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6월호

‘선의’가 부메랑으로 돌아와 청년 일자리 위협할 수도

[기고]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 해법의 키 ‘공정수당’

  • 김기승 부산대 경제학부 교수 gsk@pusan.ac.kr

    입력2026-06-02 17: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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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기계약 노동자에게 최대 10% 추가 수당 지급

    • 노동시장은 선의나 이상보다 유인(誘因)에 반응

    • 프랑스 ‘불안정 수당’, 호주 ‘캐주얼 로딩’의 실패

    • 기업 채용 비용 높여 취약계층 일자리 더 감소

    정부는 내년부터 공공부문에 종사하는 1년 미만 기간제근로자에게 공정수당을 지급한다. 사진은 4월 1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노동안전 관계장관회의에서 공공부문 도급 운영 개선 방안에 대해 모두 발언을 하는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가운데). 뉴스1

    정부는 내년부터 공공부문에 종사하는 1년 미만 기간제근로자에게 공정수당을 지급한다. 사진은 4월 1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노동안전 관계장관회의에서 공공부문 도급 운영 개선 방안에 대해 모두 발언을 하는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가운데). 뉴스1

    비정규직 노동자의 현실은 결코 가볍지 않다. 계약기간은 짧고 계약 종료의 불안은 늘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같은 일을 하더라도 임금과 복지 수준은 정규직보다 낮은 경우가 많다. 공공부문에서조차 퇴직금 지급을 피하기 위해 1년 미만 계약을 반복하는 이른바 ‘쪼개기 계약’ 문제가 끊이지 않았던 것도 비정규직 노동시장의 어두운 단면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공정수당’ 정책은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고용이 불안정한 노동자에게 추가 보상을 지급하고 단기계약 남용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정부안에 따르면, 내년부터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는 한 달만 일하고 계약이 종료되더라도 약 38만 원의 공정수당을 받을 수 있다. 전체적으로는 정규직 대비 최대 10% 수준의 추가 보상이 가능하도록 설계돼 있다. 취지만 놓고 보면 반대하기 쉽지 않은 정책이다.

    그러나 시장은 정책 입안자의 따뜻한 의도보다 차가운 손익 계산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현실의 노동시장은 선의나 이상이 아니라 유인(誘因·incentive)에 반응한다. 공정수당 논쟁의 핵심도 바로 그 지점에 있다. 노동시장 정책은 종종 외줄타기와 비슷하다. 한쪽의 균형만 지나치게 강조하면 다른 쪽이 흔들린다. 보호를 강화하면 안정 수준은 높아질 수 있지만, 동시에 유연성은 줄어든다. 

    공정수당의 핵심은 단기 고용 비용을 높여 장기 고용을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문제는 정책의 선의가 항상 의도한 결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경제학적으로 보면 이는 결국 기업의 인건비와 고용 부담을 늘리는 정책이다. 비용이 증가하면 사용자 역시 행동을 바꾸게 된다. 

    많은 정책이 이 지점에서 현실과 충돌한다. 정책 설계자는 “더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시장 참여자는 “비용이 늘어나는구나”라고 받아들인다. 비용이 올라가면 기업은 자연스럽게 비용을 줄일 방법을 찾는다. 이는 도덕의 문제가 아니라 경제의 문제다. 



    빵집 주인의 계산기엔 자비가 없다

    시장은 선의보다 계산에 민감하다. 애덤 스미스가 말한 빵집 주인 역시 자비심이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따라 움직인다. 시장경제는 선의만으로 굴러가지 않는다. 기업은 비용과 위험, 수익을 계산하며 행동한다. 노동비용이 올라가면 기업은 채용을 줄이고 자동화를 확대하며 외주 구조를 조정하려 한다. 물이 낮은 곳으로 흐르듯 자본 역시 비용과 위험이 낮은 방향으로 움직인다. 

    우리는 이미 비슷한 경험을 했다. 비정규직 보호 강화는 일부 기업에서 계약 만료 시점의 대량 계약 종료로 이어졌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은 키오스크와 무인화 확산을 재촉했고, 패스트푸드점과 카페 곳곳엔 무인 주문 키오스크가 빠르게 늘어났다. 정책은 선의로 사람을 보호하려 했지만, 시장은 예상과 다른 방식으로 반응했다.

