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2월호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만들어 우리 정서와 통했어요”

화제의 다큐 ‘남극의 눈물’ 김진만 PD

  • 김지영 기자│ kjy@donga.com

    입력2012-01-20 11: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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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BC 다큐 카피? 돈 없어서 못해”
    • 문밖으로 나갈 때마다 옷을 24장씩 껴입어
    • “추위와 블리자드보다 더한 고통은 고립감이었다”
    • “황제펭귄 새끼 보며 아이 갖고 싶었다”
    • “시간에 구애되지 않고 다큐영화 만드는 게 꿈”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만들어 우리 정서와 통했어요”
    한국 다큐멘터리 사상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아마존의 눈물’의 김진만(41) PD가 2년 만에 야심작을 내놨다. MBC가 2008년부터 매년 방영한 ‘지구의 눈물 시리즈’의 대미를 장식할 ‘남극의 눈물’이 그것이다. 김 PD는 지난해 300여 일 동안 남극 대륙 호주기지에 머물며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황제펭귄의 삶을 영상에 담는 데 성공했다. 일본 NHK가 먼저 황제펭귄 다큐를 방영한 바 있지만 이는 NHK에서 돈과 장비를 지원해 BBC가 촬영한 것이었다.

    남극에서 돌아오자마자 곧장 방송 준비를 시작한 탓일까. 1월 9일 오후 MBC 여의도방송국 영상편집실에서 만난 김 PD는 어깻죽지까지 자란 머리를 이발도 못한 채 편집 작업에 여념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남극 영상은 60분짜리 테이프 1500개 분량이다. 전체를 한 번 보는 데만 한 달이 걸린다. 책상 위에 널브러진 방송자료들과 남극 영상이 저장된 두 대의 모니터, 어떤 거추장스러움도 용납할 것 같지 않은 차림새가 급박한 현실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가 허락한 방문이었지만 긴장이 감도는 일터의 정적을 깨자니 미안한 생각마저 들었다. 촌각을 다툴 그의 상황을 고려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황제펭귄 촬영 원래 포기했었다”

    ▼ ‘눈물 시리즈’ 중 두 작품을 만들어 감회가 남다르겠네요.

    “아마 이 시리즈에 가장 애착이 있을 거예요. 사실 남극 특집을 2008년부터 먼저 준비하고 있었는데 ‘아마존’을 할 사람이 없다고 해서 엉겁결에 맡았어요. 팀장이 아마존 안 하면 ‘남극’도 시켜주지 않겠다고 했거든요(웃음). ‘아마존의 눈물’은 사람의 이야기가 중심이에요. BBC 같은 큰 방송사는 굉장히 객관적으로 접근하지만 우리는 휴먼다큐 찍듯이 원주민 가족 간의 대화를 들어보려고 통역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어요. 낮에 촬영하고 밤에는 3단계로 번역하느라 고되긴 했지만 지금 생각해도 잘한 것 같아요.”



    그는 아마존에서 자신조차 의식하지 못했던 환경 문제의 심각성을 영상으로 포착하며 많은 사람이 공감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품었다. 그 꿈은 곧 이뤄졌다. 다큐멘터리로는 이례적으로 25%가 넘는 시청률을 올리며 남녀노소, 온 가족이 함께 즐기는 프로그램으로 거듭난 것이다. 지난 12월 23일 프롤로그 ‘세상 끝과의 만남’을 시작으로 1월 말까지 매주 금요일 방송되는 ‘남극의 눈물’도 10%대의 시청률을 기록 중이다. 특히 1월 6일 잃어버린 알을 찾다가 비슷하게 생긴 얼음덩어리를 품는 황제펭귄 아비의 부정(父情)을 보여준 1부는 보는 이의 눈시울을 적실 정도로 가슴 뭉클한 감동을 전했다. 이날 수도권 시청률은 14%를 넘겼다. 김 PD는 “다규멘터리도 시청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데 기대 이상으로 반응이 좋아 기쁘다”면서 “가족들이 환경이라는 주제를 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는 자체가 흐뭇하고 뿌듯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가족이 모여 황제펭귄을 보면서 눈물짓기도 하고 웃기도 하는 좋은 시간이었다는 평을 듣고 있어요. 사실 BBC나 NHK나 내셔널지오그래픽은 너무 깔끔하게 잘 만들어서 부럽기도 하지만 차가운 느낌이 있는데 눈물 시리즈는 그와 다른 따스함이 있죠. 그렇게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만들어서 시청자가 좋아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 눈물 시리즈가 BBC ‘살아있는 지구’를 카피했다고 보는 트위터리안도 있던데 어떻게 생각하나요.

