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대 여성 승객이 택시 안에서 기사에게 던진 말이다. “제가 무슨 바지를 산다고 그랬어요? 얼른 요금 내고 집에 들어가시라고요.” 택시기사가 제발 엉뚱한 말 좀 그만하라고 간청했다. 그러자 손님이 다시 느릿느릿 입을 열었다.
“아저씨~, 제가 다 이해~하겠는데요. 지금 상품이 이것밖에 없어서 그래요.”
기사는 언성을 높이며 했던 말을 또 했다. “제발 택시비 좀 주시고 들어가시라고요!”
이어지는 이 손님의 대답은 ‘4차원’으로 향했다. “그러~니깐 택시비가 바지 아니에요? 지금 말씀하시는 게~?”
지난 3월 어느 날 새벽 4시, 택시기사 박광범 씨는 경기도 의정부시 녹양동 아파트 앞에서 만취한 이 여성 승객과 1시간 동안이나 동문서답을 했다. 의류매장 직원인 듯한 이 여성은 택시에 탄 사실을 까맣게 잊은 채 직장에서 손님을 대하는 ‘상황극’에 열중하고 있었다. 기사 경력 12년인 박 씨도 도저히 감당이 안 되더라고 했다.
심야 취객은 택시기사들의 경계대상 1호다. 그중에서도 여성 취객은 ‘대략난감’의 골칫덩이다. 필자는 5월 2일부터 2주간 서울 성북구 소재 D여객 등 택시회사 4곳에 들러 기사 150명(개인택시 기사 일부 포함)을 인터뷰해 여성 취객 경험담을 들었다. 그 결과 여성 취객으로 인한 소동이 늘어 일상적인 일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흔들어 깨울 수도 없고…”
박광범 씨로부터 다른 경험담도 들었다. 그에 따르면 술 취한 여성 손님이 택시에 타서 잠이 들면 일단 안심이다. 적어도 운행 중에는 별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목적지에 도착하면서 난처한 상황이 발생한다. 한 여성 승객은 서울지하철 종각역에서 경기도 의정부 녹양동까지 가면서 1시간 20분 동안 잠을 잤다고 한다. 도착해서도 잠든 모습 그대로였다. 아무리 소리쳐도 깨어날 기미가 없었다.
“흔들어 깨울 수도 없어요. 여성의 몸에, 그것도 잠든 상태에서 손을 댔다간 무슨 누명을 뒤집어쓸지 모릅니다.”
박 씨는 결국 경찰을 불렀다. 그런데 현장에 도착한 경찰은 그를 더 황당하게 했다. “경찰은 취객을 깨우는 사람이 아니니 앞으로는 이런 신고 하지 말라”는 훈계를 들어야 했다. “이럴 땐 도대체 누구에게 도움을 청해야 하죠?” 박 씨의 하소연이다.
택시기사가 여성 승객의 몸에 손을 대면 어떻게 될까. 기사 백경흠 씨는 늦은 밤 서울 목동 오거리에서 여고생을 태워 경기도 군포로 향했다. 교복차림의 이 여학생은 조수석에 앉아 술 냄새를 풍겼다. 여학생은 집에 도착하자 “차비가 없으니 나중에 주겠다”며 문을 열고 내리려 했다.
백 씨는 황당하고 다급해 여학생의 왼쪽 무릎을 치며 “그렇게 가면 어떻게 하느냐?”고 말했다. 그러자 여학생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조수석 앞에 붙은 백 씨의 전화번호를 적은 뒤 나중에 연락해서 택시비를 주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학생증과 연락처를 백 씨에게 줬다. 신분까지 확인했기에 백 씨는 학생을 보내줬다. 그러나 이후 연락이 없었다. 백 씨는 학교로 전화해 담임교사와 통화했고 이어 그 여학생과도 통화했다. “왜 요금을 주지 않느냐”는 질문에 여학생은 “아저씨, 저한테 성희롱하셨잖아요”라고 말했다. 내릴 때 엉겁결에 무릎을 쳤던 게 화근이었다. 백 씨는 “요금 못 받은 것보다 모함받은 게 더 억울하다”고 말했다.
기사 경력 7년인 최필균 씨가 겪은 사건은 새벽 3시에 시작됐다.
“여성 승객이 술을 마신 것 같기는 한데 만취 상태는 아니어서 태웠어요. 그게 실수였습니다. 손님이 다짜고짜 ‘아저씨, 공동묘지로 가주세요’라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