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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복현이 또…”

[금융 인사이드] 금감원장의 ‘후보’ 한 마디에 KB 관치 논란 불거져

  • 나원식 비즈워치 기자

    setisoul@bizwatch.co.kr

    입력2023-07-17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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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후보냐 후배냐 그것이 문제로다

    • 윤종규 4연임 가능성이 불러온 烏飛梨落

    • “필요하면 의견 더 내겠다” 불씨 여전

    7월 5일 서울 중구 전국은행연합회에서 열린 금융지주회장 간담회에서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이날 회의에는 진옥동 신한금융지주 회장과 임종룡 우리금융그룹 회장, 함영주 하나금융지주 회장,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 김태오 DGB금융지주 회장 등이 참석했다. [뉴스1]

    7월 5일 서울 중구 전국은행연합회에서 열린 금융지주회장 간담회에서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이날 회의에는 진옥동 신한금융지주 회장과 임종룡 우리금융그룹 회장, 함영주 하나금융지주 회장,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 김태오 DGB금융지주 회장 등이 참석했다. [뉴스1]

    “금일 원장님 백브리핑 답변 중 KB금융지주 회장 선임 건 관련하여 ‘후보’들에 공평한 기회를 제공으로 발언하셨으며, 후배라고 발언하신 것이 아니니 보도에 참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6월 29일 금융감독원이 취재진에게 보낸 문자메시지다. 이날 이복현 금감원장의 발언에 대한 일부 보도 내용을 정정해 달라는 뜻으로 보낸 것이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이날 이 원장은 한 행사를 마친 뒤 차기 KB금융지주 회장 선임 절차에 대해 다음과 같이 KB지주 회장 선임 절차가 업계 모범이 돼야 하고, 후보 선정 등이 합리적으로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을 전했다.

    “이번 KB지주 회장 선임 절차가 업계 모범을 쌓았으면 좋겠다. 그런 의미에서 평가 기준, 후보 선정, 그리고 ‘후보’에 대한 공평한 기회 제공이 합리적으로 이뤄졌으면 하는 부탁과 기대가 있다.”

    일부 언론이 그의 발언 가운데 ‘후보’에 대한 공평한 기회 제공을 ‘후배’에 대한 공평한 기회 제공으로 보도했고, 이에 금감원은 부랴부랴 정정을 요청했다. 이에 대해 또다시 언론 측에서 “후배라고 발언했다”며 녹취 파일을 공개하는 등 논란이 일기도 했다.



    금감원의 설명처럼 일부 매체의 보도가 잘못됐거나, 정말 이 원장이 실언한 것일 수 있다. 사실 정확히 어떤 발언을 했는지 따지는 것 자체가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단어 하나에 이런 논란이 벌어지는 이유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 그간 이 원장이 금융사 최고경영자(CEO) 선임을 두고 거침없이 발언해 왔다는 점에서다.

    이복현의 윤종규 4연임 견제?

    이 원장이 ‘후보’라고 말했다면 금융 당국 수장이 충분히 할 수 있을 법한, 특별한 의미는 없는 발언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후배’라고 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윤 회장이 아닌 다른 후배들에게 기회를 줘야 한다는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관치 논란이 벌어지는 셈이다.

    KB금융지주는 이르면 8월 회장후보추천위원회(이하 회추위)를 열고 차기 회장 선임 작업에 착수할 예정이다. 윤종규 회장의 임기가 11월 20일 종료되는 데 따른 조처다. 먼저 내부 10여 명과 외부 10여 명 등 20명 안팎의 인사로 롱리스트를 구성하고, 이를 10명 안팎으로 추리면서 회추위를 본격 가동할 예정이다.

    업계에선 내부 인사 4명이 유력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윤종규 회장은 3년 전 지주사 내 부회장직을 신설해 허인·양종희·이동철 등 주요 계열사 수장을 맡았던 인사들을 앉힌 바 있다. 자신의 임기가 끝난 후에 대한 포석으로 여겨졌다. 이 3인에 더해 박정림 KB증권 대표(총괄부문장)까지 4인이다. 현재 KB금융그룹은 이 세 명의 부회장과 한 명의 총괄부문장이 담당하는 4개 비즈니스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박 대표는 그간 금융권의 유리천장을 깨며 주목받아 온 인물이다.

    세 부회장은 모두 1961년생이다. 허 부회장(글로벌·보험부문장)은 국민은행 영업그룹 부행장과 KB금융지주 기타비상무이사 등을 거쳤다. 2017년부터 2021년까지 KB국민은행장을 지냈다. KB금융의 핵심이 은행이라는 점에서 주목받는 인물이다.

