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7월호

“누가 원자력人에게 돌을 던질 수 있나”

原電 부품 시험성적서 위조사건 전말

  • 이정훈│편집위원 hoon@donga.com

    입력2013-06-20 14: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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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가 원자력人에게 돌을 던질 수 있나”
    날씨는 더워지는데 ‘에어컨 돌릴 전기가 부족하다’고 하니 짜증을 내는 국민이 많다. 지난 5월 말 현재 원자력발전소 23기 중 10기가 이러저러한 이유로 멈춰 선 탓이다. 특히 지탄을 받은 것은 원전 부품 시험성적서 위조 사건이다. 이 때문에 ‘원전 마피아’에 분노하는 이가 늘고 있다.

    지금 원전계(界)는 온갖 비리가 얽혀 있어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종잡을 수 없는 지경이다. 지난해부터 따지면 정부는 다섯 번째 ‘원전 종합대책’을 내놨는데, 이는 앞의 대책들이 실패했다는 뜻이다. 너무 급해서 바늘허리에 실을 묶어 쓰는 것 같은 미봉책을 거듭 내놓은 때문이다.

    물이 다 빠져나가는 상황

    먼저 원전 부품 시험성적서 위조 사건부터 자세히 살펴보자. 이 사건은 JS전선이 만든 제어 케이블로 인해 일어났다. 제어 케이블은 원자로가 가장 위험한 순간에 직면했을 때에도 제어실과 감지장비를 제대로 연결하고 있어야 하는 전선이다. 가동 중인 원전이 직면하는 가장 위험한 순간을 ‘LOCA’(Loss Of Coolant Accident·‘로카’로 발음)라고 한다. LOCA는 글자 그대로 원자로 안에 있어야 할 냉각재(Coolant)인 물이 모두 없어진 상황을 뜻한다.

    원자로의 원리는 간단하다. 전문가들은 원자로를 종종 커피포트에 비유한다. 커피포트에 물을 펄펄 끓이는데, 그때 포트의 주둥이로 증기가 뿜어 나온다. 이런 증기로 발전기와 연결된 터빈을 돌려 전기를 생산하는 것이 원자력발전이다. 그런데 물이 모두 증기로 변해 말라버리면, 포트는 과열돼서 녹아버릴 수밖에 없다. 포트에는 물이 없으면 자동으로 전원을 차단하는 장치를 설치하지만, 원자로에서는 그렇게 할 수가 없다. 전기가 아니라 핵연료가 열을 내기 때문이다.



    핵분열을 하는 핵연료는 매우 뜨겁다. 원자로에서 물이 빠져나가는 LOCA 상황을 맞으면 원자로에서는 제어봉이라는 장치가 자동으로 들어와 핵연료의 핵분열을 중지시킨다. 핵분열을 중지해도 워낙 고온이었기에 핵연료에서는 매우 높은 열이 나온다. 핵분열을 하지 않는데도 나오는 이런 고열을 ‘잔열(殘熱)’이라고 한다.

    잔열은 수십 년이 지나도 온도가 떨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원전에선 핵분열을 끝낸 사용후 핵연료를 수조에 넣어놓는다. 물은 최고의 방사선 차단제다. 위험한 방사성 물질도 수심 5m 이하의 물속에 있으면 물 밖으로 방사선을 내보내지 못한다. 물은 잔열도 식힐 수 있다. 그러나 잔열로 인해 수조 안의 물도 증발하므로, 새로운 물을 끊임없이 공급해 사용후 핵연료를 냉각시킨다.

    LOCA 때의 사고는 대개 잔열을 처리하지 못해 일어난다. 이때는 핵분열을 중단시킨 직후라 잔열이 매우 뜨겁다. 그런데 이를 식힐 냉각재(물)가 없으니 잔열을 이기지 못해 핵연료가 녹아내린다. 핵연료는 긴 금속봉 안에 들어 있는데, 잔열로 녹은 핵연료는 금속봉도 녹여버리고 바짝 마른 원자로 바닥으로 내려온다. 원자로는 20cm 두께의 강철로 만들었지만, 녹은 핵연료에서 나오는 강력한 잔열로 인해 조금씩 녹기 시작한다.

