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1월호

DLS·DLF 사태로 본 은행 PB 부실영업 실태

“관리할 고객은 많고, 영업 압박에 도 넘기도”

  • 김유림 기자 mupmup@donga.com

    입력2019-10-22 15:4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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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LS·DLF 사태에 소비자 ‘패닉’

    • 만기 예금 찾으러 은행 갔다가 80대 ‘치매’ 노인도 가입

    • 가입자 ‘투자 성향 등급’도 조작?

    • “자식보다 더 믿었건만…”

    • 非이자 수익 압박에 “우리도 괴롭다”

    10월 1일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DLF 판매 규탄 기자회견이 열렸다. [뉴시스]

    10월 1일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DLF 판매 규탄 기자회견이 열렸다. [뉴시스]

    대규모 투자 손실을 부른 해외금리연계 파생결합상품(DLS·DLF) 사태로 시중은행들의 ‘불완전판매’ 논란이 뜨겁다. 투자 위험도가 높은 상품을 마치 원금이 보장되는 안전한 상품인 것처럼 소개해 팔았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시중은행 PB(Private Banker)들의 영업 방식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현재 논란이 된 DLS(Derivative Linked Securities·파생결합증권)는 주식, 주가지수, 신용, 실물자산, 통화 등의 기초자산 금리가 특정 기간 동안 정해진 구간을 벗어나지 않으면 약정 수익률을 지급하고, 구간을 벗어나면 원금을 손해 보는 파생상품이다. DLF는 DLS를 편입한 펀드를 말한다. 

    올 5월부터 우리은행은 ‘독일 국채 금리 연계 DLS’를 최소 1억 원 이상씩 사모펀드(DLF·‘KB독일금리연계전문사모증권투자신탁 제7호)로 판매했다. 해당 펀드는 불과 넉 달 만에 98.1%의 손실률을 기록했고, 투자자들은 원금을 모두 날리게 됐다. 남은 1.9%는 만기 때까지 해지하지 않으면 무조건 주는 쿠폰금리(액면 약정 이자) 1.4%와 일부 자산운용수익 등을 합친 것으로, 원금은 100% 날아갔다.

    위험성 함구한 채 안전성만 강조

    해당 상품은 만기 4개월짜리 단기 투자 상품으로 5월 17~ 23일 사이에 판매됐다. 만기 평가일에 독일 국채 금리가 -0.3% 아래로 떨어지지 않으면 약속한 금리를 받을 수 있지만 -0.6% 아래로 하락하면 원금 전액을 잃게 되는 구조다. 결국 만기일 금리는 –0.619%로 떨어졌고, 투자자들은 최악의 상황을 맞았다. 

    특히 해당 DLF는 독일 채권 금리가 이미 마이너스 구간에 진입한 지 두 달이나 지났을 때 판매됐다는 점에서 더 큰 지탄을 받는다. 은행 내부에서도 금리가 앞으로 더 떨어질 것이란 예상이 가능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올 3월 우리은행 산하 우리금융경영연구소가 발표한 ‘미국 통화정책 기조 변화의 의미와 영향’ 보고서에는 “미국의 통화정책 기조 변화로 인해 글로벌 통화정책의 완화를 예상하고, 미국 금리 하락세가 이어지는 가운데 글로벌 금리도 동반 하락할 전망”이라고 쓰여 있다. 



    그럼에도 다수의 PB는 고객에게 DLF 펀드의 위험성에 대해서는 함구한 채 “독일이 망하지 않는 한 손해 볼 일은 없다”며 안전성만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상품은 총 48명에게 83억 원가량 판매됐다. 

    지난해 9월 말 KEB하나은행이 판매한 DLF(메리츠금리연계AC형리자드전문사모증권투자신탁 37호)도 문제가 되고 있다. 미국과 영국 이자율스와프(CMS) 금리와 연계한 상품으로 첫 만기일인 9월 25일, 손실률은 46.1%에 달했다. 쿠폰금리 3.3%와 운용보수 정산금 0.36%를 돌려받더라도 원금의 절반가량이 사라진 셈이다. 이후 다른 계좌들도 만기가 속속 돌아오면서 원금 손실이 확정된 상품이 늘고 있다. 10월 10일에는 손실률이 60%에 육박하는 계좌도 등장했다. 

