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7월호

친구와 하루 303번 카톡 모르는 사람과 일회성 즐기기 유행

대학생들이 취재한 요즘 대학생 라이프스타일

  • 김도향 외

    입력2013-06-20 16: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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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ㅋㅋ, 모해, 헐…3분당 한 번꼴로 톡톡
    • 일주일 평균 용돈 14만 원
    • 식사·술·담배·커피에 용돈 68% 써
    • 관계의 손쉬운 형성과 해체…‘소셜 다이닝’ 인기
    친구와 하루 303번 카톡 모르는 사람과 일회성 즐기기 유행

    서울 성북구 안암동 고려대 중앙도서관에서 학생들이 모임을 갖고 있다.

    요즘 대학생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적극 향유하고 고액 등록금, 취업난으로 많은 고민을 안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대학생들에게 근접해 이들의 라이프스타일이 어떠한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보도는 드문 편이다. 세대 간 장벽 등으로 인해 대학생이 아니면 대학생에게 접근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카카오톡 속의 삶, 소비문화, 새로운 관계 맺기 등 세 측면에서 요즘 대학생의 일상을 탐구해봤다. 이 기획기사는 고려대 미디어학부 2013년 1학기 ‘탐사기획보도’ 과목 수강생들이 박재영 교수의 지도 아래 한 학기 동안 취재해 작성한 것이다.

    PART I 카카오톡으로 들어간 일상

    카카오톡으로 주고받는 문자 메시지가 하루에 303건이나 된다고? 유별난 카톡 중독자의 얘기가 아니다. 바로 요즘 대학생의 평균적인 모습이다.

    무료 모바일 메시지 애플리케이션 카카오톡은 우리나라의 SNS 문화를 대표한다. 우리는 대학생들이 카카오톡을 얼마나 자주 이용하는지를 조사해봤다. 우선 고려대 재학생 11명을 무작위로 조사대상자로 선정했다. 이어 이들 조사대상자의 동의를 구해 5월 13~15일 사흘 동안 이들이 주고받은 카카오톡 문자 메시지 내용 전체를 회수한 뒤 PC로 옮겨 분석했다.

    그 결과, 학생들은 매일 강의실에서든 도서관에서든, 하루 중 상당한 시간을 카카오톡 문자를 주고받는 데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들이 주고받는 카카오톡 문자 중 중요한 내용은 별로 없었다.



    필요한 내용은 31%

    조사대상 학생 11명이 3일간 주고받은 카카오톡 문자는 약 1만 건에 달했다. 학생 1인당 하루 평균 주고받은 문자는 303건이었다. 하루 중 수면시간 8시간을 빼면 3분에 한 번씩 카톡 문자를 주고받은 셈이다. 상대는 거의 대부분이 친구였다. 하루에 무려 800건이 넘는 문자를 주고받은 학생도 있었다.

    또한 조사대상 학생들은 하루 평균 13개의 카카오톡 대화방을 들락거렸다. 이중엔 23개의 대화방을 열어놓은 학생도 있었다. 카톡 문자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오갔다. 0시부터 오전 6시까지 주고받은 문자도 전체의 20%나 됐다.

    우리는 조사대상 학생들에게 자신이 주고받은 카톡 문자의 중요도를 자가 진단하도록 했다. ‘꼭 필요하다’ ‘불필요하다’ ‘잘 모르겠다’ 중 하나를 선택하는 방식이었다. 자가 진단 결과, 꼭 필요하다고 평가한 문자는 전체의 31% 불과했다. 즉, 카톡 문자 10건 중 3건만 유용하며 나머지 7건은 그야말로 노이즈(noise·소음)라고 할 만했다.

    우리는 노이즈로 분류된 문자 7000여 건을 별도로 분석해봤다. 그 결과 노이즈 문자의 70%는 의미 없는 한글 자음과 모음, 이모티콘, 짧은 유행어로 되어 있었다. 특히 감정을 간단히 표현하기 위해 연달아 입력하는 ‘ㅋㅋ’ ‘ㅎㅎ’ ‘ㅠㅠ’ 등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ㅋ’을 하나 또는 연달아 표기한 메시지만 700여 건에 달했다.

