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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

“응급환자 깔아두다 죽이는 게 병원이 할 짓입니까”

이국종 경기남부 권역외상센터장

  • 송홍근 기자 | carrot@donga.com

“응급환자 깔아두다 죽이는 게 병원이 할 짓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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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남자 독하다. 날이 서 있다. 목에 칼을 들이대도 원칙을 지킬 것 같다. 앞뒤 안 보고 무슨 짓이든 해서 환자를 살리려 한다. 이국종(47) 경기남부 권역외상센터장(아주대 의대 교수). ‘아덴만 영웅’ 석해균 선장을 살린 바로 그 사람이다.

그를 만나기 전 A4 용지 101장(10만9000자) 분량의 비망록을 읽었다. 언젠가 책으로 출간하려고 그가 적은 것이다. 비망록 첫 문장은 이렇다. ‘이 글은 삶과 죽음에 대한 치열한 기억으로서 읽히길 바란다. 의료진은 모두 실명이며 환자는 프라이버시를 고려해 가명으로 처리했다.’

아직은 구성이나 문장이 온전히 갖춰지지 않은 초벌 원고다. 읽는 내내 마음이 아팠다. 실명으로 등장한 일부 인사의 행태는 너저분하다. ‘병원 내 정치’와 관련한 내용도 있다. 이 비망록은 책으로 출간되지 않아야 할 것 같다. 책이 나오면 그가 일을 그만둬야 할지도 모른다.    

그와 대화를 나누면서 비망록에 나온 부조리한 일에 대한 설명을 부연해 들었으나 기사에는 다루지 않기로 했다. 그가 앞으로도 오랫동안 생사의 경계에 선 이를 돌봐주길 바라서다.  





“살리는 게 먼저다”

경기남부 권역외상센터 수술실. 분위기가 싸늘하다. 남자 손치고는 가늘고 곱다. 수술용 가위가 날카롭다. 눈의 실핏줄이 터질 듯하다. 응급수술. 대장과 소장이 터졌다. 창자간막이 너덜너덜하다. 보호자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살리는 게 먼저다. 석해균 선장도 대장에 총알이 관통했다.

“술 드시고 넘어지거나 구른 것 같아요. 뭔가에 부딪혔겠죠. 소장만 다친 게 아니라 창자간막, 대장도 터졌어요. 소장이 터져나갔는데, 대장은 완전히 터지진 않았습니다. 대장이 터지면 평생 기저귀를 찰 수도 있어요.”   

수술은 1시간 만에 성공적으로 끝났다. 다행히 출혈이 적어 환자 상태가 좋은 편이었다.  

“골든타임이란 게 있잖아요. 이 환자도 병원에 늦게 왔으면 출혈, 복막염으로 죽을 수 있었어요.”

교통사고, 자상(刺傷) 등으로 인해 생기는 출혈성 중증 외상환자는 1시간 이내로 병원에 도착해야 살 확률이 높아진다. 심한 외상 뒤 15분 안에 병원에서 치료받으면 대부분 살고, 30분이 지나면 50%가 사망하고, 1시간이 넘으면 대부분 목숨을 잃는다.



‘깔아두다’가 ‘쏜다’

“사고 난 후 1시간 이내가 골든타임이에요. 미국의 경우 중증 외상 환자의 82%가 1시간 내에 수술을 받습니다. 메릴랜드처럼 의료 시스템이 잘돼 있는 주는 100%에 육박하고요.”

▼한국은 살릴 수 있는 환자가 죽는 비율이 35%라고….  

“보건복지부에서 보수적으로 계산한 수치예요. 선진국 기준을 적용하면 사망률이 더 올라갑니다. 병원에서 사망한 것뿐 아니라 사고 현장, 이송 단계에서 목숨을 잃은 것까지 살펴봐야 해요. 그렇게까지 계산하면 사망률이 너무 높아지기 때문에 겁나서 통계를 못 냅니다. 일부 연구자는 70%가 넘는다고 주장해요.”  

사망 비율 35%도 미국이나 일본 등이 15〜20%인 것을 감안하면 상당히 높은 수치다.

그는 권역외상센터는 사회안전망(safety net)이라고 했다.

