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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민 아빠와 두 딸의 중국-러시아-몽골 52일 여행기

두만강에 마음 적시고 바이칼에 몸 담그고

  • 김형덕 | 한반도평화연구소장, 북한이탈주민

두만강에 마음 적시고 바이칼에 몸 담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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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필자 김형덕 씨는 탈북민이다. 연세대 재학 시절 만난 아내는 공인회계사로 공기업에 다닌다. 딸 둘을 뒀다. 이 글은 김씨가 두 딸과 함께 떠난 52일간의 여행 기록이다.
북한에서 나고 자란 아빠, 한국에서 나고 자란 엄마와 두 딸로 이뤄진 우리 가족에겐 대대손손 내려온 가풍은 없어도 ‘특별한 인생을 살아보자’는 가훈이 있다. 이를테면 대부분의 학생이 학원에 다닌다면 그와 반대로 ‘안 다닌다’를 선택한다. 한 번뿐인 인생을 특별하지 않게 사는 건 허무하지 않나.

공인회계사로 한국전력공사에서 일하는 아내가 한전의 발전소가 들어선 필리핀 세부로 발령을 받고 그곳에서 일하는 터라 가족이 필리핀으로 이주했다. 국제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의 여름방학은 6월 2일~8월 3일. 방학을 이용해 중국, 러시아, 몽골을 여행하기로 했다. 두 딸과 함께 여행 계획을 짰는데 아무래도 필자의 의견이 많이 반영됐다.  



학원? 아니, 여행!

큰딸이 제2외국어로 익히는 중국어 ‘실습’과 필자의 북한 문제 연구를 위해 북중 국경도시를 포함한 중국 체류 기간을 몽골, 러시아보다 길게 잡았다. 최초 도착 도시와 마지막 도시는 베이징으로 정했다. 중국에 두 차례 입국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사전에 복수비자를 받아둬야 한다.    

마닐라-베이징 왕복 항공권은 1인당 12만 원. 중국, 러시아, 몽골 내 이동수단은 현지에서 요금을 내는 방식으로 예산을 짰다. 52일간의 세 식구 여행 비용을 900만 원 이내로 잡았다. 아내와 나는 두 딸이 학원을 1년 동안 안 다니면 모을 수 있는 돈이라고 봤다.



집을 떠난 후 첫 사흘은 아내, 두 딸과 함께 필리핀 바기오에서 보냈다. 20세기 초 미군이 주둔할 때 휴양지로 건설한 도시다. 필리핀의 다른 곳과 비교하면 천국과도 같은 도시였다.

6월 5일 베이징으로 출발했다. 서우두(首都)공항에서 필자의 지인인 중국 주재 외신기자가 우리를 맞았다. 그의 집에서 지내면서 만리장성, 자금성 등을 둘러봤다. 만리장성을 찾은 것은 1993년 이후 다섯 번째인데, 올 때마다 시설이 일신되는 모습이다. 한국이 규모 면에서는 중국과 관광산업에서 경쟁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만의 특색을 잘 찾아 관광산업을 키워야 할 것 같다.

이화원, 베이징대 탐방 등은 여행 끄트머리로 미루고 다롄으로 향했는데, 베이징역에서 간발의 차이로 다롄행 열차를 놓친 터라 톈진으로 목적지를 바꿨다. 자유롭게 일정을 바꾸는 게 자유여행자의 특권 아닌가. 톈진에는 중국의 초대 총리 저우언라이의 모교로 유명한 난카이대가 있다. 왕만두, 군밤 등 먹을거리로 유명한 곳이다. 먹는 일을 최고의 낙으로 삼는다는 말이 전해지는 도시다.

톈진을 둘러본 후 늦은 밤 다롄행 버스에 올랐다. 침대가 설치된 버스인데 중국의 교통수단 중 이제는 옛날 것에 속한다. 이제 웬만한 큰 도시에는 대부분 고속철도가 닿는다. 침대버스는 숙박비가 절약된다는 장점이 있다. 버스 안에서 승객의 흡연은 금지됐는데, 운전기사는 담배를 피웠다. 운전기사에게 왜 담배를 피우냐고 물으니 운전하다 조는 것보다는 담배를 피우는 게 낫지 않으냐고 되물었다. 운전기사의 흡연 탓에 불편했지만 다른 승객이 풍기는 강한 체취를 상쇄하는 효과가 있었다.



