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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친구에게 ‘이거 써보자’할래”

성인용품점 즐겨 찾는 20대 여성들

  • 김예슬 | 고려대 미디어학부 3학년 doonga123@naver.com

“남자친구에게 ‘이거 써보자’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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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여성용 성인용품 판매 급증
  • ● 커피전문점 가듯 자연스럽게 들러
영화 ‘그날의 분위기’에서 재현(유연석)은 열차 옆자리의 수정(문채원)에게 “저 오늘 웬만하면 그쪽이랑 자려고요”라고 말을 건넨다. 수정은 자신은 그런 여자가 아니라며 발끈한다. 재현은 수정에게 끊임없이 들이대고 수정은 점차 마음을 열어간다. 여성은 이렇게 남성 욕구의 대상으로써 수동적으로 묘사되곤 한다.

그러나 이런 고정관념과 다르게, 요즘 20대 여성 중 적지 않은 이는 성에 대해 ‘진보적’인 편이어서 성인용품점을 즐겨 찾는다. 성인용품점은 자위행위나 성행위를 보조하는 도구들을 공공장소 또는 온라인에서 파는 곳이다.  

성인용품 시장에서 여성의 구매율이 크게 늘고 있다. 인터넷 옥션에 따르면 여성용 성인용품 판매율은 2015년 100%, 2014년 128%, 2013년 197% 증가했다. 남성용 성인용품의 판매율이 같은 기간 각각 50%, 60%, 55% 늘어난 것과 비교하면 증가세가 두드러진다.

여성들은 익명성이 보장되는 온라인을 통해서만 성인용품을 구매하지 않는다. 서울시내 성인용품 판매 업소들에 따르면, 거리의 성인용품 매장을 직접 방문해 구매하는 여성의 숫자도 최근 눈에 띄게 늘고 있다고 한다.

필자는 금요일 오후 서울 강남구 압구정 로데오 거리의 ‘부르르 XXX’ 압구정점 매장을 찾았다. 성인용품은 남성용과 여성용으로 나뉘는데, 이곳은 여성 고객만을 겨냥해 여성전용 용품을 판다. 필자가 이곳에 잠시 머무르는 동안 필자 또래의 젊은 여성 5명이 이 매장에 들러 필요한 물건을 골랐다. 둘은 함께 왔고 셋은 각각 혼자 왔는데 다들 부끄러워하는 기색 없이 커피전문점 같은 곳에 온 듯 자연스럽게 행동했다.





“이런 거 필요 없어~”

이 매장은 인테리어도 산뜻하고 세련되게 해놓았다. ‘성인용품점’ 하면 연상되는 음습한 이미지는 찾아볼 수 없다. 매장 운영자 강모(23) 씨는 “혼자 오는 여성이 정말 많다”며 “온라인 숍에서 구매하는 여성도 많지만, 매장의 분위기가 개방적이고 밝다 보니 직접 방문하는 고객이 늘어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처음엔 혼자 왔다가 다음번엔 남자친구를 데리고 오는 손님도 있다”고 덧붙였다.

얼마 뒤 20대 남녀 커플이 들어와 여성용 자위행위 보조기구들에 관해 강씨에게 이것저것 물어봤다. 여성용 기구인데도 질문하는 건 남자 쪽이었다. 여자는 한 발 뒤에 서서 설명을 듣기만 했다. 이 커플은 여성용 성인용품을 선택한 뒤 남자가 계산을 하고 매장을 떠났다. 이런 ‘상황’에 대해 강씨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커플이 방문하는 경우 십중팔구 여성은 소극적 반응을 보인다. ‘이게 뭐야~’ ‘이런 거 필요 없어~’ 하는 식으로. 내숭을 떤다고 해야 하나. 그러다 남자친구의 권유에 못 이기는 척 구매한다. 하지만 그랬던 분들이 나중에 여자친구들과 함께 다시 찾기도 한다. 아직까진 여성이 자신의 성적 욕구를 남성에게 거리낌 없이 드러내는 것을 꺼리는 분위기가 있는 것 같다.”


“섹스만으론 한계”

성인용품 공급자들은 까다로운 여심(女心)을 잡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여성용 성인용품점을 운영하는 한 점주는 “여성들은 위생에 매우 민감하다. 그래서 인체에 무해하다는 인증을 받은 상품만 팔고 있다”고 말했다.

