 것을 골라서 기사 양식에 맞춰 정리해두는 일이 한림이 맡은 일 중 하나다. 그러면 경력 있는 기자가 그걸 한번 쓱 보고 토를 달거나 고쳐서 부장에게 올린다. 한림은 편집국에 서무로 입사했다. 편집국의 살림살이를 돕고 타 부서와 업무연락을 하고 사내외의 각종 잡무를 처리하고 어린 사환들 데리고 청소도 함께 하는 직책이다. 입사하자마자 창간 준비로 바빴던 3월 한 달은 기자들 일손이 부족해 취재 보조도 하고 교정도 보며 이렇게 간단한 안내 기사까지 작성하게 되었다. 한림은 신문에 관한한 무경력자이고 서울에 올라온 지도 얼마 안 되어 아직 물정에 어둡다. 기자들 중에는 관영신문 매일신보에서 이미 잔뼈가 굵은 베테랑들도 있고 일본 신문에서 활동하다 건너온 이들도 있다. 굳이 신문일이 아니라도 외국에서 유학과 예술활동 같은 것으로 견문을 넓히고 온 사람들도 있다. 기자들은 거의가 서른 살이 넘지 않은 20대였다. 가장 젊은 기자 이서구(李瑞求)는 한림과 동갑이라 했고 유광렬(柳光烈)은 한 살 위, 염상섭(廉想涉)은 두 살 위라 했다.

한림은 차오르는 복받침 같은 것을 가슴께에 느끼며 안동별궁의 높고 긴 돌담을 벗어났다. 오늘 일은 일단 끝이 났다. 첫 신문이 나오는 날이다. 오랜 준비를 거친 창간호 대면을 앞두고 다들 홀가분하면서도 긴장된 기분이 되어있다. 신문이 인쇄 되어 나올 동안 잠시 회사를 빠져나와 가까운 주변이라도 한 번 둘러보며 마음을 추스르고 싶었다. 수요일의 오후였다.

사람은 우측통행

경성은 그에게 낯선 곳이다. 화동의 신문사에서 남쪽으로 내리뻗은 이 길을 내려와 안국동 사거리에 설 때마다 한림은 서울이 왜 서울인지를 알 것 같았다. 북악의 줄기를 병풍 삼아 왼쪽 동편으로 창덕궁이, 오른쪽 서편으로 경복궁이 지척에 바라보인다. 그 옆으로 학의 날개처럼 펼쳐진 인왕산과 낙산이 종묘와 사직까지 품고 있다.

사통팔달의 안국동 사거리에서 떠오르는 해를 안듯이 정면으로 남산을 바라보며 서서히 낮아지는 길을 따라 남으로 내려간다. 안개비 너머 남산은 마치 경주와 가야와 백제의 고분처럼 부드러운 상체를 소담스레 드러내고 있다. 견지동 대로를 따라 종로 사거리에 이르는 500m가량의 이 직선 구간이 한림이 경성의 신문사에 출근해 처음 접한 길이고 가장 익숙한 길이다.



길의 오른편을 따라 걷는다. 우측통행이 조만간 시행되리라 한다. 우마차(牛馬車)가 뒤섞여 복잡해져가는 도시의 대로상에서 인간이 가야 할 길과 그 방향에 대한 규칙이 마련되었다. 보행자는 보차도가 구분된 곳이건 아니건 길 오른편으로 걷도록 유도된다. 조선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계도기간을 거쳐 남촌 본정경찰서 관내에서 먼저 시행한 뒤 북쪽 종로경찰서 관내로 확산된다고 한다. 5월 중 게재될 안내 기사문이다.

