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1월호

책 속으로

'한식인문학'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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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2019-11-15 14: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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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식인문학’ 펴낸 권대영 한국식품연구원 책임연구원
    “한식을 과학과 인문학으로 말하고 싶었다”

    권대영 지음. 헬스레터, 392쪽, 3만5000원

    권대영 지음. 헬스레터, 392쪽, 3만5000원

    유전자 분석과 문헌 연구로 ‘고추 일본(임진왜란) 전래설’을 비판해온 권대영 박사(한국식품연구원 책임연구원)가 한식(韓食) 담론서를 냈다. 그는 고대 농경문화에서 자라난 한식은 중국의 황하문화와는 다른 요하(遼河)문화에 뿌리를 둔 만큼 독자적인 특징을 지녔고, 사계절 바뀌는 자연 조건에서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식문화로 발전했다고 말한다. 밥을 다양한 반찬과 먹는다는 점에서 한식은 ‘건강한 밥상’의 최고 조건을 갖췄고, 이러한 음식 다양성의 관점은 한식 인문학의 출발점이라고 강조한다. 


    [박해윤 기자]

    [박해윤 기자]

    -책을 낸 동기는 뭔가. 

    “국내에서 ‘한식 책’은 주로 요리책이고, 한식의 본질에 대해 다룬 책은 찾아보기 어렵다. 산업혁명 이후 노동을 위해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먹을 수 있을까’ 하는 쪽으로 발전한 서양 음식과 달리 음식의 다양성과 건강성을 모두 지키며 발전해온 한식의 담론을 한번 정리하고 싶었다.” 

    -책에는 ‘고추 일본 전래설’의 오류도 지적했는데. 

    “내 고향이 전북 순창이다. 어릴 적 집 근처 작은 절(만일사)을 지날 때면 아버지는 ‘태조 이성계가 무학대사와 이 절에서 고추장을 먹고 너무 맛있어 조선을 세운 뒤 ‘진상하라’고 했다는 얘기를 들려주셨다. 그런데 1980년대 초가 되니 ‘임진왜란 때 일본에서 전래됐다’는 말이 나왔다. 일본에는 고추로 만든 음식이 없는데 무슨 연유일까 궁금했다.” 

    권 박사는 1492년 콜럼버스가 중남미에서 가져온 고추가 유럽을 거쳐 일본을 통해 1592년 우리나라에 들어왔다는 통설에 대해 “콜럼버스가 이미 중남미에서 100여 종의 고추를 가져와 아시아 각국 풍토에 맞게 분포시켰거나, 한 종류의 고추가 각 나라에 들어가 고유하게 진화해 다양한 고추가 됐다는 의미”라며 “생명과학의 지식을 모르고 하는 말”이라고 단언했다. 

    “임진왜란 때 들어온 고추가 100~200년 안에 우리나라 고추(Capsicum annuum)로 진화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최소한 100만~200만 년은 지나야 한다. 우리 고추는 174만 년 전 분화한 뒤 진화가 정체된 반면, 멕시코 등 중남미 고추는 이후에도 다양하게 진화가 일어났다. 멕시코 고추가 ‘덜 진화된’ 우리 고추로 진화할 수 없다. 이처럼 우리 음식 문화와 역사에 관한 오해도 담았다.” 



    권 박사는 또 비 오는 날 부침개가 생각나는 이유를 ‘빗소리와 전을 기름에 튀기는 소리의 주파수가 일치하기 때문’이라는 통설도 비판한다. 과학적으로 주파수가 일치하지도 않고, 파전은 튀김 음식이 아니라 참(들)기름을 조금 넣어 열 전달을 극대화해 맛있게 지져 먹는 음식이라는 것. 과거 비가 오면 마을 정자에 동네 사람들이 모여 해먹을 수 있는 게 수제비나 파전이고, 이런 경험을 한 세대들이 도시로 진출한 데 기인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권 박사는 서울대 식품공학과를 줄업하고 한국과학기술원에서 식품생명과학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12대 한국식품연구원장과 한국영양학회 부회장을 지냈다. 현재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정회원이자 농수산학부장을 맡고 있다. 

    배수강 기자 bsk@donga.com

    빌 게이츠는 왜 과학책을 읽을까
    ‘메기 효과’ ‘끓는 물속 개구리’ 얘기는 더는 하지 말자!

    유정식 지음, 부키, 300쪽, 1만6800원.

