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2월호

차이나프리카(Chinafrica)와 미국의 조바심, 그리고 타산적 상호의존성

  • 배수강 기자│ bsk@donga.com

    입력2012-01-20 12: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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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동안 잠잠한가 싶었더니 또 ‘아프리카 책임론’을 놓고 얼굴을 붉혔다. 미국과 중국이 주인공이다. 이번엔 조니 카슨 미 국무부 아프리카담당 차관보가 불을 지폈다. 카슨 차관보는 2011년 12월 22일 “아프리카에서 석유와 가스, 광물을 마구 사들이는 중국은 책임 있게 행동하라”고 공격의 포문을 열었다. 그는 “중국이 아프리카에서 노동력을 고용할 때는 현지 노동법을 지키고 적절한 임금을 주는 한편, 아프리카 인력을 제대로 교육하고 기술도 전수해줘야 한다”며 “중국이 자국의 값싼 노동력을 아프리카로 대거 불러들여 현지 고용이 크게 악화되는 상황을 우려한다”고 말했다.

    앞서 2011년 6월에는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이 아프리카 순방 중 “아프리카 나라들은 중국의 신(新)식민주의를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훙레이(洪磊)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중국과 아프리카는 식민지 침략을 겪은 나라들로 평등과 존중의 중요성을 알고 있다”고 맞받았다.

    아프리카를 놓고 벌어지는 이 논쟁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2000년대 들어 미국뿐 아니라 유럽연합(EU)도 “중국이 아프리카에서 ‘자원 포식자’의 위치를 점하고 있으며, 아프리카에 대한 중국의 대규모 지원은 윈-윈 협력이 아닌 자국의 경제적 이익 추구를 위한 일방적이며 불균형한 관계”라고 비난의 목소리를 높인다. 국내 언론도 외신 보도를 인용해 ‘자원 식민지 전략’ ‘아프리카 자원 싹쓸이’라는 제목으로 서방의 시각을 전한다.

    “중국의 신식민주의 경계해야 한다” 는 미국

    그러나 이러한 서방의 비난과 경고를 기자는 선뜻 받아들이기 어렵다. 중국과 아프리카 관계가 서방 국가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실제로도 불균형한 상태일까? 중국의 대(對)아프리카 정책이 ‘자원 포식자’로서의 목적으로 진행될까? ‘윈-윈’을 목적으로 한 정책은 없을까?



    이 의문을 풀기 위해 우선 아프리카와 중국, 아프리카와 미국의 무역 품목을 비교해보자. 에 따르면, 2008년 중국과 미국의 대아프리카 무역 양상은 놀랄 정도로 유사하다. 가장 비중 있는 수입 품목인 광물연료의 경우, 중국은 아프리카로부터 전체 광물연료의 83.9%를 수입한다. 같은 품목을 미국도 아프리카로부터 86.1% 수입하고 있다. 귀금속을 비롯해 대부분의 품목에서도 차이가 거의 없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 생산하는 석유를 가장 많이 수입하는 국가는 미국(37%)이고, 그 다음은 중국(19%)이다.

    아프리카의 고용률은 어떨까. 중국 기업들이 아프리카에 중국인 노동자를 대거 투입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2008년 45억 달러의 경협차관을 얻은 카메룬은 그 돈으로 황폐화된 도로·항만·주택 등을 건설한 뒤 석유로 빚을 갚아나가는데, 건설공사는 중국 업체의 몫이다. 인구 1750만 명의 앙골라에 중국인 20여만 명이 들어왔다. 지난해 9월 취임한 마이클 사타 잠비아 대통령은 선거 기간 내내 중국 투자를 비판해왔고, 당선 직후엔 중국 기업의 투자를 전면 재검토한다고 밝혔다. 구리와 코발트 등 천연자원 시장을 열어줬는데, 300여 개 중국 기업은 주로 중국인 노동자를 채용해 잠비아 고용사정이 개선되지 않는다는 불만이다.

