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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 DNA’ 내면화한 北 주민 끌어안아야

탈북 ‘통일학 박사’의 ‘결이 다른’ 통일 시선

  • 주승현 | 민주평통 자문위원, 정치학 박사(통일학) joosy3050@naver.com

‘저항 DNA’ 내면화한 北 주민 끌어안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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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에서는 유치원 이전부터 어린이에게 수령 찬양의 노래와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를 가르친다. 체제 존립의 구심점인 수령과 민족적 과제인 통일을 각각 정체성과 지향성으로 삼은 것이다.  
탈북민인 필자가 한국에 와서 정치학을 통해 분단과 통일을 공부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선택인지도 모른다. 비무장지대(DMZ)에서 북한 군인으로 근무하며 분단의 최전선을 목도했고, 휴전선을 넘어 한국에 와서는 현실을 통해 탈북자로서의 이물감을 맛보았다. 민족의 아픔은 차치하더라도 집요하게 내 삶을 괴롭히는 분단 트라우마와 분단적 정체성을 극복하는 길은 통일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공부했다.
‘통일’이라는 단어에 대한 한국 사회의 인식은 내 예상과 달랐다. 북한에서 시도 때도 없이 부른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는 지난 10년간 종교행사와 탈북민 친목모임에서 전체 합창으로 두 번 부른 게 전부다. 그것 말고는 노래방에 가서 혼자서 딱 한 번 부른 적이 있다. 내가 통일을 얘기할 때 어느 순간 내게 쏟아지는 불편한 시선이 있음을 간파했고 점차 그 의미를 깨달았다. 통일로 인해 왜 우리가 손해를 봐야 하느냐는 것이다. 소원의 목록이 좋은 대학, 좋은 직장, 좋은 배우자, 좋은 집, 좋은 삶으로 점철되는 살벌한 경쟁사회에서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 가사가 들어앉을 공간은 없어 보였다.



야누스의 두 얼굴, 통일  

통일을 소망한다 함은 한국 사회의 일원이 아님을 드러내는 잘못된 단대호(單隊號) 같았으나 개의치 않았다. 학부와 대학원 전 과정에서 분단과 통일 문제를 공부해 우리나라에서 손꼽아도 몇 안 되는 통일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통일을 들여다보고 얘기하는 것으로는 먹고살기가 어려워서인지 학위를 취득한 몇몇 선배마저 다른 분야와 직업으로 발걸음을 돌렸으나 나는 우직하게 통일을 붙잡았다. 그동안 공채로 여러 대기업에 입사했지만 꼬박꼬박 입금되는 월급보다는 ‘통일’이라는 단어가 주는 포만감이 훨씬 좋았다.
그러던 어느 날 통일이라는 단어가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통일 무용론과 통일 기피론이 사회에 만연하고 장밋빛 통일론은 현실 인식의 저급함과 허황함으로 치부된 것을 생각하면 이러한 상황만큼은 ‘정말 대박’이었다. 정부는 물론이고 정당과 시민사회단체, 언론과 종교뿐 아니라 기업과 개별적 시민의 입에서도 언제 그랬냐는 듯 통일이라는 낱말이 낯익고 친숙하게 오르내린다. 통일 관련 연구소의 이름과 세미나 소식을 하루가 멀다 하고 언론을 통해 접할 수 있으며 통일 관련 금융상품까지 등장했다.



갑작스러운 통일 붐

 왜 하필 지금 통일을 말하는가. 북한 주민을 위해서? 아니면 미완의 광복이 70년을 지나서? 영 틀린 말은 아니겠지만 작금의 문제에서 답은 ‘통일은 대박’이라는 표제에 있다고 본다. 굳이 에돌 것도 없다. 통일이 민족의 절대적이고도 신성한 의무이자 과제라는 명제 말고도, 전 세계가 직면한 위기와 혼돈의 시대에 성장과 변화의 동력과 출구를 우리는 통일과 북한 땅에서 찾으려 하기 때문이다. 비단 성장이 지체된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 안보, 종교 등 전 영역을 포함한 지정학적·지경학적·지전략적 관점에서 통일은 한국에 성장의 유일한 활로이며 생존의 출구가 됐다.
그러나 통일이 한국에는 대박, 북한에는 초대박일 것이라는 논리가 우매한 것으로 실증될 가능성도 존재한다. 필자가 인식하는 분단은 부부의 생이별이자 부모와 자식 간 헤어짐이다. 그리움, 간절함이 통일을 소원하는 노래를 만들어냈을 것이다. 분단 70년이 경과하면서 1000만 이산가족은 점차 사라져가고, 통일 노래가 울려 퍼지는 가정도 찾아보기 어렵다. 비록 한 민족이지만 이념과 제도뿐 아니라 생각과 언어, 체형과 문화까지 딴판인 경우가 많아 이제는 서로를 알기 위해 강의를 듣고 사전을 뒤적거려야 한다.
휴전선을 넘어오기 전 필자는 DMZ에서 국군이 내보내는 심리전 방송을 제압하는 요원으로 6년간 근무했다. 한국에서 보내는 대북 확성기 방송을 그 시간만큼 들으면서 복무한 것이다. 그때는 다른 건 몰라도 한국의 정세를 파악하고 일상적인 서울 말투를 쓰는 일에는 자신 있다고 확신했다.
하지만 그런 확신은 귀순한 지 하루를 넘기지 못했다. 그날 저녁 KBS 뉴스를 보는 순간 알아들을 수 있는 단어가 거의 없었던 것이다. 뉴스, 앵커, 야당과 여당, 슈퍼마켓과 같은 일상적 용어조차 처음 접하는 것이었다. 머릿속이 복잡하고 혼란스러워 10분 만에 TV를 꺼버렸다. 그렇다면 내가 DMZ에서 알아들은 내용은 무엇이란 말인가. 나중에 알고보니 대북방송은 북한 주민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용어만 선택해 내보낸 것이었다.





