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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력근무제 도입 없으면 年 일자리 40만 개 증발

  • 김재현 (재) 파이터치연구원 연구실장 kjh@pi-touch.re.kr

탄력근무제 도입 없으면 年 일자리 40만 개 증발

  • ● 최저임금 인상보다 타격 훨씬 커
    ● 납기 지연·납품단가 인상 불가피
    ● 대기업, 인력 확충 위해 중소기업 사람 빼가
    ● 초과근무 못 해 급여 줄자 113명 퇴사한 업체도
    ● 보완 대책 없으면 고용·GDP·기업 수 대폭 감소
300인 이상 노선버스 사업장의 주 52시간 근로제가 시행된 7월 1일 경기 안양 시내의 한 버스 정류장에 노선 폐지를 알리는 안내문이 부착돼 있다. [뉴스1]

300인 이상 노선버스 사업장의 주 52시간 근로제가 시행된 7월 1일 경기 안양 시내의 한 버스 정류장에 노선 폐지를 알리는 안내문이 부착돼 있다. [뉴스1]

탄력근무제 도입 없으면 年 일자리 40만 개 증발
중소기업의 경영 상황이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올해 중소기업 경기실적지수의 변화 추이에 따르면 2월부터 4월까지는 지수 값이 상승 곡선을 탔다. 하지만 4월부터 8월까지는 계속 하락했다. 8월 기준 중소기업 경기실적지수는 74.5로 전월 대비 4% 하락했다. 하락이 시작된 시점인 4월과 비교하면 9% 주저앉았다.

중소기업이 처한 대내외 환경도 밝지 않다. 2019년 상반기 중소기업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2.9% 감소했다. 올해 들어 대기업의 영업이익이 크게 악화됐다. 이에 하도급 중소기업의 실적도 떨어질 위기로 내몰렸다. 

중소기업중앙회가 6월 3일부터 10일까지 중소기업 500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중소기업 경영애로 및 하반기 경영전략 조사’에 따르면 응답 기업의 61.8%가 2019년 상반기 경영실적이 2018년 동기 대비 악화됐다고 답했다. 매출이 악화된 기업은 56.4%, 영업이익이 악화된 기업은 58.2%, 자금 사정이 악화된 기업은 56%로 나타났다. 

응답 기업의 51.2%는 상반기 대비 하반기에 경영 상황이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답했다. 올 하반기에 투자를 늘리거나 해외에 진출하는 등 공격적 경영을 할 계획이라고 답한 중소기업은 5.6%에 그쳤다. 신사업 추진·신기술 도입 등 혁신경영에 나서겠다고 답한 중소기업은 8%에 불과했다. 향후 예상하는 경영상 주요 위험으로는 최저임금 급등에 따른 영향이 51.6%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근로시간 단축(38.4%)이 그 뒤를 이었다.


경영의 중대 위협 요인

현재 상시근로자 300인 이상 기업에 적용되는 주 52시간 근로제가 내년 1월 1일부터 상시근로자 50인 이상 300인 미만 중소기업에도 적용된다. 중소기업들은 주 52시간 근로제를 경영의 중대 위협 요인으로 인식하고 있다. 근로시간 단축으로 인한 인력 부족은 가동률 및 생산성 저하로 이어질 것이고, 이에 납기 지연·납품단가 인상이 불가피할 수밖에 없어서다. 



이와 관련해 한국경제신문이 6월 3일부터 6일까지 내년 주 52시간 근로제 대상 기업 118개사에 ‘주 52시간 근로제 준비 상황’을 물은 결과, 응답 기업의 65.2%가 ‘손도 못 대고 있다’고 답했다. ‘대응을 잘하고 있다’고 응답한 기업은 11.9%에 불과했다. 응답 기업의 63.6%는 보완책이 마련되지 않으면 주 52시간 근로제를 적용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응답 기업의 36.4%는 주 52시간 근로제 적용 시 가장 우려하는 부분으로 ‘납품이나 연구개발 일정이 늦춰지는 점’(36.4%)을 꼽았다. 실제 건설산업연구원이 주 52시간 근로제 시행 후 대형 건설사가 맡은 공사 109건을 전수 조사한 결과, 건설 공사의 약 44%가 공기 연장 위기에 처한 것으로 드러났다. 

