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5월호

전직 경호원들이 털어놓은 대통령 경호 비화

암행시찰 즐긴 전두환, 헬기 꺼린 김대중, 배짱 두둑한 노무현,

  • 이은영 신동아 객원기자 donga4587@hanmail.net

    입력2007-05-07 11: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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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호원을 장관보다 더 챙긴 전두환
    • 靑 경호실, YS정부 이후 ‘대통령의 사람들’로 채워져
    • DJ, 경호원들에게 “보증 서지 말라” 강조
    • 대통령 가족, 검식관 퇴근 후엔 라면도 못 먹어
    • 낡은 헬기 태평스럽게 타는 노무현 대통령
    전직 경호원들이 털어놓은 대통령 경호 비화
    “전두환 대통령은 청남대에 올 때마다 돼지를 한 마리씩 잡아 줬어요. 저는 군 복무를 공수특전대에서 했는데 간혹 대청댐에 있는 청남대에 파견근무를 나갔어요. 청남대는 전두환 대통령 때 만들어졌다가 노무현 대통령이 주민에게 돌려준 대통령 별장입니다. 별장에 전 대통령 내외가 자주 내려왔습니다. 올 때마다 ‘군 생활에 수고가 많다’면서 청남대 경비를 서는 모든 병사를 포식시켜줬어요. 전 대통령은 군 출신 대통령 중에서도 유달리 병사를 잘 챙기기로 유명했죠.”

    최근 기자는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을 경호했던 네 명의 전직 경호관을 만나봤다. 경찰 출신인 이들은 재직 당시 경찰청 소속으로 대통령경호실에 파견돼 경호업무를 지원했다. 그들에게 “아랫사람을 각별히 존중하고 신뢰한 대통령이 누구냐”고 물었더니 약속이나 한 듯 “전두환 대통령”이라고 대답했다. 태권도 국가대표선수 출신으로 대통령경호실에 근무했다는 K씨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스타일을 이렇게 설명했다.

    “한번은 전 대통령이 산책을 하다가 ‘저 나무가 무슨 나무냐’고 질문했어요. 경호원이 ‘전나무입니다’라고 대답했는데, 수행하던 장관이 ‘아닙니다. 저건 낙엽송입니다’라고 고쳐 말했죠. 그 러자 전 대통령은 ‘경호원이 다 파악해서 보고하기 때문에 틀리지 않을 것이다. 다시 알아보라’고 장관을 나무랐어요. 경호원이 얼떨결에 대답하고는 나중에 확인해보니 낙엽송이 맞았어요. 그래서 대통령에게 ‘장관님의 대답대로 낙엽송이 맞다’고 다시 보고했어요. 전 대통령은 경호원 말을 듣고 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낙엽송이 맞다고 경호원이 다시 보고했다’고 전했어요. 경호원이 대답을 잘못했지만 무안을 주지 않았습니다.”

    “팬티도 다려 입어라”

    대통령경호실은 3공화국 출범 직후인 1963년 12월 정부 독립조직으로 창설돼 청와대 외곽경비와 내곽경비, 경호업무를 맡고 있다. 현재 청와대 외곽경비는 서울경찰청 산하 202경비대가, 내곽경비는 군 55경비대와 서울경찰청 소속 101경비단이, 대통령경호실 소속 경호원들이 대통령 경호안전을 책임지며 22경찰경호대가 외부 행사 경호를 지원한다.



    대통령경호실은 혁신기획실·감사관·행정본부·경호본부·안전본부로 편성돼 있는데, 차관급인 경호실장 아래 경호차장(차관보,1급), 처장·부장·과장(1급~4급), 일반 직원(5~7급)이 근무한다. 경호실에는 자체적으로 선발한 경호요원 외에 현직 군인과 경찰이 파견돼 있다. 대통령 영부인 경호는 여경의 지원을 받는다.

    경찰관으로 대통령이 머무는 관저에서 근무했다는 전직 경호원 L씨는 “경호실 분위기가 ‘문민정부’ 이후 확 달라졌다”고 들려줬다.

    “노태우 대통령 때만 해도 전문 경호인력을 자체적으로 채용했어요. 무술 유단자인 ROTC 장교 출신, 유도대학(현 용인대) 출신 유단자가 주로 채용됐어요. 5공 때는 직원이 600명이 넘었습니다. 그런데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이른바 ‘대통령의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한 거죠. 경호원의 질이 떨어지고 분위기가 나빠진 원인이 됐어요. 이전까지 경호실 사람들은 정권과 관계없이 일해왔는데 그들은 달랐거든요. 대통령 임기가 끝나면 나가야 하니까 사명감이 결여돼 있었어요. 검증되지 않은 사람들이 경호원으로 들어와 청탁 잡음 같은 걸 일으켰죠.”

