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 하오, 정처 없이 차를 세운 보성읍 거리에서 또 그랬다. 여기가 어디지? 무슨 마음으로 차에서 내렸고, 어디로 가려고 길을 걷는 것일까. 거푸 자문하면서도 무작정 길을 걷기로 한다.
동서남북을 구분하지 못하는 거리에서는 군청이며 학교의 방향을 일러주는 표지판의 글자들마저 이해 못할 기호처럼 생소하기만 하다. 가게의 스피커 소리, 차 소리, 사람 소리…. 읍 거리에도 각종 소리가 넘쳐나지만 그것은 되레 바람소리, 물소리와 흡사해서 산속 고요보다 더 고요한 느낌만 줄 뿐이다. 키 낮은 가게에서 풍겨 나오는 음식냄새조차 풀냄새 흙냄새와 다를 바 없다.
뒤늦게 마땅한 식당이라도 눈에 뜨이면 때늦은 요기라도 할 요량이었음을 깨닫고는 꼬막정식, 순댓국 등의 간판을 좇아 골목길로 들어가본다. 꺼칠한 시멘트 담장 아니면 블록 담이 이어지고 1, 2층 슬래브 집들이 지붕을 맞대고 있는 골목. 인적 없는 그 골목길이 안온하다. 마침내 숨은 듯 부끄러운 듯 처마 밑에 걸린 여인숙 간판 하나까지 발견하면서 비로소 나는 내가 어디에 와 있는지를 깨닫게 된다.
저 집의 초라한 눈빛
늙은 개처럼 꼬리를 늘어뜨리고
게저분하게 웅크리고 있네
삭정이 삐걱 나와
눅눅한 햇볕을 쬘 때까지
사연 많은 사람들
초라한 집 뱃속에 누워
일어나질 않네
순대국처럼 모락 모락
김이 성기는 굴뚝 위로
곰삭은 바람
길을 잃고 머뭇거리네
- 박주택 시 ‘보성 여인숙’ 전문
소박하고 단아한 아름다움
시인도 어느 때 보성읍 거리의 뒷골목을 걸어본 듯싶다. 드러난 말투는 전혀 그렇지 않지만, 숨겨진 말이 전하는 그림은 지극히 따스하고 아름답다. 가난한 육신들을 거둬들이는 그 초라한 숙소를 향한 시선에는 혹독한 현실 저편에 대한 응시가 한몫 있기 때문이다. 하루하루 힘든 일상을 끝내고 여인숙에 와서 눕는 이들의 삶은 어쩌면 묵은 된장과 김치, 장아찌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을 품는 집은 비록 게저분하지만 굴뚝에는 순댓국 같은 김이 성기고 곰삭은 바람이 부는 것이다.
그렇게 초라하고 예쁜 여인숙이 어찌 전라남도 보성에만 있으랴. ‘가난한 나그네가 묵는 집’은 서울에도 있고 제주에도 있다. 그런데 시 제목에서 보듯이 여인숙은 보성에만 있어야 될 것처럼 지명과 집 이름이 썩 잘 어울린다. 가난하지만 맘씨 고운 나그네들이 찾아드는 적격의 곳이 보성처럼 여겨지기도 하는 것이다. 그만큼 보성은 산과 바다, 강까지 두루 갖추고 있음에도 화려함, 빼어남보다는 소박하고 단아한 아름다움을 가진 곳이다.
다른 사람들이 많이 찾아가는 곳은 애써 걸음을 삼가는 버릇을 가진 나그네이지만, 보성까지 와서 그 유명하다는 차밭을 가보지 않을 수는 없다. 그동안 여러 매체를 통해 익히 봐왔던 녹차밭 풍경을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싶다는 욕심도 없지 않았다. 보성은 예부터 한국 차의 명산지로 잘 알려져왔다. 한반도 남쪽 끝자락에 위치해 있으면서 바다와 가까워 기후가 온화할 뿐만 아니라 습도와 온도가 차 재배에 적당하다는 환경적인 조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읍에서 남쪽 율포 바다 쪽으로 가다가 만나는 보성 녹차밭. 보성읍 봉산리 일대가 내려다보이는 산록에 자리 잡은 이 농원은 30여만 평이나 되는 드넓은 면적을 자랑한다. 차밭으로 가는 길가에는 아름드리 삼나무들이 도열해 청량감을 더하는데, 이윽고 만나는 산등성이의 차밭이 장관이다. 눈이 먼저 시원해지고 이내 가슴이 상쾌해진다. 바람결에도 차 향기가 전해지는 기분이다. 봄 햇살을 튕겨내는 푸르른 차밭 한가운데 서 있노라면 금세 온몸에 찻물이 배어드는 느낌마저 가질 수 있다.