    결국 투자자들은 9월 26일 우리은행과 하나은행, 담당 PB를 상대로 DLS 사기 판매로 인한 계약 취소와 원금 전액 배상을 요구하는 첫 민사소송 4건(우리은행 1건 4억 원, 하나은행 3건 16억 원)을 제기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 투자 성향 1등급?

    이번 사태와 관련해 시중은행과 PB들의 ‘눈 가리고 아웅’식 영업 방식에 분통을 터뜨리는 이가 적지 않다. DLF 투자피해자 대부분은 은행 PB를 통해 상품에 가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본시장법상 DLF와 같은 ‘투자 상품’은 금융사 직원이 고객에게 상품의 수익 구조와 위험성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게끔 돼 있다. 만약 이 과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면 이는 ‘불완전판매’에 해당한다. 

    10월 1일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주요 해외금리 연계 DLF 관련 중간 검사 결과’에 따르면 두 은행의 DLF 판매 과정은 총체적으로 부실했다. 우리·하나은행의 DLF 판매 서류를 전수 조사한 결과 불완전판매 의심 사례는 3954건 중 20%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PB와 1분간 통화하고 5분간 면담한 후 DLF에 가입해 원금의 60%를 날린 사례도 발견됐다. 

    DLF 가입자 중 상당수는 “평소 붓고 있던 예·적금이 만기가 돼 은행에 갔다가 PB로부터 ‘안전하면서 수익률이 높다’는 설명을 듣고 가입하게 됐다”고 항변한다. 은행 측이 “만기까지 환매하지 않을 때 지급되는 쿠폰이자를 원금 손실이 없는 확정 금리로 설명했다”는 주장이다. 심지어 이들 중에는 95세 이상 노인과 치매성 질환을 앓고 있는 80대 노인도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투자 상품에 가입하기 전 고객을 상대로 실시하는 ‘투자 성향 조사’ 또한 조작됐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DLF처럼 고위험 상품은 ‘공격적 성향’을 지닌 ‘투자 등급 1등급’ 고객에게만 판매하게 돼 있는데, PB가 임의로 고객의 투자 성향을 ‘공격적’으로 조정했다는 것이다. “나는 분명히 투자 성향이 낮은 등급인데, 어느 순간 보니 1등급으로 돼 있더라”라고 주장하는 이가 적지 않다.

    非이자 수익에 눈먼 은행들

    DLF 투자 피해자가 9월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해당 은행 국정조사를 요구하며 손팻말을 들고 있다. [뉴시스]

    DLF 투자 피해자가 9월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해당 은행 국정조사를 요구하며 손팻말을 들고 있다. [뉴시스]

    문제는 이러한 영업 행태가 비단 이번 사건에서만 벌어진 게 아니라는 점이다. 시중은행에서 PB로 활동 중인 A씨는 “투자 성향 조사가 제대로 이뤄진다고 확신하기 힘들다”고 밝혔다. “평소 보수적인 성향의 고객이 공격적인 상품에 투자하기를 원할 때, 투자 성향 수치를 조정해 판매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 

    그러면서 A씨는 “고객이나 PB 모두 투자 성향 조사를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몇 문항의 설문조사를 통해 성향을 파악하는 것 자체가 신빙성이 크지 않다. 차라리 신용등급처럼 공인된 기관의 투자 등급 성향 조사가 이뤄지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PB인 B씨는 “상품 위험등급 구분이 실제 위험과 괴리감이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대부분의 고객은 수익률이 높으면서도 안전한 상품을 추구한다. 금융기관에서 정해놓은 위험등급 구분은 현실과 다르기 때문에 PB들은 기계적으로 위험등급 구분에 따르기보다는 자신이 체감하는 위험 정도로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좀 더 전문적이고 상세한 위험 분류가 필요하다.” 