    “소재는 비슷할 수 있죠. BBC나 내셔널지오그래픽이나 디스커버리나 이미 저희가 간 곳들을 수없이 다녀왔으니까요. 하지만 같은 소재를 가지고 다큐를 찍더라도 어떤 눈높이로 보는지, 어떤 시각으로 접근하는지에 따라 느낌이 달라요. 다큐라는 게 사실의 기록이지만 만드는 사람의 시선이 안 들어갈 수 없어요. 그렇지 않으면 폐쇄회로 텔레비전(CCTV)과 다를 게 없죠. 저희는 관찰자의 시선으로 객관성을 유지하면서 사실을 기록했기 때문에 BBC와는 색깔이 달라요. 소재를 따라 했다고 한다면 할 말이 없죠. 소재는 한정적이니까요.”

    ▼ 어떤 색깔이 난다는 건가요.

    “한국적인 색깔이죠. 한국 사람이 만든 거니까요. BBC나 NHK가 만든 화면은 우리가 엄두를 못 내는 엄청난 비용과 노하우로 만든 실로 대단한 그림들이에요. 그런데도 시청자가 우리 그림을 더 좋아하는 이유는 우리 정서와 통해서죠. 한국 사람이 좋아하는 이야기거든요. 눈물 시리즈에선 이야기가 되게 중요한 모티프예요.”

    이야기를 만들려다 보니 주인공이 필요했다. 북극에는 북극곰과 그곳 원주민인 이뉴잇족이, 아마존에는 부족민이, 아프리카엔 부족민과 코끼리가 있었다. 사람은 이야기를 만들기에 좋은 주인공이다. 어떤 식으로든 소통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남극은 원주민이 살지 않는 유일한 대륙이어서 제작진을 고민에 빠뜨렸다. 김 PD는 결국 펭귄과 해표를 주인공으로 내정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관심 밖이었던 황제펭귄이 주연 자리를 꿰찬 데는 그만한 사연이 있었다.

    “황제펭귄을 찍으려면 돈과 시간이 너무 많이 들고 저희 노하우로는 역부족이라고 생각했는데 방송통신위원회 전파진흥원에서 기대 이상으로 많은 제작비를 대주셨어요. 모두 25억 원 정도가 들었는데 그중 18억 원을 방통위에서 지원해줬어요. 돈이 있으니까 우리도 한번 해볼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붙더라고요. 그 무렵 우리 팀에 온 김재영 PD가 ‘황제를 찍자’고 제안했어요. 여건이 안 돼 포기하려고 했는데 그 말이 맞잖아요. 대륙의 주인공은 황제펭귄인데…(웃음).”

    10개월 섭외 끝에 남극 대륙에 상륙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만들어 우리 정서와 통했어요”
    그때부터 ‘남극의 눈물’ 팀은 10개월을 공들여 가까스로 호주기지를 섭외했다. 대신 촬영팀이 아닌 대원으로 받아주겠다는 조건이 붙었다. 호주기지는 숙식을 해결하고 황제펭귄 서식지까지 접근성이 좋아 여러모로 안성맞춤이었다. 김 PD와 송인혁 촬영감독, 방보현 조연출까지 세 명은 통과의례인 갖가지 훈련과 영어테스트까지 마치고 당당히 대원이 됐다. 이들은 황제펭귄을 촬영할 땐 호주기지와 서식지 사이에 있는 대피소에서 지냈고, 기지로 복귀하면 대원의 소임을 다했다. 고단한 나날의 연속이었을 텐데도 김 PD는 “그 덕에 시간이 잘 갔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대원으로서 참석해야 할 행사와 허드렛일이 많았어요. 영어가 안 되니까 청소, 설거지, 주방보조 같은 일을 맡았거든요. 감자와 양파를 하루에 50~100개씩 깎았더니 이제 한 손으로도 깎을 수 있을 정도예요(웃음).”

