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계소득 하락세 OECD 최고 수준
- 기업이익 증가세보다 임금 상승폭 낮아져
- 상위 10% 개인이 전체 소득 45% 차지
- 가계와 기업 소득 순환돼야
한국의 GDP 대비 가계소득 비중은 1995년 69.6%에서 2013년 64.3%로 5.3%포인트나 감소했다. 같은 기간 중 감소 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오스트리아(5.8%포인트 감소)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한국의 GDP 대비 가계소득 비중(64.3%)은 OECD 국가 중 노르웨이(59.4%), 아일랜드(62.2%), 체코(63.9%) 다음이다. 감소 폭이 큰 오스트리아의 가계소득 비중은 73.6%로 아직 견고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한국의 상황이 심각하다고 할 수 있다. OECD 통계 중 좋지 않은 대목에서 늘 극한에 위치한 한국은 가계소득에서도 같은 양상을 보인다.
가계는 이렇게 가난해졌는데, 기업은 오히려 부유해졌다. 외환위기 직전인 1996년의 국민총소득(GNI) 중 기업소득의 비중은 15.7%였으나, 2015년에는 24.6%로 8.9%포인트 수직 상승했다. 가계소득이 줄어든 자리를 기업이 차지한 것이다.
소득증가율 1.6% vs 21%
OECD가 지난 3월 발간한 ‘경제정책개혁 : 2016년 경제성장보고서’에 따르면 OECD 30개 국가의 10여 년간(1995∼2013년) GDP 대비 가계소득 비중은 평균적으로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국가별로 보면 판이하다. 일부 국가는 가계소득 비중이 상승했다. 슬로바키아(+9%포인트)와 핀란드(+5%포인트)는 큰 폭으로, 일본, 미국, 스웨덴, 아일랜드는 소폭(2∼3%포인트) 증가했다. 반면 한국과 오스트리아의 GDP 대비 가계소득 비중은 크게 떨어졌다(〈그림1〉참조).
GDP 대비 가계소득 비중이 하락한 것은 기업의 이익 증가보다 임금 상승 폭이 낮았기 때문이다. 가계와 기업은 국민경제를 구성하는 양대 부문으로, 소득의 상호 순환이 이뤄진다. 생산주체인 기업이 소득을 창출하고, 그 소득이 노동 등 생산요소에 대한 보수의 형태로 가계로 유입된다. 가계는 소득을 바탕으로 기업이 생산한 물건을 소비한다.
이 경우 경제가 성장하면서 가계와 기업 부문은 동일한 수준의 성장 추세를 보이게 된다. 산업연구원 강두용 선임연구위원의 연구에 따르면,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의 가처분소득 통계가 나온 1975년부터 외환위기 전까지 가계와 기업소득의 연평균 증가율은 각각 8.1%와 8.2%로 거의 같았다.
하지만 외환위기 이후 상황은 달라졌다. 2000∼2010년까지 가계의 소득증가율은 2.4%로 기업의 소득증가율 16.4%를 크게 밑돌았다. 2000년대 전반에 비해 후반 들어 불균형의 정도는 더욱 심화했다. 국민총소득과 가계소득 증가세는 뚜렷하게 둔화했으나, 기업소득의 증가세는 가속화했다.
가계는 가난해지고 기업은 부유해지는 현상은 여러 나라에서 발견되지만, 한국만큼 불균형의 정도가 심하지 않다. 2000∼2010년 한국의 가계소득 대비 기업소득 증가폭은 OECD 국가 중 헝가리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미국이나 일본도 상승 추세를 보였지만 한국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완만하다.
그렇다면 기업과 가계 부문 간 소득불균형의 원인은 무엇인가. 무엇보다 기업이 창출한 부가가치가 가계로 유입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조세나 준조세와 같은 정책적 요인도 찾아볼 수 있다(〈표 2〉참조).
