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1월호

지식커뮤니티 Book치고 ; 장강명의 ‘산 자들’을 읽고

여우에게 묻다 죽었니 살았니

회색지대의 노동소설

  • 김영중 한화도시개발 개발1팀 차장·Book치고 2기

    입력2019-10-31 14: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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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은 찰(察)이다. 남을 관찰(觀察)하고, 나를 성찰(省察)하며, 세상을 통찰(洞察)하는 도구여서다. 찰과 찰이 모여 지식과 교양을 잉태한다. 덕분에 찰나의 ‘책 수다’가 묘한 지적 쾌감을 제공한다. 정작 살다보면 이 쾌감을 충족하기가 녹록지 않다. 이에 창간 88주년을 맞는 국내 최고 권위의 시사 종합지 ‘신동아’가 ‘지식커뮤니티 Book치고’를 만들었다. 회원들은 한 시즌(4개월)간 월 1회 씩 책 한 권을 고재석 기자와 함께 읽는다. [편집자 주]
    ‘여우야 여우야 뭐하니’ 누구나 아는 이 놀이가 나는 무섭다. 출발은 순조롭다. 여우에게 묻는다. 잠잔다~ (잠꾸러기~), 세수한다~(멋쟁이~), 밥먹는다~(무슨 반찬) 개구리 반찬~. 

    취업, 해고, 구조조정, 자영업, 재건축…. 우리가 겪고 있는, 또는 옆에서 지켜보는 생의 단편들을 책은 담담하게 그린다. 핍박받는 사람들은 선(善)이고, 억압하는 사람들은 악(惡)인 평면적 구도로 미끄러지지도 않는다. 선과 악을 선험적으로 규정짓지 않되 살아가거나 죽어가는 사람들의 먹고사는 모습을 하나의 지면에 모아놨다. 그러면서 ‘최종보스(最終Boss)’를 끄집어낸다. 지금의 한국. 그리고 우리. 

    놀이가 끝나간다. 아이들이 여우에게 묻는다. ‘죽었니 살았니?’ 대답은 늘 한결같다. ‘살았다’ 모두가 알 듯 아이들은 도망치고, 여우는 아이들을 잡기 위해 뛰어다닌다. 궁금하고 무섭다. 여우는 살았는데 왜 아이들을 잡기 위해 뛰어다니는 걸까. 누군가 죽어야 자기가 살기 때문인 걸까. 아이들은 처음부터 여우가 죽었기를 바란 채 질문 던진 건 아니었을까. 여우가 죽는다면 다음 여우 역할은 누가 하게 될까. 

    “오히려 더 공고해졌어요. 1980년대는 적이 선명했는데, 지금은 뭔가 흐릿해졌잖아요. 그럼에도 크기는 더 거대해지고요. 저는 그게 구조라고 생각합니다.(‘산 자들’ 출간 직후 교보문고 ‘북뉴스’ 인터뷰 중)” 저자는 과거엔 선명했던 적이 이젠 거대하면서도 흐릿하게 존재한다고 했다. 신기하다. 때로 보이지도 않는 걸 어찌 적이라 표현하는지 말이다. 궁금하다. 과거 선명했던 적과의 전투에선 승리했는지 패배했는지 말이다. 알고 싶다. 적이라 외치는 ‘구조’는 정말 있긴 한 것일까. 

    어쩌면 우리 스스로 외부에 적을 만들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고로 ‘저기 적이 있다’고 외치는 자가 바로 적이다. 무슨 말이냐고? 너와 내가 적이라는 걸 숨기고 싶어서, 인간은 본래 이기적 동물이라는, 네가 죽어야 내가 산다는, 추악해서 눈뜨고 보기 싫은 진실을 마주하고 싶지 않아서 바깥에 적을 만든다는 얘기다. 



    이제 진실을 바라보자. 그리고 인정하자. 너와 나의 ‘구조’는 원래 악하다. 감춰진 진실은 잘못된 시작을 낳는다. 잘못된 시작은 흐릿한 적을 만든다. 그러므로 이렇게 생각해본다. ‘너와 나는 적’이고 ‘우리의 타고난 본성은 악하다’. 

    무섭다고 누구나 다 아는 놀이를 모른다 할 수도, 안 한다 할 수도 없다. 놀이는 언제까지나 계속되고 우리는 그 안에 있다. 어차피 나만 여우가 아니면 된다는 생각으로, 우리는 여우를 계속 만들어낸다. 여우에게 묻는다. 죽었니 살았니. 여우가 답한다. 너도 여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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