    이런 상황에도 원자로에 물이 들어오지 않으면 마침내 원자로 바닥을 녹이고 그 밑으로 떨어진다. 원자로는 6mm 정도 두께의 철 구조물인 격납용기 안에 놓여 있고, 격납용기는 60~120cm 두께의 강화 콘크리트로 만든 격납건물에 둘러싸여 있다. 외부에서 보이는 원자로 건물이 바로 격납건물이다. 20cm 두께의 강철 원자로 바닥을 녹인 핵연료는 6mm 두께의 격납용기 바닥은 간단히 뚫어버린다. 그러고는 강화시멘트로 만든 두꺼운 격납건물을 녹이기 시작한다.

    이때쯤 격납용기 안에서 강력한 수소폭발이 시작된다. 녹아버린 금속봉 안에 있는 물질이, 격납용기 안에 가득 찬 수증기를 분해시켜 수소를 발생시키기 때문이다. 격납용기 안의 수소 농도가 10%쯤에 이르면, 수소는 격납용기 안의 산소와 갑자기 결합해 폭발(수소폭발)을 일으킨다. 폭발로 인해 격납용기와 격납건물의 지붕이 깨지거나 틈이 생기면, 안에 있던 고온·고압 가스가 대기 중으로 빠져나간다. 녹은 핵연료 물질도 이때 함께 나가면서 방사능이 유출된다.

    2011년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사건이 이런 경우다. 그때 전문가들은 후쿠시마 원전의 격납용기가 수소폭발을 못 견디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격납용기가 깨진 후 이들은 후쿠시마 원전의 격납건물 두께가 16cm였다는 것을 알고 경악했다. 세계 최고의 원전 국가의 격납건물 두께가 16cm에 불과하다니…. 한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서방 국가에서는 수소폭발을 견딜 수 있도록 60~120cm 두께로 격납건물을 짓는다. 후쿠시마 원전 격납건물은 얇아도 너무 얇았다.

    최악의 사고에 대비한 케이블

    1986년 구소련의 체르노빌 원전 사고는 더 심했다. 구소련은 원전을 싸게 만들 생각으로 아예 격납용기와 격납건물을 짓지 않고 원자로를 일반 공장에서 보는 것과 같은 건물로 씌워놓았다. 이 때문에 수소폭발이 일어나자 건물과 원자로는 흔적도 없이 날아가고 심각한 방사성 물질 유출 사고가 발생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1979년 미국의 스리마일 섬 사고 때도 수소폭발이 일어났지만 1m 두께의 격납건물 덕분에 방사성 물질의 외부 유출은 없었다.

    이것이 원전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이 때문에 원전 설계자는 LOCA 상태에서도 제어실에서 원자로와 격납용기 내부 상황을 볼 수 있도록 제작해야 한다. LOCA 상태가 되면 격납용기 내부의 온도와 압력은 매우 높아진다. 녹은 핵연료에서는 상당한 방사선이 나온다. 보통의 케이블로 감지장비와 제어실을 연결했다면, 이런 상황에서 그 케이블은 금방 녹아버린다. 따라서 원자로와 격납용기로 들어가는 케이블은 그런 상황에서도 견딜 수 있도록 특수하게 만든다.

    “누가 원자력人에게 돌을 던질 수 있나”

    자진 사퇴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혔다는 이유로 정부로부터 면직 처분받은 김균섭 전 한수원 사장. 그는 원전 비리를 척결하러 들어갔다가 비리 때문에 물러나게 됐다.