정보기술(IT) 업계 사정도 마찬가지다. 업계 관계자는 “(주 52시간 근로제 도입 후) 국내 게임사 개발자가 눈에 띄게 줄었다”고 귀띔했다. 모 중견 게임회사는 올 상반기 공개를 목표로 했던 모바일 게임의 출시 시점을 연기했다. 해당 기업의 매출은 지난해 1분기 4752억 원에서 올 1분기 3588억 원으로 24.5% 감소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2038억 원에서 795억 원으로 61% 급락했다. 게임회사 성장의 원동력인 신작이 부재한 탓이다. 

앞선 한국경제신문 조사에 따르면 ‘추가적인 인건비 부담이 늘어나는 점’(33.1%)도 중소기업이 주 52시간 근로제 적용 시 우려하는 대목으로 나타났다. 주 52시간 근로제는 초과근무수당 감소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이미 경기지역 버스업계에서는 이를 보전해달라면서 임금인상 요구가 표출하기도 했다. 이로 인해 경기지역 버스요금이 인상됐다. 

국토교통부는 버스업계가 주 52시간 근로제 도입으로 2021년 7월까지 신규 채용해야 하는 운전기사가 1만5000여 명에 달하며, 이로 인해 추가되는 인건비가 약 7300억 원이 되리라 추산한 바 있다.


퇴근시간과 기업가 정신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가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을 현행 최장 3개월에서 최장 6개월로 연장하는 방안에 합의한 2월 19일 서울 경사노위에서 이철수 경사노위 노동시간제도개선위원회 위원장(가운데)이 합의 결과를 발표 하고 있다. [뉴스1]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가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을 현행 최장 3개월에서 최장 6개월로 연장하는 방안에 합의한 2월 19일 서울 경사노위에서 이철수 경사노위 노동시간제도개선위원회 위원장(가운데)이 합의 결과를 발표 하고 있다. [뉴스1]

중소기업들은 주 52시간 근로제를 대비한 인력 채용마저 쉽지 않다고 하소연한다. 2019년 7월 15일 ‘사람인’이 771개 기업을 설문조사한 뒤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상반기에 신규 인력을 채용했다는 692개 기업 가운데 71%가 ‘계획한 인원을 채우지 못했다’고 답했다. 이는 2017년 동일 조사 때와 비교해 11.6%포인트 높아진 수치다. 

‘채용 실패’의 이유로는 ‘적합한 인재가 없어서’라는 응답이 전체의 67.2%로 가장 많았다. ‘지원자가 너무 적어서’(33.8%), ‘묻지마 지원자가 많아서’(29.1%), ‘합격자가 입사를 포기해서’(20.6%), ‘입사 직원이 조기 퇴사해서’(16.9%) 등이 뒤를 이었다. 

또한 이들 기업이 올 상반기에 채용한 인원은 당초 계획의 35.1%에 불과했다. 당초 계획의 10% 미만으로 채용했다는 기업도 34.4%로 집계됐다. 응답 기업의 67.6%는 ‘평소에도 구인난을 겪는다’고 답했다. 이 가운데 48.6%는 ‘구인난이 예년보다 심해졌다’고 주장했다. 구인난을 겪는 이유로는 46.8%가 ‘회사 규모가 작아서’라고 답했다. ‘회사 인지도가 낮아서’(38.2%)와 ‘연봉이 낮아서’(36.1%) 등이 뒤를 이었다. 

현장의 목소리에는 절박함이 묻어난다. 한 중소기업 관계자는 “주 52시간 근로제 유예기간 종료로 대기업이나 관련 업체들이 추가 인력 채용을 확대함에 따라 중소기업의 인력 충원이 더욱 어려워졌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공급단가는 계속 낮아지는 상황에서 주 52시간 근로제를 적용하면 납기 지연, 단가 인상 등이 불가피하다. 하지만 원청업체에 납기나 단가를 맞추기 어렵다고 말하기는 쉽지 않다. 그건 사업을 그만두겠다는 소리나 다름없기 때문”이라고 하소연했다. 

