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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우를 떠나 한국인은 동방명주에 분노할 이유가 있다

[노정태의 뷰파인더] 민주국가 대한민국 부정한 사건

  •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철학 basil83@gmail.com

좌우를 떠나 한국인은 동방명주에 분노할 이유가 있다

  • ● 영화 ‘극한직업’ 떠오르긴 하지만…
    ● 시민과 경찰 관계, 늘 불편
    ● 남영동 대공분실 같은 극단적 상상
    ● 실상 파악해 민주공화국 자존심 되찾자
지난해 12월 29일 서울 송파구 중국 음식점 동방명주 앞에서 왕하이쥔 대표(오른쪽)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안철민 동아일보 기자]

지난해 12월 29일 서울 송파구 중국 음식점 동방명주 앞에서 왕하이쥔 대표(오른쪽)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안철민 동아일보 기자]

“(별점) 한 개도 아깝습니다. 여긴 분명 식당을 하기 위해 식당을 연 곳이 아닐 거라 생각됩니다.”

수년 전 한 누리꾼이 구글에 남긴 어떤 식당에 대한 리뷰다. 서울 송파구 한강 고수부지에 자리 잡은 수상 부유식 구조물에서 영업하던 중식당 ‘동방명주’. 중국 공안이 해외 ‘비밀경찰서’로 운영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바로 그곳이다.

이 뉴스를 접한 수많은 이들은 영화 ‘극한직업’을 떠올렸다. 마약 범죄 수사를 위해 경찰들이 범죄자 아지트 근처에 ‘수원왕갈비통닭’이라는 치킨집을 차린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치킨이 너무 잘 팔리고, 심지어 범죄자들마저 손님이 돼버리고 만다. 그러면서 발생하는 상황을 담은 코미디 영화다.

‘동방명주’를 보며 ‘수원왕갈비통닭’을 연상하는 건 너무도 당연한 일처럼 보이지만 이 사안을 그런 식으로 바라봐서는 안 된다. 황당한 사건을 보며 잠깐 농담을 주고받는 일이야 해로울 게 없으나 ‘수원왕갈비통닭’ 농담은 이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 사안인지 제대로 인식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현재 수면 위로 드러난 중국의 ‘비밀경찰서’ 운영 의혹은 대한민국을 민주국가로 성립하게 해주는 핵심 이념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사건이다.

경찰이란 무엇인가

여기서 잠시 근본적 질문을 던져 보자. 경찰이란 무엇인가. 경찰이 하는 일은 무엇인가. 경찰은 왜 존재하는가. 학술적으로 경찰이란 “사회공공의 안녕과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일반통치권에 기해 명령과 강제를 하는 권력적 작용”으로 정의된다.



당연한 말처럼 보이겠지만, 구절을 하나씩 떼어 놓고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경찰은 사회공공의 안녕과 질서 유지를 위한 조직이다. 그 법적 근거는 일반통치권에 기한다. 그렇다면 ‘특별통치권’도 있다는 말일까. 그렇다. 군사독재 시절 내려졌던 계엄령 등을 떠올려 보자. 국군통수권자를 겸하는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가의 일반적 법적 절차와 제도는 정지된다. 일상적으로 경찰이 해야 할 “사회공공의 안녕과 질서 유지”를 계엄군이 하게 된다는 뜻이다.

이렇게 당연한 내용을 길게 설명한 이유가 있다. “명령과 강제를 하는 권력적 작용”의 의미를 명확히 곱씹어보기 위해서다. 경찰이 하는 일은 본질적으로 계엄군이 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 총, 수갑, 곤봉 등으로 무장하고 여차하면 사람들을 잡아 가두는 시설을 운영하는, 자국민을 상대로 물리력을 행사하는 조직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차이가 있다면 계엄군은 계엄령이 발령된 특수한 상황에서 “권력적 작용”을 하는 반면, 경찰은 그 “권력적 작용”을 언제나 일상으로 수행한다는 것이다.

경찰의 모든 활동이 계엄군의 그것과 같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우리에게 너무 가깝고 친숙하기에 간과되는 경찰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경찰은 무장 조직이다. 그리고 군대와 달리 그 무력을 자국민을 향해 행사한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 그 ‘자국민’은 범죄를 저질렀거나 저질렀다고 여겨지는 사람으로 한정된다. 그렇다고 국민에게 세금을 받아 운영되면서 국민을 향해 물리력을 행사하는 경찰의 본질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21세기에 태어났거나 20세기의 진정한 모습을 기억할 수 있을 정도의 연령대가 아닌 이들에게는 퍽 낯설게 들릴 이야기다. 대한민국의 시민과 경찰의 관계는 늘 불편한 것이었다. 3‧15 부정선거가 전국 단위로 이뤄진 수 있었던 것은 경찰 조직이 동원됐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잊지 않은 시민들은 4‧19혁명 당시 경찰서에 항의하면서 불을 지르기도 했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벌어진 일도 그와 유사하다. 시민들은 경찰서를 습격해 무기를 탈취하고 역시 불을 질렀다.

