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9월호

집중기획 | 중국은 적인가, 친구인가

“중국 전략목표는 한국의 핀란드화”

사드 격랑이 드러낸 중국의 한국觀

  • 송홍근 기자 | carrot@donga.com

    입력2016-08-23 11:05:2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한-중을 냉전시기 소련-핀란드 관계로?
    • ‘천하세계론’에 따른 ‘대국-소국 관계’ 시각
    • “중원에선 왕도, 오랑캐에겐 패도”
    • 제1도련선 바깥으로 미국 몰아낼 의도
    대국(大國)을 자처하는 중국이 한국을 드세게 겁박하고 있다. 도를 넘어도 한참 넘었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런민일보’ 8월 3일자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관련 사설은 선전포고를 연상케 한다.  

    “한국의 지도자는 신중하게 문제를 처리해 나라를 최악의 상황으로 몰고 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사드 배치는 한국에 아무런 이익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한국을 미국과 중국·러시아 간 군사적 대치에 끌어들일 가능성이 다분하다. 만약 충돌이 발발한다면 한국은 가장 먼저 공격 목표가 될 것이다.”

    ‘사대(事大)’ ‘조공(朝貢)’ 같은 불쾌한 낱말들이 회자됐다. 중국은 도대체 한국을 어떻게 보기에 이렇듯 안하무인 격으로 날뛰는 걸까.  



    “天下에는 바깥이 없다”

    ‘만방래조(萬邦來朝, 각지의 국가가 조공하러 왔다).’ 2014년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의체) 정상회의 때 시진핑 국가주석이 개최한 환영연회를 설명하며 런민일보가 사용한 표현이다. 조공 체계(tribute system)는 중국이 조공을 받고 이웃나라의 권력을 보장해주던 때 형성된 동아시아의 국제 질서다.



    2008년 미국발(發) 금융위기 이후 서구학계에서도 조공 체계 연구가 활발하다. 이들 연구의 상당수는 중국 정부나 민간이 지원한 것이다. “조공 질서가 주변국에 나쁘지 않았다”는 결론인 예가 많다. 조공 체계가 무역 형태였으며 중국이 하사한 물품이 이웃 나라가 조공한 물품 규모보다 컸다는 것이다.

    중국이 아시아의 발전을 돕겠다면서 막대한 자금을 출자해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을 세운 것도 경제적 영향력 강화와 무관치 않다. 한중 FTA(자유무역협정) 협상 때 중국 측 협상단에 조공무역을 전공한 역사학자가 포함되기도 했다.

    중국의 대외정책은 안심시킨다는 안린(安隣), 풍요롭게 해준다는 부린(富隣), 화목하게 지낸다는 목린(睦隣)의 ‘삼린 정책’을 바탕으로 전개된 것으로 전해진다. 이 같은 대외정책은 ‘천하세계론’에 기대어 있다. 천하세계론은 세계(世界)는 있으되 천하(天下)가 없어 대결과 충돌이 일어난다고 본다. 제국주의, 민족주의와 달리 천하에는 바깥이 없어 타자도 동반자, 참여자라는 것이다. 중국은 이렇듯 ‘미국의 패권과는 다른 방식으로 재구성된 천하는 가혹하지 않으며 평화로울 것’이라는 인식 아래 신(新)중화 질서의 이념적 토대를 쌓고 있다.  

    옌쉐퉁(閻學通) 칭화대 국제관계연구원장은 ‘중국의 네오콘’으로 일컬어진다. 그는 ‘왕도’와 ‘패도’를 구분한다. 왕도는 이웃을 강압하지 않으나 패도는 주변을 억압한다. 미국이 서구에는 왕도, 비(非)서구에는 패도를 추구하므로 미국에 맞서려면 중국도 패도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는 게 그의 논리다. 중화 질서에서 천자(天子)는 중원에선 왕도, 오랑캐에겐 패도를 추구했다.



