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 생각에 ‘은밀한 영향력’ 미치는 인지전 부상
군사작전 문턱 높아지자 주목…중·러 적극 활용
알고리즘 분석해 마음 장벽 허물고 생각 조종
틱톡은 中 전략 자산…친중·반미 내러티브 확산 창구
신경무기로 적군 뇌 타격, 의식장애 유발하기도
생성형 AI·딥페이크 기술, 인지전 파괴력 높여
韓 국가인지안보센터 신설 필요…대만 본받아야

류동원 전 국방대 교수가 6월 8일 동아일보 충정로사옥에서 ‘신동아’와 인터뷰하고 있다. 홍태식 객원기자
류동원(66) 전 국방대 교수는 6월 8일 ‘신동아’ 인터뷰에서 ‘인지전(cognitive warfare)’을 이렇게 설명했다. 인지전은 목표 달성을 위해 상대의 생각과 감정,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정보·심리 작전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무엇보다 군사적 충돌 없이 상대 사회를 마비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인권 문제와 국제사회의 감시로 전통적 군사작전의 문턱이 높아진 오늘날, 인지전은 비용 대비 효과가 큰 새로운 전략으로 부상하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미국-이란 전쟁은 인지전이 전개된 대표 사례로 꼽힌다.
중국 대외관계 전문가인 류 전 교수는 국방대에서 20여 년간 안보 정책을 가르쳐온 국제안보 전문가이기도 하다. 이날 그는 생성형 인공지능(AI)의 등장으로 인지전이 현대 안보 환경에서 가장 위협적 전략으로 부상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류 전 교수는 “인권과 법적 책임에 대한 제약이 상대적으로 적은 중국과 러시아 같은 권위주의 국가들이 첨단기술을 기반으로 한 인지전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는 점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지전에 대한 그의 문제의식은 최근 출간한 저서 ‘마음을 향한 전쟁’에도 담겨 있다. 다음은 류 전 교수와의 일문일답.
소셜미디어 알고리즘 분석해 마음 장벽 허물고 생각 조종
인지전을 어떻게 정의하고 있나.“학문의 발전 과정과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20세기 초중반 행동주의 심리학이 발달하면서 인간을 통제할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했고, 이를 바탕으로 ‘심리전’이 등장했다. 선전 포스터와 항복 권유 방송 등이 활용됐다. 이후 20세기 중후반 컴퓨터·사이버네틱스·시스템 이론이 발전하면서 전쟁의 양상은 ‘정보전’으로 확대됐다. 전자전과 사이버 공격 등이 본격화한 것이다. 오늘날 주목받는 ‘인지전’의 과학적 배경에는 인지과학과 신경과학, AI, 빅데이터 분석의 발전이 있다. 정보전이 ‘정보의 우위를 확보하기 위한 투쟁’이라면, 인지전은 그 정보를 해석하는 뇌를 속여 ‘현실에 대한 인식을 바꾸려는 투쟁’으로 볼 수 있다.”
어떻게 뇌를 속일 수 있나.
“인지전은 인간의 뇌가 완벽한 합리성과 정확성보다 생존과 효율성을 추구하는 쪽으로 진화했다는 신경과학의 발전에 기반을 두고 있다. 뇌는 에너지의 절약을 위해 고도의 논리적 추론이 필요한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휴리스틱(heuristic)에 의존한다. 무의식적으로 의사결정을 내린 다음 의식적으로 이를 합리화하는 셈이다. 인지전의 공격자는 이러한 지점을 타기팅해 상대를 공략한다.”
전통적 선전·선동과 인지전의 차이는 무엇인가.
“선전·선동은 공격자가 원하는 메시지를 일방적으로 전달한다는 특징이 있다. 예컨대 ‘우리 체제가 우월하다’는 식의 주장을 반복 주입하는 식이다. 이 과정에서 상대방이 ‘적군이 선전하고 있구나’ 인식해 심리적 방어기제가 작동하기도 한다. 인지전은 특정 메시지를 직접적으로 주입하는 방식이 아니다. 대신 개개인의 관심사와 소셜미디어 알고리즘 등을 분석해 특정 신념과 편향을 강화하는 정보 환경을 조성하는 식이다. 대상자는 외부 개입에 노출됐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채 ‘내 생각이 맞다’고 확신하게 되고, 스스로 극단화된다. 외부 개입이 드러나지 않는 구조라 방어기제가 작동하기 어렵다.”
