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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서까지 경찰 긴장케 한 칠성파 두목 이강환

[Who’s who] 2006년 앓은 뇌경색 후유증 거동 불편, 1970년대 초반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 조직 이끈 상징적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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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지영 기자

    kjy@donga.com

    입력2023-07-20 13:5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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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 4월 6일 공갈 혐의로 체포된 칠성파 두목 이강환 씨가 경찰서로 압송되고 있다. [뉴시스]

    2010년 4월 6일 공갈 혐의로 체포된 칠성파 두목 이강환 씨가 경찰서로 압송되고 있다. [뉴시스]

    “고마해라. 마이 묵으따 아이가…”

    곽경택 감독 영화 ‘친구’(2001)에서 장동건이 다른 폭력조직 조직원에게 수없이 ‘칼빵’을 맞으며 내뱉은 대사다. 관객에게 강한 여운으로 남은 이 장면은 영화 모티프가 된 실화를 기반으로 한다. 1993년 7월 부산 최대 폭력조직인 ‘칠성파’ 조직원들이 ‘신20세기파’ 행동대장을 흉기로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때부터 30년째 두 조직이 갈등을 벌이는 가운데 칠성파 전성기를 이끈 두목 이강환(80) 씨가 19일 사망했다. 전·현직 칠성파 조직원을 비롯해 전국 각지에서 조폭들의 조문이 이어지고 있다. 경찰은 부산경찰청 등의 형사 인력을 동원해 장례식장 주변에 배치했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는 것. 2021년 5월 신20세기파 조직원들이 부산 한 장례식장에서 문상 중이던 칠성파 조직원과 난투극을 벌인 전력도 있다.

    부산경찰청에 따르면 이강환 씨는 19일 새벽 부산 한 병원에서 지병이 악화해 치료받던 중 숨졌으며 다른 특이점은 없다. 이 씨는 2006년부터 뇌경색과 소아마비 후유증 등으로 거동이 불편해 휠체어에 의존해왔다. 지난해 치룬 팔순 잔치에도 휠체어를 타고 나타났다.

    이 씨는 칠성파를 부산 최대 폭력 조직으로 성장시킨 인물이다. 경찰에 따르면 소아마비를 앓아 다리를 절고 체구도 작은 편이지만 배포가 크고 조직 관리를 잘해 1970년대 초반 두목이 돼 40년 가까이 조직을 이끌었다.



    칠성파는 1950~1960년대 세를 키웠다. 중구 남포동·서구 충무동 등 당시 부산 유흥가를 무대로 활동했다. 1970~1980년대엔 필로폰 밀매와 파친코 사업으로 세력을 확장해 부산·경남에서 가장 큰 폭력조직으로 성장했다. 이 무렵 일본 야쿠자와 형제의식(사카즈키)을 하기도 했다. 1990년대 초반 정부가 ‘범죄와의 전쟁’에 나서며 세력이 약화했다.

    이 씨도 이때 체포돼 수감 생활을 했다. 2000년 나이트클럽 지분 분쟁으로 다시 구속되는 등 교도소를 들락날락하다 뇌경색에 빠지는 등 건강이 악화됐다. 2010년대 초반 뇌경색이 재발하는 등 건강이 급격히 나빠졌다. 그 즈음 두목 자리를 후배에 물려줬다. 이후에도 칠성파의 ‘상징적 두목’으로 조직에 영향을 끼쳤다.




    김지영 기자

    김지영 기자

    방송, 영화, 연극, 뮤지컬 등 대중문화를 좋아하며 인물 인터뷰(INTER+VIEW)를 즐깁니다. 요즘은 팬덤 문화와 부동산, 유통 분야에도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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