청주의 한 중소기업 대표는 “여건이 좋은 대기업이 먼저 주 52시간 근로제를 시행하다 보니 대기업들이 중소기업에서 근무 잘하는 인력을 스카우트한다”면서 “한 번에 30여 명이 나간 뒤 근로자 채용 공고를 해도 지원자가 없어 애를 먹고 있다”고 말했다.


인력 맞춰 생산량 대폭 줄여

또 다른 중소기업 대표는 “주 52시간 근로제의 타격이 최저임금 인상보다 훨씬 크다. 30년 경력의 현장 경영인들이 이렇다 할 대책을 찾지 못하는 것을 보면 법 시행이 가져올 파장은 예측조차 하기 힘들다”고 밝혔다. 이어 “회사에서 일을 배워 창업하려는 사람들에게 ‘시간 됐으니 퇴근하라’고 해야 하는 현실에서 창업과 기업가 정신을 바라는 것은 무리”라고 덧붙였다. 

한 중견 동관 제조 기업 A사 대표는 지난해 7월 주 52시간 근로제 시행에 앞서 직원 116명을 신규 채용했다고 한다. 기존 인력으로는 납기일을 맞출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같은 기간 직원 113명이 퇴직했다. 근로시간 단축으로 급여가 25%가량 줄어들자 직원들이 야근할 수 있는 기업으로 빠져나갔다. 

생산의 70%를 수출하는 A사는 결국 인력에 맞춰 생산량을 대폭 줄이기로 결정했다. 주 52시간 근로제 위반에 대한 계도 기간 종료를 앞두고 내린 결단이다. A사 임원은 “가뜩이나 중국과 베트남 경쟁사의 저가 공세로 어려운데 근로시간 단축으로 수출 경쟁력이 더 떨어졌다”며 “이러다가 회사가 문을 닫게 될까 걱정”이라고 하소연했다. 

또 다른 중견 자동화설비 제조 업체인 B사의 한 임원은 야근을 하다가 늦게까지 불이 켜진 사무실을 발견하고 찾아갔다. 사무실에서는 한 20대 연구직원이 일을 하고 있었다. 임원이 “빨리 퇴근하라”고 다그치자 해당 직원은 “이것만 하고 가면 안 되나요. 실력을 키우고 싶다”면서 울먹였다고 한다. 임원은 “성과에 따라 연봉이 정해지는 연구개발 직원들이 주 52시간 근로제 탓에 성장할 기회를 빼앗겼다. 주 52시간 근로제는 직원 개인의 경쟁력은 물론 회사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제도”라고 비판했다.


현장이 절실히 요구하는 대책

임서정 고용노동부 차관이 5월 9일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서 열린 ‘탄력근로제 관련 주요 업종별 기업과의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뉴스1]

임서정 고용노동부 차관이 5월 9일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서 열린 ‘탄력근로제 관련 주요 업종별 기업과의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뉴스1]

중소기업계는 9월 25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와 중소기업인 고용노동정책 간담회’에서 중소기업에 대한 주 52시간 근로제 시행을 1년 이상 유예해달라고 국회에 요청했다. 취지는 이해하지만 현실적으로 생산 차질 등 중소기업이 감당키 힘든 부분이 많다는 이유에서다.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은 “경제 상황, 중소기업 준비 상황 등을 고려해 도입 시기를 유예하고 우리나라와 경쟁하는 주요 국가 수준으로 다양한 유연 방안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 52시간 근로제 도입을 1년 만이라도 유예하면 대내외 경기 악화와 일본 수출 규제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에 큰 힘이 될 것이라는 게 중기중앙회 주장이다. 