    유행어는 ‘헐’ ‘대박’ 등의 감탄사가 다수였고, 유명 연예인이 방송에서 사용해 널리 퍼진 ‘뿌잉뿌잉’ ‘호롤롤로’ 등도 있었다. 이런 유행어들은 별 의미 없는 말이지만 학생들은 습관적으로 반복 사용하고 있었다.

    “단호박이세요?”

    또한 ‘왜 이렇게 단호하세요? 단호박이세요?’와 같은 유머 문장도 자주 발견됐다. 조사대상 학생 안모(21) 씨는 “유행어를 사용하면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하는 것처럼 현장감이 느껴져서 재미있다. 거의 모든 카톡 대화에서 이런 표현을 사용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내면서 이모티콘 스티커를 첨부하는 것처럼 ‘짤방’을 첨부하는 경우도 많았다. ‘짤방’은 원래 ‘(메시지) 잘림 방지’의 줄임말인데, 최근에는 ‘글에 첨부된 이미지’를 통칭하는 말로 쓰인다. 그러나 짤방은 사진을 전송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을 뿐이지 별다른 의미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조사대상 학생 이모(23) 씨는 “‘짤방’은 감정을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어서 대화에 활력을 불어넣는 데 이만한 게 없다. 너도나도 수집할 정도로 인기가 좋다”고 말했다.

    노이즈 메시지 중에는 알림 문자도 한몫을 차지한다. 또 다른 조사대상 학생인 이모(21) 씨는 수업 중 갑자기 연속적으로 울려대는 알림음에 놀라서 휴대전화를 켰다. 카톡 대화방에 메시지가 떠 있었다. ‘○○, ○○야, ○○야, ○○야~ ○○야! ○○!’라고 하면서 대화방 멤버들의 이름을 부르는 메시지였다. 이후 ‘응, 왜?’ ‘그냥, 나 수업 끝나서 신나서 카톡 했음. 휴강이지롱!’ ‘헐, 난 수업…’ ‘집에서 딩가딩가 놀아야지’라는 메시지가 연이어 들어와 있었다. 친구들이 연속해서 보낸 메시지 때문에 이 씨의 수업 집중도는 확 떨어졌다.

    친구와 하루 303번 카톡 모르는 사람과 일회성 즐기기 유행

    실험 대상 학생들이 주고받은 카카오톡 문자 메시지 내용.

    이처럼 카톡에선 마치 큰일이라도 생긴 듯 다급하게 사람을 부르지만 실제 사정을 알고 보면 그저 ‘시간 때우기용’인 경우가 허다하다. ‘모해(‘뭐해’라는 뜻)?’ ‘자니?’도 이런 유형이다. 이런 메시지는 무료한 시간을 수다로 채우고 싶거나 대화방의 활력을 되살리고 싶을 때 주고받는다. 그나마 ‘오늘 곱창 ㄱㄱ(곱창 고고, 즉 ‘곱창 먹으러 갈래?’라는 뜻)’와 같은 메시지는 상당히 정보적인 메시지에 속한다.

    조사대상 학생 공모(23) 씨는 “매일 이런 문자 때문에 내 휴대전화가 몸살을 앓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공 씨는 무시하거나 1~2시간 뒤에 답변하는 버릇을 갖게 됐다.

    웹에 돌아다니는 글, 동영상, 뉴스 등을 뜬금없이 전송해 잡담을 유도하는 경우도 많았다. 조사대상 학생 유모(23) 씨는 ‘레전드 방송 사고’ 따위의 유튜브 인기 동영상을 단체 대화방에 자주 보낸다고 했다. 유 씨는 “친구들에게 화제성 있는 동영상을 링크해서 보내면 대부분 재미있어 하기 때문에 동영상을 자주 보내 대화를 주도한다”고 전했다. 그러나 유 씨는 이런 메시지들을 ‘필요한 메시지’로 평가하지 않았다.