돈이 돌지 않는다
2000∼2010년 중 연평균 기업소득(기업가처분소득) 증가율은 16.4%인데, 기업의 부가가치 증가율은 4.2%에 머물렀다. 강두용·이상호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의 분석에 따르면 기업소득이 호조를 보인 가장 큰 요인은 기업소득의 가계로의 환류(임금소득 증가율) 비율이 낮기 때문이다(기여도 54.1%). 두 번째 요인은 기업의 유효세율(조세 및 준조세 부담)이 가계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아졌기 때문이다(기여도 32.7%). 기업의 부가가치 창출 능력이 커진 것은 기업소득이 늘어난 주요인이 아니었다(기여도 13.2%).2000∼2010년 가계로 환류된 소득의 연평균 증가율은 2.3%로 매우 낮았다. 하지만 2.3%의 가계소득 증가율조차 모든 가구에 동일하게 나타나진 않았다. 가계소득의 증가는 최상위층에 집중됐다.
맥킨지컨설팅 산하 맥킨지글로벌연구소가 지난 7월 발표한 ‘부모보다 가난해진다? 선진국의 소득정체와 감소’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10년간(2005∼2014년) 선진국 가구 중 65∼70%의 실질 시장소득(물가 상승을 감안한 근로소득과 자본소득의 합)이 정체되거나 줄어들었다. 이 보고서는 가계 전체 소득의 평균적인 증가나 감소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가구가 실질적으로 소득의 정체나 감소를 경험했는지를 조사했다는 게 특징이다.
한국은 비교할 만한 정확한 통계가 없어 선진 25개국을 대상으로 한 이번 조사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유사한 추세가 나타났을 거라고 짐작할 수 있다. 한국의 개인 및 가구 간 소득불평등이 매우 높은 수준이기 때문이다. 지난 3월 국제통화기금(IMF)이 발간한 ‘성장 과실의 공유 : 아시아의 불평등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상위 10% 개인이 전체 소득의 45%를 차지했다. 조사 대상 아시아 국가 중 가장 높았다.
불평등의 진행 속도도 가장 빨랐다. 한국 상위 10%는 1990년 전체 소득의 29%를 차지했지만, 2013년에는 16%포인트가 증가해 55%를 가져갔다. 한국 상위 1%의 소득증가 속도는 더욱 빨랐다. 1990년 당시 6%이던 전체 소득 중 상위 1%의 소득 비중은 2012년 현재 12.23%로 증가해 가파른 상승세(100%)를 보였다. 상위 10%의 소득 집중도(45%)는 프랑스(32.7%)보다 높고, 소득 집중도가 가장 높은 미국(48.2%)에 근접한 수치다.
다시 맥킨지 보고서를 보면, 미국의 경우 무려 81%, 프랑스의 경우 63%의 가구가 실질 시장소득의 정체 및 감소현상을 겪었다. 한국에서는 얼마나 많은 가구가 시장소득의 정체·감소를 경험했을까.
‘재분배’로 대응해야
맥킨지 분석에 따르면, 이 가운데 인구구조 요인은 각국에서 유사하게 나타났지만, 총수요와 노동시장 요인의 차이가 국가마다 상이한 결과를 초래했다. 이탈리아(97%), 미국(81%), 영국(70%)은 다수 가구의 소득이 정체하거나 감소했다. 이에 비해 스웨덴은 전체 가구 중 20%만 소득 정체·감소를 경험했다. 스웨덴의 경우 동일한 기간 중 유효수요와 노동소득 분배율이 시장소득 증가에 각각 7%, 10% 기여한 반면, 이탈리아는 유효수요가 소득 증가에 2% 기여하긴 했지만 노동소득분배율에서 4% 감소요인이 발생했다. 미국과 영국은 유효수요에서 각각 4%, 3%의 소득증가 요인이 발생했지만 노동소득분배율에서 각각 7%와 8%의 감소요인이 발생했다.(〈그림 2〉
참조).