    양 부회장(개인고객·WM·연금·SME부문장)은 KB금융지주 보험부문장 겸 KB손해보험 대표이사를 지낸 바 있다. 2016년부터 2020년까지 KB손해보험을 핵심 계열사로 성장시켰다. 특히 2021년 가장 먼저 부회장직으로 승진하기도 했다.

    이 부회장(디지털·IT부문장)은 KB금융지주에서 전략총괄 부사장, 개인고객부문장 등을 지냈다. 2018~2021년에는 KB국민카드 대표이사를 맡았다. 지주와 계열사를 두루 거치며 전략, 재무, 영업 등의 다양한 업무를 맡은 ‘전략통’으로 평가받는다.

    박 대표는 KB국민은행 자산관리(WM)사업본무 전무, 리스크관리그룹 부행장, 여신그룹 부행장 등을 거친 인물이다. 2017년 KB증권 WM부문 부사장에 이어 2019년 대표이사 사장으로 선임됐다. 증권업계 첫 여성 CEO로도 알려졌다.

    윤 회장이 3연임에 성공한 2020년엔 8월 회추위가 압축 후보 4명을 확정한 바 있다. 내부 인사로 윤종규 회장, 허인 부회장, 이동철 부회장과 외부 인사로는 김병호 전 하나금융지주 부회장이 후보에 올랐다. 9월 압축 후보를 대상으로 인터뷰 등을 통한 심층평가를 실시한 뒤 윤 회장을 최종 후보자로 선정했다. 올해 일정 역시 비슷하리라고 전망된다.

    주목할 것은 윤 회장의 4연임이 불가하지 않다는 점이다. 윤 회장은 2014년 제4대 KB금융지주 회장에 오른 뒤 9년간 그룹을 이끌어왔다. KB금융지주는 정관상 회장 선임 연령을 만 70세 미만으로 제한하고 있다. 1955년생인 윤 회장은 올해 만 68세로 연령 제한에 걸리지 않는다.

    더욱이 윤 회장은 취임 직후 당시 이른바 ‘KB 사태’로 어수선하던 그룹을 추스른 데 이어 공격적 인수합병 등으로 KB금융그룹의 성장을 이끌어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의 연임을 바라는 여론도 있다.

    금융 당국이 최근 금융지주 회장들의 장기 집권에 부정적 인식을 드러내 온 만큼 연임에 나서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복현 원장의 ‘후보’ 발언이 논란이 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 원장이 다시 한번 CEO 장기 집권에 부정적 견해를 드러낸 것이라고 해석될 수 있던 것이다.

    “벌써 개입하려 군불 때나”

    이복현 원장은 취임 이후 지금까지 줄곧 관치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지난해 6월 취임 직후 열린 은행장과의 간담회에서 “은행의 지나친 이익 추구에 대한 비판이 커지고 있다”는 말을 시작으로 때마다 금융사를 압박하는 발언을 해왔다.

    특히 같은 해 11월엔 당시까지만 해도 연임 가능성이 높다고 여겨진 손태승 전 우리금융 회장을 겨냥해 “현명한 판단을 내릴 것으로 생각한다”며 의미심장한 발언을 해 세간의 입에 오른 바 있다. 결국 손 전 회장 대신 전통 관료 출신으로 금융위원장까지 지낸 임종룡 회장이 수장에 오르게 됐다.

    이 원장 역시 이런 논란을 의식한 듯 이번 KB금융 회장 선임에 대해서는 “KB금융지주의 경우 지주 회장 선임을 위한 스케줄이 정해져 있다. 개별적 스케줄에 대해 구체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오해받을 행동은 안 하겠다”며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의 발언은 잔불을 남기고 있다. 이 원장은 “(KB금융은) 상대적으로 승계 프로그램도 잘 짜여 있고 여러 노력을 하고 있으나, 최근 점검을 하면서 개선의 여지가 있는 부분에 대해선 의견을 냈고, 앞으로 필요하다면 더 할 예정”이라고 언급했다.

    업계는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양새다. 후보 발언의 경우 단순 해프닝으로 여길 수 있지만 이러한 언급은 금융 당국이 벌써 구두 개입에 나선 것 아니냐는 오해의 소지를 남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KB금융 차기 회장 선정을 위한 작업을 제대로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 이복현 원장이 군불을 때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며 “업계에서는 이 원장이 ‘앞으로 의견을 더 내겠다’고 언급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간 신한, 우리 등 다른 금융그룹에 금융당국이 직·간접적으로 개입했다는 평가를 받는 만큼 이번에도 또다시 개입 여지를 남긴 것 아니냐는 우려가 크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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