경찰과 불편한 관계였던 것은 군사정권에 맞서 시위하고 투쟁하던 이들만의 일이 아니었다. 광복 후 6‧25전쟁을 통해 만들어진 신생국 대한민국의 국가 운영은 거칠고 투박했다. 전국에 속속들이 퍼져 있는 경찰 조직의 물리력에 의존해 국민들의 불만을 잠재우고, 때로는 억누르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경찰이 ‘민중의 지팡이’가 아닌 ‘권력의 몽둥이’라는 말은 전혀 농담이 아닌 그저 사실의 표현이었을 뿐이다. 그렇게 대한민국의 경찰은 시민들을 강압적으로 대하고 때로는 명확한 법적 근거 없는 폭력을 행사했다. 시민들은 그 원한을 잊지 않고 있다가 기회가 될 때마다 경찰서에 불을 질렀던 것이다.

적법 절차에 대한 합의

오늘날 우리는 경찰을 바라볼 때 곧장 ‘폭력’을 떠올리지 않는다. 일각에서는 경찰이 범죄자나 시위대 등을 향해 즉각적이고 강력한 물리력을 행사하지 않는다고 볼멘소리를 늘어놓기 일쑤다. 시위대를 운동화 차림으로 쫓아와 두들겨 패던 이른바 ‘백골단’ 같은 것은 사라진 지 오래다. 어쩌다가 불상사라도 나게 되면 여론의 비난뿐 아니라 조직 내에서 문책을 당할 수도 있기에, 오히려 경찰이 먼저 폴리스 라인을 긋고 시위대와 거리를 두는 편이다.

요컨대 2023년 현재 대한민국 경찰은 폭력과 거리가 멀다. 혹은, 그런 것처럼 보인다. 불과 수십 년 만에 경찰의 운영 방식이 적어도 겉보기에 이토록 달라진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 사회가 민주화됐기 때문이다. 국민을 상대로 합법적 물리력을 행사할 수 있는 무장 폭력 집단이라는 본질 자체가 변한 것은 아니다. 경찰의 권력 작용을 감시, 고발, 통제하기 위한 다양한 법과 제도가 정비됐고, 동시에 한국의 시민 의식이 성장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한국인들은 경찰이 아무리 ‘옳은 일’을 한다 해도 그 과정에서 적법 절차를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는 합의에 도달해 있다. 그 법은 국민 스스로가 뽑은 대표인 입법부에 의해 만들어지고, 역시 국민 스스로 뽑은 대통령 및 정부에 의해 집행된다. 경찰은 정치권력에 의해 통제되며, 정치권력은 국민의 투표로 심판을 받으므로, 경찰이라는 대국민 물리력을 다스리는 힘은 궁극적으로 국민 스스로에게 있다. 적어도 우리가 믿고 있는 바에 따르면 그렇다.

2023년 현재 대한민국에 사는 우리는 경찰이 불법적인 일, 비상식적인 일을 하지 않는 상태를 정상적인 것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렇지 않은 경우는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 경찰은 법에 의해 성립하고 있는 조직이다. 불법 행위를 하는 경찰은 이미 경찰이 아니다. 민주주의 국가에 살아가는 우리가 너무도 당연하게 여기는 경찰의 모습이다.

‘비밀경찰서’ 용어 사용이 가진 오류

지난해 12월 29일 서울 송파구 동방명주 근처에 취재진이 모여 있다. [안철민 동아일보 기자]

지난해 12월 29일 서울 송파구 동방명주 근처에 취재진이 모여 있다. [안철민 동아일보 기자]

동방명주 사건으로 돌아가 보자. 국내 언론은 별다른 비판적 언급 없이 그 식당이 ‘비밀경찰서’로 사용됐을 수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그런데 그 명칭에는 큰 오류가 담겨 있다. 다른 나라의 사례에서 확인된 바, 그러한 해외 활동 거점에서 중국 정부가 하던 행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경찰’의 그것과 매우 다르기 때문이다.