    이렇게 해서 이들은 남극 대륙에서 월동(越冬)한 최초의 한국인으로 기록됐다. 한국이 남극에 짓고 있는 장보고 기지는 대륙에 있다. 김 PD는 촬영을 준비하며 남극 대륙을 둘러싼 불편한 진실을 목격했다. 미국을 비롯한 여러 선진국이 대륙에 기지를 세워 주요 지역을 선점한 것이다.

    “심지어는 자국민을 데려다 마을을 이룬 곳도 있었어요. 아직 정확한 조사는 이뤄지지 않았지만 남극에는 엄청난 양의 자원이 매장돼 있다고 하는데 훗날 영유권 문제가 불거지면 기지 주변이 그 나라 땅이 되지 않겠어요. 우리도 국민의 혈세로 짓는 기지이니만큼 대비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기지 식구들은 모두 각방을 썼지만 옆방의 통화 내용까지 들릴 정도로 환경이 열악했다. 그래도 대피소에 비하면 천국이었다. 대피소 실내 온도는 영하 5~10도였다. 살 떨리는 추위를 잊을 수 있는 유일한 순간은 식사시간이었다. 기지에서 만든 냉동상태의 음식과 한국에서 풍족하게 가져간 라면이 촬영 팀의 양식이었다. 방송에서 이들이 김이 모락모락 나는 라면을 먹는 모습은 절로 야식 생각이 간절해질 만큼 맛있어 보였다. 그 얘기를 했더니 김 PD는 웃으며 비화를 공개했다.

    “조연출이 머리가 있으면 종류별로 가져갔을 텐데 ‘신라면’과 ‘짜파게티’를 500개씩 준비한 거예요. 나중에 굉장히 힘든 시간을 보냈어요. 아무리 라면을 좋아해도 신라면 500개는 정말 질리더라고요. 그래서 3분 미역, 3분 북어, 주방장 몰래 훔쳐간 새우랑 소고기까지 다 섞어 먹어봤는데 북어랑 가장 잘 맞았어요. 인혁이 형이 맛을 보더니 ‘황제면’이라고 이름 붙이면 대박날 것 같다더라고요(웃음).”

    ▼ 호주 대원들도 라면을 좋아하던가요.

    “되게 좋아했어요. 먹으면 몸이 뜨거워지고 소변을 시원하게 볼 수 있으니까. 개중에는 중독된 대원도 있어요. 올 때 남은 건 다 주고 왔어요.”

    ▼ 여러 분비에 관한 욕구를 어떻게 해결했나요.

    “기지엔 샤워실과 화장실이 있어서 괜찮았고 대피소에서는 소변을 밖에서 봤어요. 여름에 다 녹으니까 그건 허용했어요. 대변은 까만 봉지에 싸서 들고 오고요. 1분 만에 다 얼어버리니까 냄새도 전혀 안 나요. 근데 인혁이 형은 과민성 대장 증상이라 고생을 많이 했어요. 성적인 욕구는 생존이 달려 있으면 전혀 생각이 안 나요. 대화의 80%는 성적인 농담이었지만 씨를 퍼뜨려야겠다, 이런 욕구는 안 생기더라고요(웃음).”

    “술에 중독된 사람도 있었어요”

    기지에서 가장 큰 고충은 말이 통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가 한국에서 한 달간 배운 호주영어로는 소용이 없었다. 그때마다 미국 플로리다에서 공부하고 온 조연출이 통역을 맡았다. 촬영 팀은 허드렛일을 마친 뒤에도 호주 대원들과 어울리며 친분을 다졌다. 기지에서 대피소까지 차를 운전하고 발전기를 돌리고 충전도 하려면 그들의 도움이 절실했기 때문이다.