김 회장은 “중소기업은 대기업보다 인력 부족률이 2.1배나 높다. 만성적인 인력난을 겪는 상황에서 생산량을 맞추기 위해 초과근로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일정대로 단축 근무제를 실시할 경우 타격이 적잖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중소기업계는 탄력근무제 단위기간 확대 등 현실적 보완책도 요구하고 있다. 4월 3일 ‘탄력근무제 도입의 경제적 효과’ 국회 토론회에서 김경만 중기중앙회 본부장은 “중소기업 중 성수기가 뚜렷한 사업은 성수기 지속 기간이 5~6개월이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합의한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 6개월로는 부족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탄력근무제 단위기간을 1년으로 늘려줄 것을 요청했다. 

앞선 한국경제신문 조사에서도 응답 기업의 53.7%가 탄력근무제 단위기간 확대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설문조사에 참여한 한 기업 대표는 “탄력근로 기간이 너무 짧아 주문이 몰리면 납기를 맞추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탄력근무제 도입 없으면 年 일자리 40만 개 증발
필자가 속한 파이터치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탄력근무제 없이 주 52시간 근로제를 시행할 경우 시행 전과 비교해 연간 일자리 약 40만1000개, 국내총생산(GDP) 약 10조7000억 원, 기업 수 약 7만7000개가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자리 감소는 노동 공급 감소와 임금 상승에 따른 결과다. 일자리는 숙련공 일자리와 비숙련공 일자리로 구분할 수 있다. 숙련공 일자리가 줄어드는 까닭은 단기간에 신규 고용으로 대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비숙련공 일자리 감소는 자동화에 의해 기계로 대체되는 데서 기인한다. 

GDP 감소는 일자리 감소가 생산 감소로 이어져 나타난 결과다. 기업 수 감소는 숙련공의 근로시간 단축 때문이다. 근로시간 단축 시 숙련공 의존도가 높아 기존 업무를 대체할 신규 인력을 채용하지 못하는 기업은 과업을 줄이고 숙련공 일부를 해고하는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크다. 이때 규모가 작은 기업은 직원 감축 후 사업 운영이 어려워 폐업을 선택하게 된다. 이는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거시경제학자 로버트 루카스(Lucas·1978)와 자동화 분야의 권위자 데이비드 아우터, 데이비드 돈(Autor and Dorn·2013)의 구조를 반영한 동태일반균형모형을 통해 분석한 결과다. 

같은 연구 방법을 통해 탄력근무제 단위기간에 따른 경제적 파급효과를 분석한 결과, 탄력근무제 단위기간이 길어질수록 주 52시간 근로제에 따른 부정적 영향이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행 근로기준법에 따라 탄력근무제 단위기간을 3개월로 적용하면 앞선 일자리·GDP·기업 수 기준에서 일자리 12만 개, GDP 2조6000억 원, 기업 2만3000개를 보호할 수 있다. 경사노위 합의안에 따라 단위기간을 6개월로 늘리면 일자리 19만6000개, GDP 4조8000억 원, 기업 3만8000개를 지킬 수 있다. 중소기업이 요구하는 단위기간 1년을 적용하면 일자리 28만7000개, GDP 7조4000억 원, 기업 5만5000개를 사수할 수 있다. 즉, 단위기간을 1년으로 설정해야 주 52시간 근무제로 인한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효과는 중소기업에 더 크게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벼랑 끝의 중소기업

일본의 수출 규제와 대내외 경제 여건 악화로 중소기업의 경영 상황은 날로 악화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주 52시간 근로제를 상시근로자 300인 미만 사업장에까지 확대하면 중소기업을 벼랑 끝으로 내몰 수 있다. 

문재인 정부는 중소기업이 주체가 된 혁신성장을 반복해 강조해왔다. 중소기업의 혁신이 가능하려면 중소기업이 처한 현실부터 직시해야 한다. 주 52시간 근로제 유예와 탄력근무제 단위기간 확대 등 현장이 절실하게 요구하는 대책을 정부가 조속히 마련해야 할 때다.




신동아 2019년 11월호

김재현 (재) 파이터치연구원 연구실장 kjh@pi-touch.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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