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사업은 2001년 3월 공군사관학교 졸업식에서 김대중 당시 대통령이 “2015년까지 국산 차세대 전투기를 만들겠다”고 밝힌 데서 비롯됐다. 1994년 항공우주산업개발정책심의위원회는 2020~2050년의 공군 전력은 ‘하이(high)급’으로 불리는 대형 전투기, ‘미디엄(medium)급’의 중형 전투기, ‘로(low)급’의 소형 전투기로 구성하되 공격기로 불리는 소형 전투기와 KFX(가칭)로 일컫는 중형 전투기는 국내에서 개발하는 것이 좋겠다는 ‘항공우주산업개발계획’을 세운 바 있다. 그리고 7년이 흐른 뒤 김 대통령이 이를 천명한 것이다.
대통령의 선언이 있었던 만큼 사업은 급물살을 탔다. 2002년 11월 합참이 국산 중형 전투기 도입을 장기 신규 소요로 결정한 것. ‘장기(長期)’라는 꼬리표를 달았지만, 무기 사용 여부를 결정하는 합참이 국산 중형 전투기를 도입하겠다고 했으니 제작자들이 반응했다. 전투기 개발은 정부(국방부)가 주도해야 한다. 정부는 2017~2021년 중형 전투기를 개발해 100~200대를 공군에 공급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계획을 세웠다고 무조건 일을 추진하는 것은 아니다. 경제성을 따져봐야 한다. 2003년 2월 말 출범한 노무현 정부에는 이 사업을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이 많았다. 기획재정부 등 돈을 배분하는 쪽이나 공군 사업에 많은 예산이 돌아가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들이었다. 기획재정부 산하 KDI(한국개발연구원)가 동원돼 타당성 조사를 했고 그 결과 이 사업은‘타당성 없음’ 판정을 받았다.
국방부에서도 반대 의견이 나왔다. 국방부 산하 KIDA(한국국방연구원)는 두 번의 타당성 조사 후 ‘타당성 미흡’이라고 판단했다. 당시의 KFX사업 계획은 장밋빛 일색이었기에 누가 봐도 신뢰하기 어려웠다. 공군의 입장은 어정쩡했다. 중형 전투기는 성능이 입증된 것을 해외에서 도입하면 좋겠는데, 그렇게 주장하자니 명분이 약해 KFX를 지지하는 모양새였다.
KDI, KIDA “타당성 없음”

국방과학연구소가 제작한 KFX 가상모형.
KFX가 다섯 번을 쓰러지고도 다시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은 전투기와 무관한 지식경제부의 힘이 컸다. 한국은 높은 수준의 산업국가이지만, 항공우주 분야는 선진국에 많이 뒤져 있다. 그래서 지식경제부는 KFX 사업을 통해 항공우주산업을 일으켜보겠다는 의지를 세웠다.
서방 진영에서 항공산업은 오랫동안 미국, 그리고 영국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유럽의 독무대였는데, 최근 캐나다와 브라질이 끼어들었다. 두 나라는 틈새시장을 공략해 대박을 터뜨린 경우다.
미국과 유럽은 항공기 승객의 증가 추세에 발맞춰 대형 여객기 개발에 몰두했다. 그 사이에 캐나다와 브라질은 그들이 쳐다보지 않던 100인승급 중형 여객기 개발에 집중했다. 대형 여객기는 활주로 길이가 4km 이상인 대형 공항에만 이착륙이 가능하다. 이런 규모의 공항은 대개 수천 km씩 떨어져서 만들어진다. 그래서 수천 km 반경 지역의 여객을 흡수하는 항공 허브(hub)가 된다.
승객들은 거주지 근처의 작은 공항에서 중형 여객기를 타고 대형 공항으로 간 다음, 대형 여객기로 갈아타고 먼 거리를 비행해 목적지 근처의 대형 허브 공항에 내린다. 거기서 다시 중형 여객기를 타고 최종 목적지에 있는 작은 공항으로 날아간다. 이런 까닭에 대형 여객기와 중형 여객기 시장은 동반 성장하게 됐다. 중형 여객기는 작은 공항을 잇는 교통편도 되니, 대형 여객기보다 수요가 더 많다. 두 나라의 성공 비결은 여기에 있었다.
한국도 중형기 시장의 급성장을 예측했다. 특히 중국 시장을 주목했다. 중국 경제가 발전하면 중국 내의 각 도시를 잇는 항공편 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보고 중국을 중형기 개발 사업 파트너로 선택했다. 그런데 항공기 제작 공장을 어디에 둘 것인지를 놓고 양국 간 의견 차이가 발생했다. 두 나라는 서로 자국을 고집하다 접점을 못 찾고 결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