    “현실에 집중 못해”

    단체 대화방에선 카카오톡의 ‘투표 서비스’를 공유함으로써 대화의 물꼬를 트기도 한다. 그 주제는 대부분 시시콜콜한 잡담용이었다. 예를 들어, ‘ 투표가 등록되었습니다. 지금 확인하기’라는 메시지가 대화방에 전송되면 30초도 안 돼 ‘이게 뭐야’ ‘자기 이름에 투표하기 없음’ ‘재밌겠다’‘ㅋㅋㅋ’ 등의 답신이 오가며 대화방이 활성화되는 식이다. 이런 투표 메시지를 받은 이모(22·사회학과) 씨는 ‘ㅋㅋ’라는 답변을 보내며 수십 분간 대화에 참여했다. 이 씨는 이런 메시지를 모두 ‘불필요하다’고 평가했다. 이씨는 “홀린 듯이 참여했다가 정신을 차려보면 1시간이 훌쩍 지나 있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일부 학생은 카카오톡을 통해 자신의 일상을 친구들과 공유하는 것이 일상사가 되어 있었다. 조사대상 학생 홍모(21) 씨는 밤새 홍익대 앞에서 놀다 온 이야기를 하며 아침부터 저녁까지 카카오톡으로 친구와 문자를 주고받았다. 홍대 앞의 분위기로 시작된 대화는 동행한 친구들에 대한 일화로 이어졌다. 이어 쇼핑이나 DJ 페스티벌 이야기로 주제를 옮겨가면서 온종일 계속된 것이다. 홍 씨는 이 문자들을 분석하면서 매우 놀랐다.

    “지극히 일상적이고 쓸데없는 이야기를 왜 이렇게 많이 주고받았을까요? 나 자신을 이해할 수 없어요.”

    홍 씨는 “직접 만나면 금방 끝낼 이야기가 카톡으로 하면 한없이 늘어진다. 휴대전화를 보는 시간이 아깝다”고 말했다.

    공통의 주제가 있는 ‘업무용’ 단체 대화방에서도 주제와 관련 없는 잡담이 빈번하게 오갔다. 이번 조사에서 단체 대화방의 메시지는 1:1 대화방의 메시지보다 6~30배나 많았다. 그만큼 노이즈 메시지도 많이 발견됐다.

    조사대상 학생 우모(23) 씨는 휴대전화를 잠시 안 본 사이에 동아리 카톡 대화방에 200여 개의 메시지가 도착한 적이 있다고 했다. 다급한 내용인 줄 알고 확인해보니 대부분 말장난이나 잡담이었고 중요한 메시지는 거의 없었다고 한다. 한 대화방에 21명이나 있다보니 ‘5교시에 점심 먹을 사람?’ ‘OOO 콘서트 가고 싶다’와 같은 문자가 뜨면 지엽적인 이야기로 쏠린다는 것이다. 우 씨는 스트레스를 받은 나머지 아예 휴대전화에서 카톡 애플리케이션을 삭제했다고 한다. 이 동아리 회원 정모(21) 씨는 “결국 ‘잡담방’과 ‘공지사항 전달방’을 따로 개설했다”고 말했다.

    우리는 이러한 조사결과를 대학생의 부모들에게 보여주고 반응을 들어보았다. 이들은 주로 1970~80년대 대학에 다닌 세대에 해당한다. 인터뷰 결과 이들도 카카오톡을 쓰고 있었지만 하루에 주고받는 문자는 많아야 30~40건으로 대학생들과 큰 차이를 보였다. 또 몇 시간이고 카톡으로 대화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대학생이 하루 평균 300건 이상 카톡 문자를 주고받는다는 것에 대해 대학생 딸을 둔 이순교(50) 씨는 “한마디로 한심하고 시간낭비”라고 답답해했다. 이 씨의 남편 손영석(51) 씨는 “거의 중독 수준 같다. 이해가 잘 안 된다”고 했다.