    지역 패권 추구

    2008년 미국발(發) 금융위기 이후부터 중국이 ‘대국-소국 관계’로 이웃나라를 내려다보는 일이 잦아졌다. 평화굴기가 아닌 패권의 발톱을 드러낸 것이다. 최근엔 하급 간부까지 대놓고 대국, 소국 운운한다.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가 7월 12일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에 대해 필리핀의 손을 들어주자 베이징은 대국의 자존심이 상한 것으로 여겼다. 황해의 배타적경제수역(EEZ) 경계를 해안선의 중간선으로 하자는 한국의 주장에 인구 비율대로 정하자는 ‘듣도 보도 못한’ 방식을 협상 테이블에 올려놓는 데도 ‘대국주의’가 깔려 있다.

    한국에 대한 중국의 전략목표는 ‘핀란드화(Finlandization)’라는 견해의 설득력이 높아지고 있다. 핀란드화는 1960년대 서독에서 생겨난 말로, 냉전 시기 소련과 핀란드의 관계를 빗댄 것이다. 특정 국가가 자주독립을 유지하면서도 대외정책에선 이웃한 대국의 영향력 아래에 있다는 뜻이다. 옛 소련은 핀란드의 내정에도 일부 개입했다.

    한란(悍然). 중국어 사전에 ‘서슴없이, 제멋대로, 거리낌 없이, 난폭하게, 강경하게, 무지막지하게’라고 풀이된 단어다. 중국 외교부는 2006년 10월 북한의 1차 핵실험 직후 발표한 성명의 첫머리에 이 표현을 썼다. 한국 언론은 북한을 질타한 중국의 태도에 대해 긍정적으로 보도했으나, 다른 나라를 향해 정부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이처럼 무례한 표현을 쓰는 국가는 찾아보기 어렵다. 중국의 영향력 아래에 있으며 베이징의 대외정책에 반발한 적이 거의 없다.

    핀란드는 ‘핀란드화’를 통해 주권을 지켜내면서 소련과는 확연히 다른 정치체제에서 살았으나 소련에 동조했다. 자국의 지도자가 소련 공산당의 정치국원 격이던 동유럽 일부 국가는 핀란드를 부러워하기도 했다. 서방세계에는 악몽 같은 일이 동유럽 국가에는 꿈같은 일이었다.

    에드윈 풀러 헤리티지재단 설립자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핀란드화와 관련해, 근본적인 질문은 한국인이 무엇을 원하느냐다. 개인의 이익, 한국의 국익, 한국인의 미래와 관련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중립에 위치하거나 중국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것이 좋다고 믿는가. 아니면 한국인이 미국과 60년 넘게 공유한 비전이 옳다고 여기는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중립이라는 것은 한국과 중국이 오래전의 조공 관계로 되돌아간다는 뜻이다. 14억 인구의 중국에 한국은 작은 지방일 뿐이다.”


    한반도 핀란드화는 ‘필요조건’

    천영우 전 대통령 외교안보수석비서관은 ‘동아일보’ 8월 11일자 ‘사드가 싫다면 북핵 포기시키라’ 제하 칼럼에 이렇게 썼다.

    “중국의 위세와 겁박에 맞서 자주독립국가로 남을 것이냐, 대국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는 것을 우리의 주권과 생명보다 소중히 여기고 중국의 사실상 속국으로 되돌아갈 것이냐의 선택이다.”

    중국은 동아시아에서 지역 패권을 추구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무엇보다 한반도에서 영향력 증대를 모색해왔다. 한미동맹, 미일동맹으로 이뤄진 한·미·일 3각 구도에서 한국을 떼어놓으려고 노력했다. 또한 아직은 미국의 군사력과 격차가 상당하기에 비대칭 전력(핵무기, 탄도미사일 등) 확충에 힘써왔다.