필자는 여기서 새로운 용어를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외신에서도 ‘police station’ 같은 표현을 사용하고 있거니와, 지금까지 밝혀진 바에 따르면 비밀경찰서를 운영하는 주체는 중국 공안이다. 공안은 흔히 한국의 경찰과 유사한 무언가로 여겨지므로, 공안의 활동을 위해 해외에 설치된 활동 기지를 ‘경찰서’라 부르는 것이 논리적으로 잘못됐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속에 담긴 내용을 곱씹어보면 그러한 ‘비밀경찰서’를 ‘경찰서’라고 불러서는 안 된다는 점 또한 자명하다. 스페인에 본부를 둔 국제인권단체 ‘세이프가드 디펜더스’가 폭로한 바, 중국은 한국을 비롯한 53개국에 102개의 비밀경찰서를 개설했다. 그들의 주된 역할은 해외로 도주한 중국 반체제 인사들을 본국으로 돌려보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한 행위를 했다는 사실은 심지어 동방명주의 대표 왕하이쥔 씨 역시 부정하고 있지 않다. 그는 지난해 12월 31일 그 식당에서 1인당 3만 원의 참가비를 받는 ‘비밀경찰서 진상규명 설명회’를 열어 자신의 의견을 제시했다. “질병 등 돌발적 상황으로 죽거나 다친 중국인이 귀국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고 밝힌 것이다.

이 해명만으로도 충분히 논란이 되고 남는다. 해외에서 죽거나 다친 자국민을 보호하고 귀국을 돕는 것은 어디까지나 영사관의 역할이지 일개 식당에서 ‘도울’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요컨대 왕하이쥔은 자신이 중국의 법체계를 어지럽혔거나 그것을 넘어서는 어떤 활동을 해온 사람이라고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전신마비나 정신질환 등 질병이 있는 경우 중국에 보낸다”며 “정확하진 않지만 10명 정도를 돌려보냈다”는 설명을 곱씹어보면 더욱 이상하다. 왕하이쥔의 ‘도움’을 받아 중국으로 돌아간 최소 10명 정도의 사람들은 온전한 육체와 건강 상태가 아니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의 해명이 사실일 수도 있다. 하지만 오직 말로만 이루어진데다가, 그 말의 앞뒤가 매끄럽게 맞지 않는 설명을 우리가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이유는 없다.

그러니 다른 가능성을 고려해 보자. 가령 귀국한 이들이 동방명주의 도움을 받던 ‘도중’에 어떠한 의학적 상태에 빠졌다고 가정해 본다면 어떨까. 그것은 그 ‘경찰서’에서 벌어진 일이 퍽 끔찍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극단적 상상을 하자면,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경찰 수사관들이 서울대생 박종철을 상대로 저질렀던 것과 유사한 일이 벌어졌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6월 항쟁 34주년을 맞은 2021년 6월 10일 서울 용산구 옛 남영동 대공분실 509호에 박종철 열사의 추모 공간이 마련돼 있다. 509호는 박종철 열사가 경찰 고문을 받다 숨진 조사실이다. [동아DB]

6월 항쟁 34주년을 맞은 2021년 6월 10일 서울 용산구 옛 남영동 대공분실 509호에 박종철 열사의 추모 공간이 마련돼 있다. 509호는 박종철 열사가 경찰 고문을 받다 숨진 조사실이다. [동아DB]

권력과 싸워 민주주의 쟁취한 나라

대한민국은 시민들이 권력과 싸워 직선제 민주주의를 쟁취한 나라다. 그 투쟁의 과정에서 가장 뜨거운 불꽃이 솟아오르게 된 기폭제가 바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다. 학생들이 맨날 데모하는 게 마음에 안 들 수도 있고, 사회가 이렇게 시끄럽고 혼란스러워서는 안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경찰이 사람 붙잡아놓고 때리고 물고문 하다가 죽이는 그런 일은 없어야 한다는 온 국민의 합의, 그것이 민주국가 대한민국을 탄생시킨 ‘결정적 사건’이었다.

1987년 이후의 대한민국과 대척점에 있는 장소를 단 하나 꼽자면 바로 남영동 대공분실일 것이다. 한국인은 그런 ‘경찰서’를 용납하지 않는다. 그런 일이 벌어지는 곳을 ‘경찰서’라고 부르는 것은 우리의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이다. 혹시라도 우리 영토 내에서 타국이 그런 목적의 공간과 시설을 마련해 운영했다면, 그것은 한국인 전체를 모욕한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다.

지금 드러난 것만으로도 우리에게는 분노할 이유가 있다.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자존심을 되찾아야 한다. 방첩 기관을 비롯한 정부가 동방명주 사건의 실상을 낱낱이 파악하고 국민에게 가능한 소상히 알려야 할 것이다.


노정태
● 1983년 출생
● 고려대 법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석사
● 前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
● 저서 : ‘불량 정치’ ‘논객시대’ ‘탄탈로스의 신화’
● 역서 : ‘밀레니얼 선언’ ‘민주주의는 어떻게 망가지는가’ ‘모던 로맨스’ 外



신동아 2023년 1월호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철학 basil8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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