    “공부는 언제 하는지 궁금할 정도입니다.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해야 진심을 나눌 수 있는 거지, 카톡으로는 한계가 있는 것 아닌가요?”

    대학생의 부모가 카톡의 단체 대화방을 사용하는 일은 많지 않았다. 대학생 딸을 둔 성정연(50) 씨는 “카카오톡, 페이스북 같은 SNS에 내 이야기를 노출하는 게 불편하다. 그다지 친하지도 않은 사람들에게 왜 사적인 정보를 공개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성씨는 ‘ㅋㅋ’ 같은 메시지에 대해 “귀엽고 재미있어서 자녀들과 가벼운 내용을 주고받을 때 가끔 사용하지만 어른끼리의 대화에서는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대학생의 부모들은 대체로 ‘카카오톡에 몰입하면 학업이나 사람과의 실제 만남 등 현실에 집중하지 못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잡담이 친구 만들어줘”

    그러나 대학생들이 카카오톡 잡담에 빠지는 것을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일부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는 “잡담은 정서적 유대를 강화한다. 여성들이 커피숍에서 수 시간씩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내용으로 수다를 떨면서 절친한 친구가 되는 것과 같다. 카카오톡이 이런 기능을 대체해주고 있다”고 말한다. 카카오톡 잡담이 대학생 또래들 간의 친밀감 형성에 기여한다는 것이다.

    곽모(27·미디어학부) 씨는 “친구와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카카오톡으로 지속적으로 연락을 주고받으면 서로 연결돼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말했다. 이모(23·영어교육과) 씨는 “호주에서 교환학생으로 있을 때 한국에 있는 친구들과 언제든 카톡으로 연락할 수 있어서 안정감을 얻을 수 있었다”고 했다.

    카카오톡은 이미 대학생의 일상에서 뗄 수 없는 문화가 됐다. 김성태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는 “카카오톡은 무료이고 친구 맺기가 가능하며 영상과 사진도 주고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이전의 소통방식과 다르다”면서 “그러나 이런 기능이 아무리 유용하다 해도 지나치게 반복하면 문제가 된다”고 지적했다.

    김도향 | 고려대 미디어학부 3학년

    장선화 | 고려대 영어영문학과 3학년

    손령선 | 고려대 환경생태공학부 3학년

    PART II 용돈과 소비문화

    요즘 대학생은 한 달에 용돈으로 얼마를 쓰고 어디에 주로 지출할까. 대학생들이 고액 등록금과 취업난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직장인처럼 커피전문점에서 점심값보다 비싼 커피를 선뜻 사 먹는다. 책 구입, 수업 과제 이행, 스펙 쌓기에 적지 않은 돈을 들이기도 한다. 사실 대학생 자신조차 알뜰 주부처럼 꼼꼼하게 가계부를 적지 않는 한 자신이 돈을 어디에 얼마나 쓰는지 자세히 알기가 쉽지 않다.

    대학생 소비 아이콘은 커피

    우리는 대학생의 용돈 규모와 용처를 정확하게 알아보고자 했다. 무작위로 선정한 조사대상 고려대 학생 15명에게 손바닥 크기의 수첩을 나눠줬다. 이어 이들 15명에게 5월 10~16일 일주일 동안 현금이나 신용(체크)카드로 지불한 뒤 영수증을 빠짐없이 챙겨 수첩에 붙이도록 했다. 일부 교통비처럼 영수증을 모을 수 없는 내역은 수첩에 직접 적도록 했다.

    5월 17일 조사대상 대학생 15명에게서 수첩을 회수해 분석한 결과, 이들의 일주일 평균 용돈 지출액은 13만6980원이었다. 식비가 4만1580원으로 가장 비중이 높았다. 이어 술값 담뱃값 등 잡비(3만6980원), 도서구입비 영화·공연관람비 등 문화생활비(2만2780원), 커피 등 음료비(1만5110원), 교통비(1만2678원) 순이었다. 식사하고 술·담배를 즐기고 커피 마시는 데에 용돈의 68.3%를 사용하는 셈이다. 한 달치로 계산하면 대학생의 월 평균 용돈은 54만8000원이다.