“환자 대부분이 블루칼라예요. 끗발 좋은 이가 거의 없어요. 외제 승용차 타는 분은 사고가 나도 에어백이 6개씩 터집니다. 탑차, 다마스, 오토바이, 봉고차 타는 분, 나라를 떠받치는 중화학공업, 건설, 플랜트 등 기간산업 현장에서 일하는 분이 실려 오죠. 권역외상센터는 국가가 국민에게 반드시 제공해야 하는 사회안전망입니다. 국민의 생명을 최우선으로 보호하는 것은 국가의 의무예요.”  

경기남부 권역외상센터가 아주대병원에서 공식 개소한 것은 지난 3월 13일이다. ‘의사 이국종’과 ‘선장 석해균’이 없었다면 전국 각지에 권역외상센터가 들어서는 일은 지금보다 더 늦춰졌을 것이다.  

권역외상센터는 아주대병원, 부산대병원, 인천 길병원, 원주 세브란스병원, 단국대병원, 대전 을지대학병원, 광주 전남대병원, 목포 한국병원, 울산대병원 등 9곳에 설치됐다. 독립된 건물을 확보한 곳은 부산대병원과 아주대병원 두 곳뿐이다.

경기남부 권역외상센터는 정부에서 100억 원, 경기도에서 200억 원 등 400억 원을 지원받았다. 의료진 인건비도 정부가 지원한다. 2012년 5월 ‘이국종법’으로 일컬어지는 ‘중증외상센터 설립을 위한 응급의료법 개정안’이 통과된 덕분이다. 경기남부 권역외상센터는 100병상 규모인데 그중 중환자실이 40병상이다.



“이름난 대형병원의 중환자실 병상 비율이 7%가 안 될 겁니다. 중환자실은 원가 보전이 안 돼 적자가 나는 구조거든요.”

선진국에서는 골든타임이 중요한 외상 환자를 치료하는 외상센터와 응급실을 분리해 운영하는 데 비해 한국의 대형병원 응급실은 중증·경증 환자가 뒤섞여 북새통일 때가 많다.

친분 있는 의사가 있으면 응급실로 이동하면서 전화를 걸어 병상을 청탁하는 게 관행처럼 됐다. 응급수술이 필요한 환자가 이 병원, 저 병원을 오가다 길에서 죽거나 적절하게 치료받지 못해 목숨을 잃기도 한다.

‘깔아두다’ ‘쏜다’라는 병원 은어가 있다. 깔아두는 것은 환자를 응급실에 방치하는 것을 뜻한다. 응급실에 찾아온 환자를 받지 않으면 응급의료법 위반으로 처벌받으니 일단 ‘깔아두다’가 다른 병원으로 전원(轉院)시키는 것(‘쏜다’)이다.

중증 외상환자는 병원 처지에서 달갑지 않다. 응급실과 분리해 외상환자를 치료하자니 비용이 많이 든다.

“외상센터에 의사가 저 하나일 때 1년 적자가 8억 원이었어요. 20병상 운영할 때 얘깁니다. 의사 1명이 늘어나니 적자가 10억 원이 넘더군요. 경기남부 권역외상센터를 유치하려고 인원을 늘리니 20억 원 넘는 적자가 났고요.”



지하2층 창고 방 5년

경기남부 권역외상센터의 의료진은 외상외과 5명, 응급의학과 1명, 정형외과 3명, 신경외과 1명, 마취과 1명, 영상의학과 1명으로 꾸려졌다.

▼ 비망록에 ‘지하2층 하수가 벽을 타고 흘러내리는 창고 방에서 5년을 지냈다’고 써 있더군요. 격세지감이 있겠습니다.

“방이 아니라 창고예요, 창고. 그냥 뭐 괜찮았어요. 조용하고 좋았어요. 혼자 지냈으니까요. 2004년 이후 단 한 번도 의과대학 교수라고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대학병원에서 일하는 파견 용역직원이라고 여겼죠. 동료, 후배들과 비교하지도 않았고요.”

그가 쓴 비망록 4쪽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씌어있다.