서로 얼마나 알까?

탈북민이 한국에 와서 느끼는 언어 장벽은 생각보다 심각하다. ‘개구쟁이’ ‘누룽지’ ‘서비스’ ‘치킨’이 북에선 ‘발개돌이’ ‘가마치’ ‘삯발이’ ‘닭유찜’이다. 사선을 넘어왔지만 언어조차 이해 못해 학교 수업을 따라갈 수 없던 상황을 두고 당시 나는 또 다른 사선에 서 있다고 생각했다. 어떤 탈북민 친구는 이런 현실을 비관해 자살 시도까지 했을 정도다.
이러한 경험을 한 터라 나는 지난해 탈북 학생의 언어 이해를 돕고자 남측 말을 북측 말로 전환해주는 스마트폰 앱 개발에 참여했다. 남북한 언어 번역 앱인 ‘글동무’를 만들면서 든 생각은 그동안 한국 사회에 살면서 또 하나의 언어를 새로 배웠다는 것이었다. 하나의 민족을 규정하는 기본적 부분인 언어마저 이럴진대 다른 분야는 오죽하랴.
한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도 사정은 비슷하다. 얼마 전 공직자를 대상으로 한 강의 막간에 전날 다녀온 탈북민 정착시설 하나원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하나원의 탈북민과 대화가 안 통해 그곳 직원들이 통역을 해줬다며 ‘문명사회에 하루빨리 적응해야 한다’는 식의 대화가 오가는 걸 보고 우리 사회의 다소 일방적이고 편향적인 의식도 교정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물론 한국에 자발적으로 입국한 이들이 이 사회에 적응해야 한다는 데는 동의한다. 하지만 탈북민의 한국 사회 적응만큼이나 그들에 대한 한국 사회의 이해도 중요하다. 통일국가에서 북한 주민에게만 한국으로의 일방적 동화와 적응을 강요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정치학과에 입학해 첫 수업에서 들은 피난민 출신 교수님의 말씀이 아직도 뇌리에 남아 있다. “대한민국에서 정치학의 중심과 목표는 분단 극복과 통일에 있다. 정치학도이든, 정치인이든 제1의 목표와 소명은 분단된 나라를 통일하는 것이다. 통일을 이루지 못한 채 아무리 국제사회에서 국가의 발전과 문명을 얘기해본들 분단 문제조차 해결 못하는 우리를 뒤에서 비웃는 현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에서 최고의 목표는 통일 민족국가를 세우는 것이어야 하는데도 우리는 이 중요한 과제를 묻어버리고 살아온 게 아닐까.  
통일학 박사인 필자에게 사람들이 진담 반, 농담 반으로 자주 묻는 것은 대개 통일이 언제쯤 될 것이냐다. 그다음은 ‘통일 후 잘나갈 직업’에 관한 것이다. 두 번째 질문에 답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지만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아무래도 신중해야 한다.   

통일 문제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누가 통일을 주도하고 책임지느냐는 것이다. 냉정하고 냉혹한 국제정치에서 분단국이 대등한 상황에서 합의통일을 이룬 사례는 거의 없다. 각각의 정부는 자신들의 사상과 체제로 통일하기를 고집하며, 이를 위해 힘의 주도권을 다투면서 통일을 이루려 하게 마련이다.