    그러나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고용률을 높이기 위해 중국이 많은 투자를 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중국은 2006년부터 본격적으로 아프리카 각국에 10여 개의 특별경제구역(SEZ·Special Economic Zone)을 세워 노동집약적인 소비재산업을 옮기고 있다. 1990년대 말 장쩌민(江澤民) 전 국가주석이 제창한 ‘밖으로 나가라(走進去)’는 해외 진출 전략에 따른 것인데, 자국의 경제특구 개발 경험을 활용한 투자 전략이기도 하다. SEZ는 중국의 의지가 아니라 아프리카 국가들의 적극적인 구애로 성사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각국 정부는 SEZ에서 60개의 중국 기업이 가동될 경우 최소 6만 개의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될 것으로 보고 있다. 세계은행(IBRD)도 “중국의 SEZ는 장차 아프리카 각국의 고용 창출과 외환보유고를 늘리는 중요하고도 다각적인 수입원 중 핵심적인 시설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중국만이 아프리카에서 자원을 빨아들이고, 아프리카 현지인을 고용하지 않는다”는 미국과 서방 국가들의 비난이 균형 잡힌 시각이라고 보기 어려운 이유다.

    차이나프리카(Chinafrica)와 미국의 조바심, 그리고 타산적 상호의존성
    중국의 특별경제구역…새로운 일자리 창출

    무역 부문 외에 미국과 서방 국가들이 문제 삼는 것은 중국의 고수요 에너지 부문 투자다. 중국이 아프리카에서 가장 먼저 석유 탐사를 실시한 국가는 1995년 수단이었다. 수단은 석유 매장량이 67억 배럴에 달하는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 국가 중 3위의 석유 부국. 그러나 빈약한 자본과 기술, 내전 등으로 인해 1998년까지는 석유 수입국이었다. 중국은 수단 진출 이후 20억 달러 이상을 투자해 석유 시추시설과 원유 정제 플랜트, 송유관 등을 건설했고, 수단 정부의 석유개발 사업을 지원했다. 중국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1999년 8월 30일 수단은 역사상 처음으로 석유를 수출했다. 현재는 자체적으로 석유 개발, 석유·가스 정제플랜트, 운송 시설, 판매망을 구축했다. 석유와 별개로 중국은 학교, 에이즈(AIDS), 말라리아 치료를 위한 병원 신축 등을 도왔다.

    반면 미국 정유회사 셰브런(Chevron)은 수단에서 1974~92년 18년간 석유를 생산했지만, 수단 정부나 국민의 삶에 영향을 줄 만한 기여를 한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또 다른 미국 기업 마라톤 석유회사(Marathon Oil Corporation)도 1980~85년 수단에서 석유를 생산했고, 캐나다 최대 석유회사 탈리스만 에너지(Talisman Energy) 등 많은 서방 기업이 석유 생산에 참여했지만, 셰브런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다국적 기업 쉘(Royal Dutch Shell plc)도 나이지리아에서 50년간 석유를 생산했지만, 나이지리아는 여전히 석유를 수입하고 있다. 나이지리아는 변변한 석유 시추, 생산시설을 갖추지 못해 지금도 자원 생산국으로 남아있다. 비단 수단과 나이지리아에서만 발견되는 사례가 아니다. 아프리카 전역에서 지금도 벌어지는 상황이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 영국의 협조 아래 신식민주의를 앞세워 서아프리카의 천연자원 확보에 열을 올린 나라는 미국이었다.

    따라서 미 국무부 조니 카슨 차관보와 클린턴 국무장관의 중국 비판 발언은 미국 등 서방 국가에 더 걸맞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의 발언에 담긴 실제 의미는 ‘미국이 2000년대 들어 중국에 비해 아프리카 진출이 많이 뒤처졌다’는 초조함의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미국은 물론 유럽, 인도, 일본 등도 중국의 대규모 아프리카 투자에 자극받아 ‘아프리카 이니셔티브’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지 않은가.