안중근을 만나다

다롄은 도시의 겉모습만 볼 때 한국과 경제 수준에 차이가 없거나 오히려 앞선 것처럼 느껴졌다. 다롄에서 단둥까지는 고속철도로 이동했다. 예전에는 버스로 5시간 넘게 걸리던 여정이 고속철도 덕분에 1시간 20분으로 줄었다. 격세지감. 5년 전만 해도 중국에서의 도시 간 이동은 어느 지역을 가든 많은 시간이 걸렸다.  

조선을 창건한 이성계가 회군한 위화도를 내려다본 후 단둥철교와 북한 번호판을 단 차량, 사람이 오가는 단둥세관을 방문했다. 중국 측 관광보트를 타고 위화도와 평안북도 의주 사이를 오가는 보트 관광은 긴장감을 준다. 북한 육지에 거의 닿을 정도로 운행하기에 강가에 나와 있는 북한 군인, 주민과 직접 대화도 가능하다.

단둥 일정을 마치고 선양으로 향했다. 단둥-선양 또한 고속철도로 1시간 남짓밖에 걸리지 않았다. 선양에서 이틀간 머물렀는데 숙박한 호텔이 인상적이었다. 호텔 이름은 ‘1912’. 1912년 일제가 이 일대를 점령하면서 지은 곳이다. 인테리어를 일신했으나 외부는 지을 때 모습 그대로다. 인테리어와 구비 물건이 중국산 저품질 제품인 게 옥의 티였다. 청나라의 왕궁이던 성경황궁(盛京皇宫)은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 듯했다. 청나라는 중화민족의 자랑스러운 역사가 아니어서 그런 걸까.  

선양에서 하얼빈으로 가려면 예전에는 한나절이 걸렸다. 고속철도를 이용하니 2시간 만에 하얼빈역에 도착해 싱거웠다. 과거에 중국인들은 국토 종단 여행을 멋진 일로 여겼다. 과거엔 1주일 넘게 걸렸으나 요즘은 하루 만에 종단이 가능하다. 하얼빈의 첫 여행지는 당연히 ‘안중근 기념관’이다. 예나 지금이나 나라가 어려울 땐 지배계급보다 용기 있는 의사(義士) 한 사람이 수천만 민중의 심장을 한 방에 흔들어주는 게 아닐까. 두 딸도 이런저런 생각이 많은 듯했다. 애국은 책이 아니라 이런 경험에서 배우는 것이리라.

하얼빈에서 지안으로 이동했다. 북한의 만포와 지안을 잇는 북중대교 개통 여부를 확인하는 게 목적이었다. 대교는 완공된 지 2년이 넘었는데, 주변 도로 및 시설 정비가 아직도 마무리되지 않았다. 지안에서 만난 한 중국인은 “북한이 아직 개방을 위한 마음의 준비가 안 돼 그런 것 같다. 갑작스럽게 개방하면 혼란이 닥칠 게 분명하다. 중국도 20년 전 얼마나 혼란스러웠는가. 북한은 작은 나라라 신중에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고 했다.


고향 생각

압록강변 북한 땅을 바라보면 문뜩 고향 생각이 난다. ‘남과 북의 사람들이 자주 만나다 보면 자연스럽게 북한의 변화와 한반도의 통일이 우리 곁에 다가올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북한을 고립시키면 가난을 가중시킬 수 있을지 몰라도 남북 주민 간 이질감은 물론이고 분단도 공고화할 것이다. 북한 주민들이 어느 체제가 더 보편적인지 알게 되면 올바른 방향을 선택하리라고 확신한다.

북중 국경을 여행한다니 친지들이 이구동성으로 “조심하라”고 했다. 딸들과 나를 염려하는 마음 씀씀이에 고맙다는 말씀을 전한다. 다만 한 가지 말하고 싶은 게 있다. 2001년 이후 수십 회 북중 접경지역을 여행했지만 위험한 곳이라고 느낀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그러나 북한에 거주하는 이들과 비공식적 관계를 맺고 특정한 일을 하고자 방문하는 이들은 조심해야 할 것이다.

