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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최고령 은행나무가 경북 청도 은행나무 후손?

  • 전영우 국민대 명예교수

미국 최고령 은행나무가 경북 청도 은행나무 후손?

필라델피아 39번가 기차역에서 우버(승차공유기업) 택시를 호출했다. 호출 후 5분 만에 나타난 우버 기사는 교포였다. 승객이 한국인인 것을 확인한 교포 기사는 묻지도 않았는데 먼저 자신부터 소개했다. 미국에 온 지 5년째이고, 필라델피아 교포 사회에서 행사기획 영상을 제작하며 4개월 전부터 틈틈이 비는 시간에 우버 택시를 운행한단다. 자기소개가 끝난 후,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동포를 만난 반가운 마음에선지 승객에 대한 우버 기사의 호기심은 집요했다. 한국에서 왔는가? 어떤 일을 하는가? 바트램 식물원은 왜 가는가? 그곳에 특별한 무엇이 있는가? 

경북 청도의 은행나무 후손이자 북미대륙에서 가장 오래된 은행나무를 보려고 필라델피아에 들렀다는 응답으로 기사의 궁금증을 우선 풀어주었다. 우버 기사는 시 외곽에 자리 잡은 바트램 식물원이 초행길이었고, 우버 운행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인지 도심을 벗어날 때 우왕좌왕하다 교통법규를 위반했다. 북미대륙 최고령 은행나무(그것도 조선에서 유래한)의 의미를 알 리 없고, 동포를 만난 우버 기사의 반가운 마음도 헤아릴 리 없는 교통경찰은 철저했다.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우버 기사는 우리 일행을 스쿨킬 강가에 자리 잡은 바트램 식물원에 내려주었다. 이 식물원은 식민지 미국 내의 식물을 수집해 유럽에 소개한 원예가 존 바트램(John Bartram·1699~1777)의 정원에서 유래했다. 

식물원 입구의 은행나무 가로수 길을 따라 걷자 규모가 크지 않은 안내소가 보였다. 안내소에는 근무한 지 2년 반이 된다는 메리 스트랜드(Mary Strand)가 홀로 방문객을 맞았다. 북미대륙 최고령의 은행나무에 얽힌 이야기를 듣고, 안내소를 나서자 넓은 공지에 자라는 은행나무가 한눈에 들어왔다. 그루터기에서 나온 다수의 줄기 대신 단 하나의 줄기로 자라는 북미대륙 최고령 은행나무는 당당하고 매끈했다. 먼저 거대한 줄기를 두 팔로 안아보았다. 230여 년의 세월을 증명하듯 줄기는 굵었다. 수고(樹高) 33m, 가슴 높이 직경 1m 이상으로 자란 이 은행나무의 머나먼 행로를 헤아려보았다. 조선의 청도에서 유럽대륙(네덜란드와 벨기에 등)으로 건너간 은행나무의 후손이 열매를 맺어 영국 땅에서 싹을 틔워 자라다가, 묘목의 신분으로 다시 대서양을 건너 북미대륙의 동쪽 구석에 마침내 자리 잡은 긴 여정을 생각할 때, 이 나무를 찾아 지구 반 바퀴를 날아온 수고로움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유아독존의 기이한 수목

바트램 식물원 미국 최고령 은행나무(왼쪽). 경북도 기념물 109호 은행나무. [Bartram’s Garden 제공, 청도군 제공]

바트램 식물원 미국 최고령 은행나무(왼쪽). 경북도 기념물 109호 은행나무. [Bartram’s Garden 제공, 청도군 제공]

은행나무를 모르는 한국인은 없다. 은행나무는 우리 주변에서 가로수나 정원수로 쉽게 볼 수 있고, 식물이나 자연에 관심이 없는 사람조차 노랗게 물든 은행잎을 보면 쉽게 마음을 빼앗길 만큼 아름답다. 그러나 여기까지다. 우리나라에 세계에서 가장 큰 은행나무(용문사 은행나무), 세계에서 가장 굵은 은행나무(반계리 은행나무), 세계에서 옮겨 심은 가장 큰 나무(용계리 은행나무)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은행나무는 2억 년 전에도 공룡과 함께 북반구와 남반구에 펴져 있던 신비의 생명체다. 수천만 년 동안 가까운 친척이라곤 전혀 없이 유아독존의 형태로 존재한 기이한 수목이다. 고사리류와 침엽수의 중간 식물 형태를 아직도 간직하기 때문에 ‘화석식물’이라고도 일컫는다. 은행나무는 마지막 빙하기 동안 지구상의 대부분 지역에서 멸종했고, 오직 중국 땅 중남부의 손바닥만 한 산지에서 겨우겨우 목숨을 연명했다. 천수백 년 전 인간의 도움으로 겨우 멸종 위기에서 벗어나 중국 중남부에서 한반도와 일본열도로 건너가 마침내 유럽대륙과 북미대륙에 재상륙한 나무가 은행나무다. 



