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10월호

경북 김천시 “영남의 중추도시로 우뚝 선다”

‘관문도시’로의 부활이 목표, 70여개 표창수상 (자치단체장 : 박팔용 시장)

  • 이권효 < 동아일보 사회부 기자 > sapio@donga.com

    입력2005-04-04 17: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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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천시는 친환경적·친문화적 도시행정으로 경실련과 TBC 주최 ‘제2회 도시환경문화상 대상’, 대한국토도시계획학회·중앙일보·경실련 주최 ‘제1회 도시행정종합평가 대상’을 수상했다. 금년에도 정부의 ‘농정종합평가 최우수상’, 한국능률협회의 ‘제6회 한국지방자치경영대상 행정혁신부문 최우수단체상’을 수상하는 등 일반행정 민원봉사 도시개발 농정 문화 환경 등 각 분야 평가에서 최우수 자치단체로 선정됐다. 이것은 지방자치제 실시 이후 지역발전과 주민화합을 위해 자치단체장을 중심으로 간부들이 협력하여 헌신적으로 노력한 결과로 평가된다.

    김천시는 도농통합형 전원도시라는 목표를 설정하고 지역발전을 위한 사회간접자본 시설의 확충뿐 아니라, 지역발전의 가장 중요한 동인을 주민화합이라고 보고, 이를 위한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왔다. 특히 지방자치대학 등 시민교육과 주민이 참여하는 다양한 문화행사를 통해 주민들의 자긍심을 높이고 관과 민의 거리감을 해소하는 데 노력했다.

    1995년부터 총 316명의 인력을 감축하는 한편, 전공무원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경상경비를 절감하여 확보한 606억원을 연차별로 모두 주민숙원사업에 재투자하였으며, 부수적인 효과로 정부구조조정을 공무원들의 동요 없이 마무리했다. 또한 건설사업설계단 운영과 민간위탁사업 확대, 경영수익사업 등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사업예산을 확충했다.

    김천은 그 동안 문화의 사각지대였으나 문화예술회관 건립 후 지난 1년 동안 400회의 각종 공연과 전시회가 열렸다. 국제규격의 현대적인 종합운동장을 건립해 시 승격 50년 만인 지난해 처음으로 경북도민체전을 개최한 데 이어 KBS전국육상대회·프로축구대회·전국종별육상선수권대회·전국남녀대학축구대회 등 1년 동안 70회의 전국·도단위 체육대회와 행사를 유치했다. 구 금릉군청·우시장 부지를 매각하지 않고 각각 중앙공원과 조각공원으로 조성하였고, 하수종말처리장을 시민휴식공간으로 탈바꿈시켰으며, 직지사 입구에 무궁화공원을 조성한 데 이어 80억원을 투자해 직지문화공원을 조성하고 있다. 시가지를 관류하는 감천과 직지천변도 친환경적으로 정비하여 체육시설과 소공원, 천년숲, 강변공원을 조성하여 시민휴식공간으로 제공하였다. 또한 고속도로 진입로변을 단장하여 김천의 첫인상을 새롭게 하고, 삭막했던 우회도로변에 화단과 솔밭공원을 조성했다. (이시경 계명대 교수·행정학)





    지금으로부터 200여 년 전인 1789년 경상도 김천(金泉)의 인구는 2만6221명. 개성 다음으로 많았다. 당시 대구가 1만3000명, 경주는 6000명이었다. 김천은 대구 서문시장, 개성시장, 한양시장과 함께 전국 5대 시장(市場)의 한곳이었다. 김천은 명실공히 영남의 중심지였다. 그때의 세력을 고려하면, 김천의 현재 인구는 대구시의 250만명보다 2배 가량 많은 500만명은 돼야 했을 것이다. 1949년 김천읍이 경북 최초의 시로 승격돼 시사(市史)가 50년을 넘었다. 그런데도 현재 김천시의 인구는 4만6000가구 15만2000명에 불과하다.

    1965년 21만명을 정점으로 인구가 계속 줄어들고 있다. 조선시대 영남의 중심지였던 김천시는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하고 쇠퇴의 길을 걸었던 것이다. 이런 김천시가 민선 자치시대를 맞아 영남의 관문도시라는 옛 명성을 재건하려는 용틀임을 하고 있다.

