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1월호

北 돼지열병 종식 못 시키면 南 방역해도 ‘말짱 도루묵’

  • 이강원 동물칼럼니스트·축산경영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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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2019-10-20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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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發 돼지고기 대란(大亂)이 온다

    • 中 방역 실패하면 국제시장서 돈 주고도 못 사

    • 비무장지대 멧돼지 다 없애야

    • 최악은 돼지열병 확산해 韓 양돈산업 붕괴

    9월 23일 아프리카돼지열병 의심 신고가 접수된 경기 김포시 한 돼지농장에서 관계자들이 상황을 조사하고 있다. [뉴시스]

    9월 23일 아프리카돼지열병 의심 신고가 접수된 경기 김포시 한 돼지농장에서 관계자들이 상황을 조사하고 있다. [뉴시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느 나라나 먹을 게 풍족해야 민심이 안정된다. 사람은 식물처럼 광합성을 하면서 스스로 먹을 것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없으니 이는 당연한 이치다. 

    특히 중국에서는 곡식만으로는 민심이 안정되지 않았다. 충분한 돼지고기가 있어야 했다. 그래서 중국의 위정자(爲政者)들은 예전부터 저량안천하(猪糧安天下)라는 말을 마음에 새겨두었다. 돼지고기(猪)가 곡식(糧)보다 먼저 나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돼지고기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中 일부 지역 ‘돼지고기 배급제’ 실시

    중국인들의 돼지고기 사랑은 유별나다. [뉴시스]

    중국인들의 돼지고기 사랑은 유별나다. [뉴시스]

    2017년 중국인 1인당 돼지고기 소비량은 38㎏이다. 한국인보다 13㎏나 많은 돼지고기를 소비한다. 그런데 중국인의 이런 습관에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소비가 예전과 다르기 때문이다. 입맛이 변한 게 아니라 공급에 심각한 문제가 생겼다. 

    2018년 8월 3일 중국 랴오닝(遼寧)성 선양(瀋陽)에서 백신도 없고, 치사율이 100%에 가까운 아프리카돼지열병(African Swine Fever·ASF)이 발병했다. 그로부터 1년 후인 올해 8월 중국 돼지 사육 두수는 전년 동기 대비 1억5000만 두가 감소한 3억8000만 두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이 중국 양돈산업에 미친 피해액은 1조 위안(170조 원)에 달한다. 2020년 한국 정부 예산이 513조 원인 것을 두고 ‘슈퍼 예산’이라고 하는데 ASF로 인해 중국에서 발생한 피해액이 한국 슈퍼 예산의 3분의 1 수준이다. 

    중국은 2018년 5496만t의 돼지고기를 생산해 5624만t을 소비했다. 수요에 미치지 못한 공급량 탓에 128만t을 해외에서 조달했다. 2019년부터 아프리카돼지열병으로 인한 감산 추세가 본격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올해 중국의 돼지고기 부족량은 전년 대비 1620만t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인 육류 소비량 46.8%가 돼지고기

    문제는 중국이 부족한 돼지고기를 조달할 방법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2017년 기준 돼지고기 국제 거래량은 828만t에 불과하다. 이는 중국의 올해 생산 감소량의 절반 수준이다. 세계 각국이 수출하는 돼지고기 수출 물량 모두를 중국이 구입해도 중국인의 돼지고기 갈증을 채울 수 없다. 

    중국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더욱 확산되면 머지않은 미래, 돈이 있어도 국제시장에서 원하는 만큼의 돼지고기를 구입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할 것이다. 한국이 돼지열병을 막아내지 못하고 중국발(發) 돼지고기 세계 대란이 벌어지면 한국인들도 돼지고기 사랑을 접어야 한다. 돼지고기 요리를 파는 자영업자들이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으며 쇠고기, 닭고기 값도 치솟을 것이다. 

    중국은 현재 궁여지책으로 일부 지역에서 돼지고기 배급제를 실시하고 있다. 중국인의 인내심이 어디까지 버틸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저량안천하라는 경구(警句)를 역(逆)으로 해석하면 돼지고기가 부족하면 천하가 시끄러울 수밖에 없다. 