‘2004년 이후로는 단 한 번도 외상외과를 계속할 마음이 없었다. 언제나 다른 전공을 찾아 도피할 생각만 했다. 외상외과라는 이상한 전공을 벗어버리고 그럴듯한 틈새 전공을 찾아 지속 가능한 직장생활로 전환하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했다. 그렇게 지내던 중 2011년 1월 오만에 갔고 그때부터 갑자기 유명한 의사가 되는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불과 두 달 전만 해도 병원 적자의 주범이자, 적정 진료의 방침과도 맞지 않고, 대학병원에서 가장 쓸데없는 전공이라는 취급을 받으며 사직(辭職)과 전직(轉職)만 생각했는데 ‘명의’라는 방송 프로그램에서 취재를 나온다고 하자 어이가 없었다. 병원에서는 거의 예능 프로그램에 가까운 방송에까지도 출연을 지시했지만 하지 않았다.”



이국종 살린 석해균

4000억 원 넘는 매출을 올리는 대학병원 임상과목 체계에서 전임이라고는 달랑 그 혼자인 외상외과가 병원의 모든 저수익-고지출 수익 구조와 임상 과목 간 갈등의 주범으로 몰렸다. 사직 권유와 압박이 거셌다. 언제 병원에서 쫓겨날지 몰라 고속도로 톨게이트 쿠폰을 60장 살지, 30장 살지 고민하던 그가 일약 명의가 돼버린 것이다.    

“외상외과 의사가 뭐하는 사람인지 되묻지 않는 사람은 주한미군 군의관밖에 없던 시절이에요. 다음 달은커녕 다음 주도 장담 못하고 병원을 다녔죠.”

석해균 선장의 생명을 구한 은인이 이국종이라면, ‘외상외과 의사 이국종’을 구한 은인은 석해균이다.

“석 선장을 한국으로 이송해야 하는데 에어 앰뷸런스(응급의료 전용기)를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오만에 함께 간 김지영 간호사가 스위스 업체에다 ‘대통령 특사’라고 거짓말을 해서 간신히 에어 앰뷸런스를 확보했습니다. 사람부터 살려야 하니 대통령 지시를 받았다고 속인 거죠. 그런데 에어 앰뷸런스를 이용할지 말 지를 1시간 내에 확정하라는 겁니다. 그때 5개 정부 부처가 오만에 나와 있었는데 서울 시각이 오전 3시라면서 우왕좌왕하는 거예요. 비용이 37만 달러였는데 제멋대로 에어 앰뷸런스를 보내라고 했습니다.

김 간호사는 ‘4억 원 넘는 돈을 우리가 어떻게 책임지냐’며 전전긍긍하다 그 시각에 허윤정 당시 야당 소속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문위원에게 전화했어요. 야당이 아덴만 작전이 성급했다면서 국정조사를 하겠다고 벼를 때인데, 허 위원은 ‘야당이고 여당이고 사람부터 살려야 한다’면서 여당의 원희목 의원에게 전화했고, 원 의원이 청와대와 우리 쪽을 연결해 핫라인이 구축됐습니다. 대통령 정무수석이던 정진석 의원이 저한테 전화를 걸어왔을 때를 또렷하게 기억해요. ‘청와대 정진석 정무수석입니다. 지금부터 상황을 제가 통제합니다’라던 음성까지 떠오릅니다.”        

서울공항(경기 성남시)이 열렸고, 아주대병원까지 가는 길이 비워졌다. ‘아덴만 영웅’은 그렇게 살아났다.  

외상외과 의사의 삶은 피폐하다. 의사 개인의 희생을 필요로 한다. 예상하지 못한 시간에 계획하지 않은 수술을 한다. 경기남부 권역외상센터에는 1년 동안 4차례만 집에 갈 정도로 혹독하게 일한 의사(정경원 교수)도 있다.  


헬기 레펠 훈련

경기남부 권역외상센터 의사와 간호사는 헬기에서 줄을 잡고 강하하는 훈련도 받는다. 응급환자를 헬기 안에서 수술하기도 한다. 고소공포증 탓에 헬기에서 뛰어내리지 못해 이국종 센터장에게 호되게 야단맞던 후배 의사는 동기 중 최초로 실제 상황에서 환자를 구하려고 헬기에서 뛰어내렸다.

병원 옥상에 헬기가 착륙하는 방식으로 응급환자를 옮기게 된 것도 ‘이국종법’ 덕분이다.  ‘중증외상센터 설립을 위한 응급의료법 개정안’에 따라 권역외상센터가 설치된 병원은 헬기 착륙장을 둬야 한다.