필자는 토요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합정동 여성전용 성인용품 숍 ‘플XXX’을 방문했다. 몇몇 여성이 출입구 앞을 서성이다 안으로 들어갔다. 이 매장은 홍익대 인근인 이 일대의 여느 카페와 같은 세련된 외관과 내부가 들여다보이는 통유리를 갖추고 있었다. 손님들에게 이곳을 찾는 것이 부끄럽지 않다는 느낌을 주려는 듯했다. 매장 안에서 만난 최연주(여·28) 씨는 “지나가다 옷가게인 줄 알고 들어왔는데 성인용품점이라 조금 놀랐다”고 했다.

업소 내부도 곳곳에 진열된 상품을 자세히 살펴보지 않으면 성인용품 매장이라고 하기 어려울 법했다. 고급스러운 가구와 은은한 조명을 효과적으로 사용해 명품 매장과 비슷한 분위기를 냈다. 진열대 위의 자위행위 보조기구나 다양한 콘돔이 민망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김수연(여·27) 씨는 “예전엔 성인용품점은 더럽다는 이미지가 강했는데, 요즘엔 여성 취향의 밝고 깨끗한 분위기의 매장이 생겨서 방문할 때 부담이 덜하다”고 말했다.

성에 대한 개방 풍조가 확산된 때문인지 20대 여성들 사이에선 성인용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듯하다. “트렌디한 성인용품 가게들이 생겨나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됐다. 한 번쯤 사보고 싶게 만든다.”(대학생 양지혜 씨·24) “남자든 여자든 섹스를 통해 성욕을 해소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고 본다. 성인용품 사용을 이상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대학생 김지현 씨·23) “성인용품이라고 하면 콘돔이나 러브젤 같은 것만 생각했는데 직접 사용하는 친구의 말을 들어보니 나도 한번 써보고 싶어졌다.”(강모 씨·23)

필자가 여성용 성인용품점을 방문했을 때에도 단골 고객보다는 호기심에 매장을 처음 방문하는 고객이 훨씬 많았다. 성인용품 판매업자들은 처음엔 여성 고객들이 부끄러워서 온라인으로 주로 구매할 것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실제로 상당수 여성 고객은 매장을 방문해 물건을 직접 보면서 쇼핑하는 것을 선호했다. 업자들은 고객의 이런 기호를 반영해 오프라인 매장을 늘리는 추세라고 한다.  

서울 중랑구 면목동에서 성인용품점을 운영하는 최모(47) 씨는 “온라인 전용 성인용품점들이 오프라인 매장을 열고 있다. 전체 성인용품점 수가 늘고 있다기보다는 젊은 여성을 타깃으로 하는 성인용품점 수가 증가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남자친구 있는데 왜…”

서울 서대문구에서 남녀공용 성인용품점을 경영하는 윤모(38) 씨는 “내 매장도 나름 ‘여성 친화적’이라고 생각했는데 얼마 전 몇몇 여성 전용 성인용품점을 가보고 놀랐다. 성인용품점도 여성 취향으로 변모하는 게 대세인 것 같다”고 전했다.

성인용품점은 더 이상 골목길에 숨어 있을 필요가 없다. 여성의 성적 욕망 역시 마찬가지인 듯하다. 하지만 여성의 성적 욕구를 마냥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것만은 아니다. 윤태연(여·26) 씨는 “우리 사회는 여성이 섹스를 하는 것에 대해선 개방적인 것 같지만, 여성이 자위행위를 하는 것에 대해선 여전히 보수적인 것 같다”고 했다.

김수연 씨는 “한 성인용품점 직원으로부터 ‘남자친구가 있는데 왜 자위용품을 사느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이어 “남자에겐 ‘여자친구가 있는데 왜 자위행위를 하느냐’고 묻지 않는다. 아직 여성의 성적 욕구를 터부시하는 경향이 있다”고 덧붙였다. 한 매장 운영자는 “성인용품이 ‘남성의 대체’가 아니므로 오해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여성학자 이종임 씨는 “‘성인용품’이라는 단어는 은밀한 욕망으로 인식돼왔다. 그러나 요즘의 젊은 여성은 남성 중심의 시선에서 벗어나 자신의 욕구를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것 같다”고 해석했다.

서울 홍익대 정문 부근의 성인용품점 콘XXX에서 20대 초반 여성들이 성인용품이 담긴 쇼핑백을 한아름 들고 점포 문을 나섰다. 이들은 “남자친구한테 다음에 이거 써보자고 할래!”라며 깔깔거렸다. 


※이 기사는 고려대 미디어학부 ‘탐사기획보도’수강생이 박재영 교수의 지도로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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