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은 남북당국회담 실무협상에서 ‘플러스알파(+α)’를 챙겼다.
- 천안함 피격, 연평도 포격 문제가 의제에 포함되지 않은 것이다.
- 급이 안 되는 인사를 통일부 장관의 맞상대로 내보내던 관례를 변경하는 것은 -α였다.
- 평양은 이 -α가 싫어 회담을 무산시켰다. 북한이 이 과정에서 잃은 것은 없다. 본전치기다.
남북 수석대표를 맡은 천해성 통일부 통일정책실장(왼쪽)과 김성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 부장이 6월 9일 판문점에서 남북당국회담을 위한 실무접촉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과정은 무엇인가 낯익은 느낌을 준다. 왜일까. 이는 남북관계가 2009년 이래 일정한 패턴을 갖고 주기적으로 되풀이돼 전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패턴에 비춰보면 당국회담 무산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또한 과거의 패턴을 살펴보면 앞으로 전개될 남북관계를 개략적으로 예상해볼 수 있다.
협상 깨져도 北은 ‘본전치기’
당국회담 성사 실패는 남북관계가 2009년 이래 3번째 주기에 접어들었음을 보여준다. 1차 주기는 2009년 북한이 미사일 발사(4월), 2차 핵실험(5월)에 나서면서 시작됐다. 2차 주기는 2010년 3월 천안함 피격, 11월 연평도 포격이 변곡점이다.
이와 같은 두 번의 경험에서 나타나는 패턴은 1단계 : 북한의 도발 → 2단계 : 북한 주도의 전술적 유화 국면 개시와 실패 → 3단계 : 남북 간 지루한 공방이 지속되는 과정에서의 관계 악화 → 4단계 : 북한의 재도발로 요약할 수 있다.
3차 주기는 2012년 12월 장거리 미사일 발사, 2013년 2월 3차 핵실험으로 시작됐다. 6월 11일 회담 준비 과정에서 남북 간 견해차로 회담 개최가 결렬된 것을 보면, 이번에도 주기적 패턴의 2단계까지 나아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과거의 패턴에 비춰보면 앞으로 남북 간에는 상당히 지루한 공방이 계속될 소지가 있고, 결국 북한이 또 한 번의 중대한 도발에 나설 공산이 크지만, 변수가 적지 않다.
여기서 제기되는 질문은 두 가지다. 왜 이러한 패턴이 반복되는가. 3차 주기도 과거 패턴을 반복할 것인가. 아니면 과거와 다른 변화가 나타날 것인가.
먼저 왜 이러한 패턴이 반복되는지를 보자. 1단계에서 북한이 도발을 감행하는 목적은 위협 능력을 과시함으로써 차후에 협상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한 것이다. 특히 장거리 미사일 발사, 핵실험에서 성공하는 경우 북한은 이를 나중에 비싸게 활용할 수 있다. 무력 도발도 마찬가지다. 이는 협상에서 밀리는 경우 북한이 활용할 수 있는 반격 능력이 어떠한 것인지를 보여준다. 다시 말해 북한은 도발 감행을 통해 입지를 강화해 협상 의제를 장악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 후 상대방을 협상으로 유인하고자 하는 것이다.
북한은 도발이 일단 성공하면 유화 단계로 넘어갔다. 도발은 차후 협상에 유효한 카드를 증가시켰지만, 역효과로 북한에 대한 제재를 유발하고 특히 외교적 포위 전선 형성을 조장한다. 이러한 시점에서 북한은 전술적 유화 정책을 실시한다. 주변국이 절실히 원하지만 북한에는 별로 부담이 안 되는 양보를 미끼로 던지면서 상대방의 추가 양보를 유도해 자신들의 전략적 입지를 강화하는 것이다. 억류 미국인 또는 한국인을 석방하거나 남북 간 회담을 제안하는 것이다.
그 목적은 세 가지다. 첫째, 분위기 전환을 통해 북한에 대한 제재와 포위가 더 이상 강화되지 못하도록 한다. 둘째, 북한이 도발을 통해 얻은 성과를 기정사실로 인정한 상태에서 상대가 협상에 임하도록 한다. 셋째, 북한으로선 별 부담이 없는 사안을 양보해 미끼로 던지면서 그에 대한 보상으로 상대방으로부터 추가적 양보를 얻어낸다. 이 세 가지 목적의 성격을 보면 모두 북한에 추가적으로 이득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협상이 깨져도 북한 처지에서 보면 본전치기다. 또한 협상이 깨지는 과정에서 그 책임의 일부를 상대방에 전가하면, 그것은 북한에 플러스 요인이 된다.
