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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부하들 적진 보내는 날 올까 두려웠다”

영원한 ‘특전맨’ 전인범 前 특전사령관

  • 이혜민 기자 | behappy@donga.com

“부하들 적진 보내는 날 올까 두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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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인범이 ‘잔인범’ 된 사연

“부하들 적진 보내는 날 올까 두려웠다”

육군 특전사령부 장병들이 얼음물을 헤치며 수중침투훈련을 하고 있다. [동아일보]

▼ 사성(四星) 장군을 못해 아쉽진 않습니까.

“별 4개 못 단 건 아쉽지 않습니다. 군복 입고 국가 위해 봉사할 기회가 더는 없다는 게 아쉽죠. 육사 꼴찌가 이 정도 된 것만 해도 어디예요.”

▼ 꼴찌요?

“입학할 때 성적이 꼴찌에서 두 번째였습니다. 다행히 영어시험에서 만점을 받았는데 그것 때문에 합격시켜준 게 아닌가 싶어요. 학창시절 체육성적은 늘 C, D였고. 겁도 많았죠.”

▼ 그런 분이 어떻게 군인이 됐습니까.



“어릴 때부터 꿈이 군인이었습니다. 7살 때 부모님이 이혼하셨는데, 외교관인 어머니를 따라 1965년부터 5년쯤 미국에서 살았어요. 늘 외톨이였어요. TV 프로그램 ‘전투(Combat)’를 보다 샌더스 중사에게 푹 빠졌죠. 12살 때 한국에 돌아와 외삼촌과 국군의 날 행진을 봤는데 외삼촌이 ‘군인 되려면 육사 가야 한다’고 해서 육사에 갔습니다.”

▼ 군사정권을 거치면서 어머니가 아들의 꿈을 반대하진 않았습니까.  

“어머니는 ‘모범적인 군인이 되라’고 하셨어요. 무장공비가 침투했을 때도 ‘공산주의자들이 나를 납치하더라도, 나는 죽게 놔두고 너희는 나라를 택하라’고 가르친 분입니다.”

▼ 육사 생도 시절은 어땠습니까. 별명이 ‘잔인범’이었다고….

“1학년 때 한 선배가 이유 없이 동기들 뺨을 때리기에 해결하려고 나섰다가 주동자로 몰렸습니다. 하도 심하게 기합을 주니까 자퇴하고 싶은 생각까지 들더군요. 그런데 우연히 그 선배와 같이 기합을 받은 적이 있어요. 그 선배는 ‘원산폭격’을 3분도 채 못하더군요. 귀여움만 받았지, 기합을 안 받아봤대요. 그걸 보고 ‘고통을 겪어보지 않으면 남한테 포악하게 구는구나’ 싶어 후배들에게 기합을 많이 줬습니다. 불합리를 경험한 사람이 불합리해지기는 쉽지 않습니다.”

▼ 동기인 박지만 씨와 친했습니까.

“어머니가 외교부에 계실 때 육영수 여사의 통역을 맡으셨는데, 어린이날이 되면 육 여사가 ‘얼마나 힘드냐’면서 저희에게 과자랑 금일봉을 챙겨주셨대요. 어머니가 ‘지만이 잘 챙겨라’고 하셨는데, 지만이 주변엔 늘 사람이 많아서 제가 들어갈 틈이 없더라고요.”  



 아웅산에서 배운 군인정신

▼ 어떤 군인이 되고 싶었습니까. 지키고자 한 가치가 있었나요.  

“평범한 집 딸인 어머니는 유학을 가는 게 꿈이었대요. 그러다 유학기관에서 나온 분의 통역을 맡을 기회가 있었는데, 그분이 유학 길을 열어줘 인생이 달라졌죠. 어머니는 늘 ‘대가 없이 남을 도와야 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세상을 좋게 만들고 싶었습니다. 대위 무렵부터 그런 생각을 한 것 같아요.”

▼ 전역사에서 고마운 선배들을 꼽으며 5공 인사인 정호용 장군을 언급했는데요.  

“정 장군님이 육군참모총장 시절 밤에 라면 끓이려고 냄비를 찾다가 소동이 난 적이 있어요. ‘우리를 부르시지 그랬냐’고 했더니 ‘너희들 곤히 자는데 깨울까 봐…’ 하시는 겁니다. 그분이 그런 분입니다. 그분을 보면서 사람을 진실하게 대해야 사람이 따른다는 걸 배웠습니다.”

▼ 아웅산 사건 때 이기백 합참의장을 구한 일화가 유명합니다.

“폭발로 두피(頭皮)까지 열린 이기백 장군님을 모시고 병원으로 달려갔어요. 온몸에 박힌 파편 제거수술을 받고 붕대로 친친 감아놓아서 미라 같던 분이 의식이 돌아오자 마자 이러시는 겁니다. ‘각하 괜찮으시냐, 지금 몇 시냐, 밥은 먹었냐….’ 그 상황에서 하기엔 너무나 비현실적인 질문 아닙니까. 상관과 부하를 저렇게 챙기고 위하는 게 진짜 군인이란 걸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 처절한 현장에서 군인정신을 배웠네요.  

“그렇죠. 그때 이기욱 재무부 차관도 큰 부상을 입고 필리핀 클라크 공군기지로 후송됐다가 그곳에서 돌아가셨어요. 제가 의사의 말을 통역해 ‘차관님, 손을 꽉 쥐어보십시오’ ‘들리십니까’ 하고 계속 여쭤봤지만…. 저는 그때부터 ‘운이 좋아 살아남은 사람’으로서 삶의 의미를 찾았습니다.”

▼ 운이 좋았다?

“상황실에 있다가 카메라 배터리를 교체하려고 잠깐 나갔다가 살아난 겁니다. 저는 ‘영웅’이 아니라 119 대원처럼 현장으로 간 것뿐입니다. 그때 기자가 저를 촬영했기 때문에 알려진 거죠. 우리 사회에는 알려지지 않은 영웅이 많이 있습니다.”

▼ 그런 일을 겪고 나면 삶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집니까. 두렵지는 않았습니까.  

“그런 일이 다시 일어나도 똑같이 행동할 수 없을까 봐 두려웠습니다. 장담은 못하겠더라고요. 그럼에도 저는 죽음보다 불명예를 더 두려워하기 때문에 그렇게 행동할 확률이 높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 결심을 잊지 않고 되새기며  ‘이래서 군인으로 산다’는 희열도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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