    이 케이블이 살아 있어야 제어실은 원자로와 격납용기 상황을 파악해 비상 급수(給水) 등 응급조치를 취할 수 있다. JS전선에서 만든 제어 케이블이 바로 이러한 조건에서도 살아 있어야 하는 전선이다. 이런 특수 케이블은 매우 적은 양만 사용되기에 케이블 제작은 수천만 원짜리 사업에 불과하다. 금액이 작으니 대형 업체들은 이 케이블을 좀처럼 만들려고 하지 않는다.

    국내 최대의 케이블 회사는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LS전선인데, LS전선은 이 케이블 제작에 관심이 없었다. 이런 케이블은 그때그때 주문생산으로 만드는 것이라 JS전선 같은 작은 업체들이 생산한다.

    그런데 LS전선이 JS전선 주식을 대량 매집해 JS전선은 LS전선의 자회사가 됐다. 두 회사의 관계는 현대차-기아차 관계와 비슷하다. 같은 그룹이지만 사업은 따로 한다. 이러한 JS전선이 신고리 1·2호기와 3·4호기를 위한 케이블 납품 입찰에 참여해 낙찰을 받았다.

    낙찰을 받았다고 무조건 케이블을 제작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LOCA 상황에서도 끊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한 후 납품해야 한다. ‘시편(試片)’이라는 케이블 시제품을 만들고, 이 시편이 LOCA 상황을 견뎌낸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전기사업법을 중심으로 한 시행령 등은 이러한 검증을 민간 검증업체에서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어느 민간 검증업체에서 검증받을 것인지는 제작업체가 결정한다.

    제작업체는 검증업체에 소정의 비용을 내고 검증을 받는데 이는 대회에 나간 선수가 여러 심판 가운데 마음에 드는 심판을 골라 심판료를 주고 심판을 받는 격이다. 선수(제작업체)가 ‘갑(甲)’이 되고 심판(검증업체)은 ‘을(乙)’이 되는 양상이다. 먹고살아야 하는 을은 갑을 유치하기 위해 치열한 판촉활동을 벌여야 하고, 유치한 갑에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도 있다.

    JS전선은 새한티이피를 검증업체로 선정했다. 새한티이피는 관련 법령에 따라 JS전선이 만들어온 시편으로 여러 실험을 했다. 하지만 고온-고압-고방사선 상황을 만들 실험실이 없어서 이 실험만은 캐나다의 RCM 연구소에 위탁했다. RCM은 이런 조건의 실험실에 시편을 놓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시편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를 측정해 새한티이피로 측정값을 보내줬다.

    새한티이피는 데이터 값을 정리해 판단한 후 모두 합격시켰다. 그리고 자신의 판단을 제3자도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데이터 값을 토대로 그래프를 그려 검증서에 첨부했는데, 이때 데이터 값보다 높은 점수가 나오도록 그래프를 그렸다. 그래프를 조작한 것이다.

    JS전선은 새한티이피의 검증서를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에 제출했다. 한수원은 원전 운영을 전문으로 하는 발전(發電)회사이지 원전을 설계하고 건설하는 회사가 아니다. 따라서 검증서를 살펴보는 업무는 한수원과 함께 한국전력의 자회사로 있는 한국전력기술이 한다. 한국전력기술은 원전을 설계하는 회사라 이 검증서를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검증서는 온갖 조건에서 실시한 데이터 값을 다 열거하기에 1000여 쪽에 달한다. 따라서 한국전력기술은 대개 데이터 값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그래프를 보고 합격 여부만 재확인한다.이렇게 해서 JS전선은 케이블을 납품할 수 있게 됐다.

    신문고를 울리다

    조직을 잘 운영하려면 인화(人和)가 긴요하다. 인화에 실패하면 잘나가던 기업도 내부 비밀이 새나가면서 한순간에 좌초한다.

    그때쯤 새한티이피에서 내분이 있었다. 새한티이피는 몇몇이 동업해 만든 비상장회사였다. 그런데 알력이 있었는지, 대표로 있던 사람이 나와서 새로운 검증회사를 차렸다. 편의상 이 회사를 Q라고 하자. 새한티이피 직원 몇 명이 Q사로 따라 나왔다. Q사는 일감이 적었던 모양이다. 그러자 한 직원이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의 사이버 신문고를 두들겼다.

