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1월호

명사에세이

내가 SNS를 하지 않는 이유

  • 소준섭 국회도서관 조사관·국제관계학 박사

    입력2019-11-11 14:4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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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집에 전기밥솥도 없고 전자레인지도 없다. 가스불로 냄비 밥을 짓는데, 밥맛은 더 좋다. 전기밥솥은 전기 소모량도 상상외로 많다. 물론 내가 냄비 밥 짓는 솜씨는 퍽 괜찮은 편이다. 

    양말도 스스로 기워 신는다. 사실 나는 20년 전부터 안경을 써야 할까 생각할 정도로 시력이 그다지 좋지 않은 편이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내 또래 사람들은 10여 년 전에 모두 노안이 와서 가까운 것을 멀찌감치 놓고 보는데, 나의 경우에는 아직껏 그런 현상이 없다. 거기에 바늘귀에 실을 꿸 정도 시력을 유지하고 있으니 이렇게 된 연유는 나도 잘 알지 못한다. 아마도 10여 년 동안 사무실을 가득 채우면서 잘 자라는 파란 화초들 덕택인지도 모르겠다. 전에 어떤 사람이 내 사무실에 찾아와 “세상에서 가장 좋은 사무실”이라고 덕담한 적도 있으니 하는 말이다. 물론 낙천적인 성격 덕도 있을 테고, 언제나 규칙적인 식사를 하고 매끼 소식하는 습관 덕인지도 모를 일이다.

    운전면허도 없고, 스마트폰도 없다

    자동차 운전면허증이 없는 나는 당연히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음주운전 가능성은 근본적으로 없다. ‘전국노래자랑’ 사회를 보시는 송해 선생의 장수 비결에 대해 전문가들이 하나같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건강에 큰 요인일 것이라고 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대중교통만 이용할 수밖에 없는 나도 건강에 상당한 장점을 얻으리라. 더구나 ‘국민주’로 칭송받는 전통 방식의 소주(燒酒)도 아닌 지금의 ‘소주’는 전혀 마시지 않고, 라면 역시 거의 입에 대지 않는다. 

    나는 우리 사회에서 이미 오래전부터 국민 모두의 필수 휴대품이 된 스마트폰도 없다. 그러니 당연히 이 사회를 송두리째 휩쓸고 있는 SNS의 거대한 물결에서도 완전히 비켜나 있다.
     
    오늘날 SNS는 소통의 도구라는 차원을 뛰어넘어 나 개인만의 시간, 내가 혼자 사고하고 생각할 공간을 빼앗아가고 있다. 길거리에서나 버스와 지하철에서나 모두들 고개를 숙이고 스마트폰만 보고 있다. 심지어 약속장소 카페에서 만난 두 사람도 각자 스마트폰만 쳐다본다. 해외 혹은 국내 여행을 가거나 맛집을 찾았을 때 사람들의 목표는 SNS에 멋있는 사진을 올려 자랑하고 과시하려는 데 있는 듯하다. 목표와 과정의 본말전도다. 더구나 SNS는 사생결단의 피동적 ‘편 가르기’를 강요당하는 도구로도 사용되고 있다. 

    그래서 나는 SNS를 시작할 생각이 없다. 나는 어디까지나 최대한 나의 의지대로 살아가고 싶다. 피동적이고 강요되는 삶은 거부한다. 다른 한편으로 보면, 내 자신이 특정한 논쟁을 벌이게 될 경우 반드시 승부를 보고야 마는 성격임을 잘 알기에 나 자신을 보호하고자 미리 제어 장치를 마련해놓은 셈이기도 하다.



    ‘사(私)’를 향유하지만, ‘공(公)’을 지향하고자

    퇴근길에 가지치기를 심하게 해 마치 젓가락처럼 앙상하게 된 가로수를 목격했다. 다음 날 아침 국민권익위원회를 통해 구청 측에 왜 가로수가 죽을 정도로 심하게 가지치기를 하느냐는 항의성 민원을 냈다. 그랬더니 자신들은 적합하게 가지치기한 것이고 가로수 발육 상태는 양호하다고 강변하는 회신을 보내왔다. 얼마 후 그 가로수 중 한 그루가 내 예상대로 죽고 말았다. 그 사실을 알려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해당 구청 측에 다시 연락해서 제발 우기지만 말고 가로수 한 그루도 소중하게 생각하라고 당부했다. 

