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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반짝이는 등대 불빛을 찾는 밤

  • 정여울 | 문학평론가 suburbs@daum.net

멀리서 반짝이는 등대 불빛을 찾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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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댈 곳은 오직 문학뿐

스토너는 셰익스피어의 이 소네트를 통해 무엇을 느꼈을까. 그것은 모든 것이 당연하고 아무것도 새로울 것이 없다고 느끼던 삶이 갑자기 낯설고 끔찍하고 두렵고 그러면서도 궁금해 미칠 것만 같은 완전히 새로운 대상으로 보이기 시작하는, 일종의 경외감이 아니었을까.

그는 제1차, 제2차 세계대전의 광풍을 겪어내면서도 다른 많은 친구와 달리 입대하지 않았고, 학교에 남아 묵묵히 공부하는 길을 선택했다. 그로 인해 ‘비겁한 청년’으로 낙인찍힐 때도 있었지만, 그는 자신이 완전히 동감할 수 없는 전쟁의 광풍에 스스로를 던지기보다는 자신이 온전히 책임질 수 있는 배움의 길을 선택하는 것이 옳다고 믿었다.

가장 사랑하던 친구 매스터스가 제1차 세계대전에서 전사한 후, 스토너는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영문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자신이 처음으로 반한 여인 이디스와 결혼도 했으며, 어여쁜 딸 그레이스도 얻었다. 그리고 미주리 대학의 조교수가 됐다. 그는 10년 전에는 꿈도 꾸지 못했던 삶을 살게 됐지만, 이상하게도 행복하지가 않았다. 그의 일방적인 사랑으로 시작된 결혼생활이 난파 직전이었기 때문이다.

이디스는 부모에게서 도망치기 위한 돌파구로 스토너를 선택했고, 스토너의 온갖 지극정성에도 불구하고 이디스는 스토너에게 마음을 주지 않는다. 스토너는 점점 외로워지고, 마침내 집 안에서 ‘아내 대신 아이를 돌보는 남자’ ‘집을 사기 위해 대출한 돈을 갚는 남자’ ‘허울뿐인 남편’이 되고 만다.



그렇게 학교에서는 ‘강의하는 기계’처럼 살고, 집에서는 아내의 눈에 띄지 않는 가구처럼 조용히 살던 스토너에게, 드디어 진짜 사랑이 찾아온다. 이 사랑은 너무 격렬해서, 평생 음지식물처럼 조용히 살아온 스토너에게 쓰라린 고통과 함께 온몸을 태워버릴 듯한 뜨거운 열정을 불어넣는다.

캐서린은 스토너의 수업을 듣던 학생이자 미래의 문학도였다. 철두철미하고 엄격한 스토너 교수의 눈이 번쩍 뜨이게 할 만큼 훌륭한 논문을 발표한 캐서린은 스토너의 정신세계를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이기도 했다. 두 사람은 처음에는 스승과 제자 사이일 뿐이었지만, 스토너가 캐서린의 논문을 지도하려고 여러 가지 조언을 해주면서 두 사람 사이에는 배움 이상의 그 무엇이 싹튼다.

학교에서는 동료 교수의 지독한 괴롭힘으로 조교수 이상의 자리에는 올라가지 못했고, 집에서는 아내에게 박대당해 더없이 외롭던 스토너는 고립무원 상태였다. 그것은 그의 대쪽 같은 성품 때문이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편을 들어주기를 원하는 출세지향적인 동료 교수의 옳지 못한 선택을 절대로 지지하지 않았고, 그 때문에 영원한 이방인으로 낙인찍히고 만다. 아내에겐어떤 친밀감도 느끼지 못했지만 절대로 가정을 버려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로 인해 그는 점점 더 고독해졌다.

캐서린은 스토너의 고독을 이해했다. 기댈 곳은 오직 문학뿐이던 두 사람은 점점 그들이 함께 수정해가는 논문을 매개로 교감을 키워갔고, 세상 누구에게도 그만큼 이해받은 적이 없던 두 사람은 지독한 사랑에 빠지고 만다.

고독한 인생의 오아시스

그들에게 사랑과 공부는 하나였다. 문학과 인생도 하나였다. 그들은 사랑을 속삭이며 문학에 대해 토론했고, 문학에 대한 이야기꽃을 피우며 인생의 성찰을 나눴다. 하지만 ‘직업’과 ‘가족’이라는 현실이 그들의 발목을 잡았다. 자신의 편을 들어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스토너를 철천지원수처럼 미워하던 동료 교수가 두 사람의 관계를 알고 협박을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만약 두 사람의 관계가 공론화하면 스토너가 교수직을 잃을 뿐 아니라 캐서린 또한 다시는 어느 대학에서도 교편을 잡을 수 없을 것이라는 협박. 스토너는 비로소 ‘현실’이라는 높은 장벽이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를 빼앗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캐서린은 그의 사랑을 처음으로 받아준 최초의 여인이고, 그의 뼈아픈 고독을 이해해준 유일한 사람이며, 그가 공부하고 강의하고 글을 쓰는 그 모든 내용을 완전히 이해하는 유일한 사람이기도 했다. 스토너는 자기 자신을 완전히 포기하는 심정으로 캐서린을 놓아준다. 그런 다음 그에게 남은 것은 또다시, 문학뿐이었다. 그는 그렇게 문학과 함께 평생 고독한 일생을 살아간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스토너가 무척 ‘무력한 사람’인 것처럼 보이지만, 소설 전체를 흐르는 감정은 바로 스토너의 ‘강인함’이다. 스토너는 누구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누구도 배신하지 않기 위해, 누구나 빠짐없이 배려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해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다. 그의 고독한 인생에 유일한 오아시스였던 캐서린과의 사랑은 끝내 이뤄지지 못했지만, 캐서린의 첫 책 첫 페이지를 장식한 ‘암호’는 바로 윌리엄 스토너를 향한 것이었다. 자신이 공부하고, 읽고 쓰고, 생각하고 표현하는 그 모든 것은 스토너를 향한 것임을 고백하는 캐서린의 용기는 스토너의 남은 생을 견디게 했다.

신동아 2015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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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여울 | 문학평론가 suburb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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