    “김천이요? 정말 많이 변했어요. 이런 걸 보면 민선자치를 참 잘한 것 같아요. 김천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비슷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거든요. 별 발전도 없고 그저 그런 곳이라는 뜻이겠지요. 10년 전을 생각해보면 도시도 아니고 그렇다고 완전히 시골도 아닌 어정쩡한 지역이었어요. 그러니 대구 등 가까운 도시로 인구가 빠져나가는 거 아닙니까. 하지만 지난 몇 년 동안 김천은 많이 변했습니다.”

    대구에 살고 있는 기자가 김천시를 취재하기 위해 들른 오래된 한식집에서 식당주인 한모(46·여)씨가 털어놓은 말이다.

    지방자치시대가 열리면서 지자체마다 민선단체장들이 “지역과 주민을 위한다”는 명분을 앞세워 경쟁적으로 온갖 사업을 벌이고 있다. 사업을 무리하게 추진해 빚더미에 올라앉은 지자체가 속출하고 있다. 이와 함께 지자체를 대상으로 여러 종류의 상(賞)이 쏟아지다 보니 상을 받기 위한 선심행정도 적지 않은 게 현실이다. 하지만 김천시의 민선자치 성적은 꽤 알차다.

    도시행정 종합평가 최우수상

    김천시가 지난 6년 동안 받은 각종 상은 70여 가지. ‘좋은 식단제 최우수상’에서 굵직굵직한 상까지 다양하다. 그중에서도 ▲전국 기초자치단체장 평가 1위(1996) ▲농림사업추진 전국종합평가 최우수(1997) ▲제3회 한국지방자치경영대상 혁신단체상(1998) ▲지방자치 5년 모범자치단체(2000) ▲건전 재정운용 평가 전국 최우수단체(2000) ▲제1회 도시행정 종합평가 최우수시(2000) ▲제6회 한국지방자치경영 대상(2001.6) 등으로 김천시의 자치성적을 엿볼 수 있다.

    특히 지난해 정부가 주관한 ‘도시행정 종합평가 최우수상’과 올해 한국능률협회가 주관한 ‘한국지방자치경영대상 최우수상’에 전국 232개 기초자치단체 중 김천시가 선정된 것은 주목할 만하다. 재정운용, 단체장리더십, 경영행정 성과, 환경보존, 삶의 질 향상, 행정혁신, 지역경제 활성화, 발전계획 등 거의 모든 면에서 모범으로 평가받았다는 의미있는 증거다.

    문화시설을 세우고 멋진 공원을 조성하더라도 결과적으로 빚더미에 앉는다면 생색내기 선심행정의 표본이 될 수밖에 없다. 김천시의 현재 부채는 220억원. 1995년 7월 지자체 출범 당시보다 6억원 정도 늘었다. 빚 내용을 들여다보자. 210억원이 상하수도사업 때문에 생긴 빚이다. 수돗물 생산원가는 1t에 600원이지만 사용료는 1t당 515원이므로 연간 15억원의 적자가 발생한다. 나머지 10억원은 오래 전 읍면동 사무소를 짓는 데 빌린 것이다. 김천과 시세(市勢)가 비슷한 다른 시의 경우 부채는 500억∼1500억원에 달한다. 이에 비하면 김천시는 부채가 거의 없는 셈이다.

    그런데도 김천시는 지난 6년동안 420억원을 들여 종합운동장을 짓고, 300억원을 들여 문화예술회관을 세웠으며, 320억원짜리 김천대교를 만들었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시민 중에는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는 경우도 적지 않다. 김천이 눈에 띄게 달라진 것은 알겠지만, 틀림없이 엄청난 부채를 짊어졌을 것이라는 의혹과 우려가 나오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김천시의 현재 빚은 220억원. 종합운동장 문예회관 김천대교 조각공원 영남제일문처럼 전에는 없던 시설물이 들어선 것도 현실이다.

