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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곳에 가고 싶다

우린 아직도 원시림에 갇혀 있다

‘지슬’ ‘비념’과 제주도

  • 글 · 오동진 | 영화평론가 사진 · 김성룡 | 포토그래퍼

우린 아직도 원시림에 갇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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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지슬’ 촬영지인 제주 서귀포시 안덕면 동광리 큰넓궤. 제주도 4·3사건 때 동광리 주민들이 2개월 동안 은신해 살았다는 이곳엔 인적이 없다. 동굴 안 넓은 터가 있다는데도 들어가기가 두려워진다. 아직 4·3의 원혼들이 살고 있을 것 같다. 그건 아직도 4·3 문제가 깔끔하게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제주의 바다는 사람을 덮치지 않는다. 어떤 바다가 그럴까마는, 제주는 더욱 그런 느낌을 준다. 여기 바다는 사뭇 다르다. 기이한 공존의 느낌 같은 것? 공항에서 내려 해안도로를 따라 달리다 보면 휙휙 지나치는 오른쪽 해변이 ‘나는 지금 너와 함께 달리고 있어’라고 얘기하는 듯하다(노선을 애월을 지나 중문과 서귀포 쪽으로 잡았다. 성산일출봉을 찍을 수 있을까, 우도는 어떻게 하지, 거기는 포기해야 하는 거 아냐, 노선을 정하자고 노선을, 인생에선 노선이 중요해… 등등이 차 안에서 포토그래퍼와 나눈 대화다).
부산의 해운대 해변이나 전남 해남의 해변은 좀 다르다. 해운대 남동해의 차디차고 넓은 바다는 사람을 좀 밀어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오지마, 위험해’라고 얘기한다. 해남의 해변에서 바다를 바라보면, 거기는 사람을 좀 껴안아주는 것 같다. 눈앞에 듬성듬성 떠 있는 작은 섬들 때문인데 그래서 바다가 딴 곳보다는 따뜻하다는 느낌을 준다. 그렇지만 제주의 바다처럼 관조(觀照)하는 것 같은 이미지는 아니다.
여기 제주의 바다는 당신이 어디를 가든 늘 따라다니며 챙겨주되, 잔소리는 하지 않는, 지적이고 세련된 여성처럼 느껴진다. ‘아하, 그래서 이렇게 마음이 설레는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늦은 나이에 연애하는 기분이 들게 해주기 때문이다.

이어도, 陰心을 자극하는 섬

제주의 영화를 생각하면서 가장 먼저 마라도(馬羅島)를 떠올렸다. ‘그래, 마라도를 꼭 갔다 와야겠어’라고 되뇌기까지 했다. 국토 최남단에 있는 섬이라서 가고 싶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그건 이어도(離於島)를 생각해서였다. 전설의 섬 이어도. 이름처럼 멀리 떨어진, 그래서 격리된 느낌의 섬. 아틀란티스처럼 바닷속으로 가라앉았다는 섬. 섬사람들의 욕망도 그때 한꺼번에 가라앉았다지….
이어도는 멀다. (모슬항을 기준으로) 마라도가 뱃길로 약 11km, 중간에 있는 가파도는 5.5km밖에 안되니까 150km쯤 떨어진 이어도는 아주 멀리 있는 섬인 셈이다. 그래서 사람들의 음심(陰心)을 자극했는지도 모른다. 과연 그곳엔 누가 살고 있을까. 무엇을 하고 있을까. 뭍에서 하지 못한 일을 저곳에서는 다 저지르고 살 수 있지 않을까.
1977년에 만든 김기영 감독의 ‘이어도’는 이청준 작가의 중편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이청준은 상상력이 뛰어난 데다 그것을 이야기로 엮어내는 데 탁월한 필력을 가진 인물이다. 영화 쪽 얘기로 하면 스토리텔링이 뛰어났던 거다.
그의 소설을 영화로 만들면서 김기영은 자기 식의 독특한 화법으로 치환했다. 김기영은 미술로 얘기하면 살바도르 달리 같은 감독이다. 1920, 1930년대로 얘기하면 루이스 브뉘엘 같은 감독이 떠오르고, 현대로 옮겨 오면 미국의 데이비드 린치 같은 인물이다. 그는 정상이 아닌 생각을 갖고 있었고, 정상이 아니기 위해 애쓴 작가형 감독이다. 그의 초현실주의적 사고방식, 그로테스크한 이미지, 난해한 주제의식은 두고두고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다. “그의 영화가 황당무계하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역설적으로 세상이 황당무계하다는 걸 깨닫지 못해서일 수 있다”고, 역시 천재 감독이던 하길종은 말했다.
영화 ‘이어도’는 건설회사 부장이 제주도에서 리조트를 짓기 전에 도민들과 마찰을 피하기 위해 일종의 홍보 이벤트를 벌이다 겪는 일을 담았다. 그 이벤트가 바로 이어도 찾아내기 같은 ‘짓’이다. 건설부장은 지역 기자라는 사람에게서 항의를 받게 되고, 그와 바다에서 술자리를 같이하다가 아침에 깨어보니 뱃머리에서도, 그 어디에서도 그를 찾아낼 수 없게 된다. 영화는 이 남자가 결국 이어도로 가버린 것처럼 암시를 준다.