    식비는 최소 4500원에서 최다 9만1300원으로 편차가 컸다(일주일치). 안모(20) 씨는 일주일 식비로 4500원을 지출해 가장 적었다. 비결은 간단했다. 서울에서 부모와 함께 거주하는 안 씨는 식비가 많이 든다고 여겨 4월부터 외식 빈도를 최소화했다. 점심은 값싼 학생식당에서 해결했고 저녁은 집에서 먹었다고 한다. 친구들과 함께 밥을 사 먹는 것도 자제했다.

    안 씨의 말대로 여러 명이 함께 밥을 사먹으러 가면 아무래도 지출이 는다. 그러나 이런 자리를 거절하기는 쉽지 않다. 정모(23) 씨는 “학교생활도 일종의 사회생활인데 친구가 밥 먹으러 가자거나 카페에 가자면 거절하기가 난처하다”고 말했다. 그래서 음료와 빵 등 간편식으로 끼니를 때우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친구와 하루 303번 카톡 모르는 사람과 일회성 즐기기 유행


    조사 참여자들의 두드러진 공통점은 커피 소비였다. 커피는 그야말로 대학생 소비 지출의 아이콘이었다. 일주일 동안 커피를 사 마시지 않은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평균 음료비(1만5110원)로 볼 때, 대학생들은 일주일에 스타벅스의 아이스 아메리카노 3.8잔을 마신 셈이다. 이는 5000원짜리 식사를 세 번 할 수 있는 금액이다.

    조사대상 학생 홍모(23) 씨는 음료비로 일주일에 2만8550원을 지출했는데, 이는 매일 아이스 아메리카노 1잔을 마신 금액이다. 홍 씨는 “팀 프로젝트와 동아리 활동이 많아 카페에서 자주 모이다 보니 커피 비용이 많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문화생활비도 비교적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그러나 문화생활비는 식비와 마찬가지로 조사대상자별로 차이가 컸다. 장모 씨는 영화나 공연을 보기 위해 한 달 용돈의 절반 이상을 아낌없이 투자했다. 장 씨는 “공연 예매일이 가까워오면 밥값부터 아끼기 시작한다. 공연 표를 예매하려고 점심을 안 먹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조사대상자는 이렇게까지 문화생활에 용돈을 투자하지 않았다. 이모(22) 씨는 “돈을 써야 할 데가 많아 문화생활은 뒷전으로 밀리는 편”이라고 말했다.

    술값과 담뱃값에 용돈의 상당 부분을 지출하는 학생도 적지 않았다. 김모(24·여) 씨는 자신이 작성한 영수증 수첩을 보고 술값과 담뱃값이 총 지출액의 4분의 1이나 된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됐다고 한다. 김 씨는 “술과 담배에 이렇게 많은 돈을 쓰는지 몰랐다”고 놀라워했다.

    조사대상 학생들은 대체로 ‘용돈은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일주일에 13만 원을 지출한 이모 씨는 “지출을 지금보다 줄일 수는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대부분 부모에게 타 써

    조사대상 학생 대부분은 부모에게 용돈을 타 쓰고 있었다. 부모가 전액을 지원하는 방식이거나 아니면 대학생 본인이 아르바이트로 일부를 마련하고 부모가 부족분을 메워주는 형태다. 실험 참가자들이 한 달 평균 쓰는 용돈 54만8000원은 부모의 처지에서 결코 작은 돈이 아닌 것으로 보였다. 조사대상자 박모(여) 씨는 “부모님에게 받는 용돈은 식비로 쓰고, 내가 아르바이트로 번 돈은 마음에 드는 옷이나 신발을 사는 데 쓴다”고 말했다. 조사대상 학생 유모(여) 씨는 “월말이면 항상 적자다. 내 신용카드가 연체되면 부모님이 연체금을 갚아주시기도 한다”고 말했다.

