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책네트워크 내일’ 사무실 개소식(6월 9일). 왼쪽부터 최상용 후원회장, 안철수 의원, 최장집 이사장, 장하성 소장.
이에 앞서 안 의원은 진보정의당 심상정 의원과 회동을 갖고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구축한 거대 양당체제의 폐해를 지적하며 상호 협력 방안을 논의해 눈길을 끌었다. 이 자리에서는 두 세력의 정책 공조까지 거론됐다는 후문이다. 한 측근은 “안 의원이 다양한 인물과 접촉하면서 정치의 생리와 속성을 익히고 있다”고 귀띔했다.
국가미래연구원 벤치마킹?
안 의원의 폭넓은 활동 가운데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싱크탱크인 ‘정책네트워크 내일’을 출범시킨 일이다. ‘내일’은 박근혜 대통령의 싱크탱크였던 ‘국가미래연구원’을 벤치마킹했다는 분석이 많다.
역대 대통령 모두 대선 과정에 여러 사조직을 만들었다. 하지만 정책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싱크탱크라기보다는 당장 득표에 도움이 되는 외곽조직을 확장한 성격이 강했다. 그에 비해 국가미래연구원은 순수한 의미에서 사실상의 첫 정책개발 전담조직이었고, 안 의원이 그것을 모델로 ‘내일’을 출범시켜 대권 플랜을 짜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내일’은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가 이사장, 장하성 고려대 교수가 소장을 맡았다. 이사진은 안 의원과 최 이사장, 장 소장을 비롯해 지난 대선 당시 안 의원의 후원회장으로 활동했던 소설가 조정래 씨, 대선 포럼에서 육아정책 분야를 담당했던 이옥 덕성여대 아동복지학과 명예교수 등 5명으로 구성됐다. 백웅기 상명대 금융경제학과 교수는 감사로 참여했다.
발기인은 모두 52명으로 지난해 대선 캠프에 참여했던 기획위원 18명과 전문가 정책위원 34명으로 구성됐다. 실질적으로 모임을 이끌어갈 기획위원단은 지난해 안철수 대선 캠프에서 핵심 역할을 했던 참모들로 구성됐다. 이들이 ‘내일’에서 안철수 대권 플랜 짜기를 주도할 것으로 보인다. 대선 캠프 때의 조광희 비서실장, 정기남 비서실 부실장, 금태섭 상황실장, 이태규 미래기획실장, 박인복 국정자문지원실장, 이상갑 국정자문지원 부실장, 김형민 기획실장, 김경록 기획팀장, 박왕규 대외협력실 부실장, 하승창 대외협력실장 등이 그들이다.
안 의원은 “‘내일’은 열린 네트워크를 지향한다. 중심 과제는 민생 문제”라고 밝혔다. 좋은 정책을 위한 수평적 네트워크를 지향해 교수와 전문가뿐 아니라 일반 시민에게도 네트워크를 개방하겠다고 했다. 또 민심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정치 시스템, 일자리를 만들지 못하는 경제 시스템, 사회 격차를 해소하지 못하는 사회 시스템 등을 극복해보겠다고 다짐했다. 과연 ‘내일’의 내일은 어떤 모습일까. 국가미래연구원처럼 ‘안철수 대통령 만들기’의 산실이 될 수 있을까.
대통령의 사조직들
대권을 꿈꾸는 대권주자에게 5년은 길다면 길고 짧다면 무척 짧은 시간이다. 대권주자들은 짧은 기간에 역량을 극대화하기 위해 사조직을 이용하곤 했다. 공조직은 운영하는 데 비용도 많이 들뿐더러 구성원들의 충성심도 약하다. 무엇보다 급박한 상황변화에 따른 임기응변에 취약점을 갖고 있다.
대통령 직선제가 부활된 13대 대선부터 집권에 성공한 대통령들은 하나같이 거대한 사조직을 갖고 있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최측근인 박철언 안기부장 특보가 이끌던 ‘월계수회’의 힘을 빌렸다. 월계수회는 산하에 ‘북방정책연구소’라는 싱크탱크를 뒀고, 노태우 대통령 집권기간 내내 노 대통령의 싱크탱크 기능을 했다. 또한 내각제 개헌을 통해 박철언 시대를 열기 위한 이념적 틀을 제공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차남 현철 씨가 이끄는 ‘나라사랑실천운동본부’(나사본)의 조직과 ‘중앙여론조사연구소’(일명 동숭동팀)의 헌신적 조력에 힘입어 대통령 자리에 올랐다. 1992년 대선 기간 중 김영삼 후보의 정책방향 등을 결정한 것은 중앙당이 아니라 동숭동팀에 참여한 자문교수들이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장남 김홍일 의원이 좌장으로 있던 ‘새정치청년연합회’(연청)와 싱크탱크 ‘아태재단’의 보좌를 받았다. 오랜 야당생활로 정책 브레인 부족에 허덕이던 김대중 캠프는 임동원 사무총장(나중에 국정원장 역임)이 안살림을 맡았던 아태재단 젊은 브레인들의 새로운 정치적 상상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