곁을 내주지 않는 바다

영화 ‘이어도’에서 전개되는 이야기를 두고 도대체 무슨 얘기냐고 물어보는 것은 잠시 실례하는 일이다. 영화는 종종 불문(不問)이다. “인간의 몸에서 나는 피는 붉은색이 아니고 검은색”이라고 주장한 김기영에게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묻는 것과 같은 일이다.
세상의 모든 일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라면 영화 ‘이어도’는 ‘끔찍한’ 영화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라면 이어도의 존재, 무엇보다 그 역사적 신비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아마도 그렇지 않을 것이다. 신화와 전설은 이성이 아닌 직관의 서사다. 세상은 이성과 직관이 씨줄날줄로 얽히고설키며 이어나간다.
그러나 세상의 이치를 안다는 것은 수사학에 불과할 수 있다.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은 어떤 때는 이성으로도 직관으로도 난망일 때가 적지 않다. 모든 문제는 마라도 때문에 시작됐다. 모든 일정이 마라도로 가는 뱃길 때문에 꼬이게 됐다는 얘기다.
마라도행 유람선을 예약하는 과정 자체가 불안했다. 10시 반경에 출항할 배를 두고 전화 저쪽에서는 하루 전부터 계속 애매한 태도만 전했다. 배가 뜰지 안 뜰지는 5분 전까지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건, 좀 잘못하면 그러잖아도 빠듯한 일정을 조정할 여유가 없어진다는 의미였다. 마라도로 가기 위해 모슬항에서 기다렸다가 다행히 배가 떠서 출항하면 괜찮지만, 그렇지 않으면 스케줄 상당 부분을 긴급히 조정해야 할 상황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여기’와 다른 ‘저기’