    미국 랜드연구소는 “중국이 2020년까지 제1도련선(그림 참조) 안에서 미국 항공모함과 전투기의 작전을 억제하는 군사적 수단을 확보하려 한다”고 분석했다. 1도련선 바깥으로 미국을 몰아내는 게 베이징의 1차 목표라는 것이다. 이른바 1도련선은 한반도-일본 서부-대만-필리핀-인도네시아 자바 섬을 잇는 선이다. 한국의 서해, 남해, 동해가 제1도련선 안에 위치해 있다.

    중국의 반접근·지역거부 전략(Anti-Access and Area Denial)과 관련해서도 미국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한국은 베이징의 전략적 이해에 부합하지 않는다. 한반도의 미군기지가 반접근·지역거부 전략의 결정적 장애물이다. 말라카 및 대만해협 제해권을 미국이 장악한 상황에서 대만과의 통일 전쟁 수행 시에도 미군의 개입을 막아야 한다. 중국의 패권 전략에서 한반도의 핀란드화나 중립화는 필요조건인 것이다.

    사드 배치와 관련해 한국과 미국의 공식 견해는 ‘북한의 핵미사일에 대응하기 위한 것’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중국은 당연히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중국 처지에서 보면 한국에 배치된 사드는 미국에 대한 중국의 핵 억지력에 타격을 준다. 미국이 한국에 배치한 탐지거리 2000㎞의 AN/TPY-2(엑스밴드) 레이더가 중국이 발사한 미사일을 전방 배치 모드로 탐지·식별·추적한 후 알래스카 등에 배치된 사드 기지에 정보를 줘 종말 단계에 요격하는 게 수월해진다.

    한반도라는 ‘특별한’ 위치 덕분에 탄두의 뒷부분을 관찰하는 것도 중국 미사일 요격에 도움이 된다. 탄두가 원추형인 터라 뒤쪽에서 포착하면 더 넓은 단면이 레이더에 나타난다. 또한 한반도에 배치된 사드가 이지스함 발사 요격미사일, PAC-3 등과 연동되면 미군기지와 미군 항공모함 전단에 대한 중국 미사일의 억지력도 훼손된다.  



    지정학적 딜레마

    한국이 가진 딜레마는, 중국과의 관계가 틀어지면 북핵 문제 해결 및 통일과 관련해 베이징의 역할을 기대하기 어렵게 된다는 점이다. 또한 북한과 중국이 밀착할 수 있으며, 중국이 협조하지 않으면 통일은 요원한 일일 수 있다. 대(對)중국 경제 의존도가 높은 상황에서 중국이 경제 보복에 나설 경우 야기될 피해도 무시할 수는 없다.

    어쩌면 우리는 역사에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구조가 요동친 시기’로 기록될 격변의 시대를 사는지도 모른다. 고립주의자가 미국의 대통령이 될 수도 있고, 반미친중(反美親中) 성향의 정치 세력이 한국에서 집권하는 날이 올 수도 있다. 경색된 남북관계 탓에 한국과 북한이 엮여 발언권을 키우기도 어렵다. 사드 파동은 미국과 중국의 지정학적 충돌의 신호탄 격이다. 새로 난 길을 걷게 된 한국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의 핵심은 단일 패권국가의 등장을 막는 것이다. 아시아의 단일 패권국가는 세계 패권 경쟁에 나설 수밖에 없다. 한국이 자존과 번영을 지키려면 역내에서 단일 패권국가가 등장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과거, 단일 패권국가가 등장했을 때 한반도는 속국이거나 변방이었다. 아시아에서 한미의 전략적 이해가 동일한 것이다.”(박세일 서울대 명예교수)

    “미·중 대결 구도가 심화하면 통일이 이뤄질 조건이 갖춰져도 미국과 중국의 협력을 이끌어내는 게 어려울 것이다. 두 나라가 통일 한반도의 미래를 제가끔 의심해서다. 한반도 문제를 미·중 간에 벌어지는 세계 정치 차원의 전략 게임으로부터 분리해내는 게 중요하다. 양자택일의 순간은 오지 않았다. 한미동맹의 기반 위에서 중국까지 품에 안아야 한다.”(윤영관 전 외교부 장관)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