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희 항소심 재판장, 판결 8일 후 극단적 선택
유족 “한두 달 동안 거의 잠 못 자고 일해”
불면증 심각…재판 지장 우려해 수면제 복용 않아
“여러 스트레스에 업무 부담 더해지며 임계점”
“수십 년 재판해 온 사람이 단순 과로로?” 목소리도
신중론 속 “법원 내부 갈등, 판사 자긍심 상처 가능성”

윤석열 전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통일교 금품 수수 등 혐의 사건 항소심 재판장을 맡았던 신종오 서울고법 부장판사가 5월 6일 서울 서초구 법원 청사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사진은 해당 재판 당시 모습. 채널A 뉴스 갈무리
유족 “한두 달 동안 거의 잠 못 자고 일해”
고(故) 신종오 서울고법 부장판사(55·사법연수원 27기)의 극단적 선택과 관련해 판사 출신의 사법연수원 동기 A변호사는 5월 11일 이렇게 말했다. 4월 28일 윤석열 전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사건 항소심을 맡았던 고인은 5월 6일 오전 1시경 서울법원종합청사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현장에서 발견된 유서에는 “죄송하다. 스스로 떠난다”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김 여사 재판과 관련한 언급은 없었다고 한다.‘신동아’가 서범수 국민의힘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119 신고 녹취록에 따르면, 고인은 5월 5일 밀린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휴일인 어린이날에도 오전 일찍 택시를 타고 서울중앙지법으로 출근했다. 평소 아내와 2~3시간 간격으로 연락을 주고받았지만, 이날은 오후 5시 이후부터 카카오톡 메시지를 확인하지 않았다. 택시비 결제 이후 별다른 카드 사용 내역마저 나타나지 않자 이상함을 감지한 가족은 법원에 연락을 취했다. 법원 당직자들이 사무실을 찾았지만 컴퓨터와 사무실 불만 켜져 있었을 뿐 고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불안함을 느낀 유족은 5월 6일 오전 0시 13분경 119에 신고했다.
유족은 “자살 우려가 있느냐”는 119 측 물음에 “남편이 ○○○ 항소심 재판장이어서 한두 달 동안 거의 잠을 못 자고 계속 일했다”며 “걱정이 많이 된다”고 말했다. 고인의 인상착의를 전달받은 119 측은 오전 0시 19분경 위치 추적에 착수했다. 이후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오전 1시께 서울고법 청사 저층부 옥상 야외 화단에서 고인을 발견했다. 경찰은 고인이 5일 오후 5시 5분 이후 옥상으로 올라간 뒤 추락해 숨진 것으로 보고 있다.
고인은 서울 상문고와 서울대 사법학과를 졸업한 뒤 1998년 사법연수원 27기를 수료했다. 같은 기수에는 오동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과 이원석 전 검찰총장,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 등이 있다. 의정부지법에서 처음 법복을 입은 뒤 서울중앙지법·울산지법·서울서부지법을 거쳤고, 법원 내 엘리트 코스인 대법원 재판연구관도 지냈다. 나서기보다 묵묵히 맡은 일을 하는 스타일이었으며, 업무의 완결성에 대해서는 유독 책임감이 강한 법관으로 평가받았다.
법조계는 갑작스러운 비보에 충격을 감추지 못하는 분위기다. 빈소를 찾은 동료들은 침통해하며 유족을 위로한 것으로 전해졌다. 장례식장에 모인 사법연수원 동기들 사이에서는 사망 원인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것 자체를 조심스러워하는 분위기가 강했다고 한다. 200여 명이 참여한 동기 카카오톡 단체대화방에서도 관련 언급은 없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고인의 주변인들은 “별다른 전조를 느끼지 못했다”며 “뉴스를 보고서야 소식을 접했다”고 입을 모았다. 일부는 되레 기자에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냐”고 되묻기도 했다.
고인과 사법연수원 시절 같은 반이었고, 이후로도 인연을 이어온 B변호사는 “과로 때문에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이야기가 나오지만, 수십 년간 재판 업무를 해온 사람인데 단순히 그 이유였을까 싶다”며 “종오는 심성이 매우 여린 친구였다.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무거운 문제를 홀로 짊어지고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사람마다 각자 짊어진 사정이 있지 않으냐”며 “어떤 문제인지는 알 수 없지만, 본인에게는 감내하기 어려울 만큼 크게 느껴졌던 것 같다”고 조심스레 말했다.
신중론 속 “법원 내부 갈등, 판사 자긍심 상처 가능성”
일각에서는 김건희 여사 재판을 둘러싼 부담이 고인에게 압박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을 거론하고 있다. 고인은 김 여사의 자본시장법 위반,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 등 혐의 항소심에서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공모 혐의를 일부 유죄로 뒤집었다. 수익에 대한 상당한 확신이 없었다면 거액의 자금을 맡기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또한 통일교 측으로부터 청탁 목적으로 802만 원 상당의 샤넬 가방을 받은 혐의도 1심과 달리 유죄로 판단했다.다만 해당 판결로 인한 직접적 부담이 이번 사태의 원인으로 보긴 어렵다는 평가도 나온다. 판사 출신 A변호사는 “개인적으로 김건희 여사 사건 판결은 충분히 납득 가능한 결론이었다”며 “1심 판단이 일부 뒤집혔으나 관점에 따라 달리 볼 수 있는 문제이며, 상식이나 법리와 동떨어진 판단은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고인이) 일부 집단으로부터 비난을 받긴 했겠지만, 이는 판사라면 늘상 겪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법원 안팎에서는 고인이 서울고법 형사15-2부 재판장으로 부임한 이후 업무 부담이 급격히 늘었다는 말도 나온다. 서울고법 형사1부가 이른바 내란 사건 전담 재판부로 지정되면서, 기존에 맡고 있던 주요 사건들이 고인이 있던 형사15부로 대거 이관됐기 때문이다.
고인은 불면증 증세가 심각했는데 재판 업무에 지장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수면제를 처방받고도 복용하지 않았다고 알려졌다. 김건희 여사 선고를 앞두고는 재판 생중계 여부 등 외부 변수까지 겹치면서 신경을 많이 썼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이 밖에도 곽상도 전 국민의힘 의원 아들이 대장동 민간업자 김만배 씨로부터 받은 50억 원을 퇴직금 명목으로 꾸미는 과정에 관여한 혐의(범죄수익은닉규제법 위반)로 기소된 사건의 항소심을 잠시 맡기도 했다.
서울고법은 이번 사안을 계기로 법관들의 실질적인 업무 부담 경감 및 제도개선을 위한 태스크포스(TF)를 꾸리기로 했다. 고인의 후임 인선과 후속 절차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내부적으로도 관련 문제의식이 공유된 데 따른 것이다.
다만 사망의 원인을 특정 사건이나 단일 요인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는 신중론도 제기된다. 판사 출신 C변호사는 “판결에 대한 압박 때문에 극단적 선택을 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며 “김건희 여사 사건이 직접적 계기가 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법원 내부에서의 갈등이나 판사로서 자긍심에 상처가 생길 만한 일이 있었지 않았을까 싶다”고 말했다.
최진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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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동아일보 출판국에 입사. 주간동아를 거쳐 신동아로 왔습니다. 재미없지만 재미있는 기사를 쓰고 싶습니다. 가정에서도, 회사에서도, 사회에서도 1인분의 몫을 하는 사람이 되려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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