    유정식 지음, 부키, 300쪽, 1만6800원.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는 유명한 독서광이다. ‘게이츠 노트(The Gates Notes)’라는 블로그를 통해 자신이 읽은 책과 리뷰를 소개하는데 여기에는 인문, 사회, 정치, 경제, 역사, 문학 등 다양한 분야가 망라돼 있다. 특기할 점은 그가 추천한 책 중에서 과학책이 꽤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는 것이다. 페이스북 CEO 마크 저커버그, 테슬라 CEO 일론 머스크, 구글 지주사인 알파벳 CEO 래리 페이지, 아마존 CEO 제프 베이조스 등도 과학서를 탐독하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저자는 이렇게 세계적으로 유명한 경영인들이 왜 과학에 집중하는지를 사업가적 자질에 빗대 설명한다. 성공하는 사람은 과학적 통찰력과 사고력을 지녔다는 게 저자의 결론이다. 책 서두에 등장하는 ‘멱함수 분포’는 정규 분포에 대한 사람들의 맹목적인 믿음이 틀렸음을 강조한다. 

    흔히들 중국 시장 진출 여부를 두고 “14억 인구의 1%만 차지해도 성공”이라며 낙관적으로 전망한다. 하지만 이는 통계의 무지에서 비롯된 큰 오해다. 소프트웨어 개발자 앤디 브라이스의 연구에 따르면 시장점유율 1%를 이루기 위해서는 1000개의 기업 중 13위가 돼야 하기 때문이다. 

    벨연구소의 물리학자 존 켈리가 고안한 ‘켈리의 공식’은 도박을 할 때 판돈을 얼마나 걸어야 가장 오랫동안 베팅을 즐길 수 있는지 알려준다. 이 공식은 투자 여부를 결정할 때도 큰 도움을 준다. 그래서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도 투자를 할지 말지, 한다면 얼마나 해야 할지 결정할 때 이 공식을 활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켈리의 공식에 따르면, ‘가늘고 길게’ 게임을 즐기려면 10만 원을 한 번에 ‘올인(all in)’ 하는 것보다 잘게 쪼개 베팅하는 게 낫다. 

    비즈니스, 혹은 자기계발 분야에서 자주 인용되는 얘기 중에는 동물과 관련된 내용이 많다. 하지만 이들 중에는 과학적 근거가 없거나 자의적으로 틀린 해석을 붙인 경우가 있다. 대표적으로 ‘메기 효과’와 ‘끓는 물속 개구리’를 들 수 있다. 먼저 사업에도 적절한 긴장감이 필요하다는 의미에서 주로 쓰이는 ‘메기 효과’는 과학적으로 증명된 바가 없다. 오히려 동물은 포식자를 만나면 건강해지기는커녕 치명적인 스트레스를 받는 걸로 알려져 있다. 

    ‘끓는 물속 개구리’ 역시 낭설에 불과하다. 개구리를 미지근한 물에 넣고 서서히 온도를 높이면 개구리는 삶아지기 전에 기어서 그릇 밖으로 탈출한다. 이는 미국 오클라호마대학 빅터 허치슨 교수의 실험으로 증명됐다. 이제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라”는 말을 하고자 할 때는 더는 ‘끓는 물속 개구리’는 인용하지 않는 게 좋겠다. 

    김유림 기자 mupmup@donga.com


    종의 기원 톺아보기
    찰스 다윈 지음, 신현철 옮김, 소명출판, 706쪽, 2만9000원. 

    ‘종의 기원’은 ‘모든 생물은 신에 의해 완벽하게 창조됐다’는 기존 상식을 뒤집으며 인류의 정치 사회 문화 전반에 큰 변화를 일으켰다. 그러나 어려운 내용이라 제대로 읽은 사람이 드물다. 식물학자인 번역자는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학술서’로 꼽히는 이 책 초판에 2200여 개의 주석을 달아 일반인이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왔다.


    로마법 수업
    한동일 지음, 문학동네, 268쪽, 1만5500원. 

    베스트셀러 ‘라틴어 수업’을 쓴 한동일 바티칸 대법원 변호사의 신작. 저자에 따르면 로마법은 로마인들이 ‘시민으로서 최소한 이 정도는 지키고 살자’고 정해둔 것이다. 그 법문을 바탕으로 시대를 초월해 이어지는 인간의 속성과 사회적 갈등, 소통하고 화해하는 방법 등에 대해 논한다. 인류애와 정의로운 삶에 대한 저자의 신념도 확인할 수 있다.

    제가 스리랑카에서 살아봤는데요
    ‘인생 2막’ 해외 봉사단원의 시시콜콜 체류기

    개나리색 표지 위에 쓰여 있는 제목이 시선을 붙든다. 

