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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적 리더의 뇌

카이스트 정재승 교수

창의적 리더의 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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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그때는 좋은 답을 해드리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계속 숙제처럼 가지고 있었는데 이 논문을 읽다가 불현듯 생각이 미친 겁니다. 만약 우리가 제가 방금 소개해드린 논문들을 바탕으로 해석해보자면 혹은 유추해보자면 동양인들이 보기에 헬로키티는 감정을 읽을 만한 큐, 그러니까 눈이 있죠. 그렇기 때문에 감정을 읽기에 어려움이 없습니다. 다만 헬로키티는 눈이 항상 이렇게 생겼거든요. 특별한 감정 표현을 안 하고 있어요. 감정이 중립적이에요, 뉴트럴(neutral)해요. 그래서 내가 기분이 좋으면 얘가 나를 방긋 보는 것 같고 내가 좀 기분이 우울하면 얘도 나를 뚱하게 보는 것처럼 여겨집니다. 그래서 감정 이입이 쉽고 동일시가 잘돼서 곁에 두고 싶은 캐릭터이죠. 그런데 서양인은 주로 입으로 감정을 표현하는데, 모든 헬로키티는 입이 없죠? 그러니까 감정을 읽을 큐 자체가 부족한 거죠. 그래서 헬로키티는 불완전한 얼굴인 겁니다. 곁에 두고 싶거나 감정이입이나 동일시가 쉬운 캐릭터가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창의적인 사람들의 특징 가운데 논문에서 이야기하는 것 중 하나가 뇌가 알고 있는 지식을 세상과 연결하는 건데 제가 처음으로 그런 경험을 제대로 해본 셈이 됐습니다.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이라는 게 대개 학교 다닐 때 전공했던 거나 지금도 관심을 갖고 오랫동안 책을 읽고 깊이 들어갔던 지식일 텐데, 학교에서 확인을 받기 위해서, 아니면 취미로 공부한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세상을 바라보는 데 적용해 본다거나 회사에서 일을 하는 데 활용한 적이 별로 없을 겁니다. 실제로 일을 할 때에는 그 안에서의 논리로 경험과 지식을 활용하죠. 그런데 사람들이 원래 자기가 갖고 있던 취미로서의 지식을 일에 접목할 때, 예전에 가지고 있던 학문적인 전공이나 백그라운드를 일에 접목했을 때 사실은 굉장한 시너지가 나오는데 우리는 그런 훈련이 잘 안 돼 있죠.

창의적 리더의 초능력

그래서 저는 창의적인 사람들의 뇌에서 벌어진다는 첫 번째 일, 그러니까 여러분이 오랜 관심을 갖고 깊이 있게 공부했던 것들을 그냥 그 공부의 즐거움으로 멈추지 마시고 실제로 세상을 이해하거나 내가 뭔가 일을 하는 데 적용해보시면 어떨까 제안을 드립니다. ‘내 일은 내가 취미로 하는 거랑 전혀 상관없는 것인데?’라고 여겨지는 것일수록 연결할 때 임팩트가 훨씬 큽니다. 제가 이제 그런 다양한 예제들을 소개해드릴 겁니다. 저도 그런 의미에서 처음으로 그런 시도를 해본 게, 바로 ‘크로스’라는 책이었고요. 사실 이런 게 쉬운 일이 아니죠. 아니, 어려운 일이죠.

그래서 제가 제목을 ‘창의적인 리더의 뇌에서 벌어지는 초능력’이라고 말씀드린 겁니다. 저도 잘 못합니다. 초능력이고 쉽게 누구나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한 번 해보시면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 앞에 메모지 같은 거 하나씩 가지고 계시나요? 제가 미션을 하나 드립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매달려 있는 형상을 한번 그려보시죠.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린 형상을 한번 그려보시는데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려 있을 때의 심정을 잘 표현하면 됩니다. 저는 기독교 신자는 아닙니다. 여러분이 예수를 불경스럽게 그려도 상관없습니다.



진도가 좀 나가세요? 네. 30초 드리겠습니다. 예술적으로 그리실 필요는 없습니다. 대충 그리셨어요? 네, 좋습니다. 어떻게 그리셨는지 보여주시지 않아도 됩니다. 안 보여주셔도 어떻게 그렸을지 제가 얼추 짐작이 됩니다.

보통 세 부류로 나뉩니다. 첫 번째 부류의 사람은 종이를 딱 편 다음에 십자가를 크게 그립니다. 그 위에 한 사람을 얹어 놓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심경을 잘 표현해달라고 했기 때문에 얼굴에 약간의 정밀묘사가 들어갑니다. 표정을 조금 강하게 그리시는 분도 계시고요. 못 부분에 피가 흐르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핏방울을 그리는 분들 계시고요. 뭐 가슴에 칼자국, 흐르는 피를 강조하신 분도 계십니다. 두 번째 부류는 사람을 먼저 그리고 뒤에다 십자가를 깝니다. 얼굴을 먼저 쫙 그리고요, 그 뒤에 십자가를 까는 거죠. 세 번째 부류는 어떤 분들이냐? 나는 원래 이런 거 안 해요, 하면서 안 그리시는 분들입니다.

도둑이 바라본 십자가

창의적 리더의 뇌

살바도르달리의 ‘십자가’

여러분이 그렇게 십자가 그리시는 거 굉장히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왜냐면 여러분은 사람이 이렇게 매달려 있는, 다시 말해 정면으로 딱 바라본 이 십자가밖에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십자가를 그려라” 하면 이렇게밖에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습니다. 이 안에서 사람들이 변주를 어떻게 하느냐? 조금 달리 확대하거나 정밀묘사로 표현해보려고 노력하지만 이 틀을 벗어나기가 굉장히 어렵죠. 우리가 지금까지 경험한 십자가는 대개 이 방향으로 본 십자가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경험하고 알고 있는 지식 범위 바깥에 대해선 인식을 잘 못합니다.

제가 그런 의미에서 다음 작품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살바도르 달리가 그린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 그리스도’라는 작품입니다. 이 작품이 얼마나 훌륭한지는 직접 손으로 십자가를 그리며 ‘아,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잘 이해할 수 있는 십자가를 어떻게 그릴까?’ 고민한 분만이 느낄 수가 있어요. 그래서 제가 보여드리는 겁니다.

바로 이런 십자가입니다. 제가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 있는 캘빈 글로브라는 미술관에서 처음 본 십자가거든요. 제가 이걸 딱, 이 그림을 보고 한 10분을 자리를 뜨지 못했어요. 제가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 각도의 십자가였거든요. 이게 어떤 각도의 십자가인가요? 어쩌면 신이 있다면 자기 아들을 매달아 못을 박은 아버지의 마음으로 내려다본 십자가예요. 그리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을 보지 않았음에도 그가 얼마나 절망적이고 고통스러웠을지 짐작할 수 있고요 그를 여기에 이렇게 못 박은 세상이 밑에 그려져 있습니다.

제가 여러분께 드리고 싶은 말씀은 이런 겁니다. 창의적이란 어떤 거냐? ‘사람들이 십자가를 그리라고 하면 어떻게 그릴 것이다’라는 걸 먼저 생각한 다음에 ‘어? 나는 다르게 그려보자.’ 거기서부터 출발하는 겁니다. 쉬운 생각이 아니죠. 그래서 남과 다른 각도에서 문제를 바라본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그 자체로 창의적이라는 것을 이 작품이 얘기해 주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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