    중국과 아프리카는 이념으로 시작된 특수 관계

    현재 중국과 아프리카의 관계가 단기간의 ‘에너지 확보를 위한 원조 정책(aid-for-energy strategy)’과 경제협력, 그리고 ‘자원과 현금의 교환’처럼 단순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어떠한 국가도 따라 할 수 없는 노력을 수십 년간 지속한 결과였다.

    김동환 국제전략자원연구원(IISR) 원장(국제정치학 박사)은 “오늘날 양측(중국과 아프리카)의 결속은 1955년 순수한 ‘이념’ 목적으로 시작돼 중국의 경제적 희생, 아프리카 식민지 각국의 무장독립운동 지원, 인적 네트워크 축적 등의 과정을 거치면서 빚어낸 ‘냉전의 산물’”이라고 규정한다. 2000년대에 들어서부터 중국 경제성장에 동반해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는 분석이다.

    중국은 냉전 기간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proletarian internationalism)’에 과도하게 집착해 미국, 소련과는 전혀 다른 형태의 대아프리카 정책을 펼친다. “제국주의 체제로부터 사회적 ·민족적 해방을 위해 투쟁하는 인민들을 전면적·연대적으로 지원한다”는 실천 강령. 이러한 정책은 ‘이념적 경제관계’라는, 기존의 경제관념에서 완전히 벗어난 기이한 국제관계를 탄생시켰다. 말 그대로 경제관계의 핵심(이윤추구)보다 ‘이념’이 앞선다는 뜻. 결국 ‘냉전의 산물’은 옳든 그르든 간에 손해를 보더라도 이념을 위해 투자한 결과물이다. 실제 중국의 대아프리카 무역에서는 오로지 중국의 일방적인 희생이 수십 년간 지속됐다. 중국은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에 입각해, 무역·차관·무상원조·투자 등 각종 경제적 ‘지원 패키지’를 제공하면서 ‘이타주의적 형태’를 수십 년간 유지했다. 예를 들어 중국은 1962년 이후부터 탕가니카(현재의 탄자니아) 면화 총 생산량의 42%를, 아프리카 커피 생산량의 20% 이상을 사들였다. 당시 중국은 세계 3위(세계 시장의 9%)의 면화 생산 대국으로, 이미 자국 면화가 남아돌았지만 사들인 것이다. 문화혁명기 커피는 ‘부르주아의 기호품’으로 배격받아 구경하기도 어려웠지만, 이때도 커피를 수입했다. 1960년대 담배 재배면적과 생산량(매년 평균 2250억 개비)에서 세계 최대를 자랑했던 중국이 아프리카에서 담배를 사들인 것도 ‘이념’ 때문이었다. 따라서 이러한 교역 형태는 오직 냉전 중이었기에 가능했다고 볼 수 있다.

    문화대혁명 기간 중국은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했지만, 아프리카 각국에는 과감한 금융 지원을 계속했다. 차관도 무이자, 무조건, 무담보의 3무(無) 지원을 고수하면서 지원 액수를 해마다 늘렸다. 신용 차관은 중국과 외교관계를 맺고 있는 대부분의 아프리카 국가에서 신청했고, 1966년 중반에만 3억5000만 달러에 달했다. 5만 명에 달하는 중국 노동자와 10만 명 이상의 아프리카 노동자가 투입된 ‘탄자니아-잠비아 철도(Tan-Zam railway, 1860㎞)’ 공사는 냉전 기간을 통틀어 단일 프로젝트로는 최대의 원조(5억 달러)였다. 이 철도는 공사 6년 만인 1976년에 완공됐다.

    이러한 중국의 희생은 선물이 되어 돌아왔다. 1971년 10월 25일 유엔 총회 ‘2758호 결의안’에 의거, 1949년부터 유엔 상임이사국이던 대만을 내쫓고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도 찬성 76표 중 아프리카에서 몰표(26표·34%)가 나왔기 때문이다. 마오쩌둥(毛澤東) 주석은 “오랫동안 유엔에 가입하지 못한 것은 미국과 일본 때문이고, 이제라도 가입할 수 있었던 것은 아프리카 형제들 덕분”이라고 감개무량해했다.