    “제가 스리랑카에서 살아봤는데요,” 

    누군가 친근한 어투로 말을 건네는 것 같다. 그 주인공은 한국국제협력단(KOICA) 봉사단원으로 2년간 스리랑카에 머물렀던 홍호표 씨다. 홍씨는 대학 졸업 후 기자로 취업해 36년 8개월 동안 일했다. 정년퇴임 후 해외봉사를 떠나기로 마음먹고 한국어교사 3급 자격증을 받았다. 이후 발을 디딘 곳이 스리랑카다. 2017년 5월 스리랑카 와라카폴라 기능대학에 파견된 그는 현지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면서, 동시에 이 낯선 땅을 샅샅이 탐험하기 시작했다. 스리랑카 공용어 싱할라어를 익힌 뒤 기자 특유의 호기심과 친화력을 무기로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다녔다. 

    저자의 대화 상대는 기능대학에서 만난 교사, 학생에 그치지 않는다. 하숙집 주인, 시장 상인, 버스 기사, 어부, 시계 판매점 점원, 동네 주민, 스님 등도 홍씨의 ‘취재 대상’이 됐다. 그들이 들려준 이야기는 고스란히 따옴표 안에 담겨 이 책의 줄기를 이룬다. 책장을 넘기면 스리랑카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정해진 집안만 그 이름을 쓸 수 있어요.” 저자는 이 말에서 출발해 스리랑카의 신분 제도에 대한 얘기를 풀어낸다. “뚱뚱한 여자와 결혼할 거예요”라는 이야기를 단초 삼아 스리랑카 사람들의 아름다움에 대한 관점을 분석하기도 한다. 스리랑카의 독특한 회의 스타일, 결혼풍속, 불교문화 등에 대한 생동감 있는 정보도, 모두 이렇게 현지인의 입을 통해 전해진다. 

    저자는 이 책을 “시종일관 시시콜콜하고 흥미진진한 이것저것 인터뷰집”이라고 소개했다. 정확하다. 난생처음 스리랑카에서 살게 된 한국 남성이 완벽하지 않은 싱할라어를 구사하며 현지인과 주고받는 대화 속에는, 이 나라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 궁금해할 만한 온갖 이야기가 담겨 있다. 스리랑카 사람들이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낙후된 지역을 보면 “한국 같다”고 말했다는 대목도 눈길을 끈다. 

    30대 중반 스리랑카인 교사가 홍씨에게 들려준 얘기는 이렇다. 

    “제가 어릴 때 스리랑카에서 가난하고 낙후한 동네를 보면 ‘한국과 똑같다’고 말했어요. 빈민가라는 말을 그렇게 표현한 거죠.” 

    알고 보니 스리랑카는 한국보다 훨씬 앞서 개발도상국 반열에 올랐던 나라다. 한때는 리콴유 싱가포르 총리가 “싱가포르를 스리랑카 같은 나라로 만들어야 한다”고 할 만큼 ‘모범국가’로 여겨지기도 했다고 한다. 홍씨는 이 나라가 그 수준에서 한 단계 더 발전하지 못한 원인을 다각도로 보여주면서, 동시에 스리랑카의 저력에 대한 기대도 드러낸다. 스리랑카는 현지어로 ‘찬란한 섬’이라는 뜻이다. 스리랑카와 스리랑카 사람들에 대한 깊은 애정이 담긴 이 책을 읽다 보면 그 찬란한 세계에 대한 관심이 커진다.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줄리언 반스의 아주 사적인 미술 산책 
    줄리언 반스 지음, 공진호 옮김, 다산책방, 424쪽, 1만8000원. 

    소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로 맨부커상을 받았고, 국내에도 많은 팬을 갖고 있는 작가 줄리언 반스의 예술 에세이. 반스가 1989년부터 2013년까지 여러 예술 잡지에 기고한 글을 선별해 엮었다. 빼어난 그림을 소개하며 작품 배경이 된 사건과 화가의 삶까지 함께 풀어낸 글이 작품을 보는 새로운 눈을 열어준다.



    통일, 외교관의 눈으로 보다
    백범흠 지음, 늘품플러스, 321쪽, 1만6000원. 

    북한과의 공존공영, 나아가 통일 달성은 분단된 우리나라가 생존과 번영을 지속하는 데 가장 큰 숙제다. 이 책은 시간과 공간, 즉 외교사와 지정학이라는 두 가지 시각으로 통일 문제 해결 방안을 제시한다. 30여 년간 외교관이자 국제정치학자로 살아온 필자가 외교사, 지정학을 씨줄, 날줄로 삼아 읽고 보고 듣고 성찰한 것을 집대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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