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량난 때 사람 살린 음식
콩깻묵 원료 식물육(plant-based meat)
“인조고기밥? 중독성 있어요”
북한 라면, 과자도 인기
북한산 인조고기.
조갯살 사 먹었다 벌금 100만 원
“중국 옌지(延吉)에 사는 화교(북한에서 태어난 중국인)가 페이스북을 통해 북한 수산물을 팔더라고요. 고향 맛이 그리워 말린 조갯살과 소금에 절인 임연수어를 주문했습니다. 조갯살, 임연수어 2만 원어치를 사 먹었는데, 벌금이 100만 원 나왔어요.”경찰은 북한산 물품을 한국으로 밀수출해온 옌지 거주 화교가 한국 거주 중국 조선족 명의로 만든 계좌를 살피다가 박씨의 송금 내역을 발견했다. 경찰이 살펴볼 게 있다면서 박씨에게 전화한 것은 지난해 9월이다.
“처음에는 별거 아닌 것처럼 말해 수산물 사 먹은 것을 솔직히 얘기했습니다. 그랬더니 기소가 되더군요. 검찰이 약식기소해 100만 원 벌금형이 나왔습니다. 2만 원어치 먹고 100만 원 벌금을 내는 게 억울해 정식 재판을 요청했습니다.”
박씨는 올해 3월 1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 검찰이 항소해 2심이 진행되고 있다.
“남북하나재단(북한이탈주민 정착 지원 기관)이 1심에서 무료 변론을 지원해줬어요. 판사가 검사한테 북한산인지, 중국산인지 알 수 없는 노릇 아니냐고 묻더군요. 1심을 해보니 혼자 재판해도 되겠다 싶었는데 2심 때는 국선변호인을 붙여주더군요. 인조고기, 낙지(북한에서는 오징어를 낙지라고 한다) 사 먹다가 벌금 낸 탈북자가 많아요.”
박씨처럼 북한산 식료품을 구입해 먹는 탈북민이 적지 않다. 고향이 그리워 북녘 식재료를 찾는 것이다.
이강희(가명) 씨는 중국에서 페이스북을 이용해 한국 거주 탈북민을 상대로 북한산 물품을 판매한다. 9월부터 10월 중순까지 한국에 보낼 송이버섯을 포장하느라 손이 부르틀 지경이었다. 송이버섯 제철이 9월 1일~10월 15일이다. 이씨는 북한산 송이버섯을 1㎏에 28만 원을 받고 한국으로 배송했다.
이씨는 페이스북을 인터넷쇼핑몰처럼 꾸며놓았다. 명란, 오징어 같은 수산물, 술 담배 치약 등 공산품도 판다. 피아노 교습용 악보, 북한산 휴대전화, 침대 시트, 각종 서적 등도 홍보하고 있다.
수산물이나 인조고기뿐 아니라 북한산 사탕, 과자, 라면, 컵라면을 찾는 이가 적지 않다. 고향 음식과 물건이 그리운 탈북민이 이씨의 주요 고객이다. 특히 두부피, 인조고기, 두부밥·인조고기밥 양념을 찾는 탈북민이 많다.
“인조고기 1㎏ 한국 돈 2만 원”
1 북한산 송이버섯 2 명란 3 술, 사탕 4 과자 5 라면
한국에서 북한산 라면, 과자, 사탕을 주문하면 판매상에 따라 1개 3000원에서 1만5000원까지 천차만별로 가격을 부른다.
탈북민 북한인권운동가로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면담한 정광일 노체인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가자미 맛이 한국산이나 북한산이나 뭐가 다르겠어요. 맛있어서 구해 먹는 게 아니라 그리워서 찾는 거죠. 중국 시장에서 파는 북한산 수산물을 배송 받아서 먹은 고향 후배가 기소돼 벌금형을 받은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공권력을 잘못 행사한 거죠. 그런 것까지 단속하거나 처벌하는 게 옳습니까? 아니라고 봅니다.”
탈북민이 특히 그리워하는 음식은 인조고기밥과 두부밥이다. 주승현 인천대 교수는 “북한 출신인 나도 고난의 행군(1990년대 중후반 식량난 시기를 가리키는 말) 이후 생겨난 인조고기밥을 한국에서 처음 먹어봤다. 맛이 중독성이 있다. 못 먹어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먹은 사람은 없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도 다들 맛있다고 한다”고 했다.
인조고기밥, 두부밥을 내는 수도권 L식당을 찾아가봤다. 북한 양강도 혜산 출신 여성이 운영하는 곳이다. 식당 구석 대형 플라스틱 봉투 2개에 인조고기가 가득 담겨 있다. 주방에서 음식을 만드는 탈북 여성은 “북한에서 직접 들여온 인조고기”라면서 “한국 사람들도 좋아한다”고 했다. 인조고기 수입 가격을 묻자 “1㎏에 한국 돈 2만 원”이라고 답하면서 “진짜 고기보다 더 맛있다”고 했다.