    전직 경호원들은 하나같이 “대통령경호원만큼은 무도(武道) 실력자여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경호원이) 정권 따라 바뀌면 매너리즘에 빠져요. 문민정부 이후 경호실 분위기가 한결 부드러워지고 여유로워진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경호실다움’을 잃어버렸어요. 정치권에서 마구 밀고 들어오는 바람에 기강이 무너진 거죠. 김대중 대통령 때 가장 심했습니다. 이제는 경호원이 일반 청와대 직원처럼 행정관료가 돼가는 것 같아요.”

    그는 경호원 생활을 이렇게 얘기했다.

    “하루 근무, 하루 당직, 하루 휴식 3교대로 일해요. 바깥 사람들은 경호실에 근무하면 ‘빽’이 셀 것으로 보지만 그렇지 않아요. 단 하나, 우쭐할 때가 있다면 대통령을 모시는 덕분에 인사를 잘 받는다는 거죠. 대통령경호실 배지를 달고 있으면 경찰서장도 달려와 고개를 90도로 숙이고 인사할 정도거든요.

    경호원 단속이 가장 심하던 때가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입니다. 행여나 경호원이랍시고 접대를 받았다가 경호실장 귀에 들어가면 바로 징계조치를 당했어요. 김대중 대통령 때는 ‘절대 보증을 서지 말라’는 공문서를 축소 복사한 다음 코팅까지 해서 전 경호원에게 돌렸어요.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집안에서 빚보증 서달라고 하면 그걸 보여주면서 ‘보증 서주면 잘린다’고 말하라 했습니다.

    경호원에겐 사명감과 품위가 생명입니다. 한순간도 품위를 잃어선 안 돼요. 아침에 일어나 2대 8 가르마를 타고 주름 하나 없는 정장을 차려입고 출근하는 게 그저 멋있어 보이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몸과 얼굴에서 광채가 나게 하기 위해서지요. 대통령의 안전을 책임지기 때문에 절대 빈틈을 보여선 안 됩니다. 심지어 팬티까지 다려 입으라고 했어요.”

    대통령 지나갈 복도 천장 다 뜯어봐

    ‘대통령 경호’ 하면 미국 대통령 경호팀을 꼽는다. 우리나라 경호원 눈에 비친 미국의 대통령 경호 방식은 이렇다.

    “외국 대통령이 오면 우리나라 경호실에서 경호를 지원해요. 하지만 미국은 절대 안 됩니다. 자체 경호를 하죠. 미국 경호원은 남녀가 평등하더군요. 여자 경호원도 밤새도록 근무를 해요. 또 미국 경호원은 오로지 경호만 합니다. 우리나라 경호원은 비서(의전) 노릇을 겸하거든요. 가령 대통령이 악수하지 말아야 할 사람과 악수를 하려 하면 경호원이 대통령의 손을 터치할 수 있어요. 하지만 미국은 절대 안 됩니다. 말 그대로 경호만 하는 거죠. 경호원은 대통령의 동선(動線)을 철저하게 지킵니다. 대통령에게 누가 손을 내밀면 어깨와 팔로 쳐내요. 대통령이 걸어가는 길을 확실하게 터주면서 대통령을 보호하는 식이에요.”

    대통령경호실은 매년 직원을 공채한다. 7급 특정직 국가공무원이다. 경호관은 만 30세 이하의 군 생활을 마친 남성(여성도 가능)이라면 누구나 지원할 수 있고 학력제한이 없는 게 특징이다. 필기시험(상식, 영어)을 거쳐 인성검사, 신체검사, 체력검정을 통과한 후 다단계 심층면접을 받아야 한다. 시험과목에 무술은 없다. 하지만 합격자 중에는 무도 유단자가 많다. 유단자가 아니더라도 경호실에 들어가면 특공무술, 태권도, 유도, 검도 등 국가공인 무도 중 한 가지를 연마해 3단 이상의 실력을 갖춰야 한다. 경호실에는 여러 무도의 단수를 합해 20단 이상인 무술 고수가 심심찮게 눈에 띈다.

    전직 경호원 A씨는 “대통령이 한번 움직이면 지역의 군인과 경찰을 포함해 1000여 명이 동원된다”면서 행사 상황을 자세히 설명했다.