    대학생 자녀를 둔 손영석(51) 씨는 “정작 나를 위해 쓰는 돈은 교통비와 온갖 잡비를 더해 일주일에 10만 원이 넘지 않는다”고 말했다. 손 씨는 “이렇게 모은 돈을 자식 기죽지 말라고 용돈으로 주는 것”이라고 했다. 대학생 딸을 둔 이순교(50) 씨는 “내가 20대 때는 월급 13만 원, 지금으로 따지면 100만 원쯤 되는 돈을 모두 저축했다”고 말했다. 이복순(50) 씨는 “딸의 책상에서 한 잔에 수천 원하는 커피 영수증을 잔뜩 발견하고 놀란 적이 있다”고 말했다.

    김도향 | 고려대 미디어학부 3학년

    손령선 | 고려대 환경생태공학부 3학년

    장선화 | 고려대 영어영문학과 3학년

    PART III 소셜 다이닝 : 새로운 관계 맺기

    “알래스카에서 북극곰 보려고 다섯 시간 기다렸다니까.”

    “그래서 보긴 본 거야?”

    “응, 사진도 찍었어. 이거 봐.”

    여행담을 늘어놓고 들어주는 이들은 사실 30분 전에 처음 만났다.

    미팅이나 소개팅 자리가 아니다.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매개자 없이 만나 식사나 여가생활을 함께 즐기는 ‘소셜 다이닝(Social Dining)’이 요즘 대학생들 사이에서 인기다.

    “박현주예요. 스물다섯이고요. 여행을 좋아해서 다른 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정보도 얻고 싶어서 나왔어요.”

    자기소개의 어색함은 잠시뿐, 분위기는 이내 화기애애해졌다. 나이도 직업도 다르고 본 적도 없는 7명을 한데 모은 것은 여행이라는 공통 관심사였다. 누군가 온라인에 모임 공지를 올렸다. 그러자 이들 7명은 이를 보고 선뜻 달려와 저녁을 함께하며 밤늦도록 여행담을 나누고 있는 것이다. 이들 중 몇몇은 다시 만날 수도 있다. 그러나 대체로 다시 만나기를 기대하기보다는 현재의 순간을 즐기는 데에 만족한다.

    여행모임과 아침모임 체험

    소셜 다이닝은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함께 밥을 먹으며 어떤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모임이다. 어떻게 모이고, 또 어떻게 말문을 터서 얘기를 나누게 되는 것일까. 필자는 소셜 다이닝을 직접 체험해보기로 했다.

    국내 최대 소셜 다이닝 커뮤니티 ‘집밥’(http://www.zipbob.net)에 접속했다. ‘집(集)밥’은 ‘모여서 밥 먹는다’는 뜻이다. 이곳에는 매일 서너 개의 모임이 새로 공지되고 있었다. 재테크, 자기계발 등 다양한 주제의 모임이 계속 열린다. 이중에서도 독서, 등산 등 취미 모임이 가장 인기가 높다. 모임 장소는 참가자들의 접근성을 감안해 사이트 운영자가 예약해 준다. 밥값을 미리 내야 하는 경우 자신의 식사비를 신용카드로 결제하면 된다. 당일 모임에서 평균 식사비를 각자 내기도 한다.

    필자는 여행 모임에 참가 신청을 냈다. 모임 장소는 서울 압구정동의 한 레스토랑이었다. 예약된 자리엔 한 여성이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필자는 “오늘 무척 덥네요”라며 인사를 건넸다. 곧 다른 사람들도 도착해 자리를 채웠다.

    첫 대면이라 그런지 분위기는 역시 어색했다. 모임 주최자인 김모(33·회사원) 씨가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지가 어디인가요?”라고 묻자 다들 기다렸다는 듯이 자신의 여행담을 풀어놓기 시작했다.

    “휴가는 선진국으로 가는 게 좋아. 비행기 연착이라도 되면 출근에 지장이 생겨서 낭패거든.”

    “아 그렇구나! 언니, 이번 여름에 처음으로 혼자 여행을 가보려고 하는데, 어디가 좋아요?”

