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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삿바늘·기도관으로 연장하는 삶은 ‘존엄’한가

[박은식의 의사日記] ‘차라리 죽여달라’는 환자 앞에서 느낀 자괴감

  • 박은식 내과 전문의

    입력2023-08-10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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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7년과 2008년이라는 변곡점

    • ‘안락사’하러 스위스 가는 한국인

    • 중환자실 주치의 시절 겪은 일화

    • ‘돌봄’만 추구하면 불행할 수도

    • 진정한 생명 존중이란 무엇인가

    2016년 2월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 단계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연명의료결정법)’이 제정됐고, 이 법에 따라 연명의료결정제도가 2018년 2월 시행됐다. 사진은 연명의료계획서 작성·이행 기관에서 사용하는 연명의료계획서. [뉴스1]

    2016년 2월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 단계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연명의료결정법)’이 제정됐고, 이 법에 따라 연명의료결정제도가 2018년 2월 시행됐다. 사진은 연명의료계획서 작성·이행 기관에서 사용하는 연명의료계획서. [뉴스1]

    “죽여줘… 죽여줘….” 의사가 되고 나서 인턴 신분으로 처음 콧줄(L-tube)을 삽입하던 내가 환자에게 들었던 말이다. 환자는 뇌졸중으로 보행과 삼킴이 불가능한데 말만 조금 할 수 있는 상태였다. 약물 치료로 팔다리의 마비는 조금 호전됐지만 삼킴 기능이 호전되지 않자 결국 배에서 위로 구멍을 뚫어 관을 삽입(경피위루술)했다. 아무런 맛을 느끼지도 못한 채, 그저 칼로리를 채우기 위해 위로 경관식을 투여한 것이다.

    게다가 침대에만 누워 있다 보니 엉치 쪽에 욕창이 생겼다. 욕창 소독을 할 때면 가득 찬 고름 사이로 엉치뼈가 보일 정도였다. 기저귀로 배변을 하면서 욕창에 변이 묻어 아무리 항생제를 써도 낫질 않더니 결국 항생제 내성균이 발생했다. 소독할 때마다 괴성을 지르며 발버둥치자 의료진은 결국 환자의 손발을 묶을 수밖에 없었다. ‘차라리 나를 죽여달라’는 외침은 이제 ‘의사 놈들 다 죽여버리겠다’로 바뀌었다.

    자괴감이 들었다. ‘환자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 의사가 된 나는 지금 잘하고 있는 걸까?’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었다. 끔찍한 고통을 의사가 해결해 준다면 애초에 환자가 ‘죽음’이라는 단어를 꺼내지 않을 것이다. 한데 의료기술의 한계로 의사가 고통을 해결해 줄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이에 나 같은 생각을 가진 의사들과 지옥 같은 고통에 시달리는 환자들, 그걸 지켜보며 간병하는 보호자들, 고령화로 이런 환자가 늘면서 과중한 보험 재정을 짊어져야 하는 국민 모두가 안락사 및 존엄사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존엄사는 일종의 레토릭

    안락사(euthanasia)는 ‘좋은’이라는 의미의 Eu와 ‘죽음’이라는 뜻을 가진 thanasia가 합쳐진 단어다. 환자의 의지 개입 여부에 따라 자발적·비자발적 안락사로, 죽음에 이르기까지 독성 약물을 주입하는 등의 행위 여부에 따라 적극적·소극적 안락사로 나뉜다. 그렇다면 존엄사(death with dignity)란 무엇일까. 사실 존엄사는 학술적으로 정의된 용어가 아니라, ‘환자의 존엄을 지켜준다’는 의미를 담은 일종의 레토릭이다. 그래서 존엄사라는 단어가 해외에서는 의사가 환자에게 죽음에 이르는 약물을 직접 투입하는 의사조력자살(Physician-Assisted Suicide)을 지칭하기도 하고, 국내 일부에서는 자발적·소극적 안락사를 존엄사로 지칭하기도 하는 등 용어 정의에 혼선이 있다.

    국내에서 존엄사 문제가 처음 주목받은 시기는 1997년이다. 의료진이 인공호흡기를 단 환자를 가족의 요구에 따라 퇴원시켰다가 곧바로 숨지자 담당 의사가 살인방조죄로 처벌받은 일명 ‘보라매병원 사건’이 발생한 해다. 이 사건 이후 의료진은 연명치료 중지를 극도로 꺼리게 됐다. 이후 2008년 세브란스병원에서 조직검사를 받다 과다출혈 후유증으로 식물인간 상태가 된 김모 할머니의 가족들이 인공호흡기를 떼어달라는 소송을 제기해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하면서 환자의 ‘죽을 권리’가 조명받는 계기가 됐다.



