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8월호

범상치 않은 운명 감지하며 여름바다 노래하다

가의도

  • 글·김동률│ 서강대 MOT대학원 교수 yule21@empas.com 사진·권태균│ 사진작가 photocivic@naver.com

    입력2012-07-24 09:16: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범상치 않은 운명 감지하며 여름바다 노래하다

    마을 정상에서 본 포구



    “섬의 자랑이라고는 어른 다리통만한 흑구렁이가 제일이여…새벽 구렁이 우는 소리가 안방까지 들리면 소름 끼치도록 무서웠제….”

    마을 이장님의 말씀에 흠칫 놀라게 된다. 까치가 요란하게 짖는 날은 구렁이 우는 소리가 들린다. 까치와 구렁이는 상극. 장마 끝 몸통을 말리느라 길가까지 나와 있던 구렁이들도 까치가 세게 짖으면 스물 스물 사라진다고 한다.

    그때쯤이면 마을 사람들이 담배 부스러기와 묵은 간장을 집 주변에 뿌려 구렁이를 멀리 내쳤다고 한다. 어른 손바닥 크기의 작디작은 섬에 성인 다리통만한 20여 마리의 먹구렁이, 흑구렁이가 휘젓고 다녔다는 말에 놀라지 않을 사람이 있겠는가.

    얼마나 많았는지 종래는 군수를 찾아가 “구렁이 어떻게 좀 해달라”고 집단 민원까지 냈다고 한다. 이장님 말씀에 여름 열기가 싹 가신다. 그는 외지인에게는 ‘주 선생 민박’으로 알려진 주만성(73) 할아버지다. 여기 섬 출신으로 평생을 초등학교 교사로 아이들을 가르쳐왔다. 인천 어디 작은 초등학교에서 교장으로 정년퇴임한 이후 수구초심, 귀거래사해 고향 섬에서 민박집을 운영하고 있다.



    충남 태안에 딸려 있는 작은 섬 가의도. 한때는 서산시에 속해 있다가 지금은 태안군으로 들어왔다. 얼마나 작은 섬인지 섬의 형상을 파악하는 데는 한 시간이면 족하다. 휘 한 바퀴 도는 데 달랑 반 시간밖에 안 걸린다. 혹자는 섬이 아름답기가 예술 수준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사람들의 낭만적 예찬일 뿐이다. 동서쪽으로 길게 뻗어 있는 섬은 너무 작고 나지막하다. 쓰나미라도 몰아치면 흔적조차 없이 사라질 것 같은 극히 가벼운 존재감이다. 그저 서해 앞바다에 나 홀로 외로이 있을 뿐이다.

    “구렁이 좀 어떻게 해달라”

    범상치 않은 운명 감지하며 여름바다 노래하다

    보리 쭉정이를 거르는 할머니.

    가의도는 태안군 신진도의 안흥신항부터 서쪽 방향으로 5km에 위치하고 있다. 아침 저녁 한 번씩 오가는 연락선으로 30분 거리다. 연락선은 요즘 말로 디폴트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뱃길만 열린다면 승객이 있건 없건 하루 두 번 왕래한다. 정부가 모든 경비를 부담해주기에 가능하다고 연락선 백화산호의 김세덕(60) 선장이 설명한다. 배 이름은 태안 바닷가의 산 이름에서 따왔다. 섬을 찾는 사람들은 여름 한철 낚시꾼, 피서객이 대부분. 나머지 봄, 가을, 겨울은 대부분 텅 빈 배로 왔다 갔다 한다.

    예전에는 안흥항에서 연결됐는데 안흥 앞바다 작은 섬 신진도와 안흥항이 연륙교로 연결되는 바람에 지금은 신진도의 안흥신항이 선착장이 됐다. 중국과 가깝다보니 오래전 중국의 가의라는 사람이 이 섬에 피신해 살아서 가의도라고 했다는 설이 있다. 신진도에서 볼 때 서쪽 부분의 가장자리에 위치하고 있어 가의섬이라고 했다는 설도 있다. 신기하게도 손바닥 크기의 작은 섬이면서 북항과 남항 두 개의 선착장을 갖고 있다. 여름에는 태풍의 영향으로 인해 북항에 접안하고 겨울에는 북서풍의 영향으로 남항에 접안한다고 한다.

    가의도는 사람이 사는 섬, 그러니까 유인도다. 그러나 생산물이라고는 해산물을 제외하고는 콩, 마늘, 양파가 전부. 쌀은 물론 배추 등 거의 모든 식재료와 식품을 육지에서 가져와야 한다. 물까지 귀해 예전에는 육지에서 길어 먹었다. 지금은 해양 심층수가 개발돼 물 시름은 그래도 덜었다. 문명의 이기는 작은 섬의 삶에도 풍요와 편리를 가져왔지만 이를 누릴 사람은 많지 않다. 70대의 주민은 한 해가 다르게 하나둘 저세상으로 떠나고 있다. 한때 마흔 가구가 넘었으나 지금은 열 집이 안 된다. 언덕 위의 분교는 폐교 된 지 20년이 넘어 지금은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형체가 사그라졌다.