    “홍콩 어때? 쇼핑하기 좋고, 맛있는 것도 많고, 무엇보다 가깝고.”

    “싱가포르도 괜찮겠다. 난 회사 휴가 기간이 성수기로 정해져 있어서 올해도 여행은 국내로 가야 할 것 같아.”

    “요즘 캠핑 여행도 인기라던데, 캠핑 쪽으로도 한번 알아 봐.”

    이렇게 시작한 대화는 나중에 서로의 여름휴가 계획을 짜주는 수준으로 발전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대화를 나누던 이들은 레스토랑 마감시간이 다 됐다는 종업원의 말에 겨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들은 서로의 카카오톡 아이디를 주고받은 후 헤어졌다. 집으로 가는 길 내내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은 못다 한 여행 이야기로 쉴 새 없이 알람이 울렸다. 여름휴가 갔다 오면 또 만나자는 이야기도 나왔다. 그러나 대화방은 얼마 지나지 않아 조용해졌다.

    요즘엔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단순히 혼자 식사하기 싫어서 함께 밥을 먹기도 한다. 도서관 출석을 서로 체크하거나 함께 여행을 하거나 함께 공연을 보기 위해 만나기도 한다. 한 번에 그치기도 하고 주기적으로 만나기도 한다.

    대학생들의 경우 밥을 함께 먹는 ‘밥터디’가 성행한다. 필자는 이를 체험해보기 위해 고려대 인터넷 학생 커뮤니티 게시판에 “아침 밥터디에 참여하고 싶은데요”라고 올려보았다. 곧바로 식사 장소와 시간을 알려주는 답장이 왔다. 너무 쉬웠다.

    다음 날 오전 7시 30분 약속장소인 학생식당 앞으로 갔다. 답장을 준 박모(경영학과 3학년) 씨가 인사를 건넸다. 박 씨가 안내한 식사 자리에는 기존 멤버인 김모(경영학과 4학년) 씨와 한모(컴퓨터공학과 3학년) 씨가 영화 이야기를 나누며 먼저 밥을 먹고 있었다.

    낯선 남녀의 동반여행

    김 씨는 “자취생들은 혼자 먹기 싫어서 아침을 거른다”며 “이렇게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하면서 아침을 먹으면 하루를 기분 좋게 시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 씨가 반찬으로 나온 순대볶음이 맛있다고 하자 박 씨도 맞장구를 쳤다. 필자는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친한 친구들과 함께 있는 것 같은 편안함을 느꼈다.

    밥터디는 1주일이 기한이었다. 마지막 날, 박 씨는 필자에게 “계속 밥터디를 하면 안 될까요?”라고 물었다. 김 씨도 매일 함께 밥을 먹었더니 헤어지기 섭섭하다고 했다. 1주일간 만나면서 공감대와 친밀함이 그만큼 두터졌다는 의미다.

    밥을 먹은 후 한 씨를 따라 도서관 열람실로 갔다. 한 씨는 도서관 출석을 서로 체크해주는 ‘출터디’ 멤버이기도 했다. 열람실 좌석 배정기 앞에는 3명이 먼저 와 기다리고 있었다. 8시 정각이 되자, 출터디 조장인 한 씨가 한 명씩 이름을 부르며 출석을 체크하고, 전날 지각하거나 결석한 사람에게서 벌금 3000원을 걷었다. 박 씨는 “혼자 생활하면 10분만 더 자야지 하면서 늦게 일어나는데, 출터디를 하면 벌금 때문에라도 도서관에 일찍 나온다”고 말했다. 다른 멤버인 이모 씨는 “출터디는 서로를 자극하고 긴장시킨다”고 말했다. 이 출터디 모임의 멤버는 5명인데 이들은 오전 8시의 이 만남 외에는 거의 만나지 않는다.

