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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생 때리기’는 ‘변화 공포증’

겹눈으로 본 ‘이화여대 사태’

  • 이문원 | 문화평론가

‘이대생 때리기’는 ‘변화 공포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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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대 사태’로 ‘이대생 때리기’가 한창이다. 집단이기심, 속물근성, 패거리주의 등 온갖 코드가 튀어나온다. 그간 ‘이대생’이 대중에게 어떻게 비쳤기에 이런 비난이 난무하는 걸까. 수 세대에 걸쳐 이미지 타격을 받고 있으니 학교도 버티기 힘들어진 걸까.
‘이대 사태’, 즉 이화여대가 교육부 평생교육 단과대학 사업공모에 참여하면서 비롯된 이화여대생들의 반발 사태는, 사실 그 본질이 단순하다. 2010년대 들어 명문 사립대에 지방분교가 새롭게 설립되는 상황을 생각해보면 이해하기 쉽다.

기존 지방분교 대부분은 명문대의 이름값을 담보로 한 ‘학위 장사’ 비판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본교와 분교가 거의 같은 학과들로 구성된 곳도 많다. 그럼에도 비난을 피해간 건 대부분이 30~40년 전에 설립된 덕분이다. 연세대 원주캠퍼스가 1977년, 고려대 조치원캠퍼스는 1980년 설립됐다. 한양대도 비슷한 시기에 분교를 꾸렸다.



언론이 잘못 짚은 것

이런 문제를 지적해야 할 학생들의 학원자주화운동은 1987년 즈음부터야 가동됐다. 그전까지는 학교 경영과 관련된 사안에 학생이 개입하기가 어색한 분위기였다. 등록금 투쟁도 제대로 발동이 걸린 건 1990년대부터다. 지방분교 설립 문제가 2010년대에 불거졌더라면 다른 명문대들도 ‘이대 사태’ 같은 갈등을 겪었을 것이다.

어찌 됐건 갈등의 핵심은 결국 학벌 순혈주의 아니냐고? 그렇게 볼 수도 있다. 그런데 학벌 순혈주의가 왜 지탄받아야 할 문제인지부터 따져봐야 한다. 학벌은 단순 자기 포장 차원이 아니라 온전히 생존의 문제로 거듭난 지 오래다. 최소한도의 생존 무기다. 주어진 시스템에 대한 적응력, 실행력, 응용력 등을 입증하려고 청춘을 바쳐 얻어낸 생존 무기인데, ‘평등한 교육 기회’란 명분을 내세워, 같은 희생을 치르지 않은 이들과 무기를 공유하라고 하면 반발하는 게 당연하다.



아닌 게 아니라, 취업난으로 학생들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공평하지 못한 입시제도’를 둘러싼 순혈주의 논란은 수년 전부터 명문대 중심으로 불거져 나왔다. 본교와 분교뿐 아니라 정시와 수시, 수시 내에서도 갖가지 입시전형 차이를 놓고 학생들 사이에 일종의 ‘카스트’가 형성되고 있다. 학벌 순혈주의는 비단 이화여대만의 문제도 아니고, 이화여대가 그 시초도 아니란 얘기다.

그런데 ‘이대 사태’를 둘러싼 언론 보도와 인터넷 여론은 이런 맥락을 제대로 짚지 않았다. 어떻게 해서든 ‘이대 사태’를 독보적으로 솟아나온 이례적인 상황인 양 특화해 해석하기 바빴다. 절반 정도는 교육부 정책의 문제점을 부각해 박근혜 정부 비판 목적으로 치닫지만, 나머지 절반가량은 순수하게 ‘이대생 비판’으로 갔다. 집단이기심, 속물근성, 패거리주의 등 온갖 코드가 다 튀어나온다. 그렇다 보니 ‘이대 사태’는 그 실체의 무게보다 더 오래, 그리고 더 깊이 대중에게 각인됐다. 도대체 ‘이대생’은 대중에게 어떤 식으로 비치기에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사실 이대생에 대한 조롱과 힐난은 늘 존재했다. ‘명문 여자대학’이 지닌 독특한 위상이 대중으로 하여금 온갖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법이다. 현 시점에서 확인할 수 있는 문학이나 신문기사 속 이대생 조롱과 힐난의 패턴을 잘 살펴보면 시대별로 차이가 뚜렷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요조숙녀, 된장녀, 꼴페미