‘합의형 흡수통일’

남과 북의 현실도 매한가지다. 결국 우월한 체제와 제도가 입증된 정부가 다른 한쪽을 설득하면서 통일을 ‘주도’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서 ‘주도’와 ‘주체’는 엄밀하게 구분돼야 한다. 한쪽 정부가 다른 정부를 리드하며 통일을 ‘주도’할 수는 있지만, 통일의 ‘주체’는 남북한 모든 주민이어야 한다. 결국 통일은 각각 주권자로서 자신들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투표권을 가진 개인들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주체가 되지 못한 한쪽의 주민이 객체가 돼 자발적으로 이등시민으로 나앉을 리 만무하다.
통일의 방법도 마찬가지다. 여러 갈래의 방법론이 있지만 힘의 반영일 수밖에 없는 통일은 고결하고도 감성적인 수사로 채워진 통일 방안에 따라 진행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가변적이면서 역동적인 하나 됨의 과정에서 남북 주민의 자유의사가 반영되지 못한 비민주적이고 일방적인 경로를 통한 통일은 충돌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독일을 보자. “우리도 국민이다”라는 구호를 외치며 베를린 장벽 붕괴를 주도한 것은 동독 주민들이다. “우리는 하나의 민족이다”라는 슬로건으로 통일 정부 구성에 투표한 주체는 동·서독 주민 모두다. 합법적 방식과 민주적 절차를 통해 동독이 자신들보다 우월한 서독으로 자발적으로 편입한 독일 통일은 우리가 생각하는 흡수통일이 아닌 ‘합의형 흡수통일’로 보는 게 맞다.
동독 주민이 선택하고 서독 주민이 호응한 합의형 흡수통일의 성공 열쇠는 그 내용에 있다. 서독으로의 편입을 선택한 동독 주민에게는 통일국가에서 동등한 주체로 대접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있었고, 동독 주민을 받아들인 서독 주민은 독일 민족통일의 소망을 이뤄냄과 동시에 통일을 위해 경제적 희생도 감수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또한 새로운 통일국가를 통해 독일 민족이 새롭게 도약하겠다는 동·서독 주민 모두의 희망이 통일 과정에 오롯이 담겼다.
우리의 사정은 어떠한가. 통일을 주도한다면서도 주체인 남북 주민의 마음을 확보하려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특히 통일의 상대인 북한 주민은 아예 고려하지도 않는 듯하다. 과거 한국에 온 수십만 조선족 동포가 이등국민으로 차별받는 상황을 목격한 북한 엘리트들이 그것이 통일 후 자신들의 미래로 생각하고 북한 주도 통일에 더욱 극성이었다고 한다. 최근에는 적지 않은 엘리트가 탈북하지만 대다수의 목적지는 한국이 아니다. 미국, 중국, 유럽이 먼저이고 그다음으로 한국을 행선지로 택한다는 것이 엘리트 탈북민이 들려준 전언이다.


통일에 ‘통일’을 묻다

과거와 달리 남한 소식을 공공연하게 접하는 북한 주민이 신뢰하는 한국 관련 정보는 탈북민이 전해주는 소식이다. 하지만 지금 북한 사회에 이상한 소문이 떠돈다고 한다. 대다수가 적응에 실패한다거나, 차별과 편견이 만연하고 이기주의가 득세해 탈북민 상당수가 탈남해 해외를 떠돈다는 소문이 그것이다. 북한으로 되돌아간 탈북민이 이런 소문을 확인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해 한국에 입국한 탈북민은 1088명이다. 2006년 2000명을 넘긴 후 2900명까지 늘어난 2009년과 비교하면 크게 줄었다. 탈북민이 줄어든 이유에 대해 전문가들은 대체로 김정은 정권의 국경 통제 강화를 요인으로 꼽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김정일 정권 때도 국경 통제가 허술하지 않았다. 다양한 각도로 분석해봐야겠지만 7~8년 전부터 북한에 아사자가 발생하지 않고 있음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탈북민 대다수는 경제적 이유에서 탈북한다. 따라서 북한의 경제상황이 나아진다면 목숨을 걸고 탈북할 이유가 없어진다.
또한 한국에 정착한 탈북민의 어려운 삶에 대한 얘기가 전해지고, 특히 먼저 정착한 이들이 가족, 혹은 친척의 탈북을 만류하고 있다. 이러한 사정을 읽은 북한 당국은 최근 ‘우리민족끼리’ 등의 사이트를 통해 현재 북한이 천지개벽했으며 돌아오면 모든 것을 용서해준다는 메시지를 계속 내보낸다. 빈곤과 차별, 박탈의 상처가 가득한 탈북민 실업자가 홀로 집에서 소주를 들이켜다가 북한의 유혹을 접하면 마음이 흔들릴 수 있다.
노르웨이 출신 평화학자 요한 갈퉁은 “전쟁이 끝난다고 평화가 찾아오는 게 아니고, 그다음에 찾아오는 것은 전쟁보다 더 잔인한 것일 수도 있다”고 했다. 분단이 끝나고 한반도에 도래할 통일은 또 다른 갈등의 시작일 수도 있다. 지리적·물리적 분단을 넘어 이념적 분단으로 서로를 적대하고 증오해온 춥고 어둡던 분단사와 불신의 악순환이 통일로 인해 거칠게 표면화할 공산이 크다. 통일의 과제는 통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통일로부터 시작될 수 있다고 필자가 주장하는 까닭이다. 통일에 ‘통일’을 물어야 하는 것이다.
3만 명도 안 되는 탈북민은 한국 인구 5100만 명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는 이들마저 껴안지 못하고 있다. 자발적으로 한국에 들어온 탈북민의 사정이 이러한데 한국에 대해 적대감을 갖게 하는 교육을 받고 성장한 북한 주민이 통일국가에 동화되기란 더욱 쉽지 않을 것이다. 우리 사회가 2500만 북한 주민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까.