북미대륙 최초의 은행나무를 찾아 나선 계기는 중국과 독일 학자들이 2010년 발표한 논문에서 비롯했다. 분류학회지 ‘탁손’에 발표한 ‘중국 밖으로의 은행나무 전파 역사’란 제목의 논문은 중국(92개체), 한국(11개체), 일본(18개체), 유럽(14개체), 미국(10개체)에서 선정한 145개체의 노거수 은행나무를 대상으로 분자유전학적 분석을 통해 은행나무가 세계 전역으로 퍼져나간 경로를 밝힌다. 

이 연구 결과 중 특히 흥미로운 부분은 연구 대상에 포함된 한국의 6번 조사목이다. DNA 유전분석 결과, 이 조사목은 유럽 대륙에 최초로 도입된 네덜란드(1730년)의 은행나무를 비롯해 이탈리아(1750년), 프랑스(1750년), 오스트리아(1770년), 미국(1784년), 독일(1826년)의 은행나무와 유전적 유사성이 매우 크지만, 일본의 18개 조사목과는 유사성이 작다고 나타났다. 

지금껏 세계 식물학계는 유럽대륙에 최초로 소개된 은행나무는 일본에서 들여온 것으로 믿었다. 그와 같은 믿음은 은행나무를 유럽에 최초로 소개한 사람이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직원으로 일본에 2년 동안 파견된 엥겔베르트 캠퍼(Engelbert Kaempfer·1651~1716)였고, 오래전부터 그가 은행 종자를 유럽에 가져왔다고 알려졌기 때문이다. 이즈음도 많은 식물학자는 네덜란드 위트레흐트 대학교 식물원(Utrecht University Botanic Gardens)에서 자라는 은행나무는 캠퍼가 귀국하면서 가져온 은행 종자를 1730년에 심은 것이라고 믿는다. 캠퍼 당시에 은행나무는 한국,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에서만 알려진 나무였다. 

일본 근무를 마친 캠퍼는 1695년 암스테르담으로 귀국해 은행나무와 일본의 식물상 등을 담은 박물지 ‘회국기관(Amoenitatum Exoticarum·廻國奇觀)’을 1712년 출판했다. 은행나무와 관련한 그의 다양한 활동은 유럽의 은행나무가 일본에서 유래됐다는 믿음을 자연스럽게 심어줬다. 

분류학회지 ‘탁손’에 발표된 은행나무 논문은 1730년 이후 유럽 각 지역에 식재된 은행나무의 산지가 일본이라는 학계의 기존 추정에 강력한 의문을 제기한다. 오히려 유럽에 전파된 은행나무의 조상은 일본 은행나무가 아니라 한국의 6번 은행나무라고 구체적으로 지목한다. 

6번 조사목은 경북 청도군 매전면 하평리 1323번지에서 자라며, 1995년 6월 30일 경북도 기념물 109호로 지정된 나무다. 조선 시대에 낙안당 김세중(金世中· 1484∼1553)이 1509년에 심었다고 전해지며, 수령은 약 500년, 수고 27m, 둘레 7.6m에 이르는 거대한 암나무다.


신비한 여정

흥미로운 점은 청도군과 지리적으로 멀지 않은 곳에 자라는 2번 조사목(김천시 대덕면 추량리 경북도기념물 91호)과 4번 조사목(구미시 옥성면 농소리 천연기념물 225호)도 DNA를 분석했지만, 이들 조사목은 6번 조사목과는 유전적 유사성이 없었고, 국내의 나머지 다른 10개체 조사목도 유럽의 조사목들과는 유전적 유사성이 나타나지 않았다. 

1730년대 유럽에, 그리고 1784년 북미대륙에 전파된 은행나무가 청도의 은행나무와 유전적으로 유사성이 크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유럽대륙에서 자라던 은행나무가 영국으로 건너간 시기가 1754년이고, 다시 30년 후 1784년 미국의 필라델피아로 건너간 것은 기록으로 남아 있지만, 아쉽게도 청도의 은행나무가 어떻게 네덜란드를 비롯한 유럽 대륙으로 건너갔는지에 대한 기록은 없다. 18세기 초 중국에 파견된 유럽 선교사들이 귀국길에 가져간 청도 은행나무의 원 조상인 중국 은행나무 종자가 조상일 수도 있다. 

중국에서 한반도, 한반도에서 다시 일본열도, 그리고 유럽대륙과 북미대륙으로 퍼져나간 은행나무의 전파 경로를 따라가 보면 인간의 힘을 빌려 멸종 위기를 극복한 은행나무의 생존 전략을 엿볼 수 있다. 올가을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의 단풍을 만나면 그 신비한 여정도 함께 생각해보자.


미국 최고령 은행나무가 경북 청도 은행나무 후손?

전영우
● 1951년 경남 마산 출생
● 고려대 산림자원학과 졸업
● 미국 아이오와주립대 박사(산림생물학)
● 저서 : ‘비우고 채우는 즐거움 절집 숲’ ‘나의 소나무 답사기’ 外




신동아 2019년 10월호

전영우 국민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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