    지난해에도 한국 원전계는 정부가 3차례나 종합대책을 발표할 만큼 각종 비리로 몸살을 앓았다. 첫 번째 비리는 송이업자 Y씨를 중심으로 한 로비 사건이다. 원전을 원활하게 운영하려면 지역사회와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그래서 지역특산품을 구입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이유로 송이를 납품하던 Y씨는 원전계의 실력자들과 교분을 쌓았다.

    그는 이런 인맥을 이용해 한수원 직원의 진급과 한수원에 물건을 납품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연결하는 로비를 했다. 그리고 대가를 챙겼는데 그는 인화에 실패했다. 데리고 있던 직원이 그의 횡포에 질려 장부를 들고 울산지검을 찾아간 것이다. 수사가 시작되자 각종 비리가 줄줄이 터져 나왔다. 비리 줄기를 따라가던 울산지검은 소소한 부품을 납품하는 업자가 한수원 직원의 도움을 받아 원전에 방치돼 있는 중고 부품을 받아간 후 페인트를 칠해 새 부품으로 납품한 정황을 밝혀냈다.

    2월 9일에는 정기점검을 위해 정지해 있던 고리 1호기에서 12분간 주전원은 물론 비상발전기조차 가동되지 않는 완전정전(블랙아웃)이 발생했다. 원전은 정기점검을 위해 이미 정지해 있었고 정전 시간이 12분밖에 되지 않아 피해는 없었다. 당시 서울 핵안보정상회의가 코앞으로 닥쳐왔기에 고리원전은 이를 비밀로 했는데 이 사실이 지역의회 의원에게 새나가 밝혀졌다. 그리고 고리 원전의 용역 서비스를 제공하는 소방대원이 히로뽕을 투약한 혐의로 구속되는 사건도 빚어졌다.

    한수원도 피해자?

    그로 인해 한수원은 자체 감사와 원안위 조사, 지경부 감사, 감사원 감사 등 ‘감사 쓰나미’를 맞았다. 그러다 감사원이 영광원전의 문서 가운데 이상한 것을 찾아냈다. 위조된 품질보증서였다.

    한국은 미국 컨버스천 엔지니어링(CE) 원전을 토대로 국산 원전을 만들었고 부품을 국산화했다. 그런데 기술만 국산화했지, 부품의 품질을 보증해 주는 인증 능력은 국산화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부품 업자들은 미국으로 부품을 보내 검사를 받고 품질보증서를 첨부해야 국내 원전에 부품을 납품할 수 있었다.

    한국은 기술력이 좋아 미국으로 보낸 부품이 품질보증서를 받는 데 실패하는 경우는 없었다. 일부 업체들은 품질보증서 받는 것을 ‘하나마나 한’ 일로 여겼다. 그래서 과거에 받은 품질보증서에서 날짜를 바꾸는 등 위조해 새로 납품할 부품에 첨부하는 짓을 거듭했다. 이런 업체가 생겨나자 모든 절차를 제대로 밟아 납품하는 업체들이 감사원에 진정을 냈다. 감사원은 이를 토대로 잘못된 문서를 찾아내 한수원에 살펴보라고 한 것이다.

    가짜 품질보증서임을 확인한 한수원은 해당업체를 즉각 검찰에 고발했다. 이른바 ‘짝퉁 부품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이 사건에서 한수원 직원이 개입한 흔적은 나오지 않았다. 한수원도 피해자임이 밝혀진 것이다.

    정부 차원에서 원전계의 비리를 밝혀야 하는 기관은 원안위다. 한국 원전계를 초토화한 이 사건 후 원안위는 원전계의 내부 비리를 고발하게 하는 사이버 신문고를 만들었다. 박근혜 정부 출범 직전이었다. 신문고를 처음으로 울린 사람이 바로 Q사 직원이었다.