    “호주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환경교육을 잘 받아서 저희를 많이 힘들게 했죠. 처음엔 서식지에서 70m 떨어진 곳에 금을 딱 그어줘요. 여기를 넘지 말라는 거죠. 그러다 새끼들의 몸집이 커지면 차츰 50, 30, 20m로 줄여주더라고요. 밖에 못나갈 땐 주로 술 마시고 놀더라고요. 호주에서 원료를 가져와 기지에서 술도 담가 마시고 담배도 만들어 피우는데 술에 중독된 사람도 있었어요. 전 술자리는 웬만하면 피했어요. 영어로 말하는 게 힘들어서요(웃음).”

    남극에서 펭귄의 존재를 처음 발견한 건 18세기에 물개를 잡던 선원들이었다. 이들은 다양한 종류의 펭귄이 사는 남극 대륙 근처의 사우스조지아 섬에 갔다가 엄청나게 큰 펭귄을 보고 킹펭귄이라 불렀다. 그러다 대륙으로 들어가 보니 더 큰 놈들이 있었다. 모든 면에서 킹펭귄을 능가하는 외모에 어울릴 만한 수식어는 ‘황제’밖에 없었다. 황제펭귄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본 김 PD는 “여느 펭귄과 달리 색깔도 품격도 우아해 압도될 수밖에 없다”며 기억을 더듬었다.

    “키가 1m 정도 되는데 황홀할 만큼 아름다워요. 서서 걸으니까 새가 아니라 사람 같아요. 다른 펭귄들이 사는 섬들은 한여름이면 기온이 영상으로 올라가 양계장 냄새가 진동을 해요. 근데 황제펭귄은 배설을 해도 다 얼어버리니까 냄새가 전혀 안 나요. 외모도 근사하지만 짝짓기하고 부부가 산책하는 모습도 굉장히 우아해요. 지켜보는 맛이 있죠. 하도 따라다녀서 나중엔 귀찮기도 했어요. 사람을 보면 신기해서 옷을 막 물어뜯거든요(웃음).”

    ▼ 촬영감독은 얼굴에 동상이 걸렸다면서요.

    “동상의 전 단계여서 괜찮아졌는데 추우면 또 재발한대요. 황제펭귄 찍다 그렇게 됐어요. 눈보라가 치면 펭귄들은 등을 돌리는데 얼굴과 새끼를 찍어야 하니까 바람을 정면으로 맞고 서 있었거든요.”

    ▼ 방한용 의상으로 중무장하지 않나요.

    “외출할 땐 무조건 옷을 24장씩 껴입어요. 머리부터 발끝까지요. 그 무게가 15㎏ 정도 되는데 너무 무거워서 한번 앉으면 움직이기도 귀찮아요. 담배 피우러 나갈 때도 그걸 다 껴입고 고글까지 썼어요. 안 그러면 안경과 모자가 문 여는 순간 날아가거든요. 흡연실까지 줄을 잡고 20m를 가다보면 옷이 긁혀 다 찢어져요. 그게 한심하면서도 또 가요. 담배가 유일한 낙이니까.”

    남극 대륙은 블리자드가 자주 불어 2월에서 11월까지만 출입을 허용한다. 촬영 팀도 지난해 2월에 남극 대륙에 들어갔다가 그해 11월에 나왔다. 그렇게 300여 일을 남극에서 보내는 동안 이들을 가장 힘들게 한 건 영하 60도의 혹한도, 사람까지 날려버릴 위력을 지닌 블리자드도 아니었다. 300일간을 대륙에 갇혀 지내야 한다는 고립감이었다.

    “저도 성격이 낙천적이고 인혁이 형하고도 워낙 잘 맞아서 매일 즐거울 줄 알았어요. 근데 항상 똑같은 일상이 반복되니까 나중엔 대화할 게 없더라고요. 같이 갔던 3명이 다 긍정적인 성격이라서 괜찮았지만 흑야가 지속되면 아파도, 무슨 일이 생겨도 나갈 수가 없으니까 고립감이 더했어요. 흑야라고 해서 밤이 한두 주 동안 지속되는 건 아니에요. 남위 90도 지점에서는 상당기간 밤이 계속되지만 저희가 있었던 곳은 남위 70도여서 해가 뜨진 않아도 근처까지 왔다 가거든요. 그래서 하루 두 시간 정도는 석양 같은 어스름이 있는데 촬영은 금지돼 있어요. 그게 한 달 정도 가요. 그때는 방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는데 면역이 되니까 편해지는 순간이 오더라고요. 늘 바쁘게만 살아서 생각이란 걸 할 여유가 없었는데 그때 생각이 많아지더라고요. 자연의 경이로운 가르침을 되새기면서 좀 더 겸손해져야겠다는 반성을 했죠.”