1990년대 이전의 시선이 새침하고 도도한 요조숙녀, 계급적으로 우위에 서 뭇 남성을 ‘기죽이는’ 여성의 이미지였다면, 2000년대 들어선 ‘된장녀’라 표현되는 사치와 허영의 상징, 그리고 바득바득 남자에게 지고는 못 사는 속칭 ‘꼴페미’의 대표 격 이미지로 재편된다. 한층 극단적이고 위협적인 이미지다.

한반도가 중세 신분사회에서 근대 시민사회로 이동하면서 반상제의 신분 개념을 대체한 것은 자본이 아니라 학력이었다. 근대 시민사회에서 이것은 동일 학력 내에서의 학벌 개념으로 대체될 수도 있다.

그런데 남녀 간 신분격차는 좀 기이한 양상을 보였다. 아직 대중의 인식이 남녀평등 개념에 적응하기 전인 1948년, 미군정이 남한의 과도입법의원에서 보통선거법을 제정하던 중 여성 참정권이 ‘툭’ 주어졌다. 남녀평등은 실질적으로 ‘얻어낸’ 것이 아니라 ‘이식’된 것이었단 얘기다. 그러니 대중이 이런 개념에 제대로 적응하는 데는 시간이 더 걸렸다.

이런 상황에서 ‘대학교육’이라는 초(超)고등교육을 받은 여성, 그리고 그 대표 격으로 떠오를 수밖에 없는 한국 최고 명문 여대생 ‘이대생’을 바라보는 한국 남성의 시각은 어땠을까. ‘여자는 본래 남자보다 낮은 신분인데, 계급 사다리인 학력을 얻어 나보다 더 높은 신분이 된 여자’가 된다. 기묘한 시선이다. ‘인정할 수밖에 없긴 하지만 뭔가 혼란스러운 존재’, 즉 ‘여자가 아닌 여자’다. 아니꼬움이 발동된다. 비슷한 감정을, 여자들이라고 못 느꼈을 리 없다.



‘여성’과 ‘학력’의 이러한 연결고리 인식에서 비롯된 희한한 사건이 있다. 1981년 영국의 찰스 왕세자와 다이애나 스펜서가 결혼하던 때다. 당시 한국 언론에선 ‘무려’ 영국 왕세자와 결혼하는 여자의 학력이 대졸에 못 미친다는 점을 들어 ‘고졸 신데렐라’ 따위의 표현을 줄기차게 써댔다. 계급이 맞지 않는 결혼이라 특이하다는 논조였다. 그런데 다이애나의 아버지 존 스펜서는 백작 신분의 귀족이고, 영국에서 귀족들은 대학에 가지 않고 비정규 교육기관 등을 거치거나 가정교사를 불러 홈스쿨링하는 패턴이 일반적이다. 왕실은 더했다. 찰스 왕세자는 영국 역사상 최초로 학사학위를 받은 왕세자다.

이런 보도가 쏟아진 것은 당시 한국 사회가 이미 ‘계급’ 개념을 ‘학력’으로 온전히 대체한 시점이었다는 방증이다. 또한 여성 중에서도 대학 나온 여성과 안 나온 여성 사이의 계급차를 명확히 인식한다는 점을 드러냈다.