    사실 민원을 내는 일은 상당히 귀찮지만, 남들이 하지 않으니 부득이 내가 나설 수밖에 없다. 가로수 가지치기 민원을 낸 지도 10년이 넘는다. 어느 정도 성과도 거두었다. 어떠한 일이든 최소 10년 정도는 열심히 끈기 있게 힘써야 작은 성과라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세상에 서둘러서 이뤄지는 것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3년 전쯤부터는 근무지인 국회 앞에 상주하면서 사시사철 24시간 공회전하고 미세먼지를 배출하는 경찰버스들을 상대로 국민권익위원회와 국가인권위원회에 민원을 냈다. 관련 기고문도 계속 써왔다. 이 역시 다른 누구도 하지 않기에 할 수 없이 내가 나선 것이다. 나는 이뤄질 때까지 계속한다. 나는 거창하게 환경운동을 해본 적도 없다. 다만 내가 이 지구에 손님으로 잠시 와 머물면서 되도록 오염시키지 않고 조용하게 떠나기를 바랄 뿐이다. 

    그렇게 이 세상에 객(客)으로 살아가면서, 나는 ‘사(私)’를 향유하지만 ‘공(公)’을 지향한다. 공(公)이라는 한자는 ‘八’과 ‘厶’가 합쳐진 글자로서 ‘八’은 “서로 등을 돌리다, 서로 배치되다”라는 뜻이고, ‘厶’는 私의 본자(本字)다. 한비왈(韓非曰)은 “스스로 경영하는 것을 라 하고, 와 배치되는 것을 公이라 한다”고 풀이하고 있다. 그리하여 공(公)은 “私와 서로 등을 돌리다 혹은 배치되다” 즉 “공정무사(公正無私)하다”는 뜻이다. 한편 사(私)란 ‘禾’와 ‘厶’가 합쳐진 글자로서 ‘벼(禾)’나 ‘농작물(農作物)’을 의미한다. 즉, 개인의 수확물이나 소유물을 의미한다.

    작지만 소박한 실천

    나는 매일 새벽 5시대에 출근한다. 어두운 사무실을 밝히면서 날마다 “국가가 요구하지 않아도 국가에 필요한 일을 하자”고 다짐한다. 이 새벽에 한 잔의 아이스커피를 마시며 행복감을 느낀다. 

    나는 공무원으로 근무하면서 본의 아니게 ‘승진’으로부터도 비켜나 있다. 여기에서 얻어지는 장점은 승진 문제로 남들이 받는 극심한 압박감과 스트레스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있다는 점이다. 

    그간 꽤 비판적인 기고문을 여러 매체에 발표했다는 이유로 ‘품위 유지 위반’ 징계에 부쳐지기도 했지만 ‘품위 유지’를 어긴 것은 ‘그들’이라는 나의 확신은 한 번도 흔들린 적이 없다. 이른바 ‘왕따’가 돼 시대를 앞선 ‘혼밥족’으로 산 지 수년이 됐지만, 결코 이를 불행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홀가분하다 여겼다. 

    남과 좀 달리 생각하고 남과 다르게 살아도 우리네 삶은 그리 나빠지지 않는다. 남과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이 어딘지 불안해 감히 ‘상식’에 맞서지 못하며, 어떻게든 유행에 뒤떨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다하는 삶에 대해 성찰해볼 때도 됐다. “나는 회의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데카르트의 말을 굳이 빌릴 필요도 없이, 모름지기 사유하는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자존감과 가치를 지켜야 할 일이다. 

    그저 앞만 보고 빨리 달리는 ‘속도의 삶’은 대개 파괴와 공허한 과시와 허영 그리고 결국 질병과 자기 파멸을 낳게 된다. 

    이제 눈을 들어 천천히 주변 경치도 구경하고 다른 사람과 환경도 배려하면서 이웃의 사람과 동물과 벌레 그리고 풀잎까지 공존하는 삶의 방식을 생각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어쩌면 우리는 이미 늦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오늘 나는 한 그루 사과나무를 심는다는 말처럼, 먼저 나로부터 비록 작지만 소박한 실천을 해나가야 할 일이다.


    소준섭
    ● 1959년 출생
    ● 전주고, 한국외대 중국어과 졸업
    ● 중국 푸단대 대학원 박사(국제관계학)
    ● 現 국회도서관 조사관
    ● 저서 : ‘사기’ ‘제국의 부활- 슈퍼파워 중국과 21세기 패권’ ‘왕의 서재’ ‘소준섭의 정명론’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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