실제 전장에서 인지전은 어떻게 사용되나.
“인간은 내러티브를 통해 사건을 이해한다. 이미 주요 전장에서는 내러티브전이 펼쳐지고 있다. 러시아는 ‘나치의 통치로부터 우크라이나 시민을 구한다’는 내러티브를, 우크라이나는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골리앗과 싸우는 다윗’이라는 스토리텔링을 내세우며 싸우고 있다. 또한 미국은 ‘호르무즈해협의 안정과 핵무기 개발 저지’를 축으로 하는 내러티브를, 이란은 ‘미국이 이란을 압박하면 전 세계가 대가를 치른다’는 내러티브를 확산하며 전쟁을 펼쳤다. 무엇보다 인지전은 공격 주체를 은폐하기 쉬워 국제사회의 비난과 책임 문제를 피하는 데 유용하다. 이에 권위주의 국가는 민주주의 국가를 상대로 적극적으로 인지전을 벌이고 있다.”
중국이 인지전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는 것인가.
“그렇다. 중국의 인지전은 ‘싸우지 않고 이기는’ 손자병법의 전통을 현대 기술로 재구성한 형태다. 전투 이전에 상대의 저항 의지를 무너뜨리고, 전투 중에는 지휘부의 판단을 교란하며, 전투 이후에는 중국에 유리한 내러티브를 확산하는 과정을 따른다. 플랫폼, 데이터, 알고리즘을 무기화해 여론을 조작하는 식이다. 무엇보다 대만을 인지전의 핵심 실험장으로 삼는 경향이 강하다. 미국과 라이칭더 대만 총통에 대한 의심을 키우고, ‘대만은 결국 실패할 것’이라는 논리를 확산하는 식이다. 특히 ‘틱톡’이 중국의 강력한 무기로 부상했다.”
틱톡은 中 전략자산…친중·반미 내러티브 확산 창구
중국이 틱톡을 어떻게 인지전에 활용하는가.“틱톡은 단순한 오락용 플랫폼이 아니다. 대중 여론을 형성하는 데 사용되는 중국의 전략적 자산이다. 중국은 틱톡을 통해 미국과 대만의 극단주의자를 부각하고, 주류 발언은 감추는 식으로 사회적 신뢰와 제도를 약화하고 있다. 정보 전달 과정에 영향력을 끼쳐 미국 젊은이들의 하마스에 대한 동정심을 부추겨 외교정책을 약화하기도 했다. 틱톡의 알고리즘 역량과 전 세계적 영향력은 친중·반미 내러티브를 확산하는 데 귀중한 창구가 됐다. 가령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는 끝났다’ ‘미국은 호구 국가다’ ‘트럼프 주도의 세계보다 차라리 중국이 주도하는 게 낫다’ 같은 내러티브를 확산하고 있다.”
한 번씩 들어봤던 내러티브인데, 설득력 있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을 듯하다.

류동원 전 교수는 “틱톡의 알고리즘 역량과 전 세계적 영향력은 친중·반미 내러티브를 확산하는 데 귀중한 창구가 됐다”고 말했다. 틱톡
틱톡 이외의 중국이 벌이는 인지전이 있다면.
“중국은 최신 신경과학을 군사기술에 접목하고 있다. 신경무기(neuro weapon)란 적 전투원의 뇌와 중추신경계를 표적으로 삼는 무기체계다. 중국의 신경무기의 핵심 수단은 마이크로파, 전자기파 등의 ‘지향성 에너지 무기(DEW)’다. 특정 주파수의 전자기파나 마이크로파로 뇌의 특정 부위를 자극해 인지능력의 혼란, 신체 통증, 마비, 의식장애 같은 효과를 유발하는 식이다. 신경무기는 전통적 살상무기와 달리 상대를 직접 사살하지 않고도 판단력, 집중력, 전투 지속력, 지휘통제 능력을 약화할 수 있다.”