    2007년에는 콩고와 약 90억 달러 규모의 경제개발 협정을 맺는다. 이는 콩고의 2007년 예산의 10배에 달하는 엄청난 규모여서 세계적인 뉴스로 떠올랐다. 당시 미국은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표시했고, 국제통화기금(IMF)은 재협상 압력을 넣기도 했다. 중국이 미국 등 경쟁국을 제치고 콩고와 협정을 맺을 수 있었던 것은, 1972년 모부투 세세 세코(Mobutu Sese Seko) 대통령 때부터 이어져온 35년간의 축적된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했기 때문이다. 쿠데타로 모부투를 몰아내고 집권한 로랑데지레 카빌라 전 대통령과 그의 아들 조지프 카빌라 대통령 역시 베이징(北京)에 위치한 중국인민해방군 국방대 출신으로 친(親)중국 성향이다.

    이처럼 냉전 기간 감내했던 아프리카에 대한 막대한 원조와 희생은 결국 인적 네트워크를 만들어냈고, 1990년대 탈냉전 이후에도 다양한 경제적 협력을 성사시키면서 중국에 막대한 경제적 이익을 안겨주는 결정적인 토대가 되었다.

    그렇다면 중국의 열성적인 아프리카 지원을 아프리카 입장에서 접근해본다면 어떨까. 아프리카의 중국에 대한 경제적 의존성이 높아지는 만큼, 중국도 자국 경제에 미치는 아프리카 경제의 영향력이 높아진다. 즉, 아프리카 국가들이 중국의 지원을 경제, 사회 전 부문에 걸쳐 유익하게만 사용한다면, “자원 부국은 결코 경제적으로 부유한 국가가 될 수 없다”는 ‘자원의 저주(resources curse)’를 ‘자원의 축복(resources blessing)’으로 변신시키는 레버리지(지렛대)로 활용할 수도 있다. 기자는 이 현상을 ‘타산적 상호의존성(calculating interdependence)’이라고 이름 붙여 설명하고 싶다.

    냉전 기간 감내한 희생이 경제 이익으로 돌아와

    분명한 것은 아프리카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중국식 경제 모델의 도입을 긍정적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나이지리아의 저명한 역사학자 페미 아코몰라페는 “중국의 급속한 경제 변화는 아프리카에서 우리에게 특별한 시사점을 제공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따라서 중국과 아프리카 사이의 ‘타산적 상호의존성’의 정의는 다음과 같이 내릴 수 있겠다.

    “타산적 상호의존성은 윤리, 정의 등 이타적인 가치관의 개념이 반영되는 모든 정치적 또는 사회적 여건은 배제하고 각자 이용 가치가 높은 상대국의 장점만 취해 자국의 정치, 경제, 안보 및 사회에 이익을 창출하는 것이다.”

    차이나프리카(Chinafrica)와 미국의 조바심, 그리고 타산적 상호의존성
    어쨌든 2012년 중국과 아프리카의 타산적 상호의존성은 ‘차이나프리카(China-Africa)’라는 표현으로 불릴 정도로 심화됐다. 미국 시인 위스턴 휴 오든이 자신의 시 ‘어느 날 저녁 외출하여(As I Walked Out One Evening)’ 를 통해 노래한 사랑도 이제는 끝낼 때가 된 듯하다.

    “그대여, 나는 그대를 사랑, 사랑하리라(I‘ll love you, dear, I‘ll love you)/ 중국과 아프리카가 합쳐질 때까지 (Till China and Africa meet)/ 강이 산을 뛰어넘고(And the river jumps over the mountain)/ 연어가 거리에서 노래할 때까지(And salmon sing in the street)/ 그대여, 나는 그대를 사랑, 사랑하리라(I‘ll love you, dear, I‘ll love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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