한국 정부의 딜레마
과거에 그러했던 것처럼 6월 회담 제의도 위에 언급한 세 가지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것이었다.
첫째 목적, 그러니까 ‘제재와 포위가 강화되는 것을 막는다’는 것과 관련한 사안을 먼저 살펴보자. 2012년 12월 장거리 미사일 발사, 2013년 2월 3차 핵실험, 이후에 이어진 긴장 고조 조치는 무엇보다도 중국의 태도를 경화시켰다. 중국이 유례없이 북한 비핵화의 필요성을 공개적으로 천명했고, 아울러 한국 및 미국과 협력을 강화할 수 있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중국은 5월 24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최용해 북한군 총정치국장이 만난 자리, 6월 7일 오바마-시진핑의 미중 정상회담에서 이러한 태도를 공개적으로 천명했다. 중국의 의지는 6월 27일로 예정된 한중 정상회담에서도 다시 한 번 확인될 것으로 예상된다.
남북당국회담 장소이자 북측 대표단 숙소로 지정됐던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그랜드힐튼호텔. 6월 11일은 회담 준비로, 12일은 써보지도 못한 준비물 철거로 분주했다.
만약 중국이 이러한 태도에 입각해 한-미-중 협력을 공고화하는 데 협조하면, 북한은 외교적으로 전면 고립되는 위험에 빠지게 된다. 따라서 북한은 이러한 사태 진전을 방해하기 위해 오바마-시진핑 정상회담이 열리기 하루 전인 6월 6일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대변인 특별 담화문을 통해 당국회담을 제안한 것이다. 이는 2011년 1월 오바마-후진타오 정상회담(1월 19~21일)이 열리고 있을 때 인민무력부장 명의의 전통문을 통해 남북 고위급 군사회담을 제안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둘째, 북한이 도발로 얻은 성과를 기정사실화한 토대 위에서 남북관계를 짜려고 하는 까닭을 살펴보자. 북한은 우선 당국회담 개최 제의를 통해 박근혜 정부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테스트해보려 한 것으로 보인다. 대선 과정에서의 언급을 보면 한국의 새 정부는 북한 비핵화 문제를 남북대화의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 방식으로 남북관계가 경색되는 것을 피하려는 정책 의도를 가진 것으로 해석된다. 또한 한국 정부는 북한의 개성공단 근로자 철수 조치에 대해 단호하게 대응했지만, 이 문제 해결을 위해 당국 간 접촉을 요구하기도 했다. 북한 처지에서 볼 때 이 두 가지 사항과 관련해 한국 정부의 의도를 시험하고 싶은 유혹이 있었을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 북한으로서는 남북관계를 무조건 정상화하자고 공세를 취하는 것은 ‘밑져야 본전인 장사’라고 할 수 있다. 한국 정부가 응하면 더없이 좋을 것이고, 응하지 않아도 이러한 공세를 통해 한국 정부를 수세에 몰리게 하며 한국 내부의 분열과 갈등을 확대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한국 정부가 자가당착에 빠질 소지도 있다. 북한과의 당국 간 관계 재수립 과정에서 천안함 피격, 연평도 공격에 대한 사과, 비핵화 궤도로의 복귀와 같은 조건을 완전히 무시할 수도, 이를 전면에 내세울 수도 없는 어려움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이 앞으로도 이러한 딜레마를 염두에 두고 당국 관계 정상화 공세를 취할 수도 있을 것이다.
北, 실무협상서 ‘현상+α’ 얻어
셋째, 별 부담이 없는 사안을 양보하고 이를 미끼로 추가적 양보를 수용하도록 하는 북한의 전략을 살펴보자. ‘현상+α’를 획득하려는 게 북한의 의도다.
이러한 의도는 북한이 제기한 당국회담 의제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북한은 5가지 의제를 제시했다. ①개성공업지구 정상화 ②금강산 관광 재개 ③흩어진 가족, 친척 상봉을 비롯한 인도주의 ④6·15공동선언 및 7·4공동성명 기념 ⑤민간 내왕과 접촉, 협력사업 추진 문제가 그것이다. 한국 정부는 ①개성공단 정상화 ②금강산 관광 재개 ③이산가족상봉을 비롯한 인도주의 문제로 의제를 줄여 제시했다.