    정부가 참조했을 법한 프랑스와 호주의 사례는 오히려 우리에게 강한 경계심을 일깨워 준다. 프랑스는 이미 1980년대부터 기간제·임시직 근로자에게 계약 종료 시 총임금의 10%를 ‘불안정 수당(Prime de precarite)’으로 추가 지급해 왔다. 그러나 기업들이 추가 비용 부담을 우려해 신규 채용 자체를 줄이고 청년층의 노동시장 진입장벽을 높였다는 비판도 꾸준히 제기돼 왔다. 수당이 고용을 안정시킨 것이 아니라 역설적으로 ‘일할 기회’ 자체의 문턱을 높였다는 것이다. 

    호주의 ‘캐주얼 로딩(Casual Loading)’ 제도 역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는 유급휴가나 병가 혜택이 없는 임시직 노동자에게 시급의 25%를 추가 지급하는 제도다. 그런데 일각에서 기업 입장에서는 정규직 전환보다 임시직 유지가 더 계산적으로 유리하게 작동할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그 결과 단기 보상은 늘었지만 장기적 고용안정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일부 노동자는 불안정한 임시직에 장기간 머무르게 되는 ‘저숙련 노동의 덫’에 갇히게 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물론 해외 사례를 단순 비교하긴 어렵다. 그러나 노동시장 정책이 의도와 다르게 작동할 수 있다는 점만큼은 분명한 경고를 던진다. 

    프랑스·호주 등 해외 사례가 던지는 경고

    공정수당의 가장 큰 역설은 그 부담이 노동시장에 진입하지 못한 청년에게 돌아갈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기업이 채용 비용과 고용 부담을 크게 느끼게 되면 가장 먼저 줄이는 것은 신규 채용인 경우가 많다. 경험이 부족한 청년과 숙련도가 낮은 구직자부터 기회가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노동시장에는 ‘내부자-외부자’ 문제가 존재한다. 이미 일자리를 가진 사람의 보호가 강화될수록 밖에서 진입하려는 사람의 문턱은 높아질 수 있다. 성벽은 안에 있는 사람에겐 안전을 보장하지만 밖에 있는 사람에겐 장벽이다. 노동시장도 마찬가지다. 보호가 강화될수록 신규 진입자는 더 높은 벽을 마주하게 된다.

    공정수당 역시 일부 비정규직의 처우는 개선할 수 있지만, 동시에 신규 비정규직 채용 자체를 줄이는 방향으로 작동할 가능성이 있다. 비정규직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제도가 역설적으로 비정규직 일자리 자체를 줄일 수 있다는 점이 바로 공정수당 논쟁의 가장 어려운 지점이다.

    특히 기업은 신규 채용의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해 ‘중고 신입’이나 경력직을 선호할 가능성이 높다. 누군가에겐 인생의 첫 일자리가 될 기회가 애초에 사라질 수도 있다는 뜻이다. 청년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계약 종료 시 받는 몇십만 원의 보상만이 아니다. 지속적으로 일하며 경험을 쌓고 커리어를 형성할 수 있는 일자리 자체다.

    예를 들어 공공기관이 기존과 동일한 예산 안에서 공정수당과 복지 확대까지 시행하게 되면 인건비 총액은 증가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결국 선택지는 제한적이다. 채용 규모를 줄이거나 사업 규모를 줄이거나 다른 인건비를 조정해야 한다.

    특히 공공부문은 대부분 한정된 정부 예산 안에서 운영된다. 민간기업처럼 가격을 올려 비용을 소비자에게 전가하기도 어렵다. 결국 비용 증가분은 세금으로 보전되거나 고용 축소 형태로 조정될 가능성이 크다.

    경제학에는 “공짜 점심은 없다”는 유명한 말이 있다. 누군가 더 가져간다면 결국 누군가는 부담해야 한다는 의미다. 공정수당 논쟁에서도 중요한 것은 단순히 “취지가 좋은가”가 아니라 “누가 비용을 부담할 것인가”다.