새순 하나를 따서 입 안에 넣어보는 때는 문득 수년 전 둘러보았던 중국 무이산(武夷山)의 대홍포 차밭을 떠올렸다. 거대한 바위산 골짝과 절벽에 층층으로 조성해놓은 차밭이었는데 그 규모와 기이함은 보는 이로 하여금 놀라움마저 자아내게 했다. 입지가 얼마나 험했으면 사람 대신 원숭이를 시켜 찻잎을 따게 했다는 얘기까지 있을까. 그런데 보성 차밭에서 갖는 감회는 그때와 전혀 다른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부드러움과 넉넉함에서 가질 수 있는 평안과 안도가 좋았다. 아무튼 차 맛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이가 그 가꾸고 키우는 이들의 수고는 뒷전에 둔 채 녹색 농장의 풍경을 감상하는 것 자체가 사치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싱그러운 차밭과 일림산 철쭉
이곳 차밭 구릉지 뒤편의 팔성산과 연결되는 산이 등산객들에게도 잘 알려진 일림산이다. 호남정맥이 제암산(779m)과 사자산(666m)을 거쳐 남해로 들어가기 직전에 솟구친 산이다. 정상 근처의 습지대에서 흘러내린 물이 산 아래 바위 암반의 골짝에서 한순간 폭포를 이루는데 그것이 곧 용추폭포다. 이 물줄기는 보성 땅을 가로지른 뒤 주암호에 들었다가 마침내 섬진강과 합류하는 보성강의 시원이 되기도 한다. 특히 해발 664m의 일림산은 철쭉 군락지로 이름나 있는데, 매년 5월이면 100만여 평(330만여 m2)의 군락지가 붉은 꽃으로 뒤덮여 온 산에 꽃불이 번지는 듯한 장관이 연출되기도 한다. 정상 어귀에 형성된 산죽 군락지며 억새밭 또한 철 따라 독특한 경관을 빚어내면서 보성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산 정상에서 마주하는 조망은 호쾌하다. 맞은편 장흥의 천관산 바위 봉우리들이 손에 잡힐 듯 다가들 뿐만 아니라 북서쪽의 사자산 제암산 연봉들이 한눈에 들어오며 먼 데 무등산마저 호형호제하듯이 가깝게 다가든다. 그뿐인가. 남동쪽 산 아래로는 여기저기 한가하니 섬들이 떠 있는 보성만 바다와 그림 같은 해안 풍경이 펼쳐진다. 산과 바다를 죄 아우르는 한 폭의 산수화를 이 산에서 마주할 수 있는 것이다.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녹차의 약 40%가 이 산자락에서 생산된다. 향기롭고 맑은 차가 소리를 만드는 것처럼 산 아래 마을에서는 서편제 명창이 많이 배출된 것으로도 소문이 나 있다.
녹차밭을 나와 남쪽으로 달리다가 다다르는 뭍의 끝, 율포솔밭해변은 보성이 자랑하는 해변 관광지다. 수령 40~50년의 소나무들이 해변에 숲을 이루고 고운 모래가 깔려 있는 곳. 득량만의 바닷물이 쉼 없이 모래밭을 적시는 이 천혜의 자연에 이제 사람들은 온갖 시설물을 갖춰 놓고 손님들을 끌고 있다. 서구풍의 콘도와 펜션들, 솔숲의 녹차 풀장…. 오락과 휴식을 위한 이런 편의시설이 요긴해 보이기는 하지만 적적하니 바다 구경이나 하고 솔바람 소리나 듣겠다고 찾아온 나그네한테는 되레 거추장스럽게만 여겨지기도 한다. 보성 여인숙이 있는 읍 거리와는 사뭇 이질적인 풍경이기도 하다.
하여 나는 차라리 북쪽으로 걸음을 돌린다. 보성읍 노동면 명봉리에 있는 작은 기차역 하나를 만나기 위해서다. 이제는 역원 한 명 배치되지 않은 이름 그대로의 시골 간이역이지만 어느 TV 드라마의 촬영지로 소문이 나면서 나름의 유명세를 타고 있다는 역이다. 열차를 이용하는 사람이 하루 쉰 명 남짓인데 역 구경 오는 사람이 그보다 훨씬 많다니 TV 드라마의 위력을 새삼 실감할 수 있다. 하지만 탤런트 이름도 제대로 모르는 나 같은 이가 그런 시속을 따를 까닭은 없다.
아직도 은소금 하얀 햇살 속에 서 있겠지
서울 가는 상행선 기차 앞에
차창을 두드릴 듯
나의 아버지
저녁 노을 목에 감고
벚나무들 슬픔처럼 흰 꽃 터트리겠지
지상의 기차는 지금 막 떠나려 하겠지
아버지와 나 마지막 헤어진 간이역
눈앞의 빙판길
미리 알고
봉황새 울어 주던 그날
거기 그대로 내 어린 날
눈 시리게 서 있겠지요.