    PB들이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투자 상품을 판매하는 것은 ‘실적’에 대한 압박이 크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들어 시중은행들은 ‘비이자 수익’ 확대를 주요 목표로 삼고 있다. 예대마진으로는 더는 수익을 내기 힘들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번 금감원의 검사 결과를 보면, 우리은행과 하나은행은 경영 성과 부문에서 ‘비이자 수익 확대’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는 걸 알 수 있다. 

    원승연 금감원 부원장은 “검사 대상 은행의 영업점 성과지표(KPI)를 살펴보면 비이자 수익 배점이 다른 시중은행 대비 높게 설정됐고, 소비자 보호 배점은 낮게 부여됐다”며 “특히 PB센터에 대한 비이자 수익 배정이 20% 이상을 차지하는 등 경쟁 은행 대비 2~7배 높은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A씨는 “PB를 포함해 모든 은행 직원에게는 영업 목표가 배당된다. 목표 달성은 승진과 조직 내 직책 유지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PB의 상품 선정은 은행의 영업 정책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밝혔다. 즉 은행에서 ‘미는’ 상품을 팔아야 목표 배당을 채울 수 있다는 얘기다. 

    독일 국채 DLF의 경우 우리은행은 선취 판매수수료로 1%를 받았다. 최소 투자 금액이 1억 원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한 명의 투자자를 유치할 때마다 은행은 최소 100만 원의 이익을 냈다. 반면 PB들에게 돌아가는 판매수당은 따로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위험 상품 만기 도래까지 잠 못 자”

    보통 PB는 고객 상담에 필요한 교육을 이수하고 해당 자격증을 보유한 직원이 사내 시험과 면접을 통해 최종 선발된다. 최근 들어 은행들은 자사의 영업력을 높이고자 PB 규모를 늘리고 있다. 하지만 PB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관리해야 하는 고객 수가 너무 많다”는 푸념이 들려온다. 실정이 그렇다 보니 PB 업무에서 가장 중요한 투자 상품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경우도 더러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은행 업무와 고객 관리에 치이다 보면 상품에 대해 제대로 공부하지 못할 때가 많다. 대부분 본사에서 내려오는 자료나 짧은 연수 등을 통해 상품을 이해한 뒤 판매한다”고 털어놓았다. 또 다른 은행원 C씨는 “회사에서 팔라고 하는 투자 상품은 많고, 늘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다. 거액의 고위험 상품을 판매하면 만기 때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최근에는 상품 판매뿐만 아니라 고객들의 개인사까지 챙겨야 해서 피로감이 더 크다”고 푸념했다. 

    PB가 담당하는 고객은 보통 VIP와 VVIP로 나뉜다. 예치금 1억 원 이상은 VIP, 3억 원 이상은 VVIP로 분류되는데, 은행들은 특히 ‘큰손 고객(VVIP)’ 유치에 상당한 공을 들이고 있다. ‘프리미엄 PB 서비스 센터’를 따로 만들어 일반 PB센터에는 없는 세무사와 부동산 전문가, 애널리스트 등을 상주시키기도 한다. 상담 예약을 한 고객에게는 집으로 고급 승용차를 보내는 픽업 서비스도 선보이고 있다. 

    일부 은행의 PB들은 VVIP 고객 자녀들의 입시 컨설팅도 돕는다. 최근 화제를 모은 드라마 ‘스카이캐슬’에는 은행이 고객과 입시 코디네이터를 짝지어주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것이 결코 허구가 아님을 알 수 있다. 한 시중은행은 해마다 우수 고객을 대상으로 7월에는 대학 입학 수시 전형 설명회를, 12월에는 정시 입시 설명회를 연다. 강남의 유명 입시학원과 제휴를 맺어 진행하는 행사인 만큼 매번 선착순 접수가 하루 만에 마감될 정도로 인기가 높다고 한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고객의 건강을 챙기는 건 물론이고, 집에 고장 난 컴퓨터까지 수리해서 줄 정도로 PB의 업무가 날로 복잡 다기해지고 있다. 고객 유치도 중요하지만 PB들이 본업에 더욱 충실할 수 있도록 은행 차원에서 효율적인 시스템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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