아니나 다를까. 첫날, 마라도 배의 선장은 사람들이 선착장에 줄을 길게 서 있는 와중에야 ‘출항하지 않는다’고 통보했다. 사람들의 긴 한숨소리, 수군대는 소리, 심지어 약간은 허탈해하며 웃는 소리가 터져나왔다. 온갖 첨단 장비가 발달해 있고 우주 상공까지 오고 가는 시대에 고작 5~6km 뱃길을 갈 수가 없다니. 어쩌면 바로 그런 점이야말로 자연의 무서움일 것이다. 웬만해서는 몸을 허락하지 않는 정절의 여인네처럼 자연은, 바다는, 줄곧 곁을 허락하지 않는다. 성급하게 달려들수록 바다는 성질을 부리며 사람들을 밀어낸다.
발길을 서귀포시 안덕면 동광리로 급히 옮긴 건 겨울 낮 짧은 일광 때문이기도 했다. 제주 섬은 육지보다 해가 빨리 지는 것처럼 느껴진다. 물론 사실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다만 마음이 급하면 해도 급하게 기우는 법이다. 동광리 ‘큰넓궤’는 어두워지면 갈 수 없는 곳이다. 사진 찍기도 적당치 않을 것이다. 마음이 조급해지는 건 당연했다. 흔들리는 마음으로 차를 몰았다. 공항에서 빌린 작은 경차가 꽤나 울퉁불퉁한 산길 아닌 산길을 제대로 견딜 수 있을까도 걱정이 됐다.
그러나 마음 한편으로, 제주는 이렇게 다녀서는 안 될 곳이라는 자책이 컸다. 솔직히 주변 풍광이 자꾸 발길을 멈추게 한다. 뭍에서는 보지 못하는 장관이 펼쳐진다. 제주는 딱 하루, 아니 반나절만 있어도 ‘여기’는 ‘저기’와 아주 다른 곳이라는 자각을 하게 만든다. 맞다. 오랜 세월 동안 어쩌면 제주는 제주였을 뿐이다. 여기는 거기, 즉 한반도와 거리를 갖고 살았을 것이다. 사실 그들과 말도 다르다. 소통하기가 쉽지 않다. 길가 나무조차 완전히 다른, 이국산(産)이다.
그러니 여기 사람들은 뭍의 사람들, 일명 ‘육지 것’들이 와서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을 받아들이기도, 이해하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그들만의 삶에 자꾸 시비를 거는 것처럼 느껴졌을 터다. 원래 이름이 탐라(耽羅)인 이 섬은 고려조 거의 마지막 왕조에 와서야 제주로 이름이 바뀌었다. 아마도 그 전까지는 ‘육지의 왕조’ 처지에서 봤을 때는 계륵(鷄肋) 같은 존재가 아니었을까 싶다. 갖기는 힘들고 버리기는 너무 아까운. 아니 용인하기 힘든.
그런 판단은 탐라를 업신여기는 것이 절대 아니다. 그만큼 통제하기가 힘들었을 것이고 이쪽 지역민의 남다른 특이성이 있을 것이라는 얘기다. 그때는 지금보다 언어가 더 이질적이었을 것이고 대화가 거의 통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그 모든 얘기는 곧 이곳 제주 원주민들은 육지 사람들을 ‘정복자’로 받아들였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는 것이기도 하다. 제주는 제주대로, 제주만의 방식으로 평화롭게 살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육지의 생활방식과 관습과 제도를 따르라고 강요당한다. 거기엔 물리적 충돌에 앞서 정서적 충돌이 더 강하게 대두됐을 것이다. 그 모든 것이 쌓이고 쌓여 제주도 4 · 3사건의 도화선이 됐을 가능성이 높다.