    ▼ 블리자드 때문에 갇힌 적도 있다면서요.

    “늘 갇혀요. 예보라는 게 정확하진 않거든요. 예보를 믿고 촬영을 갔는데 그날 밤부터 블리자드가 불기 시작하면 정말 제 손이 안 보여요. 눈보라가 너무 심해서요. 밧줄에 의지하지 않으면 50m 떨어진 다른 건물로도 못 가요. 자칫 죽을 수도 있어요. 실제로 한 일본인이 개밥 주러 가다가 죽은 사례도 있어요. 10m도 안 되는 곳에 개집이 있었는데 시속 200㎞의 강풍이 불어닥친 거죠. 그러면 직선으로 갈 수 없어요. 방향을 잘못 잡으면 엄한 데로 가요. 그래서 블리자드가 불면 건물 밖으로 못 나가요. 식수로 쓸 눈을 퍼올 때도 혼자서는 못 가요.”

    그는 펭귄털이 잔뜩 묻은 눈을 녹여 식수로 먹던 일과 바람이 불 때마다 괴기스러운 소음을 내며 덜컹대던 대피소를 떠올리며 “처음엔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꼈는데 금방 적응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다시 가보고 싶으냐?”는 물음에는 주저 없이 고개를 내저었다.

    “우릴 태우러 온 비행기 보고 눈물 났다”

    “아마존은 가보고 싶어요. 우리가 찍었던 사람 중에 임신부도 있었고 결혼을 앞둔 친구도 있었는데 그 사이 어떤 변화를 겪었는지 촬영해보고 싶어요. 근데 남극은 다시 가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아요. 아직 제 마음이 녹지 않았거든요.”

    ▼ 가장 감동적인 순간은 언제였나요.

    “지난해 11월에 저희를 태우러 온 비행기를 봤을 때요. 그땐 눈물이 나더라고요. 알을 깨고 나온 황제펭귄 새끼의 얼굴도 잊을 수가 없어요. 7월 중순 어느 날, 석양처럼 그윽한 햇볕을 받으며 새끼가 드디어 알을 깨더라고요. 바로 태어날 줄 알았더니 6,7시간을 계속 꼼지락거리더라고요. 그러다 부리를 보이면서 얼굴을 쏙 내미는데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예뻤어요.”

    ▼ 직접 출산하는 기분이었나요.

    “그렇죠. 아빠들이 자기 아이가 태어났을 때 이런 기분이 아닐까 싶었어요. 전 이미 갔다 와서 결혼생각도 없고 애를 낳고 싶은 생각도 없었는데 그거 보니 내 아이를 갖고 싶더라고요.”

    ▼ 재혼하면 되잖아요.

    “지금이 편해요. 가정은 정말 소중하고 언젠간 꾸려야겠지만 가정이 있으면 일하기가 무척 힘들어요. 누구 부인처럼 오지에서 많이 배우고 오라고 격려해주는 여장부가 어디 흔한가요. 저도 바빠서 이렇게 됐어요. ‘PD수첩’ 할 땐 제가 생각해도 참 바빴거든요.”

    ▼ 워커홀릭인가요.

    “전 모르겠는데 그렇게 말하는 조연출들이 있어요. 일을 즐기긴 해요. 촬영이 재미있어요. 다른 직업이라면 남극과 아마존을 어떻게 가겠어요. PD로서 한번 가기도 힘든 곳을 두 군데나 다녀왔으니 죽어도 여한이 없어요.”

    그는 황제펭귄이 추위를 견디려고 본능적으로 무리지어 몸을 밀착하는 ‘허들링(Huddling )’과 범고래 여러 마리가 한꺼번에 거품을 뿜어내 크릴새우 떼를 잡는 모습에서 생존을 위한 놀라운 협동 정신을 봤다고 했다. 특히 펭귄 수컷의 삶은 대한민국에서 아빠로 사는 이들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한다.