    중국은 자국의 생산능력이 복구될 때까지 해외에서 돼지고기를 모으고 또 모을 것이다. 만약 돼지고기 조달이 원활하지 않으면 닭고기, 쇠고기 같은 다른 단백질도 찾을 것이다. 양돈 생산기반을 복구하는 데는 통상 3년 이상 걸린다. 중국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이 조기 종식된다고 해도 최단 3년 이상 국제 돼지고기 시장은 큰 혼란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인도 돼지고기를 무척 사랑한다. 소비량도 많고, 관련 산업 규모도 크다. 김치찌개, 돈가스, 카레, 짜장면, 제육볶음, 잡채, 탕수육, 족발, 삼겹살 등 인기 높은 음식의 식재료가 돼지고기다. 아이들이 즐겨 찾는 소시지, 햄, 베이컨 등 축산가공품 원료도 돼지고기다. 

    2018년 한국인 1인당 육류 소비량은 53.9㎏이다. 이 중 돼지고기 소비량은 25.2㎏으로 전체 육류 소비량의 46.8%다. 쇠고기와 닭고기를 합친 소비량 26.7kg(49.5%)과 비슷하다. 

    양돈산업 규모는 7조3000억 원으로 한우(4조7000억 원)를 압도한다(2017년 기준). 양돈산업은 2016년을 기점으로 쌀 산업까지 추월해 농업 분야 제1위다. 돼지를 사육하는 양돈업과 이와 연결되는 전후방 산업을 모두 합치면 돼지와 관련된 산업의 규모는 30조 원으로 추정된다. 

    앞서 설명했듯 아프리카돼지열병으로 중국 양돈산업에 막대한 타격이 발생해 국제 육류 시장이 요동친다. 이럴 때 국내 양돈산업의 생산 기반을 유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농업의 블루칩 산업을 지키는 동시에 식량 주권과 국민의 영양 공급을 함께 지키는 일이기 때문이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한국이 방역에 실패해 아프리카돼지열병 상존국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양돈산업은 붕괴한다. 

    9월 17일 경기 파주시를 시작으로 아프리카돼지열병이 한강 이북을 휩쓸었다. 보건 당국은 전염병이 계속되는 경기 파주시와 김포시에 207억 원의 예산을 투입해 지역 내 모든 돼지를 매입 혹은 살처분하는 초강경 대책을 발표했다. 아프리카돼지열병으로 인해 살처분되거나 예방적 도축으로 사라진 돼지가 20만 두가 넘는다(10월 5일 기준). 이는 전체 돼지의 1.7% 수준이지만 전염병이 확산되면 그 피해가 어디까지 이를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터미널인가, 북한인가

    한국에서 발병한 아프리카돼지열병의 정확한 감염 경로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지금까지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터미널(terminal) 유입설과 북한 유입설 두 가지로 압축된다. 

    터미널은 항공, 선박, 열차, 버스 같은 운송수단이 도달하는 맨 끝 지점이다. 항공은 공항, 선박은 항만을 가리킨다. 바이러스에 오염된 식품, 옷, 신체, 잔반(殘飯) 등이 터미널을 통해 유입될 수 있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발병한 북한을 통해 바이러스가 유입됐을 가능성도 적지 않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멧돼지가 원인이거나 멧돼지 사체, 분비물과 접촉해 바이러스를 보유하게 된 야생동물 등에 의해 유입될 수도 있다. 

    아프리카돼지열병 바이러스가 북한에서 남하하는 것을 차단하는 일은 쉽지 않다. 관찰 대상 지역이 넓기 때문이다. 군사분계선은 248㎞에 달하며, 비무장지대 면적은 907㎢나 된다. 터미널처럼 협소하고, 제한된 공간과는 차원이 다르다. 

    아무리 튼튼한 철책이라도 태풍이나 강한 비바람에 손상될 수 있다. 더구나 남북 사이에는 육상 경계선뿐 아니라 해상 경계선도 있다. 황해도와 백령도, 강화도, 김포 사이 해안선은 폭이 좁고 길다. 활동성이 강한 멧돼지라면 충분히 헤엄쳐 건널 수 있다. 

    유럽 사례를 보면 아프리카돼지열병 확산에는 멧돼지의 역할이 컸다. 이베리아반도에서 30년 넘게 아프리카돼지열병이 종식되지 않았던 것과 동유럽에서 확산된 것도 멧돼지의 탓이 크다. 