미국이 니콜라스 마두로 전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체포할 때 비슷한 무기가 사용됐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미국은 마이크로파 무기 개발의 선두 주자다. 중국 역시 2020년 8월 말 인도와 벌인 국경 충돌 때 관련 무기를 사용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홍콩 ‘명보’, 중화권 인터넷 매체 ‘둬웨이’ 등이 관련 내용을 보도한 바 있다. 중국 인민해방군이 마이크로파 무기를 사용하자 15분 만에 인도군이 구토를 하고 몸을 가눌 수 없게 돼 퇴각했다는 것이다. 2024년 한 중국 군사 보고서에 따르면 인민해방군의 신경무기는 혼란, 감정적 고통, 의식 상실을 유발한다고 한다. 적에게 졸림이나 인지장애를 유발하는 비살상 공격이 가능한 것이다. 즉 중국은 분쟁 직전 상대국의 정책결정자를 표적으로 삼아 관련 공격을 할 수 있다.”
자국군을 대상으로 한 인지전은 없나.
“중국은 자국 병사들의 두뇌 능력을 극대화하는 ‘인지 강화 기술’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집중력을 높이거나 기분을 향상하는 특수 약물은 물론 일론 머스크가 세운 뇌과학 기업 ‘뉴럴링크’처럼 생각을 읽어내는 ‘뇌 임플란트’ 기술까지 군사적으로 활용하려 한다. 이러한 방식들로 인지능력을 강화하면 전투원의 의사결정 속도가 획기적으로 빨라질 수 있다. 또한 수면 부족 등의 스트레스 속에서도 인지능력이 향상돼 혹독한 환경에서 더 오래, 더 강하게 싸울 수 있게 된다.”
韓 국가인지안보센터 신설 필요…대만 본받아야
생성형 AI의 발달은 인지전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나.“생성형 AI와 딥페이크 기술은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허물며 인지전의 정밀도와 파괴력을 비약적으로 높이고 있다. 가장 효율적인 인지 공격은 노골적인 조작이 아니다. 오히려 진실에 가까운 정보에 약간의 편집을 가해 그럴듯한 내러티브를 만들어내는 방식이다. 생성형 AI는 이러한 정보 생산에 최적화돼 있다. 게다가 AI는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개인의 성향과 신념, 감정 상태, 인지적 취약점까지 실시간으로 정밀하게 파악할 수도 있다. 개개인의 확증편향을 효과적으로 자극할 수 있는 메시지를 즉각 생성할 수 있는 만큼 주의가 필요하다.”
한국은 국제사회에서 펼쳐지는 인지전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한국 사회는 높은 디지털 연결성, 지정학적 특성, 사회적 역동성으로 인해 인지전에 매우 취약하다. 주변 강대국의 정교한 인지 위협과 북한의 지속적인 위협이 중첩된 환경임을 고려해 총체적 대응 전략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 인지전에 대항하는 싸움에서 강력한 규제는 필수적이다. 국제기구와 협력해 악의적 행위자를 책임지게 하며, AI가 생성하는 허위 정보에 대한 윤리적 기준도 설정해야 한다. 글로벌 차원의 정보 공유도 필수적이다.”
자체 대응 방안은 없나.
“군사·정보기관의 국가방어계획에 인지전 전략을 포함할 필요가 있다. 선전 대응, 전략적 커뮤니케이션 캠페인, 민간인과 군인 모두를 대상으로 한 인지 회복력 훈련 등이 수립돼야 한다. 나아가 국가인지안보센터 같은 전담 조직을 신설할 필요도 있다. 정보수집 플랫폼과 팩트체크 센터를 연계해 허위 정보를 신속히 무력화하는 대응을 펼치는 대만을 본받아야 한다. 무엇보다 인지전 대응의 첫 번째 방어선은 ‘잘 교육되고 학습된 시민’이다. 사람들이 정보 출처를 평가하고, 허위 정보를 식별하며 감정적 조작에 저항하도록 가르쳐야 한다.”
최진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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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동아일보 출판국에 입사. 주간동아를 거쳐 신동아로 왔습니다. 재미없지만 재미있는 기사를 쓰고 싶습니다. 가정에서도, 회사에서도, 사회에서도 1인분의 몫을 하는 사람이 되려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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