    “새끼들이 포식자에게 둘러싸였을 때 도와주려고 하지만 또 어쩔 수 없이 그것을 방관할 수밖에 없는, 정말 무기력한 다수의 펭귄이 한국 사회를 떠올리게 만들더군요. 더불어 살아가려고 서로 돕는 모습은 정말이지 사람보다 낫다싶었어요.”

    그가 황제펭귄 촬영에 집중하는 동안 김재영 PD는 또 다른 촬영 팀을 이끌고 약 200일 동안 남극 주변의 섬을 돌며 해양 생태계를 파헤쳤다. 이들은 블리자드에서 자유로운 지역을 다녔지만 촬영 여건으로 치면 더 나을 것도 없었다고 한다. 김진만 PD는 “남극조약에 따라 섬을 촬영한 후에는 다시 배로 돌아가 잠을 자야 하기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다”며 “뱃멀미가 심해 피오줌을 싸고 신장이 상하는 지경까지 간 사람도 있다”고 전했다.

    남극의 ‘눈물’은 진행 중

    ▼ 남극의 ‘눈물’이 현재 진행 중인가요.

    “남극은 북극이나 아마존, 아프리카처럼 눈에 보이는 고통이 없을 줄 알았는데 이미 눈물을 흘리고 있더라고요. 조류콜레라로 턱끈펭귄 1000마리가 떼죽음을 당했고, 쥐와 토끼가 엄청나게 늘어나 생태계를 교란시키고 있었어요. 저희는 남극 주변의 섬에 쥐들이 돌아다닐 거라곤 상상도 못했는데 그만큼 기온이 따뜻해지고 있다는 거죠. 쥐들은 펭귄 알을 닥치는 대로 먹으며 왕성하게 번식해요. 펭귄은 알 수 없는 인플루엔자로 죽어가고, 그걸 먹은 포식자들에게도 영향이 미칠 수밖에 없죠. 가장 큰 위협은 서남극의 빙하가 녹고 있다는 사실이에요. 제주도보다 큰 빙벽이 갑자기 무너져 내리면서 펭귄 서식지 앞을 가로막으면 어린 펭귄이 바다로 나갈 길이 막혀요. 동남극은 또 반대로 굉장히 추워지고 있어요. 바다가 여름에 녹아야 새끼가 바다로 들어가 성체로 자라는데 빙벽이나 얼음덩어리가 가로막으면 바다까지 100㎞를 걸어가야 해요. 그러면 가다가 다 죽어요. 저희가 촬영한 한 섬에서도 아델리펭귄 새끼 1500마리가 태어났는데 바다를 찾아 걸어가다 그 중 8마리만 살아남았어요.”

    ▼ 남의 일 같지 않네요. 우리나라도 봄, 가을이 없어지고 있잖아요.

    “환경 문제에 대해 어떻게 느끼느냐는 시청자의 몫이에요. 우리는 사실을 그대로 전하는 거고 판단은 각자 해야죠. 전 눈물 시리즈를 만들면서 환경주의자까지는 아니어도 소소한 실천을 하고 있어요. 종이컵을 안 쓴다든지, 엘리베이터 닫힘 버튼을 안 누른다든지 하는 거요. 무슨 일이든 단시일에 대오각성하게 하긴 힘들지만 작은 실천이 모이면 큰 힘이 될 수 있거든요.”

    ‘남극의 눈물’은 황제펭귄의 탄생 과정과 폭력이 난무하는 바다포유류의 세계에 이어 펭귄 5종 세트와 기후변화의 징조들, 얼음대륙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차례로 다룬다. 인간의 감성을 건드리는 ‘눈물’ 다큐로 스타 반열에 오른 김진만 PD가 다음에 내놓을 작품은 뭘까.

    “당장은 극장판 ‘남극의 눈물’을 만드는 게 가장 중요해요. 여름방학에 맞춰 극장에 걸려고 좀 무리해서 3D로 찍었어요. 그 뒤에 가장 하고 싶은 건 다큐 영화예요. 시간에 구애되지 않고 사람이나 종교에 대한 이야기를 시리즈로 만들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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