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국민은 지난 3월 이후 ‘살인진드기’가 옮긴다는 또 하나의 정체 모를 괴질 공포에 시달려왔다. 지난 1월 일본에서 살인진드기에 물린 환자가 사망했다는 첫 보도 이후 3월 들어 5명이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우리나라에도 살인진드기가 있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확산됐다. 일부 언론도 ‘살인진드기 피해, 국내도 안심 못한다’며 공포감을 야기했다.
5월 2일 질병관리본부(이하 질본)가 괴질 바이러스를 보유한 살인진드기가 우리나라에도 전국적으로 분포하고 있다고 발표하자 우려는 기정사실화했고 국민의 두려움은 더욱 커졌다. 지난해 8월 원인불명의 열성질환으로 사망한 60대 여성 환자의 혈액을 다시 분석해보니 살인진드기에 물려 사망한 것으로 밝혀졌다는 조사 결과가 나오자(5월 21일) 또 한 번 난리가 났다. 그 후 일주일 사이에 사망자가 4명으로 늘자 사회 전체가 괴질 공포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했다. 국민을 공포에 빠지게 한 정 중심에는 언론과 정부의 무지, 불성실, 무책임이 자리 잡고 있다.
살인진드기로 잘못 알려진 작은소참진드기. 감염병을 일으키는 진짜 ‘살인자’는 숙주 동물이다.
괴질 공포는 5월 말 들어 질본이 언론에 ‘살인진드기’란 말 대신 ‘야생진드기’로 써달라고 부탁하고, 치사율이 당초 발표보다 훨씬 낮다는 게 확인되면서 잦아들기 시작했다. 바로 이 부분에 지난 몇달 동안 우리 국민을 괴질 공포로 몰아넣은 첫 번째 무지가 숨어 있다. 언론이 호들갑을 떤 ‘살인진드기’는 실상을 알고 보면 전혀 ‘살인자’가 아니다. 사람을 죽이는 살인자는 진드기 자체가 아니라 진드기의 혈액 속에 든 중증 열성 혈소판감소 증후군(SFTS) 바이러스다. 그리고 SFTS 바이러스는 야생동물이나 가축 등 숙주의 몸속에서 옮겨온 것일 뿐이다. 엄밀하게 말하면 진짜 살인자는 바이러스를 품고 있었던 숙주인 셈이다. 유행성출혈열을 쥐들이 옮긴 것과 마찬가지다.
언론은 살인진드기로 알려진 ‘작은소참진드기’가 국내에도 있는 것 아니냐, 전국적으로 분포하고 있는데 큰일이라며 연일 보도 경쟁을 벌였다. 감염병에 관심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은 코웃음을 칠 일이었다. 작은소참진드기는 1897년 선교사들에 의해 한반도 전체에 서식하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고 1968년에 이르러서는 정식으로 학계에 보고된, 지금도 전국의 산과 숲에 널리 분포해 있는 아주 흔한 진드기의 일종이다. 평균 2mm 크기의 흡혈 진드기로서 숙주는 사람, 소, 말, 개, 토끼, 조류, 야생동물이다.
동식물도감이나 백과사전을 잠깐만 펼쳐봐도, 인터넷 포털 사이트를 잠시만 뒤져봐도 알 수 있는 내용이지만, 언론은 앞뒤 재지 않고 이 진드기가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진 괴물인 것처럼 보도했다. 더욱이 ‘살인진드기’라는 말을 쓴 건 우리 언론이 처음이 아니었다. 연원을 추적해보니 일본 언론이 쓴 용어를 아무 생각 없이 그대로 베낀 것이었다.
언론의 또 다른 무지는 정부의 섣부르고 무책임한 발표에서 비롯됐다. 질본은 올해 1월 일본에서 SFTS 감염으로 인한 사망자가 발생하고 국내 감염의 우려가 제기되자 2월 14일 ‘중증 열성 혈소판 감소 증후군 개요’라는 자료를 발표하면서 SFTS에 대해 ‘2009년 중국에서 처음 발견됐고 중국 산둥반도를 포함한 중부 및 동북부 지역에서 170여 건이 발병했다. 치료제는 없고 증상별로 대처하는 대증요법밖에 치료법이 없으며, 치명률이 12~30%에 이른다’라고 밝혔다. 언론은 이를 그대로 받아써 보도했다.
작은소참진드기는 전국의 산과 들에 존재한다. 올 여름엔 피서를 가지 말아야 할까?
질본의 치사율 뻥튀기?