이 과정에서 북한이 얻은 것은 뭘까. 천안함 피격, 연평도 포격, 비핵화 문제가 당국회담에서 의제로 등장하지 않은 것은 ‘현상+α’를 얻은 것이다. 여기에 북한이 ④, ⑤로 제기한 문제가 의제로 다뤄졌다면 ‘현상+3α’였을 것이다. 특히 ⑤민간 내왕과 접촉, 협력사업 추진 문제는 천안함 피격과 관련해 한국이 취한 보복인 5·24 조치를 사실상 무효화하고자 하는 의제다.
그런데 북한으로서는 예기치 않은 복병이 등장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 정부가 북한 대표의 격을 문제 삼으면서 남북의 수석대표는 “남북 문제를 책임지고 협의, 해결할 수 있는 당국자여야 한다”고 요구한 것이다. 이는 현실적으로 북측에 김양건 북한 노동당 대남담당 비서 겸 통일전선부장을 수석대표로 내보내라고 요구한 것이다. 이는 북한 처지에서 볼 때 ‘현상-α’였을 것이다. 이는 남북 장관급회담에 장관급이 안 되는 북측 대표를 통일부 장관의 맞상대로 내보내던 관례를 바꾸는 것이다. 북한은 ‘현상-α’를 수용하지 않기 위해 회담을 무산시켰다. 그러나 설령, 남북한이 수석대표의 격에 합의했다고 해도 평양은 회담을 무산시켰을 소지가 작지 않다. 북한이 비핵화에 대해 분명한 태도를 취하지 않는 한, 남북 당국 간 관계가 일정 수준 복원되더라도 북한으로서는 별로 얻을 것이 없다. 따라서 북한은 당국 간 관계 복원에 대해 ‘밑져야 본전’이라고 여기거나 회담 결렬 후 북한의 표현을 빌리면 “털끝만한 미련도 가지지 않(는다)”을 수 있다.
줄다리기 攻防 이어질 듯
2009년, 2011년 북한이 주도한 전술적 유화 정책은 성공하지 못했다. 북한의 유화정책 이후에는 3단계로 공격과 방어의 지루한 줄다리기가 시작된다. 2009년의 경우 4월과 5월의 미사일 발사 및 핵 실험 이후 북한은 8월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을 평양으로 초청했고,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을 불러들여 금강산 관광 재개를 시도했다. 또한 김대중 대통령 장례식 때 조문단을 파견했고, 김양건-임태희 비밀접촉을 통해 정상회담 개최도 시도했다. 북한은 이 과정에서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2011년의 경우 1월 미중 정상회담 진행 중 북한은 남북군사고위급 회담을 제안했는데, 결국 결렬됐다. 이후 남북한 사이에는 좀 더 격한 공방이 이어졌다. 주요 기관에 대한 해킹 시도, 남북 당국 간 비공식 회담 내용 폭로, 한국 대통령에 대한 매우 격한 비난과 비하, 주요 기관 파괴 협박 등이 있었다.
남북 간에 이러한 지루한 공방이 지속되는 것은 양측 모두 상대방의 정책에 불만을 가지고 있지만, 상대방의 행위를 변화시키는 데 충분한 압박을 행사할 능력도, 또한 인센티브를 제공할 의도도 없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양측은 자신에게 유리한 기회가 도래하기를 기다리면서 상대방의 입지를 약화시킬 수 있는 다양한 저강도 공격을 끊임없이 하고자 했다. 반면 상대방의 저강도 공격에는 응전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상대방의 태도도, 자신의 태도도 변하는 것은 없었다.
과거와 마찬가지로 2013년에도 당국회담이 결렬된 이후 상당 기간 이와 같은 지루한 공방이 이어질 소지가 커 보인다. 상대방의 입지를 약화시키기 위해 해코지하는 일이 벌어질 공산 또한 크다. 북한이 다시 한 번 위험스러운 과격 도발을 통해 난관을 타개해보겠다고 나설 수도 있다. 과거와 다른 점이 있다면, 중국이 북한에 대해 현저히 비판적이며 한-미-중 간 협조가 과거보다 강화됐다는 것이다. 이러한 국제적 압력과 포위 구도를 충분히 활용해 게임의 틀을 바꾼다면, 북한 문제가 과거보다는 좀 더 생산적으로 관리될 가능성도 존재한다. 박근혜 정부는 이러한 조건과 기회를 잘 활용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