헬기를 활용한 외상환자 치료 시스템을 구축하면서 욕도 많이 먹었다. 의사가 소방헬기를 타고 설쳐대면서 의사의 값어치를 똥값으로 만듦과 동시에 같이 근무하는 동료 의사들과 간호사들의 목숨을 담보로 쇼를 한다는 것이었다.

주한미군 의료항공대가 북한 주민을 블랙호크 헬기에 실어온 적도 있다.

“4명이 서해에서 표류했는데 3명은 사망했대요. 미군은 어부라고 했는데, 헤어스타일은 군인 같았습니다. 북한 환자는 중환자실에서 빠른 속도로 좋아졌어요. 미오글로불린뇨증(myoglobulinuria)은 수액요법으로 완화됐고, 산성 과다(acidosis)도 정상화됐습니다. 국정원, 기무사 요원보다 의료진을 더 편하게 여기더군요. ‘딸이 간호사 선생님처럼 예쁘게 자랐으면 좋겠다’며 사적인 얘기도 했어요.

딱 거기까지더군요. 요플레 한 통을 맛있게 먹고 나선 ‘우리 민족끼리의 상생 방침에 남측 정부가 협조를 안 해 어려움이 있다’는 둥 노동당에서 배포한 교육자료를 암기한 듯한 발언을 쏟아냈습니다. 이만하면 됐다 싶었습니다. 국정원 요원을 불러 국군수도통합병원으로 이송시켰습니다. 환자는 북한으로 돌아간 것으로 압니다.”  

경기남부 권역외상센터는 8월 30, 31일 을지프리덤가디언(한반도 우발 상황을 가정해 매년 실시하는 한국과 미국의 합동 군사연습)에 참여한다.

“전쟁이 벌어지면 민·관·군이 따로 없잖아요. 미국 육군 헬기가 한국 해군 독도함에 응급환자를 싣고 착륙하는 훈련입니다. 최전선에서 부상당한 장병이 외상센터로 이동돼 1차로 응급수술을 받은 후 일부는 오산기지로, 일부는 독도함으로 옮겨지는 겁니다. 독도함에는 활주로 없이 이륙하는 미군 수송기가 대기합니다. 내륙의 주한미군 거점이 스커드미사일에 파괴됐다는 가정 아래 부상자를 일본으로 옮기는 거죠.”



“불꽃놀이가 끝나면…”

사람은 겉모습이 다가 아니다.

그는 풍족하지 않은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아버지가 6·25전쟁 때 한쪽 눈을 잃고, 팔다리를 다쳤다. 참전용사 가족에겐 영예보다 상처가 더 컸다. 그는 다짐했다. “아픈 사람에게만큼은 결코 함부로 대하지 않겠다”고.

오랫동안 그와 날이 선 대화를 나누면서 이 독한 남자는 비관주의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늘 최악을 염두에 두고 그 안에서 언제나 최선을 다하는.   

2012년 아주대병원은 권역외상센터 설치지원기관 1차 선정 과정에서 탈락했다. 이듬해 2차 공모에 재지원해 선정됐다. 1차 탈락 후 병원에서 겪은 참담한 일이 비방록에 서술돼 있다.

그는 지금도 힘들다. “언제까지 병원을 다닐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각 지역에 들어선 권역외상센터의 미래에 대해서도 비관적이다.

“권역외상센터 사업이 유명무실해질 소지가 커요. 정부 지원을 따낼 때까지는 각 병원이 다 열심히 했죠. 현재는 외상환자가 별로 없어 의사들이 놀고 있다면서 다른 수술이나 일을 하게 해달라고 보건복지부에 요구합니다. 보건복지부도 황당할 겁니다. 서로 하겠다고 나서더니 이제 와서 딴소리를 하니까요. ‘불꽃놀이’가 끝나면 정부 지원으로 지은 외상센터 시설이 ‘심장 센터’ ‘산부인과 센터’ 같은 돈 되는 진료를 하는 곳으로 바뀔지도 몰라요.”  

살 수 있는 사람을 죽이지 않는 외상환자 치료 시스템을 구축해내고야 말겠다는 그의 다짐이, 첫발을 뗀 것을 넘어 활짝 꽃피우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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