    지역이 발전하느냐 퇴보하느냐의 잘잘못은 주민 전체의 책임이라는 게 이론상 정답이라면, 시장·군수 등 단체장의 책임이 더 크다는 것은 현실적인 답일 것이다. 김천경찰서에 들렀다가 김천이 고향인 한 중년 경찰관에게 시장(市長)이 어떠냐고 물었다. “박팔용 씨요? 그 사람은 일에 미친 사람입니다. 물론 아무리 잘해도 욕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내가 보기에 정말 열심히 해요.”

    김천 출신의 박팔용(朴八用·54) 시장. 김천중-대구 대성고-용인대 졸업. 키 172cm 몸무게 63kg에 유도 5단. 김천청년회의소 회장, 경북도의회 의원 역임. 정치이력이래야 1979년부터 국회의원 보좌관을 5년 가량 한 것과 1991∼1995년 민자당 김천지구당 부위원장을 맡은 정도다. 1971년 전국대학교 대학생 봉사대장을 맡은 것도 눈에 띄는 경력이다. 좌우명은 ‘청렴결백, 완벽한 일처리’. 별명은 ‘불도저’. 1995년 7월부터 민선 1, 2대 김천시장. 이 정도가 그의 이력이다.

    “지역을 위해 미친 듯이 일하다 죽으면 어떻습니까. 하지만 영남의 중추도시라는 전통이 퇴색하고 도시는 갈수록 침체되고 주민들은 의욕이 없어지고…. 이래서는 안 된다고 이를 꽉 물었습니다. 주민들 기(氣)부터 살려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러나 이게 그냥 됩니까. 시민이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운동장이 하나 있습니까? 가족과 모처럼 편히 쉴 수 있는 공원이 하나 있습니까? 음악회 한번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는 공간이 있습니까? 도시기반이 정말 형편없었어요. 이러니 시민들이 기를 펴고 살 수 있겠어요? 빚을 내서 이런저런 일을 한다면 누가 못 하겠어요.”

    하루 담배 세 갑을 피우는 골초였던 박시장은 1995년 시장취임 뒤 가차없이 담배를 끊었다. 맑은 정신으로 일하려면 담배가 장애물이라는 게 이유였다. 그는 공무원 구조조정이 시작되기 전에 김천시 공무원 300여 명을 줄이고 시장 판공비 30%를 줄였다. 설계용역비를 줄이기 위해 기술직 공무원으로 건설사업설계단을 구성하는 등 660억원을 확보해 종합운동장과 문예회관을 부채 없이 완공했다. 지난 1년간 종합운동장에서는 사상 처음으로 경북도민체전이 열리는 등 지금까지 70가지의 큼직한 대회가 펼쳐졌다. 또 문예회관에서는 연인원 50만명이 다양한 문화예술 행사를 감상했다.

    지난 6년 동안 김천을 ‘영남의 관문도시’로 부활시키기 위해 발로 뛴 박시장이지만 두 가지 일을 생각하면 ‘피가 끓는다’고 한다. 경부고속철이 김천 시내를 뚫고 지나가는 것과 영남권 복합화물터미널이 김천으로 결정됐다가 칠곡으로 변경된 일이다.

    “도심을 가로지르는 고속철 교각을 보면 진짜 폭파해 버리고 싶어요. 1990년 관선시장 때 고속철 노선이 결정됐습니다. 지금 같으면 어림없습니다. 노선을 바꾸기도 어렵고 지하화도 어렵다면 김천 역사(驛舍)라도 반드시 세워야 합니다. 사통팔달인 김천에 중간역사가 있으면 효용가치가 높아요. 이것이 관철되지 않으면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고속철 개통날 추풍령에서 저와 시민들이 철도 위에 드러누울 겁니다.”

    박시장은 영남권 복합화물터미널 이야기만 나오면 분통이 터진다고 했다. 그는 터미널 유치를 시장공약으로 내걸었다. 하지만 건설교통부는 1995년 12월 경북 김천으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가 이후 칠곡군으로 변경했다.

    “정치적 이유로 김천시민을 무시하고 정신적·재산적 피해를 준 정부에 반드시 책임을 물을 겁니다. 결국 김천 시민들이 힘을 뭉쳐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고 많은 인재를 배출하는 것만이 차별을 이겨내는 길입니다. 지켜보세요. 김천은 영남의 중추도시로 반드시 우뚝 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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