“분단 100년 안 되도록…”

통일 문제를 공부하면서 필자는 북한 주민의 정체성을 탐구하거나 통일 이후를 대비한 연구를 거의 보지 못했다. 일방이 주도하는 통일이 진행된다면 타방이 갖는 지역적, 저항적 정체성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일 것이다. 특히 북쪽 지역이 갖는 역사적 정체성은 저항적 정체성과 그 궤를 같이한다. 몽골, 거란족, 수나라와 당나라 대군을 비롯해 5000년 동안 약 1000회의 침략을 물리친 저항의 후예가 북쪽 주민들이다. 그뿐만 아니라 북한은 근현대사의 주입식 교육을 통해 꾸준하게 저항의 정체성을 주조하고 내면화했다. 이를테면 미국 상선 제너럴셔먼호를 대동강에서 불태운 1866년을 근대사의 기점으로 한다든지, 일본 식민지 시기의 저항조직 ‘타도제국주의’를 결성한 1926년을 현대사의 기점으로 보는 시각은 우리의 근현대사와는 근본이 다르다.
어디 그뿐인가. 6·25전쟁을 미국과 추종세력의 침략전쟁으로 규정한 것, 체제 존립의 70년을 제국주의의 봉쇄와 압살에 대항한 역사로 인식하는 것은 사실관계를 떠나 북한 주민의 의식과 신체에 저항의 정체성이 오랫동안 내화·강화돼왔음을 말해준다. 북한 당국은 1월 6일 수소폭탄 실험에 성공했다고 주장하면서도 ‘미국의 침략’ 운운하며 저항의 정체성을 주민들에게 강조했다.
만약 통일 이후 작금의 한국 사회에서 보이는 것과 같은 차별과 배제가 계속해 나타난다면, 북한 주민이 천민자본주의의 탐욕을 목격한다면 이에 대한 반발과 거센 저항이 충돌과 재분단으로 불거져 대박의 미래를 한순간에 파괴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필자는, 통일의 시기는 민족 구성원 모두가 진인사대천명의 자세로 임할 때가 적기(適期)이며 그 지난한 과정에서 남북한 주민이 동등한 주체가 될 때 진정한 대박을 이룰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통일만이 모두가 살길이라고 주장하고 싶다. 분단 환경이나 분단적 사고 혹은 통일 준비의 미비 등이 통일 의지를 침잠케 하는 원인일 수는 있으나 그것이 더욱 나은 미래와 삶의 터전을 약속하는 통일의 목적성을 반감하는 절대적 이유가 될 수는 없다. 통일은 최후의 분단국가라는 오명에서 벗어나 민족이 온전히 회복되고 또한 우리가 지금까지 넘지 못한 부강한 선진국으로 가는 문턱을 넘게 할 유일한 출구다.
따라서 나는 모처럼 속력이 붙은 통일에 대한 관심과 열망이 올해에도 계속돼 통일의 그날까지 이어지기를 희망한다. 통일은 겉치레가 아니라 소중한 것을 더 이상 잃지 않으려는 절실함이다. 통일을 외면하다가는 민족의 웅비와 미래를 보장받을 수 없을 것이라는 점을 아프게 생각해야 할 때가 지금이다. “분단 100년이 되지 않도록 노력합시다.” 지인들과 나눈 올해 신년인사다. 

※필자는 최연소 탈북인 박사다.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 통일부 통일교육원 및 명지대·서울신학대 강사로 있다.




신동아 2016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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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승현 | 민주평통 자문위원, 정치학 박사(통일학) joosy305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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