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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대선 주자 6인 경선 필승 비책

“박근혜보다 국민이 더 큰 벽 젊은 패기로 큰일 내겠다”

6전 무패 ‘선거의 달인’ 최강 친화력의 소유자 김태호

  • 윤희각│동아일보 기자 toto@donga.com

“박근혜보다 국민이 더 큰 벽 젊은 패기로 큰일 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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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 후보가 가장 유력한 후보다. 박 후보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민심은 변화하고 격동한다. 지금 제게는 박근혜 후보라는 벽보다 국민의 벽이 더 높다. 국민은 아파하고 있다. 국민은 또 다른 안철수 현상을 기다리고 있다. 이런 서민의 아픔을 진정으로 대변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생각해달라. 국민이 마음을 열면 박근혜 벽을 넘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중의 아픔을 간직하면서 뛸 수 있는 대중적 이미지, 열린 사고는 박 후보보다 제가 우위라고 본다. 박근혜 리더십에 동의하지 못하는 사람은 김태호 지지를 통해 의사를 표현하면 된다.”

▼ 출마 선언문에 ‘낡은 정치를 깨고 세대 정치를 선언한다’고 했다. 낡은 정치는 무엇인가?

“낡은 정치는 낡은 리더십이고, 또 낡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고, 또 낡은 시스템이다. 낡은 리더십은 독선이나 제왕적 리더십 등이 아니라 밀실 공천, 평소 생각도 내 편 아니면 적이라고 생각하는 낡은 시스템이다. 어디에서 의사결정을 하는지, 불통인지 소통인지 구분이 안 된다. 이런 낡은 구조와 낡은 정치를 가지고는 다음 세대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줄 수 없다. 낡은 정치인이 누군지는 국민이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 출마 선언 장소로 안중근의사기념관을 선택한 이유는.



“안중근 의사의 시대정신이자 큰 메시지는 나라가 위기에 처할 때 목숨을 던진 것이다. 저를 놀라게 한 것은 서른두 살에 조국 독립을 위해 제국주의 원흉 가슴에 총을 겨눈 뒤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는 사실이다. 제가 싸워야 할 기득권, 낡은 정치와의 싸움도 결국 목숨을 걸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런 뜻에서 안중근 의사의 정신처럼 두려움 없이 한복판으로 뛰어드는 한편 저의 강한 마음을 보여주기 위해 안중근의사기념관을 선택했다. 박근혜 후보와의 경쟁에 대해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는 말이 많은데, 제 상대는 박 후보가 아니다. 지금까지 어려운 선거를 해왔다. 6번 선거를 했고 다들 안 된다고 하는 선거에서 모두 승리했다. 민심이 어디에, 시대정신이 어디에 있는지, 그걸 위해 모든 것을 쏟아 부었다. 제가 진심을 보이면 국민이 마음을 열어주실 것으로 믿는다. 현재로선 국민이 저의 가장 큰 벽이다.”

▼ 2010년 국무총리에 내정됐다가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에 대한 거짓 해명 논란으로 낙마했다.

“국회의원선거를 두 번 치르면서 국민이 조금 용서했다고도 보지만 돌이켜보면 그때 제가 참 어리석었고 많이 부족했다는 생각이다. 39년 만에 40대 국무총리로 내정되다보니 제가 욕심도 많았고 완벽해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에 국민께 실망과 아픔을 준 것 같다. 하지만 이런 아픔이 저를 돌아볼 수 있는 성찰의 시간이 됐고 국민 속으로 더 가까이 갈 수 있는 기회가 된 것 같다.”

▼ 완전 국민경선이 이뤄지지 않았다

“완전 오픈프라이머리는 정치개혁에 있어 아주 중요하다. 당을 사당화하고 줄 세우는 정치, 계파정치, 국민 눈치 대신 포스트 눈치만 보는 사람, 눈치 주는 사람이 있는 구조는 낡은 정치다. 완전 국민경선은 공천권을 국민에게 돌려주자는 것이다. 여야가 첨예한 이해관계가 있는 이 시점에 오픈프라이머리는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다. 제 생각에는 다음 총선이나 다음 대통령선거 이전에 제도를 만들어놔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기적으로 약간 이른 감이 있다고 생각한다.”

김태호는 누구?
“박근혜보다 국민이 더 큰 벽 젊은 패기로 큰일 내겠다”

2011년 4월 국회의원 당선 소식을 듣고 기뻐하는 김 의원.