    배신과 배신

    이 직원은 새한티이피에서 신고리 1·2호기용 케이블 그래프를 조작할 때 관여했다는 사실을 신문고에 띄웠다. 조사에 착수한 원안위는, 신고리 1·2호기용 케이블 그래프는 조작할 필요가 없는데도 조작됐다는 것을 알아냈다. 캐나다 RCM사가 수행한 실험에서 나온 측정값이 합격 점수를 넘겼는데도, 새한티이피가 측정값을 높여 그래프를 만든 것이다. 조작은 했지만 합격점은 넘었기에 원안위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그래서 새한티이피가 새로 수주한 신고리 3·4호기 케이블 자료를 조사했더니, 여기에서는 불합격한 측정값이 나왔는데 그래프는 합격한 점수가 나온 것처럼 그려놓은 것이 확인됐다. 그제야 원안위는 새한티이피의 검증을 믿을 수 없다고 보고 새한티이피가 검증한 케이블이 들어간 모든 원전 가동을 멈추게 했다. 대규모 원전 가동 중지로 전력대란이 빚어진 것.

    검찰 원전비리 수사단은, 최초로 신문고를 울린 Q사 직원이 새한티이피 시절 신고리 1·2호기용 케이블의 측정값이 합격점을 넘겼음에도 넘기지 못한 것으로 잘못 알고 그래프를 조작한 사실을 밝혀냈다. 그의 착각이 신고리 3·4호기에서 자행된 진짜 비리를 밝혀내게 했으니 황소 뒷걸음질에 쥐 잡은 격이었다.

    그래프를 조작할 당시 새한티이피 대표가 바로 Q사 대표라는 사실도 밝혀졌다. 이는 Q사 직원이 Q사 대표와 상의하지 않고 신문고에 띄웠다는 얘기가 된다. 봉사가 던진 돌에 새가 맞아 떨어지는 ‘봉사 팔매 새 잡기’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를 계기로 원안위와 검찰은 JS전선 이외에 같은 케이블을 제작, 납품하는 업체와 다른 검증업체들에 대한 조사도 착수했다. 그때 LS전선은 JS전선의 대주주라는 이유로 의심을 받았다. 언론은 모든 검증서를 다시 조사하는 전수(全數)조사를 요구했다. 왜 민간 검증업체에 검증을 맡기느냐며 정부 기관이 검증할 것도 요구했다. 한수원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며 김균섭 한수원 사장의 퇴진을 요구하기도 했다. 한국 원자력계는 일본 후쿠시마 원전처럼 거대한 쓰나미를 맞은 것이다. 이런 상황이 빚어진 것은 국민이 그만큼 원전 사고를 두려워한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사고가 일어날 가능성을 축소해서도 안 되지만 지나치게 확대하는 것도 곤란하다. 원전을 거부하는 쓰나미는 전력대란이라는 고통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LOCA를 피하려면 원전을 안전하게 운영하면 된다. 원자로 안에서 물이 사라지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게 하면 되는 것이다. 원자로 안에서 물이 사라지는 상황은 모든 전기가 끊어졌을 때 일어났다. 후쿠시마 사고는 지진과 쓰나미로 외부 전원이 끊기고 비상발전기가 물에 잠겨 일어났다. 체르노빌은 인위적으로 모든 전원을 끊어놓고 다른 실험을 하다 시간을 넘겨 사고를 당한 경우다.

    LOCA를 피하는 방법

    후쿠시마 원전은 비상발전기를 지하에 설치했다. 쓰나미로 인해 육지로 올라온 바닷물은 잠시 후 다 내려간다. 그러나 지하실에 들어간 바닷물은 그대로 있다. 후쿠시마 원전은 거대한 지하시설에 비상발전기를 설치했기에, 쓰나미가 물러간 다음에도 비상발전기가 계속 물에 잠겨 있어 돌리지 못했다. 다행히 한국 원전은 모두 1층에 비상발전기를 놓도록 설계했다. 후쿠시마 사고 후 한국은 비상발전기를 실은 대형 트레일러를 마련했다. 대형 쓰나미가 오면 트레일러는 언덕으로 피한다. 그리고 쓰나미가 물러난 후 내려와 전원을 공급한다.