최근 교통기관이 현저히 발달되었는데 시민들이 법규를 지키지 아니하기 때문에 뜻밖의 화를 입는 일이 자주 생기므로 본정경찰서에서는 보행하는 사람의 우측통행을 실시한다. 경찰파출소에 한층 엄중히 단속하라고 지시하는 한편 각 정동(町洞) 대표에게 시민의 주의사항을 다음과 같이 간곡히 의뢰하였다. 길에는 때때로 물을 뿌릴 것, 아이들은 길에서 작난하지 못하게 할 것, 다섯 살 미만 어린아이를 보호자 없이 길에 다니지 못하게 할 것, 길에다 수레나 기타 모든 물건을 늘어놓지 못하게 할 것, 길에서 허가 없이 무슨 일을 할 때 교통을 방해하는 일을 하지 말 것.



한 건물 앞에 한림은 멈춰 섰다. 한성도서주식회사가 입주할 예정인 곳이라 한다. 출판은 물론 인쇄와 판매 일체를 총괄하는 기업형 출판회사가 한 달 뒤 출범을 앞두고 있다.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일이다. 자본금 30만 원. 한림이 입사한 신문사의 자본금이 100만 원이다. 그나마 주식 모집이 순조롭지 않아 주식회사 설립이 지연되는 형편이다. 어쨌건 이번 봄 새로 생겨난 조선인 경영의 3개 신문사 역시 10년 전의 신문사들과는 질과 양 면에서 비교가 되지 않는 수준이다. 10년 세월이란 그처럼 긴 기간이었다. 한바탕 긴 악몽을 꾸고 난 것처럼 사회 전체가 부스스 먼지를 털고 일어나는 형상이다.

‘우리의 진보와 문화의 증장(增長).’ 그런 기치를 내걸고 한성도서는 이미 각계 인사들로 임직원을 구성하고 광화문통에 마련한 임시 사옥에서 운영에 들어갔다. 단행본 발간과 아울러 잡지 발간에 주력하고 있다는데 첫 작품으로 월간잡지 ‘서울’이 막 간행되었다. 뒤이어 학생잡지 ‘학생계’가 5월에 발행을 앞두고 있다. 부녀잡지 ‘가정’도 7월 발행 예정으로 편집작업 중이다. ‘언론잡지’를 표방한 ‘서울’은 인쇄분이 조기에 매진되리라는 전망이다.

잡지는 이미 한성도서 외에도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개척(開拓)’ 창간호가 나왔고 ‘여자시론(女子時論)’ 2호가 나왔다. 제호도 찬란한 ‘서광(曙光)’과 ‘현대(現代)’가 각각 제3호를 앞 다투어 내었고, ‘여자계(女子界)’ 4호도 나왔다. ‘현대’는 동경의 기독청년회에서 나오던 기관지를 새 이름으로 바꿔내는 것이고 여자계는 동경여자유학생 친목회가 연중 3회 발행하는 기관지이긴 하지만 잡지의 종류는 풍성해지고 있다. 병합 이래 작년까지 10년간 외국인과 내국인이 펴내는 잡지의 절반은 종교잡지였다. 그러다 지난 겨울부터 상전벽해가 일어났다. 그동안 동인지 성격의 문예지 몇몇이 하나 둘 눈치 보듯 나오다 들어가곤 했을 뿐, 시사문제를 곁들이는 잡지까지 쏟아져 나오는 일은 1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판매1위는 족보책

한성도서주식회사에 뒤이어 7월 개업을 앞둔 조선도서주식회사도 자본금 25만 원으로 창립 준비작업이 한창이라 한다. 한성도서와 쌍벽을 이루리라는 세간의 예상이다.

갑자기 다가온 이러한 변화는 3·1운동의 결과물이었다. 기미년 만세운동의 소요와 희생의 결과로 조선총독부의 통치 방식이 병합 10년 만에 처음으로 변화를 맞았고 사회 경제 문화의 각 방면에서 중요한 제도 변화가 뒤따랐다. 그중의 하나가 출판시장의 통제 완화였다. 10년 동안 중단되어 공백상태에 있던 민간신문의 발행이 허가된 것과 같은 맥락이었다. 한림이 신문사에 출근해 첫 신문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이 순간이나 현대식 출판기업들이 창립되고 있는 것이 하나의 뿌리에서 나온 가지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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