1998년 경남도의원을 시작으로 거창군수와 경남도지사, 국회의원 재선에 이르기까지 역대 선거에서 한 차례도 패한 적이 없어 ‘선거의 달인’이라는 별명이 따라다닌다. ‘김 의원이 따르는 형님이 800명, 아버지는 1000명’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의 특유의 친화력이 정치인으로서 장점이다. 본인 스스로도 친화력을 자신의 강점으로 꼽는다.

1962년 경남 거창에서 소 장수를 하던 아버지 김규성(72) 씨의 3남1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당초 그는 중학교만 졸업하고 농사를 지을 생각이었지만 ‘농사를 짓더라도 농약병에 적힌 영어는 알아야 한다’는 부친의 말에 따라 거창농고에 입학했다..

고교를 졸업한 뒤 동일계 진학 방식으로 서울대 농업교육학과에 들어갔다. 대학 시절 부친의 고향친구인 고 김동영 의원(1991년 작고) 집에서 아이들 공부를 도와주며 얹혀 지내면서 정치적 감각을 익혔다. 당시 김 의원의 집은 ‘민주산악회’의 본산이었다. 자잘한 심부름도 하고 상도동계 정치인들을 따라 무거운 음식 배낭을 지고 산을 오르며 정치의 현장을 옆에서 지켜보았다..

그의 정치 역정은 다소 무모할 정도의 도전의 연속이었다는 평도 있지만 결국 모두 성공했다. 1992년 14대 총선을 앞두고 고향 대선배 이강두 당시 민자당 후보 캠프로 들어가면서 인생이 급변했다. 이강두 후보가 지구당 개편대회를 치르면서 금품 수수 사건에 휘말려 구속됐고 민자당은 후보를 교체했지만 김태호는 “무소속으로 옥중 선거를 치르자.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주장했고 그의 말대로 이강두 후보가 승리했다..

1998년 지방선거에서 경남도의원에 당선된 데 이어 4년 뒤 2002년에는 ‘현직 군수에게 도전하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는 주변의 평을 무릅쓰고 거창군수 선거에 출마해 당선됐다. 2004년에는 경남지사 보궐선거에 출마해 마흔둘의 나이로 최연소 도지사가 됐고, 2006년 재선에도 무난히 성공했다. 지사 재임 시절에는 낙동강대운하(4대강) 사업을 적극 지지했으며 ‘남해안벨트 프로젝트’(부산-경남-전남을 이어 남해안을 거대 경제권으로 개발하겠다는 계획)를 추진했다..

김 의원은 2004, 2006년 경남지사 선거공보에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 찍은 사진을 썼다. 그만큼 친박(친박근혜)계로 분류됐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때는 이명박 후보가 당시 김 경남지사의 행보에 불만을 내비쳤다는 얘기도 나돌았다. 하지만 2008년경부터 친이계와의 관계가 호전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의원의 최측근인 안상근 전 경남도 정무부지사는 “의리를 중시하고 누구하고나 쉽게 친해지는 스타일”이라고 그를 소개한다. 또 다른 측근은 “겸손하고 친화력이 뛰어나지만 승부 근성이 강하고 도전적인 성격”이라고 평가한다. 이미 2010년 국무총리에 내정됐을 때부터 주변에선 그가 2012년 대선 도전을 꿈꿀 것이라고 관측했다. 그는 평소 “나는 누구 뒤에 줄을 서는 것이 아니라 내 뒤에 줄을 세우고 싶다”고 말해왔다..

이런 이력을 바탕으로 2010년 8월 총리 후보자에 내정됐지만 국회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과의 관계를 둘러싼 거짓 해명이 논란을 빚자 후보직을 자진사퇴했다. 낙마한 뒤 중국 유학길에 올랐다가 지난해 4·27 김해을 보궐선거에서 승리해 정치적으로 재기했다. 이어 지난 4·11 총선에서 재선에 성공하며 일약 잠룡으로 떠올랐다. 특히 김해을 선거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고향인 김해 진영읍이 속한 지역구였으나 야당 후보를 눌러 그의 저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김 의원은 부인 신옥임(48) 씨와의 사이에 1남 1녀를 두고 있다. 탤런트 채시라 씨의 남편인 웨딩사업가 김태욱 씨와 6촌 형제 사이다. 보병으로 육군 병장 만기 전역했다. 19대 총선 때 4억7000만 원으로 재산 신고를 한 바 있다.


신동아 2012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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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각│동아일보 기자 tot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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