    한국이 짓는 원전의 격납용기 상부에는 큰 수조가 있다. LOCA 상황이 되면 수조에서 물이 쏟아져 원자로 등을 덮쳐버린다. 비상 냉각을 시키는 것이다.

    “누가 원자력人에게 돌을 던질 수 있나”

    검증문서를 위조한 새한티이피 사옥.

    수소폭발을 막을 방법도 개발됐다. 물(H₂O)을 전기분해하면 수소(2H)와 산소(O2)로 나뉜다. 반대로 수소와 산소를 결합시키면 물을 만들 수도 있다. LOCA 상황의 격납용기 안에서는 수소가 만들어지는데, 이들을 산소와 강제 결합시키면 그토록 필요로 하는 물이 만들어져 수소폭발을 막을 수 있다. 후쿠시마 사고 후 한국은 모든 격납용기 안에 수소를 강제로 산소와 결합시켜 물로 만드는 수소 제거기를 설치했다.

    한국이 보유한 원자로는 대부분이 경수로다. 미국의 웨스팅하우스는 세계 최대의 경수로 메이커인데, 웨스팅하우스는 모든 전원이 끊어져도 원자로 안에서 물이 사라지지 않는 시스템을 개발해 특허를 받았다. 이런 식으로 LOCA를 줄이거나 LOCA 피해를 줄이는 방법이 개발되고 있으니 LOCA 상황에서 제대로 작동할 케이블 개발에 올인할 필요성은 줄어들고 있다.

    한국이 위조 검증서에 놀라 케이블 검사에만 집중하는 것은 문제다. 원자력 전공 학자들은 물론 원안위 관계자들도 국가 검사기관인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의 인력과 예산을 확대해 케이블 등 중요 부품을 직접 검사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라고 지적한다. 다만 검증업체들이 제대로 하고 있는지 부정기적으로 샘플 조사를 해, 제대로 하고 있지 않으면 일벌백계할 필요는 있다. 이렇게 하고 국력은 보다 안전하고 강력한 원자로 개발에 쏟는 것이 국익에 부합한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세밀하게 살펴볼 것은 JS전선과 새한티이피, 새한티이피와 한국전력기술 등 피검증-검증기관 사이의 유착 여부다. 6월 8일 검찰 원전비리 수사단은 아내가 비상장된 새한티이피 주식 2% 가량을 갖고 있는 한국전력기술의 이모 부장이 새한티이피에서 금품을 받아왔다며 구속했다. 감사기관은 이러한 유착이 일어나지 않도록 철저하게 감시해야 한다.

    지난해부터 잇달아 불거진 원전 비리 때문에 ‘원자력 마피아’라는 말이 회자됐다. 원자력업계 종사자들끼리 짜고 치면서 다 해먹고 있다는 빈정거림이다. 마피아는 단결력을 기본으로 한다. ‘우리가 남이가’ 하는 식으로 하나로 뭉쳐야 마피아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러나 위조 검증서 사건에서 드러났듯이 원자력계 사람들은 이익을 좇아 배신하고 있다. 소수의 사람이 금품으로 연결됐다가 이익이 엇갈리자 등을 돌리는 양상이다.