    “(경호원은) 만능이어야 해요. 경호실에는 수행부·관저부·선발부·검측부 네 부서가 있는데, 행사에 대통령이 참석하기로 결정되면 하루 전에 선발부 경호원을 내려보내요. 행사장을 눈감고도 꿰뚫을 정도로 익힙니다. 혹시라도 위해물(危害物)이 있는지 살피기 위해 대통령이 지나갈 복도의 천장을 다 뜯어봐요. 의자와 바닥 구석구석까지 다 살핍니다. 경찰 특공견(犬)을 동원해 폭발물이 있는지도 확인해요. 검측이 끝나면 경호원은 대통령이 올 때까지 그곳을 ‘외부인 통제구역’으로 지켜야 합니다. 만일 행사장 가까이에 산이 있다면 군인과 경찰이 특공견을 동원해 수색합니다.”

    군 장성 부관들의 권총 압수

    대통령이 참석하는 행사 중 가장 큰 것이 현충일 추념식이다. 동작동 국립묘지 참배 행사는 초청인사와 일반 참배객이 5000여 명에 달한다. 현직 경호원 P씨가 들려준 ‘아찔했던’ 현충일 경호 비화.

    “지난해 6월이었어요. 현충일 기념식을 하루 앞두고 ‘한 여자가 현충원에 이상한 가방을 두고 사라졌다’는 신고전화가 걸려온 겁니다. 경호실이 발칵 뒤집혔어요. 경호관들이 군 폭발물 처리반과 함께 현장으로 달려갔어요. 가방을 찾아 X-레이 촬영을 해보니 폭발물로 의심되는 배터리가 눈에 띄었어요. 유사 폭발물이 아닌가 의심했죠. 즉시 현장을 통제하고 가방을 폭파했어요. 그런데 그 가방에서 리모컨으로 작동되는 어린이용 카메라와 게임기가 쏟아져 나왔어요. 잡상인의 가방이었어요. 현충일 행사장에서 판매하려고 미리 현충원에 반입해놓았던 겁니다.”

    “YS와 DJ를 다 모셨다”는 K씨에 따르면 행사경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참석자에 대한 검색이다.

    “행사에 초청인사로 참석하기 위해선 반드시 비표가 있어야 해요. 검정리본에 ‘몇 회 현충일의 날’이라고 적힌 비표입니다. 해마다 글씨체가 바뀌어요. 보훈처에서 사전에 몇 명 초청할지 인원을 정해 비표를 만든 후 당일 아침 경호실에 와서 검증받아요. 글씨체는 당일 비서실과 보훈처만 아는 거죠. 초청된 사람이라도 전년도 비표를 달고 오면 입장할 수 없어요. 입장할 때 경호관이 비표와 신분을 철저히 확인하거든요. 촉수검색은 물론 휴대용 검측기(스캐너)로 몸을 샅샅이 검색합니다.

    전직 경호원들이 털어놓은 대통령 경호 비화

    1983년 10월 전두환 대통령의 공항 행차. 도열한 군인들 뒤편으로 나란히 걷는 경호원들이 보인다.

    기계보다 육안검색이 더 정확해요. 경호관은 표정과 복장을 보면 딱 알 수 있죠. 만일 대통령을 위해하려 왔다면 심리적으로 경호관과 자주 시선을 마주치게 됩니다. 의식적으로 자꾸 주위를 살피게 되는 거죠. 김대중 대통령 재임기간에는 현충일 행사 때마다 진정(陳情)을 목적으로 입장하려는 시민이 많았어요. 날씨가 더운데 옷을 두툼하게 입고선 안주머니에 진정서를 숨겨 오는 거죠. 모두 적발됐지요.”

    K씨는 또 “군 장교들도 행사장 입장 때 제재를 받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고 전했다.

    “대통령은 매년 사관학교 임관식에 갑니다. 단상에는 대통령을 비롯해 군 관련 인사들이 앉죠. 예전에는 군 장성 부관들이 권총을 차고 오는 경우가 많았어요. 주로 대장 부관이 권총을 차고 오더군요. 모두 회수해 경호 CP에 보관하도록 했어요. 언젠가는 국방부 장관 경호원들이 차 트렁크에 총을 싣고 와 차량 자체가 행사장에 못 들어오기도 했어요. 대통령이 참석하는 행사에는 대통령경호원만 총을 소지할 수 있습니다.”

    전직 경호원들의 말대로라면, 대통령경호원은 한순간의 ‘최악’에 대처하기 위해 늘 ‘최선’으로 존재하는 사람인 것 같았다.

    파출소 도둑 훈방조치한 전두환

    근접경호를 하다보면 취침시간을 제외하고는 거의 온종일 대통령과 함께 생활하게 된다. 청와대비서실 직원보다 경호실 직원이 대통령에 대해 더 잘 알 수밖에 없는 이유다.