속도감 있게 진행해온 여정을 늦추기로 하고 린장의 친구 집에 들렀다. 국적과 문화가 다른 친구와 사이좋게 지내는 데는 배려가 중요한 덕목인 듯하다. 린장에서 휴식을 취한 후 백두산으로 향했다. 얼다오바이허(二道白河)에 도착한 후 이튿날 백두산 등정에 나섰다. 사적, 공적 일로 백두산에 오르는 게 이번이 열 번째다.

선양에서 온 63세의 한족 남성은 초등학교 친구 8명과 함께 백두산을 찾았다. 이 남성의 생각은 보통의 중국인과 달랐다. 이야기인즉 “장백산은 원래 조선의 것이다. 지안시 유적(랴오닝성에 있는 고구려 유적)과 오녀산성을 보더라도 동북 지역은 조선의 선조국인 고구려의 땅이다. 만리장성은 고구려의 침공을 막고자 쌓은 것이다. 그럼에도 역사는 역사일 뿐 지금은 중국 땅”이라는 것이었다.

경기 고양시에서 온 70대 초반의 한국인 남성은 “김정은이 핵실험을 계속해 백두산이 폭발하기 전 천지를 보러 왔다”며 웃었다. 금융권에서 일했고, 지금은 개인사업을 한다는 그는 “비용이 들더라도 북한과 교류해 북한 사람들의 의식이 변화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면서 “북한이 폐쇄적이 될수록 김정은 정권은 더 단단해진다”고 주장했다. 노년 세대의 북한 인식에 대해 필자가 편견을 갖고 있었나 보다.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게 마련이다.  



러시아의 北 노동자

백두산 입장료는 1인당 5만4000원가량으로 비싼 데다 서비스는 별로다. 딸들에게 아는 대로 백두산에 대해 설명한 후 옌지로 이동했다.

옌지 중심가에 여장을 풀었다. 다음 날 시인 윤동주 생가와 북한 회령이 보이는 삼합진을 찾았다. 삼합진에서 스마트폰으로 찍은 회룡 사진은 중국 군인에 의해 모두 삭제됐다. ‘남북 관계가 예민해서’ 찍을 수 없단다. 중국 군인은 “10년 전 남북이 잘 지낼 때는 사진을 찍어도 무방했다”고 했다.    

딸들과 나는 투먼을 경유해 훈춘으로 갔다. 예전에는 투먼-훈춘 이동에 1시간 반가량 걸렸는데, 고속철도로는 20분이면 끝이었다. 훈춘은 러시아로 가는 관문이다.



하산과 그라스키노에서는 러시아인 친구의 아들이 승용차를 가지고 나와 우리의 이동을 도왔다. 그라스키노의 안중근 의사 기념비를 둘러보고 한국인이 건설하는 리조트를 방문했다. 슬라비얀카에서 블라디보스토크로 가는 배를 타려고 했는데 운행이 잠정 중단됐다는 소식을 현지에서 들었다. 식당에서 카자흐스탄식 바비큐를 먹고 호텔에 투숙했다.

슬라비얀카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는 버스로 3시간 30분쯤 걸렸다. 블라디보스토크 버스 터미널에서 우연히 만난 북한 노동자로부터 대략적인 도시 정보를 들었다. 이 북한 노동자는 시내 중심가에 숙소를 잡을 것을 권했다. 관광하기 편한 데다 중심가가 오히려 안전하다는 이유였다. 이 노동자가 추천한 지역에는 한국 관광객을 상대로 한 게스트하우스가 몰려 있었다. 러시아 각 도시의 도로에서 수시로 북한인을 만날 만큼 북한 출신 건설 노동자가 러시아에 많았다. 10만 명가량의 북한 노동자가 러시아에서 일하는 것으로 추산된다고 한다.

블라디보스토크의 물과 공기, 사람, 기후는 중국의 그것보다 여행자에게 편하게 다가왔다. 도심의 공기는 서울보다 훨씬 쾌적하고 운전자의 보행자에 대한 배려도 한국보다 좋았다. 노상 흡연이 없어지고 외국어 소통 역량만 나아지면 동양 최고의 관광 및 휴양도시가 될 만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횡단열차 안에서

이튿날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탔다. 두 딸이 학생증을 보여주니 요금의 절반을 할인해줬다. 의외의 소득. 중국에서는 받지 못한 혜택이다. 횡단열차를 타고 가다 우스리스크에서 내렸다. 펄프, 설탕 산업을 갖춘 작은 도시다. 한국 정부 후원으로 세워진 한국문화원을 방문했다. 한국문화원은 고려인의 사랑방 구실을 한다. 건물 내부에 한인 이주 역사와 일제강점기 당시 고려인의 독립운동 사례가 전시됐다.