페미니즘 확산 일등공신

여기에서 ‘한국에서 대학 나온 여자’의 대표 격이 된 이대생들에 대한 인식도 확인해볼 수 있다. 1970년대 이전까지 경제활동을 하는 여성의 비율은 극히 낮았고, 이는 고등교육을 받은 여성일수록 더 심했다. 대학 졸업과 함께 배우자를 만나 결혼하는 사례가 일반적인 경우로 여겨졌다. 일터에서 만날 수 있는 동료라는 인식보다 ‘고학력=상위 계급 남성과 결혼할 계급 조건을 갖춘 여성’이란 인식, 위에서 본 한국 언론의 태도로 보자면 ‘왕자님과도 결혼할 자격을 갖춘 여성’이란 인식의 정점에 이대생이 있었다.

상위 계급이 아닌 ‘나’와는 만날 일 자체가 없는 여성의 정점에 이대생이 위치해 있었다고 볼 수도 있다. 결국 이런 과정을 거쳐 새침하고 도도한 요조숙녀, 계급적으로 우위에 서 뭇 남성을 ‘기죽이는’ 여성 이미지가 해당 세대 전반에 걸쳐 이대생에 부여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1990년대 이후 상황은? 1990년대의 청년 세대엔 두 가지 큰 사건이 있었다. 하나가 ‘X세대 열풍’이라면 다른 하나는 ‘IMF 외환위기’다. ‘X세대 열풍’이란 근본적으로 개인주의 열풍에 가까웠다. 정치적 거대 담론에 염증을 느끼며 모든 것을 ‘나’라는 개인단위로 끊어 생각하려던 흐름이다. 그러면서 개개인의 사회문화적 자아 성립에 방점이 찍혔고, 그런 흐름 속에서 페미니즘 이론이 함께 유입됐다.

이화여대와 이대생은 이 같은 1990년대 페미니즘 유입과 확산 과정에서 혁혁한 기능을 담당했다. 여성해방은 이화여대의 창립이념에 가깝다. 이화여대 FM(Field Manual, 공통 구호)부터가 ‘해방 이화’다. 커리큘럼에도 여성학 강의가 국내에서 가장 많고, 여성학이 연계전공으로까지 정립돼 있다.

문제는 이화여대와 이대생들이 여성의 사회 진출에 있어 성 평등권을 주장하면서 남성층으로부터 위협의 대상이 돼온 점이다. 대표적 사례가 군복무 가산점제 폐지 청원 사건이다. 1994년 이화여대 교수와 학생 2000여 명이 7급과 9급 공무원 채용시험의 군복무 가산점제 폐지 청원을 내며 사회운동을 전개했다. 결국 가산점제는 1998년 10월 위헌 판결을 얻어내기에 이른다.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엔 운동권 페미니즘을 제도권으로 안착시켰다는 여성가족부 설립에 이화여대 출신들이 크게 기여했다. 훗날 부산대 월장 사태(2001년 부산대 페미니즘 웹진 ‘월장’이 복학생 문화를 비판하는 글을 실었다가 사이버 테러를 당한 사건)의 논리적 근거들을 제시하는 역할을 맡아, 그저 학생운동으로서의 페미니즘이 아니라 사회 제도권 내에 압력단체화하는 페미니즘을 각인시켰다. 그렇게 또다시 이대생은 동 세대 남성층에게 가장 큰 위협이자 비판 대상이 됐다. 이 과정에서 ‘꼴페미’와 같은 비하조 언어가 생겨났다.



뉴스위크와 스타벅스

‘IMF 외환위기’는 당시 청년 세대뿐 아니라 그 부모 세대가 이뤄놓은 경제적 기반마저 무너뜨렸다. 몇 년 뒤 가히 신드롬화한 ‘된장녀’ 논란은 여기에서 시작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해당 세대 젊은 남성층이 ‘된장녀’ 신드롬을 일으킨 건, 자신들에게 주어진 각박한 경제 현실과는 정반대로 자신들과 짝을 이룰 젊은 여성층 사이에선 과소비 풍조가 일고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이른바 ‘성적(性的) 경쟁’ 차원에서의 허들이 현실과는 판이하게 높아지고 있다는 데서 온 분노와 불안이 그 씨앗이 됐다. 그런데 여기서도 타깃은 주로 이대생들에게 맞춰졌다. 적어도 초기 단계엔 분명 그랬다.