    전직 경호원들의 모임인 ‘청호회’ ‘청심회’에서는 박정희 대통령과 전두환 대통령 당시의 일화가 자주 화제에 오른다. 이들에 따르면 두 사람은 일반인으로 가장해 서울시내에 나가 서민이 살아가는 이야기 듣기를 즐겼다고 한다. 7년 동안 전두환 대통령을 모셨다는 경찰관 출신 경호원 Y씨의 얘기다.

    “경호원을 4, 5명만 데리고 나갔죠. 가장 자주 들른 곳이 동대문과 남대문 뒷골목이었어요. 청소부들과 해장국을 드시면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눴어요. 한번은 새벽 3시쯤이었는데 일산에서 화정으로 오는 길에 불이 환하게 켜진 파출소를 지나게 됐어요. 파출소에 딱 두 사람이 앉아 있더군요. 경찰관과 도둑이었어요. 그런데 경찰관은 책상에서 졸고 있고, 도둑은 수갑도 안 찬 채 경찰관 맞은편에 앉아 떨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대통령이 들어서자 경찰관은 기겁을 해서 경례했어요. 전 대통령은 경례를 받지도 않고 도둑을 향해 ‘경찰이 졸고 있는데 도망도 안 갔으니 양심적이다’면서 바로 훈방조치했습니다.”

    그는 “전 대통령은 알려진 것과 달리 자상한 면모가 있다”면서 또 다른 일화를 들려줬다.

    “해가 뜰 무렵, 청와대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인도를 걷고 있는 한 꼬마를 봤어요. 신문배달원이었습니다. 전 대통령은 새벽에 아이들을 보면 꼭 차에 태워 옆에 앉혔어요. (아이에게) 위로의 말을 하면서 앞으로 어떻게 공부해야 훌륭한 사회인이 되는지에 대해 얘기하더군요.

    한번은 청계천에 갔어요. 당시 대로변에 포장마차가 많았는데 내무부가 단속을 심하게 했죠. 대개 모자를 꾹 눌러쓰고 들어가면 주인이 대통령인지 알아보지 못했어요. 전 대통령이 주인아주머니에게 대뜸 ‘요즘 어떠냐’고 묻자 ‘단속을 자주해 먹고살기 힘들다’고 대답했어요. 그러자 전 대통령은 바로 내무부 장관을 불러 ‘단속을 너무 자주 하지 말라’고 지시했어요. 또 관할 구청에 연락해 포장마차를 청계천 안쪽 도로로 다 옮기도록 조치했어요. 청계천 포장마차촌이 그렇게 해서 생긴 겁니다.”

    그는 “전 대통령은 서민과 자주 만나 대화했지만 대학생과 이야기를 나눈 적은 단 한 번도 없다”고 전했다.

    단호한 육영수, 여성스러운 이순자

    대다수 경호원은 자신이 모시는 대통령에 대해 장점조차 언급하기를 꺼린다. 일종의 유도심문으로 “이순자 여사는 사치가 심했다고 하더라”고 운을 띄웠더니 전직 경호원 L씨가 손사래를 치면서 이런 설명을 했다.

    “육영수 여사와 비교돼 그래요. 우리가 옆에서 경호를 했는데 모를 턱이 있겠어요. 또 TV 영향도 있습니다. 1970년대는 흑백 TV였고 1980년대 들어선 컬러 TV가 나왔잖아요. 영부인은 말 그대로 퍼스트레이디입니다. 행사의 성격이 다르고 날짜가 다른데 어떻게 늘 같은 옷을 입고 가겠습니까. 다만 이순자 여사는 육영수 여사와 달리 밝고 화사한 색깔을 좋아했어요. 색깔만 그렇지, 특별히 사치스럽거나 좋은 옷을 입었던 건 아닙니다.”

    A씨도 두 영부인의 알려지지 않은 면모를 들려줬다.

    “소문처럼 이순자 여사가 전두환 대통령을 좌지우지했을 것 같지요? 하지만 우리가 7년간 지켜본 바로는 남편한테 꼼짝 못하는 성격이었어요. 한 번도 큰소리 내는 걸 못 봤어요. 감수성이 풍부한, 여성스러운 스타일이었어요. 또 전 대통령이 잘 받아주지도 않았어요. 그런 면에서는 박정희 대통령과 달랐어요. 사람들은 박정희 대통령이 육 여사에게 권위적으로 대했을 거라 생각하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았어요. 육영수 여사는 대통령께 직언(直言)을 할 만큼 똑 부러지고 사리가 분명한 성격이었습니다. 단호하고 절도 있었어요. 박 대통령께서는 그런 아내의 말을 귀담아들었죠.”