인조고기는 먹을 게 부족하던 시절 단백질 섭취를 보충하고자 생겨난 식재료다. 육류를 구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고기 대신 먹은 음식. 채식주의자를 위해 개발된 콩으로 만든 대체육(alternative meat·이른바 콩고기)과는 다른 식재료다.
쫀드기처럼 생긴 인조고기 맛은?
인조고기밥.
인조고기밥은 인조고기를 10㎝ 남짓한 길이로 잘라 삶은 후 그 안에 밥을 넣고 간장, 젓갈, 고춧가루를 섞은 양념을 얹은 음식이다. 인조고기를 기름에 볶거나 양념에 무쳐 먹기도 한다. 식량난 시기 육류를 구할 수 없어 개발된 인조고기는 칼로리는 낮은 대신 단백질과 섬유질이 풍부하다. 양강도 출신의 L식당 사장은 “식량난 시기 사람을 살린 음식이다. 그마저도 사 먹지 못한 이들이 죽었다”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두부밥도 식량난 때 단백질 섭취를 도운 음식이다. 일본 음식 유부초밥과 모양이 비슷하다. 두부피를 대각선으로 잘라 속을 벌려 밥을 집어넣은 후 간장, 젓갈, 고춧가루를 섞은 양념을 얹은 음식이다.
두부밥은 재일동포 북송사업(1959~1984) 때 일본에서 북한으로 이주해 정착한 이들로부터 비롯한 음식이다. 북한에서는 돌아온 재일교포를 ‘째포’라고 부른다. 김정은의 어머니 고용희가 일본 오사카(大阪)에서 태어난 째포다.
북한 경제가 개선되면서 인조고기밥과 두부밥은 장마당과 길거리에서 파는 ‘대표 간식’이 됐다. 한국의 떡볶이, 어묵 같은 길거리 음식으로 인기를 끄는 것이다. 지금은 기름을 짜고 남은 찌꺼기가 아니라 온전한 콩으로 인조고기를 만들기도 한다.
“하굣길 간식으로 얼마나 맛있던지…”
탈북민 박의성(27) 씨는 다음과 같이 기억한다.“인조고기밥의 매운 양념을 생각하면 지금도 입안에 침이 고여요. 하굣길 학교 앞 매대에서 인조고기밥을 간식으로 사 먹곤 했습니다. 얼마나 맛있던지…. 인조고기밥이 먹고 싶어 수업 끝날 시간만 기다렸어요. 장마당에서도 최고로 인기 있는 음식이었고요. 한국에 와서는 한번도 못 먹어 봤습니다. 인조고기밥을 파는 식당에 가봐야겠습니다.”
한국 학계 연구 결과를 종합하면 고난의 행군이라고 불린 식량난 때 북한에서 20만~70만 명이 굶어 죽은 것으로 추정된다. 일각에서는 200만 명 넘는 이가 아사(餓死)한 것으로 분석하기도 한다.
콩은 텃밭이나 야산에서도 잘 자라는 데다 거름을 시비(施肥)하지 않은 척박한 토지에서도 비교적 잘 자란다. 콩 단백질마저 없었다면 사정은 더욱 나빴을 것이다. 단백질 섭취가 부족하면 근감소증이 생긴다. 고난의 행군 때 성장기를 보낸 북한 주민들은 몸이 부실하게 자란 경우가 많다.
식량난 때 굶어 죽은 사람 중에는 노동자, 교사, 의사, 간호사처럼 도시에 사는 직군이 더 많았다. 국가 배급만 기다린 이들은 죽어나갔으나 아파트 화장실에서 토끼, 닭을 키워 시장에서 곡식으로 교환한 이들은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인조고기도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 만들어낸 식재료다.
“기어이 버텨낸 그 시절”
미국과 유럽에서 ‘탈육식’ 비건(vegan) 문화가 확산되고 있다. 실리콘밸리 스타트업 임파서블푸즈(Impossible foods)가 개발한 식물육(plant-based meat)은 콩, 쌀, 식물성 단백질을 섞어 육류 특유의 식감은 물론이고 ‘피맛’까지 구현했다. 미국 버거킹은 7300개 매장에서 식물육 햄버거를 팔고 있으며, KFC도 식물육 너깃을 내놓았다.생태 환경에 대한 관심과 건강을 생각하는 트렌드가 맞물려 서구의 식물육이 탄생했다면 북한의 인조고기는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존의 욕구에서 비롯한 것이다. 잔혹하던 시절 삶을 버티게 해준 음식이 그리워 인조고기, 두부밥용 피, 인조고기밥 양념을 북한에서 밀수입해 먹는 것이다.
“맛이 그리워서이기도 하고 기어이 버텨낸 그 시절을 추억하는 것이기도 하다”고 탈북민 이미란(45) 씨는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