그렇다면 당초 질본이 치사율을 최고 30%라고 발표한 근거는 무엇일까. 답은 쉬운 곳에 있다. 중국에서 SFTS가 처음 발생한 직후의 통계치만 보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통상 신종 바이러스는 감염됐다 하더라도 실제 감염자 숫자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힘들다. 감염자 중에는 증상이 발현돼 병의원을 찾은 사람이 있고, 그러다 죽은 사람도 있고, 증상이 없는 사람도 있으며, 증상을 보이더라도 자신의 면역으로 이겨낸 사람(항체 형성) 등이 뒤섞여 있다. 병의원을 찾았다 해도 환자가 SFTS라는 사실을 알기는 힘들다.
하지만 SFTS에 대한 정보가 광범위하게 알려진 후에는 상황이 달라진다. 치사율을 계산할 때 분자에 해당하는 사망자의 숫자는 적게 늘어나는 데 분모에 해당하는 감염자 숫자는 시간이 갈수록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1~2년이 지나면 치사율은 처음보다 훨씬 떨어질 수밖에 없다. 질본은 올 3월 중국 의학계가 세계임상감염학술지에 ‘2011~2012년 2년 동안 중국에서 SFTS의 감염자가 총 2047명, 그중 사망자가 129명으로 실제 SFTS의 치사율이 6%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발표했는데도 5월 24일에야 이를 발표했다. 몰랐다면 무능한 것이고 알고도 발표를 늦췄다면 직무유기다.
더욱이 질본은 5월 2일 SFTS 바이러스를 보유한 작은소참진드기의 전국적 분포 사실을 발표하면서도 정작 전체 작은소참진드기 중 SFTS를 보유한 개체는 0.5%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발표하지 않았다. 만약 알고도 발표하지 않았다면 정부가 앞장서 국민의 공포감을 조성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신종 바이러스에 대한 정부의 대처도 너무 안이했고, 국민을 대상으로 “되도록 산과 들판에는 가지 말라” 식의 예방수칙을 발표한 것도 문제였다. SFTS는 이미 2009년 중국 19개 지역에서 발생해 3년여동안 중국 의학자, 생물학자들이 이에 대한 논문을 쏟아냈다. 중국에서 발생하면 한국을 거쳐 일본으로 건너가는 것은 상식. 국내 첫 번째 희생자가 일본보다 4개월 빠른 지난해 8월에 발생한 사실도 이를 입증한다.
질본의 감염병 대처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했다면 3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중국의 사례를 통해 SFTS 바이러스의 치사율뿐 아니라 어떤 사람에게 더 치명적인지(고위험군), 어떤 직군의 사람들이 많이 감염됐는지, 무증상 감염자는 어떤 부류인지 임상 스펙트럼을 파악했어야 했다. 그 오랜 시간 동안 “우리는 괜찮겠지”하고 기다렸다면 정말 난센스다.
산과 들 출입금지?
이런 사실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었다면 ‘산과 들로 나갈 때는 몸 전체를 가리고 진드기 기피제를 사용하라’는 식의 예방수칙은 나올 수가 없다. 이 더운 여름에 산과 들로 피서도 가지 말란 얘긴가. 아웃도어 업체 주가가 폭락하고 기피제 회사들이 활짝 웃는 촌극이 벌어질 뻔했다. 적어도 ‘어느 지역의 어떤 숲, 어떤 산, 몇 살 이상의 사람이나 어떤 질환을 가진 사람들은 가지 말고 그 외의 사람들은 가서 잘 놀되 증상이 있으면 신고하라’ 정도의 수칙은 내놓아야 한다. 그래야 국민이 불안하지 않다.
가장 큰 문제는 SFTS 바이러스의 출발점인 숙주 동물의 정체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파악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과 일본, 우리나라 모두 사망자의 대부분은 목축업이나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었다. 이런 점에서 정부가 축산업에 미칠 파장을 생각해 비밀스럽게 조사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숙주 동물을 알아야 SFTS에 대한 제대로 된 방역이 가능하다.
최근 최문기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이 SFTS에 대한 국민 공포가 커지자 “백신을 만들면 되지 않느냐”고 말했다가 의학계와 바이러스 전문가들에게 비판을 받았다고 한다. 한 감염 전문가의 따끔한 지적이다.
“신종 바이러스에 대한 역학조사, 임상 스펙트럼, 라이프스타일, 그 어떤 것도 조사돼 있지 않은데 무슨 백신 타령이냐. 장관은 컴퓨터와 사람이 같은 줄 아는가보다. 지금 우리는 이 바이러스가 어떤 동물로부터 와서 어떻게 인간에 옮겨지는지를 파악하기에도 바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