    청년에게 일자리 대신 ‘문턱’을 선물할 건가

    정부는 공공부문이 먼저 모범을 보이면 민간으로 확산할 수 있다고 기대한다. 그러나 민간기업, 특히 중소기업과 영세기업은 이미 높은 인건비 부담과 경기둔화 속에서 운영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추가적인 고용 비용까지 발생하면 신규 채용 자체를 줄이려는 유인이 커질 수밖에 없다.

    물론 상시·지속 업무는 안정적으로 고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현실의 노동시장에는 계절적·단기적·프로젝트성 업무도 상당수 존재한다. 모든 단기 고용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접근은 노동시장 유연성을 지나치게 약화할 위험이 있다. 실제로 청년층이나 경력 단절 여성, 고령층 가운데는 단기 일자리라도 원하거나 필요한 경우가 많다. 그런데 단기 고용 비용이 지나치게 높아지면 기업은 아예 해당 일자리를 만들지 않으려 할 수 있다. 그 결과 누군가에겐 첫 일자리와 재취업의 징검다리, 생계의 버팀목 자체가 사라질 가능성도 있다.

    더 우려되는 것은 자동화와 무인화 흐름이다. 최근 기업들은 인공지능(AI), 로봇, 자동화시스템 도입을 빠르게 확대하고 있다. 노동비용 상승은 이 흐름을 더욱 재촉할 가능성이 크다. 이미 패스트푸드 매장의 키오스크, 식당의 서빙 로봇, 물류창고의 자동 분류 시스템은 일반화하고 있다.

    기업 처지에선 노동비용과 고용 리스크가 높아질수록 기계와 시스템 투자 유인이 커질 수밖에 없다. 비용과 불확실성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기계는 퇴직금을 요구하지도, 계약 종료 수당에 서운해하지도 않는다. 문제는 기술에 밀려 사라진 일자리는 다시 돌아오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정책이 보호하려 했던 취약계층이 되레 노동시장 밖으로 밀려날 가능성도 있다. 노동시장 정책이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필요한 것은 보호와 지속가능성의 균형

    물론 그렇다고 해서 비정규직 처우 개선을 포기하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중요한 것은 지속 가능한 방식이다. 노동시장 정책은 언제나 보호와 유연성 사이의 균형 위에 서 있다. 한쪽만 지나치게 강조하면 다른 한쪽이 흔들린다. 처우 개선 정책은 재원 설계와 함께 논의돼야 한다. 비용이 발생한다면 결국 누군가는 그 부담을 져야 한다. 재원 없는 선의는 결국 채용 축소나 재정 부담 확대라는 형태로 돌아올 가능성이 크다.

    장기적으로는 단순히 비용을 높이는 방식보다 청년 채용 인센티브, 사회보험 확대, 직무훈련 강화처럼 노동시장 진입 자체를 넓히는 방향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고기 한 점을 더 주는 것보다, 사냥법을 가르치고 사냥터의 문을 넓히는 방식을 찾아야 한다. 비정규직 처우 개선 역시 결국 노동시장 전체 구조를 함께 손보는 논의 속에서 접근해야 한다. 

    공정수당은 분명 좋은 취지에서 출발한 정책이다. 그러나 노동시장에선 좋은 의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비용 구조를 바꾸면 기업의 행동도 바뀐다. 그 결과 일부 노동자의 처우는 개선될 수 있지만, 청년과 취약계층의 일자리가 줄어드는 역설이 나타날 수도 있다. 진정으로 공정한 노동정책은 단순히 더 많이 지급하는 정책이 아니다. 노동자를 보호하면서도 일자리를 유지하고 청년에게 새로운 기회를 열어주며 재정적으로도 지속 가능한 정책이어야 한다.

    좋은 정책은 선의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살아남는 정책은 현실까지 설계한다. 

    김기승
    ●1964년 출생
    ●한국외국어대 경영학과 졸업
    ●University of Illinois at Urbana-Champaign 경제학 석·박사
    ● 前 한국노동경제학회 회장, 한국고용노사관계학회 회장,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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