원혼들의 동굴

제주에 도착하고 나서 새삼 느낀 건 먹구름의 존재다. 하늘이 온통 어둡다. 구름이 여기저기서 시시각각으로 몰려드는데, 분명 그건 그들을 부르는 바람이 있기 때문이다. 기온은 그리 낮지 않지만 사위가 차갑게 느껴진다. 큰넓궤로 가는 길목을 두고 차로 갈 수 있을지를 몇 번이나 고민한 끝에 결국 입구까지 몰고 가는 데 성공했다.
영화 ‘지슬’의 촬영지라는 푯말이 외롭게 반긴다. 외로운 건 평일이라 그런 것만은 아닐 것이다. 4 · 3사건 당시 동광리 주민들이 2개월 동안 은신해 살았다는 큰넓궤. 동굴 주변에는 아무런 인적이 보이지 않는다. 바람이 갈대를 흔드는 소리만이 주변을 에워싸고 있다.
70년 가까운 세월 이전에 이곳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공포를 이겨냈을까. 동굴 밖을 나가면 그것이 사람이든 짐승이든, 다 쏴 죽이던 또 다른 ‘큰 짐승’들이 날뛰고 있었다. 왜 ‘육지 것’들은 평화로운 이 땅에 와서 멀쩡하게 잘 살아가던 사람들을 학살한 것일까.
공산주의가 이곳 제주 땅에까지 뿌리 깊숙이 파고든 것일까. 그게 진짜 이유였을까. 정말 그랬을까. 저 멀고 먼 바닷길을 건너 이념과 체제가 둥실둥실 떠내려와 사람들을 다 물들이고, 그래서 이 섬마저 적화통일 후방기지로 활용하고, 뭐 그런 정교한 생각을 하고 그랬을까. 그 순박했던 사람들이? 그것도 1948년이라는, 현대화가 덜 된 시기에? 큰넓궤 입구에서 바람을 맞으며 서 있으면 그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주변에 사람은 아무도 없고, 성인 한 사람 몸이 가까스로 들어갈까 말까 하는 입구 주변에서 낑낑대다가 갑자기 무섬증이 일어나 밖으로 튀어나오게 된다. 거기까지만 참으면 동광리 주민들이 함께 살았다는, 동굴 안 넓은 터를 만나게 될 터이지만 이상하게도 들어가기가 두려워진다. 아직 4 · 3의 원혼들이 살고 있을 것 같은 느낌 때문이다. 그건 아직도 4 · 3의 문제가 깔끔하게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직도 많은 사람은 4 · 3을 ‘빨갱이’들의 준동이었다고 본다. 그런 생각은 언제나 없어지게 될까.
4 · 3과 관련된 영화는 최신작으로 2편이 있다. 오멸 감독의 ‘지슬’과 임흥순 감독의 ‘비념’이다. 하나는 독특한 느낌의 드라마(feature film)이고, 또 하나는 역시 독특한 느낌의 다큐멘터리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두 개가 뒤바뀐 것 같은 느낌이다. 앞의 것이 다큐멘터리이고 뒤의 것이 극영화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오멸은 임흥순, 임흥순은 오멸

그만큼 두 영화가 남다르다는 것이다. 그 둘이 이룬 예술적 성과가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두 작품은 모두 두 장르에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지점에 서 있다. 큰넓궤 입구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야 탄식 같은 깨달음의 신음이 터져 나온다. 아, 이제야 오멸의 영화를 알겠어. 이제야, 이제야 ‘비념’이 얘기하려던 것을 알겠어.
2015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위로공단’이라는 작품으로 은사자상을 탄 임흥순은 이후 종종 오멸과 비교됐지만 둘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제주도 영화를 내놨다. 그때부터 “오멸은 임흥순이고 임흥순은 오멸이다”라는 얘기를 들었다. 영화의 내러티브 구성이 미술적 이미지의 차용을 통해 이루어져 있다는 점에서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두 사람 다 비슷한 시기에 4 · 3을 다룬 영화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오멸의 ‘지슬’은 기이한 판타지로까지 느낌을 극대화한 작품이다. 잔혹한 학살 현장을 다룬 작품이 심지어 아름다울 수도 있다는 이 전복(顚覆)적 미학의 성취는 사람들에게 역사를 새롭게 깨우치는 계기가 됐다.
임흥순은 ‘비나리’라는 이름으로 더 알려진 비념, 곧 제주 토속 굿의 형식과 내용을 모티프로 4 · 3의 상황을 다이내믹한 관념으로 추론하고 연역하게 만든다. 임흥순의 이 역작이 놀라운 것은 전통 굿의 이미지를 현대미술의 모더니즘적 분위기와 결합시키고 있다는 점, 1947년에 벌어진 오욕의 역사를 현재의 강정마을 사태로 통합하고 있다는 점이다.
두 작품은 부분의 이야기를 전체의 이야기로, 하나의 사건을 큰 역사의 흐름으로 이어지게 함으로써 두 사람 모두 역사의 실체를 얼마나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으며 그 관념의 직조 또한 대단한 수위라는 것을 짐작하게 한다.
‘비념’은 2014년 제1회 들꽃영화상 다큐멘터리 부문과 신인감독상 부문 후보에 올랐다. 하지만 대상은 오멸의 ‘지슬’이 받았다. ‘지슬’이냐 ‘비념’이냐를 놓고 비평가들과 심사위원들은 상당한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지만 과거의 참혹한 역사를 극적인 순간들로 승화시켰다는 점에서 오멸의 노력이 조금 더 평가받은 셈이 됐다.
오멸이든 임흥순이든, ‘지슬’이든 ‘비념’이든 제주도의 이곳 안덕면 동광리 외진 오솔길에 서 있으면 사람들 스스로 문지방을 넘었다고 생각하게 된다. 마음의 빚을 일부나마 갚았다는 느낌도 든다. 그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겠는가. 그래도 역사의 현장에서 과거의 일들을 체험함으로써 사실을 사실 그대로 바라볼 ‘시력’을 얻게 된다는 건 뒤늦었지만 아주 잘한 일에 속한다.