    낯선 사람과 동반여행을 하고 싶다면 그것도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다. 대학생 김모(22) 씨는 최근 제주도 여행을 계획하면서 한 여행 커뮤니티에 ‘올레길 함께 걸으실 분’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몇 시간도 안 돼 3명에게서 쪽지가 왔다. 그중 동갑내기 여성 한모 씨에게만 만날 장소와 시간을 보냈다. 두 사람은 올레길 7코스의 입구인 외돌개 휴게소에서 만나 7코스를 함께 걸었다.

    무용 전공인 한 씨는 연습을 하다가 다쳐 학교를 잠시 쉬고 있던 휴학생이었다. 점점 살이 찌고 자괴감도 들어 스스로를 되돌아보고자 여행에 나섰다고 한다. 두 사람은 4시간 동안 동행하면서 자기의 아픈 과거와 미래의 꿈을 이야기했다고 한다. 헤어질 때 전화번호를 서로 주고받았지만 둘 중 누구도 상대에게 전화를 하지 않았다. 김 씨는 “친한 친구에게 하기 어려운 얘기도 오히려 편하게 할 수 있다”며 “언젠가 마주친다면 정말 반가울 것 같다”고 말했다.

    낯선 사람과 함께 공연을 보는 것도 묘한 즐거움을 준다고 한다. 민모(21) 씨는 최근 충무아트홀 로비에서 이모(26) 씨를 기다렸다. 공연 시작 40분 전 두 사람은 휴대전화로 서로를 확인한 후 인사를 주고받았다. 이어 공연 팸플릿을 보며 감상 포인트를 얘기했다. 관현악 연주를 좋아하는 민 씨는 주변에 자기와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이 없어서 아쉬워하던 차에 이 씨를 알게 됐다. 이 씨의 사정도 비슷했다. 두 여성은 다섯 살 차이가 나는 대학생과 회사원이다. 민 씨는 “우리는 관현악에 대해선 정말 잘 통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두 사람이 다시 만날지는 미지수다.

    모르는 사람과의 단발성 만남이라고 하더라도 공감대가 생기면 계속 인연을 이어나갈 법도 하다. 소셜 다이닝 모임을 종종 주최하는 한모(31·회사원) 씨는 “모임이 끝나면 다들 다시 보자고 말한다. 그러나 그 멤버 그대로 모인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말했다. 한 씨는 한 번 만나고 즐겁게 헤어지는 게 더 아름답다고 말했다.

    김모(28·여·회사원) 씨는 “매일 마주치는 직장 동료나 얼굴을 자주 보는 지인이 아닌, 전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싶은 욕망이 있는 것 같다. 일회성이냐 몇 번 더 만나느냐는 부차적인 문제”라고 말했다.

    아는 관계 너머의 관계

    우리는 매일 많은 사람을 접한다. 휴대전화 주소록엔 수백 명 혹은 그보다 많은 전화번호가 가득하다. 그러나 익히 아는 관계 속에서 상처를 받고 고독을 느낀다. 이로 인해 아침을, 일과 후를, 휴일을, 휴가철을 낯선 사람과 함께 채워보고 싶을 때도 있다.

    이모(28·여·회사원) 씨는 “학교 동창들과 만나면 으레 명품 가방이나 연봉 이야기를 한다. 내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져 빨리 자리를 뜬다”며 “모르는 사람들과 있으면 더 좋을 때가 있다”고 말했다. 대학생 김모(25·여) 씨는 외로우니까 소셜 다이닝을 한다고 했다. 김 씨는 “친구들이 습관처럼 던지는 ‘언제 밥 한번 먹자’는 말은 다 빈말이다. 그런데 소셜 다이닝은 정말로 함께 밥을 먹는 거니까”라고 말했다.

    소셜 다이닝은 기존의 인간관계와 다르다. 관계의 손쉬운 형성과 해체를 지향한다. 채팅과도 다르다. 채팅이 이성과의 만남 자체를 주된 목적으로 한다면 소셜 다이닝은 만남을 통한 구체적 목표 성취를 일차적으로 지향한다. 요즘 대학생들은 이러한 새로운 관계 실험에 열린 자세로 참여하고 있다.

    김세라 | 고려대 미디어학부 2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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