맥킨지 보고서에 나오는 다수 가구의 소득 정체 및 감소는 시장소득(과세 전 소득 + 자본소득)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과세와 사회안전망 제공이라는 정부 역할이 개입한 이후 가처분소득 기준으로 볼 때 가계소득의 정체 및 감소를 경험한 가구는 20∼25% 수준으로 줄어든다. 그만큼 재분배를 통한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가계소득을 늘리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무엇보다 노동소득 분배율 감소를 막아야 한다. 임금소득을 늘려 유효수요(가계의 구매력)를 확대하고, 성장률을 높여 기업소득과 가계소득을 함께 상승시키는 선순환 구조를 회복해야 한다.
임금소득 높여 불평등 해소
임금소득도 과도한 불평등을 재고해야 한다. 가계를 구성하는 다수의 근로자가 소득의 감소와 실업을 겪고 있는 마당에 일부 대주주와 경영진이 연간 수십억 원 이상의 ‘보상 잔치’를 벌이는 것이 바람직한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일을 하는 데 금전적 인센티브만이 전부는 아니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결정 이후 영국 총리가 된 테리사 메이는 주주가 경영진의 연봉을 정하게 하는 등 재계 기득권층의 특권을 제한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한 바 있다.임금소득의 불평등과 관련해 10년 전인 2006년 3월 스위스 취리히 연방공대(ETH)에서 열린 유럽 기업지배구조학회(ECGI) 총회에 참가했을 때 얘기를 하고 싶다. ECGI는 총회 마지막 날 그해의 주요 이슈에 대해 토론하고 투표하는 전통이 있는데, 그해의 핵심 질문은 ‘기업 최고경영진에 대한 보상과 정부 각료의 그것이 동일해야 하는가’였다.
찬성 토론에 나선 브루노 프레이 ETH 교수(경제학)는 경영진에 대한 과도한 보상은 보상의 수준과 방식, 그리고 CEO 선정 기준이라는 점에서 문제를 안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기업 최고경영진의 보상 수준이 정치인에 비해 높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중요성으로 생각하면, 정치인이 정치 제도나 정책의 설계를 통해 결과적으로 기업 실적에 오히려 더 큰 영향을 미친다.
성과급 위주의 보수 방식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이었다. 프레이 교수는 스위스의 세계적 제약기업 노바티스 CEO와의 사적 대화를 소개했는데, 그에 따르면 노바티스 CEO는 젊은 시절 일에 관심이 많았다. 하지만 CEO가 된 이후엔 일보다 보상에 더 큰 관심을 갖게 됐다. 어떻게 일을 할지보다는 어떻게 돈을 많이 벌지에 대해 고민한다. 단기적인 성과를 높이는 방안에만 골몰하고, 직원들의 숙련이나 일자리엔 관심을 덜 갖게 된다는 것. CEO의 선출 과정도 공정하지 않다. 정치인은 다수의 일반인에 의해 선출되고 그들에게 책임을 지는 반면, CEO 선출 과정은 투명하지도 않고, 그들이 주주나 사원 혹은 해당 지역사회에 책임을 지는지도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두 마리 토끼 다 잡으려면…
거듭 강조하고 싶은 것은 가계소득 확대를 위한 정부의 재분배 역할이다. 세계은행의 최근 기업환경 보고서(Doing Business 2016)에 따르면 한국 기업이 부담하는 실질세율은 33.2%로 주요 선진국이나 개발도상국보다 낮은 편이다.지금과 같이 낮은 노동소득 분배율 탓에 기업소득이 가계로 환류되지 않는다면, 정부는 법인세 인상이나 기업의 사회보험 부담 확대 방안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 단기적으로는 기업에 부담이 될지 모르지만, 국민경제의 양대 기둥인 가계와 기업의 소득이 상호 선순환되도록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것이 결국 기업의 지속적인 부가가치 확대에도 기여할 것이다.
김 용 기
● 1960년 강원 거진 출생
● 영국 런던정경대(LSE) 석사(경제학), 동 대학원 박사(국제정치경제학·금융)
●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전문위원
● 現 아주대 경영학과 교수
● 저서 : ‘한국경제가 사라진다’, ‘한국경제 20년의 재조명’, ‘금융위기 이후를 논하다’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