영화도 현장이다!

여기 와 보면 그동안 4 · 3을 두고 숱하게 이어진 왜곡의 보도와, 왜곡의 교육과, 왜곡의 선전이 얼마나 잘못된 것이었나를 자연스럽게 꿰뚫게 된다. 역사는 현장이다. 무조건 그곳에 가봐야 통시(通時)의 깨달음이 온다. 이번 여행길로 한 가지 새삼 알게 된 사실은 영화도 때론 현장이란 점이었다. 영화를 정확하게 이해하려면 종종 스크린의 산을 넘어갈 필요가 있다. 그럼으로써 스크린에 더 깊숙이 들어가 작가의 마음속 심산유곡을 헤매고 다닐 필요가 있다. 그래야 작품을 통해 감독이 해내고자 한 성취의 메시지가 저 멀리서 들려오기 시작한다.
예상한 대로 제주도의 밤은 갑자기 찾아오는 듯했다. 큰넓궤의 오솔길을 빠져 나오는 길은 짙은 어둠에 빠져버렸다. 자,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4 · 3의 어두움에서 우리는 과연 어디를 향해 가야 하는가. 마음이 가라앉는다. 중간쯤 어디에선가 헤매던 길에서 만난 이름 없는 무덤 때문에 더욱 그랬을 것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유도 모르고 죽어 나갔을까. 저 이름 없는 무덤 말고도 이름 없는 죽음이 얼마나 더 많을 것인가. 왜 우리 역사는 이렇게도 핏빛 역사에 사로잡혀 있는 것일까.
그런데 그것이 지금 여기뿐이겠는가. 시리아에서는 아사드 정권이 30만 명의 자국민을 학살하고도 버젓이 정권을 쥐고 있다. 인도네시아 발리에서도 50년 전의 학살 사건이 여전히 청산되지 않고 있다. 아프리카에서는 제노사이드가, 중동에서는 IS 테러가, 남미에서는 툭하면 발생하는 수많은 납치 행위가 이어진다. 이성은 계속해서 발달하는 척, 문명이라는 게 더욱 더 발전하는 척하지만 인간은 여전히 원시림 속에 갇혀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근데 배가 뜰까?

한 사람은 취재를 하고 한 사람은 사진을 찍는다. 두 사람의 작업은 늘 그렇지만, 처음에만 재잘재잘대다가 각자의 일에 들어가면 입을 다물고 집중하게 된다. 한 사람은 상상을 하고 한 사람은 그 상상을 뷰파인더에 담는다. 무엇을 찍으라고 청하지도 않고 무엇을 찍어야 하냐고 묻지도 않는다. 둘은 그렇게 합을 이룬다. 그래서 결국은 이런 결론에 다다른다.
“배 안 고파? 우리 밥 안 먹어?”
오늘 밤은 서귀포에서 자게 될 것이다. 그전에 제주도에 오면 꼭 먹어야 한다는 고등어회를 먹을 것이다. 술도 한잔 하게 될까. 둘이서 말없이? 그리고 우리는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 다시 한 번 마라도로 갈 것이다. 근데 배가 뜰까. 바람이 이렇게 거센데? 고등어회를 먹을 수 있는지보다 더 궁금하고 걱정스러운 건 바로 그 점이었다.   
※제주 이야기는 다음 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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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오동진 | 영화평론가 사진 · 김성룡 | 포토그래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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