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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질 메뉴는 출시하지 않는다”

‘치킨공화국’ 시장점유율 1위 교촌치킨 파워

  • 김진수 기자 | jockey@donga.com

“사라질 메뉴는 출시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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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군 제대 후 가세가 급격히 기울어 권 회장은 철물업, 판촉물 장수, 노점상, 과일 행상 등 숱한 직업을 전전했다. 목돈을 마련하려 인도네시아 건설현장 근로자로도 일했지만 갑상샘 기능항진증을 앓는 바람에 10개월 만에 귀국했다. 이후 택시운전으로 생계를 이었다. 당장 먹고사는 걱정은 덜었지만, 장시간 운전으로 몸이 고달팠던 그는 한자리에 앉아서 할 수 있는 일을 찾다 통닭집을 차리기에 이르렀다. 40세 때였다.

말이 좋아 ‘가게’이지, 좁은 공간 한 귀퉁이에 주방과 침대를 넣고 부인과 딸 세 식구가 살면서 영업하는 처절한 출발이었다. 그러나 권 회장의 속내는 볼품없지 않았다. ‘교촌’이라는 극히 한국적인 상호를 지은 것도 언젠가 해외로 진출할 큰 꿈을 품었기 때문이다.

호기롭게 가게 문을 열었으나, 이른바 ‘오픈빨’이 빠지자 하루에 한두 마리만 팔릴 만큼 장사가 안됐다. 절박감에 사로잡힌 권 회장은 전면적인 메뉴 개선에 나섰다. 2년에 걸친 수많은 시도 끝에 마침내 개발한 게 교촌 고유의 ‘간장마늘소스’. 손에 진득하게 달라붙고 맛이 달착지근하며 뒷맛마저 텁텁한 양념통닭 대신 간장마늘소스를 활용해 담백하면서도 뒷맛이 깔끔한 메뉴를 내놓았다. ‘소고기와 돼지고기는 간장에 재우면서 왜 닭고기는 그러지 않지?’라는 발상에서 탄생한 메뉴다.

발상의 전환은 이어졌다. 당시 닭고기 산업이 발달한 대구에선 닭 날개를 버리는 일이 흔했다. 권 회장은 고민 끝에 지금은 일반화한 부분육 메뉴의 효시인 ‘윙’을 내놓아 ‘대박’을 쳤다. 지금도 통용되는 교촌 고유의 메뉴 명칭이 이때 탄생했다. ‘오리지널’(닭 한 마리), ‘스틱’(다리), ‘윙’(날개), ‘콤보’(날개와 다리) 등 닭고기 부위별 구분이 그것이다. ‘치킨’보다 ‘(한 마리) 통닭’이란 말이 익숙하던 시절, 업계를 선도한 남다른 아이디어였다.

시장통이지만 매장 인테리어도 업그레이드하고, 비닐봉지에 담아 배달해 고객이 봉지를 뜯다 국물을 흘리는 경우가 잦은 치킨용 무절임도 업계 최초로 네모난 PVC 용기에 담는 등 차별화했다. 내부 코팅 종이박스가 아닌 천연 펄프 치킨 박스를 도입해 포장의 고급화도 시도했다.



주문이 밀려들었다. 가게는 연일 북새통을 이뤘다. 이때부터 권 회장은 교촌이란 이름 앞에 ‘무조건’이라는 DNA를 주입했다. ‘(교촌은) 무조건 남과 달라야 하고, 무조건 고급스러워야 하며, 무조건 전문적이어야 한다’라는.