-문정희 시 ‘명봉역’ 전문
시를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시인의 고향이 이 어디쯤인 줄은 정말 몰랐다. 만날 때마다 늘 후덕한 웃음을 주던 시인의 그 어린 날들이 이 간이역 언저리에 있었을 줄을 전혀 몰랐던 것이다. 시에는, 어린 딸아이를 낯선 서울로 떠나보내는 아버지의 모습이 그려진다.
은소금 같은 하얀 햇살이 쏟아지는 저녁 무렵. 그 아버지가 품은 슬픔이 만개하는 벚꽃 같음은 벌써 어린 딸도 헤아리고 있다. 지상의 어느 역이 이별의 회한을 품지 않았으랴만 떠나는 어린 딸과 그를 보내는 아비의 모습이 각인된 명봉역의 별리는 훨씬 강렬하고 인상적이다. 그런데 난데없이 봉황새라니! 이미지의 파격처럼 나타나는 봉황새라고 해서 놀랄 일은 아니다. 역 근처에 흐르는 개울 이름이 명봉천이며 이는 개울을 사이에 두고 암수 봉황이 서로 그리워 울음 울었다는 전설에서 유래된 지명이라는 사실만 염두에 두면 되기 때문이다.
명봉역에서 아버지를 부르다
외딴 곳에 외롭게 서 있는 간이역에 서면, 정지된 시간 속에 서 있는 느낌이 든다. 초고속 열차가 질주하고 곳곳에 새로 앉은 화려하고 거대한 역 건물들을 떠올리면 더욱 그러하다. 적막한 주위 풍경 때문만은 아니다.
1950년대에 지어져 오늘에 이른다는, 붉은 벽돌 벽에 삿갓 모양의 녹청색 지붕을 얹은 역 건물은 세월의 묵은 때를 그대로 덮어쓰고 있다. 근래 그린 듯한 벽 그림이 심심함을 덜어주는데, 역 마당에는 늙은 나무들이 힘겹게 가지들을 벌리고 있다.
차들의 내왕도 뜸한 길 건너편에는 금세 주저앉을 듯한 낡은 집들과 함께 생김새가 희한한 절집(천봉사)까지 하나 있어서 역을 둘러싼 풍색을 더 기이하고 풍성하게 한다. 예전 정미소나 양조장이었음직한 건물을 수선해서 외부 벽면을 온통 노랗게 칠한 뒤 탱화를 그리고 그 앞에 석상들을 도열해 놓은 이 절집은 역과 더불어 그대로 하나의 풍속화가 돼버린다.
텅 빈 역 대합실 벽에는 드라마의 장면과 함께 주역 탤런트들의 사인을 담은 액자가 걸려 있고 개찰구 앞 공터에는 장독대 형상으로 꾸민 화단도 있다. 철로 가운데 위치한 승차장도 예사롭지 않다. 손질이 잘된 정원수가 그곳에 서 있는가 하면 앙증스러운 의자와 더불어 Y자 형태로 팔을 벌리고 선 조명등들이 인공의 맛을 곁들인다. 이곳에서 순천 방향을 바라보면 붉고 푸른색 지붕에 회칠한 담장을 두른 농가 서너 채도 원경으로 잡히는데 이 또한 곱고 정겨운 풍경이 된다.
이러고 보면, 역 하나를 두고 마을 사람들, 역 관리인들 모두가 한통속(?)이 되어 기막힌 간이역 풍경 하나를 빚어내려고 작정을 한 듯싶다. 공교로운 일인가. 느티나무 그늘에 앉아 쉬는 사이, 나는 앞의 시에서처럼 명봉역에서 아버지를 부르는 또 한 편의 시를 새기지 않을 수 없다.
명봉역을 MBC 베스트 극장에서
만난 날
화면 속의 느티나무더러
아버지! 불러본다
-박라연 시 ‘명봉역’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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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사하면서도 어둡고, 발랄하면서도 침잠된 시를 통해 더러 시인마저 신비롭게 느끼게 했던 그 시인의 고향도 이 어디쯤임은 내가 진즉 알고 있었다. 명봉역에서 그녀가 부르는 아버지는 술 좋아하는 만큼 인심이 넉넉했으며 가난 속에서도 어질기만 했던 어머니와 함께 이곳에서 시공을 같이했다. 그분들은 이미 떠났지만 명봉역의 느티나무 같은 시간의 좌표가 있기에 그리움은 늘 강처럼 흐른다.
그럼 보성은 아버지의 땅인가. 그 봄날 나 또한 등 굽은 내 아버지가 느린 걸음으로 보성 여인숙에 들어가는 모습을 그려보지 않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