다음 날 하바롭스크로 가는 횡단열차에 올랐다. 하바롭스크는 옛 소련 느낌이 가득한 도시다. 도심이 잘 정비돼 있으며 궤도전차와 무궤도 전기버스는 평양의 그것과 유사했다. 러시아가 큰 나라라 그런지 도심이 공원화해 있고 공간 배치가 여유로웠다. 다만 한국어, 영어, 중국어가 모두 통하지 않아 손짓 발짓으로 대화해야 했다. 보디랭귀지는 생각보다 꽤 괜찮은 대화 수단이었다.

53시간 만에 횡단열차에서 내렸다. 울란우데다. 장거리 기차여행은 고되지만 성찰의 시간을 준다. 딸들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을 것이리라. 맞은편 침대에 누워 여행한 러시아 소년 션(7세)의 재롱이 지루함을 달래줬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시베리아 횡단열차는 한 번쯤 타볼 만한 가치가 있다. 서울역에서 유럽행 열차를 타는 날은 언제쯤 올까.

울란우데 역 근처에서 하룻밤을 묵은 후 바이칼 호로 가는 택시에 올랐다. 가는 길에 택시운전자가 직접 차를 몰아보라고 권유해 북한에서 운전해본 적 있는 러시아산 승용차 ‘라다’를 30분간 몰았다.

바이칼 호! 듣던 대로 장관이었다. 호수는 바다와 같았으며 황금빛 모래가 반짝였다. 특히 물의 맑기가 혀를 내두르게 했다. 러시아 가정의 삶을 엿보기 위해 민박에 투숙하기로 했다. 아들 넷을 둔 알렉산더-나타샤 부부는 처음 본 한국인이 우리라고 했다. 바이칼 호 일대는 위도가 높아 저녁 9시에도 해가 환하게 비췄다. 중국과 몽골에서 온 가족 단위 여행객이 많았다. 여행객 대부분은 차량을 직접 몰고 이곳에 왔다. 한국인은 언제쯤 집에서 차를 몰고 출발해 러시아를 여행할 수 있을까.

바이칼 호의 맑은 물에 몸을 담그지 않을 수 없었다. 바이칼 호 일대에 머문 3일간 기온이 섭씨 18도가량으로 쌀쌀해 망설였으나 수영을 하고야 말았다. 와우! 푸른 자연을 벗 삼아 맑은 물에서 수영하는 기분이란.



바이칼의 맑은 물

알렉산더 부부의 살림집은 울란우데에 있다. 바이칼 호의 민박집은 부부의 별장이다. 부부는 우리보다 하루 앞서 울란우데로 돌아갔다. 우리가 울란우데로 돌아가 몽골로 향한다는 사실을 안 부부는 자신들의 집으로 우리를 초청했다. 나타샤가 정성 들여 만든 러시아식 수프와 음식을 대접받고 몽골로 가는 국제열차에 올랐다.

기차를 탄 지 6시간 만에 러시아-몽골 국경을 통과했다. 국제열차 안에는 유럽 여행객이 제법 있었다. 독일, 네덜란드에서 모스크바까지 비행기를 타고 간 뒤 기차로 극동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몽골이나 중국을 여행하는 것이다.    

아뿔싸. 몽골에 입국하면서 문제가 생겼다. 몽골 비자를 미리 받아두지 않은 것이다. 한국인이 몽골에 입국할 때 비자가 필요하다는 것을 몽골에 도착해서야 알았다. 러시아, 중국, 일본 사람들은 비자가 필요 없는데 한국인에게만 요구한다는 게 신기했다. 울란우데로 되돌아가 몽골영사관에서 비자를 받아야 한단다. 러시아로 되돌려 보내는 조치가 이뤄지는 사이에 러시아-몽골 국경의 몽골 측 도시인 스하바토로를 둘러보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울란바토로 여행은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하고 이르쿠츠크로 가는 열차표를 끊었다.

이르쿠츠크에서 이틀간 머무른 후 베이징행 비행기에 올랐다. 7월 24일 베이징발 마닐라행 비행기에 오르면서 52일간의 여행은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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