AI 파동 정면돌파

“사라질 메뉴는 출시하지 않는다”

충남 공주시 웅진동에 들어설 애터미 본사 및 연수원 조감도. [사진제공·애터미]

교촌에도 위기는 찾아왔다. 프랜차이즈 가맹사업을 시작한 이듬해인 1996년 닭고기 파동이 닥쳤다. 누구도 예상치 못했다. 무엇보다 가맹점이 막 늘기 시작한 때 닥쳐온 이 사태에 권 회장은 닭고기 중량과의 싸움으로 대응했다. 닭 한 마리로 가야 될 걸 두 마리로 만들어서 중량을 딱 맞춰 배달한 것. 고객은 그의 정직에 신뢰로 보답했다. 그 결과, 1999년엔 가맹점 수가 100개로 늘었다. 2002년 교촌F&B로 법인명을 바꾸고 수도권 진출을 본격화한 교촌은 2003년 가맹점 1000개를 돌파했다.

하지만 그해 12월, 조류인플루엔자(AI) 파동이 터졌다. 이를 계기로 국내 치킨업계 양대 산맥이던 교촌과 라이벌 업체는 2004년 이후 완전히 다른 노선을 걷는다. 경쟁업체는 본격적으로 해외시장 개척에 나섰지만, 교촌은 400여 명의 계약 대기자를 포기하고 더는 신규 가맹점을 늘리지 않기로 결정한 것. 가맹점주들과의 고통 분담 차원에서 80억 원 이상의 이익을 포기한 것이다.

이때부터 교촌 본사와 가맹점주들에게 피 말리는 시간이 이어졌다. AI 파동으로 아예 닭(특히 날개)이 공급되지 않으니 제대로 영업할 수 없었다. 이근갑(56) 현 교촌F&B 국내사업부문 대표(부사장)가 교촌에 합류한 게 이즈음이다. 경남 의령 출신으로 부산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한국투자신탁 근무와 벤처 경영컨설팅 사업을 거친 이 대표는 2004~2005년 교촌과 인연을 맺었다. AI 파동을 수습한 뒤 다시 금융권에 몸담았다가 2012년 11월부터 교촌에 ‘뼈를 묻을 각오로’ 재합류했다.

AI 파동 때 이 대표는 상황을 정면 돌파했다. 정부와 유관기관을 찾아다니며 회사 현황을 설명했고, 양계농가 대표자와 소비자, 비정부기구(NGO), 가맹업주연합회 등과 직접 맞닥뜨렸다. 전국 지사별 가맹점주 간담회에 일일이 참석해 점주들의 불평을 들어가며 상황을 재조명하고 설득하면서 본사와 가맹점의 상생을 모색했다. ‘가맹점이 살아야 본사가 산다’는 공통분모를 이끌어내는 데 주력한 것. 창업주와 교촌의 경영철학인 ‘정도(正道) 경영’이 이 대표를 통해 가맹점주들의 마음에 스며들어 ‘신뢰의 끈’으로 이어졌다. 가맹점주들은 본사가 정한 영업 구역과 원칙을 지키며 참을성 있게 버텨냈다. 교촌이란 이름 아래선 누구도 망하지 않는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이후 교촌은 경쟁업체와 달리 가맹점 수를 좀체 늘리지 않는다. 올해 7월 현재 전국의 가맹점은 1010개. 회사 창립 이후 가맹점 모집을 위한 투자설명회나 광고를 한 번도 하지 않았다.

2005년 들어 치킨업계는 AI 여파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2007년 교촌은 미국 뉴욕 맨해튼에도 직영점을 열어 전 세계인을 상대로 교촌의 맛을 선보였다. 현재 8개국 35개 매장이 영업 중이다. 최근엔 일본과 캄보디아에도 매장을 열었다. 당분간 동남아 중심으로 교두보를 마련한 뒤 점차 세계 각지로 넓혀가겠다는 전략이다.

현재 교촌F&B는 권 회장을 정점으로 표주영 총괄사장 아래 국내사업(경기 오산시 소재), 해외사업(경기 성남시), 외식 신사업(대구) 등 3개 부문을 두고 있다. 권 회장은 자회사 관리와 외국 출장 등으로 대구와 해외를 오가느라 분주하다. 국내 치킨 프랜차이즈 사업은 이 대표가 전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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