이런 타기팅이 가능했던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먼저, 1991년 11월 ‘뉴스위크’ 아시아판이 표지로 이화여대 앞 풍경을 담으며 시작된 인식의 연장선상이었다. 사진 제목이 ‘돈의 노예(Slaves to Money) : 이대생’이었다. 기사는 1990년대 버블 경제 시기 한국의 과소비 풍조를 비판하는 내용인데, 그 대표 격 이미지로 이대생이 ‘선정’됐다. 사진 속 잘 차려입은 이대생들은 사실 졸업 앨범 촬영 때문에 정장을 갖춰 입은 상황이었고, 이에 사진 속 학생 중 3명이 뉴스위크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해 승소했지만, 대중의 인식 속에 한번 자리 잡은 고정관념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그다음, 초기 ‘된장녀’ 신드롬 당시 대중적 캐치프레이즈는 늘 커피전문점 체인 스타벅스를 두고 성립됐다. 정확히 말하자면 ‘밥보다 비싼 커피를 마시는 여성’, 나아가 데이트하는 남성에게 밥보다 비싼 커피를 ‘사달라고’ 하는 여성이었다. 당시 대학가 백반집 메뉴가 3000원대인 데 비해 스타벅스 커피 메뉴는 4000원대였으니 그럴 만도 하다. 여기서도 또 이대생이 타깃이 된 이유가 있다. IMF 외환위기가 발발한 지 고작 1~2년밖에 안 된 1999년 국내 상륙한 스타벅스 체인의 제1호점이 공교롭게도 이대점이었다.

어쩌면 1991년의 뉴스위크 기사 탓일 수도 있다. 어쩌면 그저 유행에 민감한 젊은 여성층을 초기 타깃으로 설정하는 과정에서 ‘젊은 여성층이 가장 많이 다니는 거리’를 찾다가 일어난 일일 수도 있다. 어찌 됐건 결과적으로 저 ‘밥보다 비싼 커피’ 전문점이 처음 등장한 곳은 이화여대 앞이었고, 결국 이화여대와 이대생은 저 스타벅스를 둘러싼 갖가지 ‘된장녀’ 비판의 소용돌이 속에서 다시 한 번 그 중심에 설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어처구니없는 비판 과정을 두루 거치고 마침내 21세기에 이르러, 이대생에 대한 조롱과 힐난은 미디어와 대중문화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게 됐다. 다음은 ‘이대학보’ 2009년 3월 30일자 기사 ‘풍자와 왜곡 사이…미디어 속 이화 들여다보기’ 중 일부다.



“나 이대 나온 여자야”

2007년 개봉한 영화 ‘상사부일체 두사부일체3’에서는 이대생이 성적 대상으로 그려진다. 극중 조직폭력배 두목이 이대생에게 과외를 받기 시작한다. 두목은 과외선생에게 ‘과외 받는 것이 창피하니 부하가 들어오면 자신과 성행위를 하는 시늉을 해달라’고 요구한다. 이에 과외선생은 “저 이대 나온 여자예요” 대사를 만발하며 거부한다. 문득 두목이 돈을 내민다. 그러자 과외선생은 곧바로 요구에 응한다. 2006년 개봉한 영화 ‘타짜’는 “나 이대 나온 여자야”라는 대사를 유행시켰다. 같은 해 방영된 MBC 드라마 ‘얼마나 좋길래’에서도 이화여대 본교가 거론돼 편견을 조장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 드라마는 2006년 7월 18일 방송에서 신부수업의 일환으로 다도를 배우는 ‘명문가 딸 이대생’을 그렸다.


이 기사가 나온 지 7년여가 지난 지금, 들 수 있는 사례는 훨씬 많아졌다. 주목할 점이 있다면 기사에서 거론된 이대생들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는 앞에서 언급한 두 가지 패턴, 즉 1990년대 이전의 ‘열등감 불러일으키는 상위계급 여성’ 이미지와 1990년대 이후 ‘내 생존을 위협하는 돈 밝히는 된장녀’ 이미지를 섞어놓은 형태란 점이다. 이대생에 대한 사회문화적 편견은 뿌리도 깊고, 편견이 중첩되는 양상이다.