    9월 24일 국가정보원은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북한 내 아프리카돼지열병에 대해 보고했다. 평안북도 돼지가 전멸했으며 5월 발병한 후 방역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전염병이 확산하고 있다는 게 골자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김현권 의원(민주당)은 인천시로부터 받은 자료를 통해 멧돼지가 해안선을 통해 남북을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음을 지적했다. 9월 17일 오전 6시 인천 강화군 교동면 인사리 모래톱에서 발견된 멧돼지 3마리가 14시간 40분 후인 오후 8시 40분 바다를 건너 월북했다. 그날은 아프리카돼지열병이 첫 발병한 날이기도 하다.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하태경 의원(바른미래당)은 북한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발병한 5월부터 9월까지 전방 GOP 7군데 철책이 파손됐다면서 북한 멧돼지를 통한 전염병 발병 가능성을 제기했다. 

    국방부는 하태경 의원 주장에 대해 북한 멧돼지가 비무장지대를 통해 내려올 수 없다는 점을 강조했으나 경기 연천군 비무장지대에서 발견된 멧돼지 사체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 바이러스가 검출됐다. 그러자 국방부는 비무장지대에서 남쪽으로 내려오는 멧돼지를 사살하고 헬기를 동원한 방역작업을 펼치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동물 전염병도 비무장지대에 상존하는 위험

    비무장지대 철책. [뉴시스]

    비무장지대 철책. [뉴시스]

    700만 명이 사는 선양시는 동북3성(東北三省) 최대 도시다. 사통팔달(四通八達)인 선양은 육상, 철도, 항공 교통의 중심지다. 물동량, 유동인구도 동북3성에서 압도적이다. 선양은 북한과도 가깝다. 그런 선양에서 2018년 8월 3일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발병했다. 

    2018년 9월 18일부터 사흘간 평양에서 열린 남북 정상회담에서 두 정상이 선양에서 발생한 아프리카돼지열병 대책 마련에 공감한 후 방역을 위한 공동 노력에 힘썼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그랬다면 북·중 국경선부터 군사분계선까지 남북 공동으로 방역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안전한 한반도는 모두의 염원이다. 한반도의 당면 위협은 북한의 핵, 미사일이겠으나 아프리카돼지열병도 허투루 다뤄서는 안 된다. 남북 양돈산업의 동시 붕괴를 막으려면 남북이 협력해야 한다. 207억 원을 들여 김포시와 파주시의 돼지를 모두 살처분해도 북한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이 종식되지 않는다면 언제든지 재발한다. 한국이 방역에 성공해도 북한이 실패하면 말짱 도루묵인 것이다. 

    북한 내 아프리카돼지열병 종식을 위해 남북이 공동 노력을 펼쳐야 한다. 소독약, 진단 및 방역 장비 같은 하드웨어는 물론 노하우 같은 소프트웨어도 북한에 전수할 필요가 있다. 이 과정에서 유엔, 국제수역사무국(OIE), 미국 등과 협의해야 한다. 북한과의 가축전염병 근절 협력은 아프리카돼지열병에만 그치지 말고 조류인플루엔자, 구제역, 공수병 같은 다른 가축전염병까지 넓혀야 한다. 공동 방역도 안전한 한반도로 가는 길 중 하나다. 

    문재인 대통령은 9월 24일 유엔에서 비무장지대를 국제평화지대로 만들자는 제안을 했다. 이를 위해서는 비무장지대에 있는 위험을 제거해야 한다. 바이러스 전파의 위험도 비무장지대에 상존한다. 말로만 평화를 떠든다고 위험이 제거되는 게 아니다.

    남북 핫라인 가동해야

    10월 3일 발견된 아프리카돼지열병 확진 멧돼지 사례에서 알 수 있듯 비무장지대에는 바이러스 감염 우려가 있는 멧돼지가 많다. 남북 공동으로 개체 수 조절 작업을 실시해야 한다. 또한 돈열이나 공수병 같은 동물 전염병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비무장지대를 대상으로 국내외에서 실시하는 ‘미끼 백신’ 사업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지뢰가 많은 지역이므로 미끼 백신을 살포하려면 헬기나 경비행기 같은 항공기가 필요해 미국, 유엔군사령부와 협의해야 한다. 

    지난해 판문점 정상회담 이후 설치된 남북 정상 간 핫라인이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 많다. 아프리카돼지열병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핫라인을 가동해야 한다. 톱다운 방식(Top-down approach)으로 문제를 풀어야 속도를 낼 수 있다.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아프리카돼지열병을 종식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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