    시장 확대가 정답

    원자력 마피아는 일반인이 원자력에 접근하기 어려워 생긴 말인 것 같다. 그렇다면 원자력 마피아는 원자력 전문가 집단과 비슷한 의미다. 이러한 전문가를 마피아로 보고 전부 백안시한다면 한국 원자력계의 미래는 참담해진다. 지난 6월 7일 정부는 김균섭 한수원 사장을 면직처분했다. 김 사장이 정부와 상의하지 않고 국회에서 책임을 지고 사퇴하겠다고 한 것이 괘씸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김 사장은 비리와 무관하다. 위조 검증서 사건에 관한 한 한수원은 피해자일 수도 있다. 김 사장은 지난해부터 터져 나온 원전 비리를 척결하기 위해 정부 추천으로 한수원에 왔다. 정부는 한수원 사장을 하겠다는 사람이 없어서 부탁하다시피 하며 그를 모셨다. 그는 한수원의 숨은 비리를 찾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여론에 밀려 이러한 식의 책임 추궁을 한다면 원전계를 발전시키기 어렵다.

    한국은 1998년 준공한 한울(구 울진) 3호기부터 원전 국산화를 이룬 후 총 7기의 한국형 원전을 가동하고 5기의 한국형원전을 짓고 있다. 가동 중이거나 건설 중인 한국형원전은 총12기인 것이다. 지금은 23기의 원전을 가동하는 세계 5위의 원전 대국이다. 그러나 3위 이상의 국가와는 차이가 크다. 1위 미국은 4배가 넘는 103기, 2위와 3위인 프랑스와 일본은 2배가 넘는 58기와 51기, 4위 러시아도 33기를 운영하고 있다. 미국과 프랑스 등은 다른 나라에서도 많은 원전을 지었기에 지속적으로 부품을 수출한다. 한국이 만든 한국형 원전은 한국과 UAE에 지으려고 하는 4기뿐이라 부품 시장이 작다.

    한국은 국산 제일주의를 고수해 국내산 부품을 도입한다. 원전 부품은 한 번 삽입하면 3~6년 사용한다. 시장도 작고 교체 횟수도 적으니 국내 부품업계는 크지 못한다. 그런데도 상당한 비용이 들어가는 엄격한 검증서를 요구하니 제작업체들아 검증서 위조 유혹에 빠져드는 것이다.

    한국형 원전이 나라 안팎에 많이 건설되면 LS전선 같은 대형 업체들도 케이블 제작에 뛰어든다. 지금 한국은 원전 국산화는 이뤘지만 시장 창출에는 성공하지 못해 모순에 빠져 있는 것이다. 한국 원전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시장 확대다. 국내 시장이 작다면 해외로 적극 진출해 파이를 키워야 부품업체들이 검은 유혹을 멀리하고 적극적으로 생산할 수 있다.

    이 취재를 하면서 정부 핵심 인사를 비롯한 원자력계의 여러 인사와 접촉했다. 그들은 하나같이 실명을 밝히길 거부했다. ‘원자력 하는 것이 죄’라는 게 그들의 인식이었다. 원전계는 한국 발전산업의 중추를 이루는데, 국민과 정부가 이를 인정해주지 않고 너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다고 항변했다. 이들은 “원전에서 사고가 나면 우리가 가장 먼저 희생되는데 왜 안전을 소홀히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원자력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과 두려움이 작은 비리를 거대한 공포로 만들고 있다고도 지적했다. 한 전문가의 얘기다.

    “언론과 국민이 하도 비난하니까 그전까지 제어실과 원자로 건물에 거리낌 없이 들어가던 직원들이 쭈뼛거리기 시작했다. 그들도 자신을 잃은 것이다. 자신을 잃으면 당황해서 더 큰 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 원전 종사자들은 군인처럼 국가를 위한다는 자부심으로 일해왔다. 우리 군에서 두 차례 쿠데타가 있었다고 우리 군을 모두 부도덕한 집단으로 보고 해체하라는 소리가 나왔는가.

    원전 종사자들은 대부분 소시민이다. 이들은 원자력을 이해해주는 사람이 드물어, 자기들끼리 일하고 놀면서 지내왔다. 그걸 보고 원전 마피아라고 하니 답답하다. 원자력이 없는 대한민국은 생각할 수도 없다. 원자력 비리를 줄이면서 원자력을 발전시키는 길은 원자력인(人)들을 격려해 한국을 세계 최고의 원자력 국가로 만드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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