    대통령의 가족은 외부와 차단된 청와대에서 어떻게 생활할까. 전직 경호원들은 가장 근검절약한 대통령 가족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의 가족을 꼽았다. 3공화국에서 5공화국까지 영부인 근접경호를 도맡았다는 S씨의 얘기다.

    “한번은 아들 지만군에게 외제 장난감 선물이 들어왔어요. 박 대통령이 그걸 보고 노발대발하면서 ‘국민이 먹고살기 힘든데…’라면서 당장 치우라고 했어요. 육영수 여사는 퍼스트레이디 중 가장 검소한 분이었습니다. 세 자녀의 옷을 꼭 남대문시장에서 사 입혔어요. 그때 습관이 몸에 뱄는지, 얼마 전 박근영씨를 만났는데 남대문에서 샀다는 머플러를 두르고 있더군요.”

    대통령 가족을 바로 옆에서 지켜본 전직 경호원들은 “청와대 생활은 어린 자녀들에겐 생지옥”이라고 전했다. 특히 청소년기에 청와대에 따라 들어온 전두환 대통령의 자녀들은 밖에서의 생활습관을 못 버려서 한동안 무척 힘들어했다고 한다. 대표적인 예가 야참이다. 전 대통령 가족을 경호했던 L씨의 회고다.

    “예전에는 1층이 집무실이고 2층이 가족이 사는 공간이었어요. 대통령 가족은 검식관이 철저하게 검식을 마친 음식만 먹을 수 있습니다. (대통령의) 사택은 취사시설이 전혀 없는 호텔식이거든요. 요리사와 검식관이 저녁에 퇴근해버리면 뭐 하나 맘대로 먹을 수가 없는 거죠. 전두환 대통령 가족이 누구보다 애를 먹었어요. 자녀들이 대학생, 고등학생이었는데 하교하자마자 바로 집(청와대)으로 와야 하니 여간 힘들지 않았어요. 대통령이 ‘밤에 애들이 라면을 먹고 싶어도 못 먹으니 안쓰럽다’고 하더군요.”

    거의 헬기만 타는 노무현 대통령

    한편 얼마 전까지 경호원 생활을 했다는 A씨는 “대통령이 행사 때 주로 이용하는 교통수단을 보면 성격을 짐작할 수 있다”고 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다리가 불편하셔서 헬기 타는 걸 꺼리는 편이었어요. 대통령 전용 헬기라지만 프로펠러가 잘 안 돈다는 소문이 돌 만큼 낡은 헬기였거든요. 또 헬기를 타면 멀미가 나는지 주로 육로로 다녔습니다. 반면 노무현 대통령은 거의 헬기를 이용합니다. 전국을 빠르게 다닐 수 있는 데다 교통통제를 할 필요가 없으니 시민에게 불편을 끼치지 않는다는 겁니다. 낡은 헬기지만 노 대통령은 별로 걱정하지 않습니다. 호탕하고 배짱이 두둑한 스타일입니다. 요즘은 대통령 행차한다고 교통통제 하면 청와대 게시판에 실시간으로 불만을 토로하는 글이 올라와요. 노 대통령은 그런 점도 감안한 것 같습니다.”

    한국 대통령 전용 헬기는 미국 대통령 전용 헬기에 비하면 초라한 수준이다. 미국 대통령이 이용하는 전용 헬기는 록히드 마틴의 ‘VH-71’. 중간 급유 없이 지구 둘레의 3분의 1인 1만2600km를 날 수 있고, 미사일 요격시스템 같은 첨단 무기가 장착돼 있다.

    그에 비해 한국 대통령 전용 헬기는 1985년에 도입된 낡은 기종으로 2010년이면 수명을 다한다. 항속 거리도 짧아 중국, 일본까지 겨우 갈 수 있는 정도. 최근 방위사업청은 차세대 대통령 전용 헬기로 미국 시코르스키사의 S-92를 선정, 올해 도입키로 결정했다.

    전직 경호원들은 또 외국과 비교해 한국 기자들의 둔감한 경호의식을 지적했다.

    “우리나라 카메라 기자들은 후진국 수준입니다. 외국 기자들은 절대 포토라인을 넘지 않아요. 특히 미국 기자들은 공권력에 절대 도전하지 않아요. 말을 아주 잘 듣습니다. 하지만 한국 기자들은 대부분 (포토라인을) 넘거나 넘으려 해 경호원과 시비가 붙어요. 대통령경호실에서는 원거리 기자와 근거리 기자를 구분합니다. 청와대 출입기자로 구성된 근거리 기자는 빨간색 완장을, 원거리 기자는 파란색 완장을 차도록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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