이렇듯 갖가지 이미지 타격을 수 세대에 걸쳐 끊임없이 받고 있으니 학교도 버티기가 힘들다. 일단 대학 이미지와 직결되는 선호도 측면부터 직격타를 맞았다. 대학알리미의 2011~2013년 주요 19개 대학 자퇴율 조사에서도 이화여대는 1위의 불명예를 안았다.

학교 내부가 이러니 외부 반응도 악화됐다. 2014년 졸업생 취업률은 교육부 집계 47.5%로 전체 4년제 대학 평균 54.8%에 못 미쳤다. 2014년 초 삼성그룹이 대학총장 추천에 의한 신입사원 모집계획을 발표할 때도 이화여대는 숭실대·단국대처럼 30명을 할당받은 바 있다.

큰 틀에서 보면 ‘여자대학’의 존재 의의가 희박해지는 시대 흐름 탓일 수도 있다. 그러나 전문대 9개교 포함 49개 여대가 문제없이 운영되는 일본 사례를 생각해보면 그렇게 당연히 여길 흐름도 아니다.

더욱이 객관적 지표로 볼 때 이대생들은 여전히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해외학술지 논문게재 건수도 늘 최상위권이고, 각종 고시 합격률 역시 5위권 내외다. 시대 흐름에 맞춰 1996년 공과계열 4개 학과 설립 후 꾸준히 이공계 학과들을 넓히기도 했다. 갖가지 객관적 지표들을 합산하는 모 언론사의 대학종합평가에서도 2015년 7위에 랭크된 바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도, 선호도가 깊이 개입되는 평판도 순위는 한참 떨어진 14위란 점이 눈에 띈다. 결국 이화여대는 이대생에 대한 오랜 편견과 이를 반영한 미디어 및 대중문화의 선동, 그리고 그 선동에 복잡한 감정을 투영한 대중의 고정관념 탓에 실체와 관계없이 그 위상이 흔들리고 있는 게 맞다는 얘기다.

다시 ‘이대 사태’로 돌아가 보자. 미디어는 꾸준히 ‘학벌 장사’와 ‘교육의 질 저하’를 내세우는 이대생 측의 반발 명분에 대해 ‘사실은 학벌 순혈주의’ ‘사실은 고도의 학벌주의’란 뉘앙스를 풍기는 기사를 써댔다. 이대생 측의 주장에 이미 ‘위선’이 담겼다는 식이다. 미디어부터 이런 식으로 나오니 대중도 이 같은 기사의 논조를 따라가기 마련이다.

사실 평생교육 단과대학 사업공모 건은 이처럼 점차 흔들리는 학교 위상을 방어하기 위한 타개책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거센 이미지 하락에 맞서 어떻게든 긍정적 객관 지표들을 늘려가야 하는 상황에서 선택된 불가피한 방법일 수 있다. 이에 대해 이대생들은 그나마 손에 쥔 생존의 동아줄이라도 붙잡기 위해 생존투쟁을 벌였을 것이다.



누가 이대를 흔드나

이런 상황에서 과연 누가 누구를 탓할 수 있을까. 이건 이미 여론처럼 ‘명문대생의 이기심’ 차원 정도로 해석될 일이 아니다. ‘여성’에 대한, ‘교육받은 여성’에 대한, 그리고 ‘교육받은 여성의 사회 진출’에 대한, 마침내 ‘교육받은 여성의 사회 진출로 인한 변화와 위협’에 대한 관점으로서만 이해될 수 있는 문제다. 그 과정에서 벌어진 필연적 충돌, ‘이대 사태’로 인해, 국내 최고 명문 여자대학은 다시 한 번 타격을 입고 그 존재 근거를 또다시 위협받고 있다. 사태를 바라보는 시각 자체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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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원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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