    마늘이 썩지 않는 섬

    범상치 않은 운명 감지하며 여름바다 노래하다

    연락선이 하루 두 번 왔다 간다.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은 수령 500년이 조금 넘는다는 은행나무다. 둘레만 7m가 넘는 어마어마한 크기이지만 몇 년 전 태풍 곤파스에 가지가 절반쯤 부러져 보기에 안쓰럽다. 늙은 나무는 봄이 오면 다시 푸르게 된다. 그러나 사람들은 봄이 와도 다시 젊어지지 않는다. 박금례(69) 할머니는 그나마 암나무가 없어 태어나서 열매 한 번 맺지 못했다며 나무통을 어루만진다. 그 얼굴의 검버섯은 짙고도 검다. 1958년 열여덟 나이에 시집와 50년 넘게 가의도에 살아온 할머니의 세월도 손가락 사이로 빠지는 모래사장의 바닷물과 같이 하루가 다르게 달아나고 있다.

    가의도는 썩지 않은 섬이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마늘이나 양파, 고추는 서너 해가 지나도 부패하지 않는다고 한다. 원, 세상에 썩지 않는 생물이 있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 같지만 가의도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은 실제로 그렇다고 한다.

    마을 노인들의 자신감 넘치는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섬이 작고 나지막하다보니 태풍이 몰아치면 거센 파도로 생긴 물보라가 섬 전체를 흠뻑 젖게 한다고 한다. 수백 년을 바닷물에 적셔온 섬, 그래서 땅 전체에 미네랄과 소금기가 배었다. 이 땅에서 생산되는 모든 농작물은 태생적으로 소금기를 함유해 썩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한마디로 자동 염장된 농산물이 생산된다는 의미다. 그러나 썩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드러내놓고 말하기는 어려운 분위기였다.

    그마나 손바닥만한 밭의 마늘 수확도 이제는 할 사람이 없다. 30여 명의 섬 주민 대부분은 노동력을 거의 잃은 토박이 노인들. 마늘 수확 때에는 태안 군청에서 인부들을 통통배로 모셔와 한꺼번에 수확해 간다고 한다. 그네들의 일당은 여성 5만 원, 남성 7만 원이라고 한다.

    물결은 뜨거운 햇살에 뒤척이고…

    서해 바닷가 절대 오지이던 섬은 외부에 조금씩 알려지면서 몸살을 앓고 있다. 섬이 아름답고 조황이 썩 괜찮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갯바위 낚시꾼들이 몰려왔다. 이들로 인해 해안은 온통 쓰레기 천지다. 게다가 인근 어민들이 버린 통발과 폐그물에 연안 바다가 죽어간다고 섬 주민들은 한탄한다.

    넘치는 쓰레기를 보고도 치울 기력이 없어 그저 바라보고만 있다는 것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염산 문제다. 예전에는 안강망 그물에 이끼가 끼면 햇빛에 말려 도리깨질로 털었지만 지금은 대형 염산통에 집어넣어 녹인다. 문제는 사용된 염산 물을 죄다 바다에 버려 해안가에 염산 냄새가 진동한다는 것이다. 톳시, 미역, 다시마, 전복, 홍합 등이 염산에 오염돼 식용하기 어려운 형편이라는 설명에 말문이 막힌다. 섬 토박이 노인들의 분노는 절망에 가깝다.

    눈물에 옷자락이 젖어도 갈 길은 머나먼데/

    고요히 잡아주는 손 있어 서러움을 더해주나/

    …서해 먼 바다 위론 노을이 비단결처럼 고운데/

    나 떠나가는 배의 물결은 멀리멀리 퍼져간다/

    꿈을 꾸는 저녁 바다에 갈매기 날아가고/

    섬 마을 아이들의 웃음소리 물결 따라 멀어져 간다/

    정태춘은 ‘서해바다’란 노래를 통해 한반도 서쪽 바닷가 작은 섬들을 절창했다. 그러나 원시의 바다도 지금 비열한 세속에 물들고 있다. 섬의 사정에 우울해하던 나의 눈길은 태양 아래 빛나는 바다를 보는 순간 달라지기 시작한다.

    초록빛 바다, 거역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 현실의 무거운 압박에서 해방시키고 있다. 프러시안 블루로 빛나는 가의도 바다는 여전히 여름 햇살에 웅크린 채 그저 무심히 아름답기만 할 뿐 섬사람들의 시름에 아무런 말이 없다. 여름에는 아무래도 바다가 적격이다. 나는 범상치 않은 운명을 감내하며 바다를 노래한 스테판 말라르메나 드뷔시의 흔적을 이 여름 바다에서 느끼고 싶었다. 물결은 뜨거운 햇살에 뒤척인다.

    그토록 가슴 설레던 봄날은 이미 기억조차 아스라하다. 붉은 태양이 이글거리는 여름이 점령군처럼 소리 소문 없이 우리 곁에 와 있다. 그렇다. 짧은 봄날은 미련조차 느낄 틈을 주지 않고 무정하게 떠나갔다. 추억은 지나가서 그리운 것이 아니다. 다만 그리워하기 위해서 지나가는 것이다. 서해 앞바다 외로운 섬 가의도가 지나간 모든 것을 추억하고 있다. 세월은 우리를 보지 않고 지나가고 있다.

    범상치 않은 운명 감지하며 여름바다 노래하다

    가의도의 아름다운 해변.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