    2009년 5월 21일 열린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이용훈 당시 대법원장이 식물인간 상태가 된 김모 할머니 측이 세브란스병원 운영자인 연세대를 상대로 낸 ‘무의미한 연명치료 장치 제거 등 청구소송’에 대해 인공호흡기 제거를 명한 원심 판결을 확정하고 있다. [동아DB]

    2009년 5월 21일 열린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이용훈 당시 대법원장이 식물인간 상태가 된 김모 할머니 측이 세브란스병원 운영자인 연세대를 상대로 낸 ‘무의미한 연명치료 장치 제거 등 청구소송’에 대해 인공호흡기 제거를 명한 원심 판결을 확정하고 있다. [동아DB]

    그렇게 임종 과정만 연장하는 무의미한 연명치료가 환자의 존엄성을 해치므로 죽음에 대해 자기결정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됐다. 마침내 2016년 2월 연명의료결정법이 통과되면서 2018년 2월부터 공식 시행됐다. 시행 5년 만인 올해 2월 기준으로 164만 명이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해 등록했다. 실제 임종을 앞둔 환자의 뜻에 따라 연명의료 중단이 이뤄진 경우는 26만8000여 건이었다. 국내 임종 문화에 큰 변화를 가져온 것이다.

    이후 연명의료 중단 기준 및 중단 가능한 연명의료를 확대해야 한다는 논의가 이어졌다. 현행법에는 심폐소생술, 혈액 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 체외생명유지술(ECMO), 수혈, 혈압상승제 투여 등 7개만 중단 가능한 연명의료행위로 규정돼 있는데 강제 경관영양공급(콧줄 삽입, 경피위루술)도 중지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연명의료 중단 관련 제도를 법제화한 나라에서는 그 대상을 말기 환자로 넓게 규정했는데, 한국만 말기와 임종기를 구분해 임종이 임박해야만 연명의료 중단을 결정하게 만들어놓은 것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다른 나라들처럼 회생 가능성이 없는 말기 환자로 대상을 확대하자는 주장이다. 예를 들면 지속 식물인간 상태이거나 중증 치매환자, 무뇌아 등 중증 소아기형 환자도 포함하자는 이야기다.

    의사조력자살(조력존엄사)에 대한 논의도 활발해졌다. 서울대병원 윤영호 교수팀에 따르면 2021년 3월부터 4월까지 19세 이상 대한민국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76.3%가 안락사 및 의사조력자살에 찬성한다고 답했다. 이는 2016년의 찬성 비율 41.4%와 비교해 2배 가까이 높아진 수치다. 한국리서치가 2022년 7월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조력존엄사 입법화 찬반 의견을 조사한 결과에서는 82%가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무의미한 수명 연장보다 품위 있고 존엄한 죽음을 택하겠다는 사람이 늘고 있는 것이다.

    중환자실 바깥에서 벌어진 멱살잡이

    해외의 경우 2002년 네덜란드가 세계 최초로 적극적 안락사를 합법화한 이래 캐나다, 벨기에, 스위스, 룩셈부르크, 호주 일부 및 미국 일부 지역 등 적극적 안락사를 인정하는 국가가 점차 늘고 있다. 하지만 아직 적극적 안락사를 허용하지 않은 국가가 다수다. 스위스 등 적극적 안락사가 합법화된 나라로 ‘원정 안락사’를 하러 가는 환자도 적지 않다. ‘원정 안락사’를 위해 스위스로 떠나는 한국인이 연평균 300~450명 정도라는 보고도 있다. 당초 안락사 합법화로 가난한 환자 다수가 생을 포기하게 될 것을 우려했지만 외려 각 나라의 부호들이 스위스로 이른바 ‘자살여행’을 떠나는 것도 주목할 점이다.

    이런 흐름 속에서 안규백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기존의 연명의료법을 개정하는 이른바 조력존엄사법을 발의했다. 법안에서는 조력존엄사 대상자를 △말기 환자에 해당할 것 △수용하기 어려운 고통이 발생하고 있을 것 △신청인이 자신의 의사에 따라 조력존엄사를 희망하고 있을 것 등 세 가지 요건을 모두 갖춘 경우로 규정했다. 조력존엄사를 도운 담당 의사에 대해서는 형법상 자살방조죄 적용을 받지 않도록 했다. 하지만 종교계 등의 반대로 1년째 국회에 계류돼 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가톨릭생명윤리자문위원장 구요비 주교는 “존엄한 것은 죽음이 아니라 삶”이라며 “우리의 삶은 젊음과 건강을 누리기도 하고 질병과 노화로 고통을 겪기도 하지만 어떤 순간도 삶의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어 “임종 과정에 있는 이웃에 대한 참된 사랑은 조력자살을 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자신의 생명을 마지막까지 살아낼 수 있도록 관심을 가지고 함께하는 것”이라고 했다.

    구구절절 옳은 말이다. 그런데 이런 반론을 들을 때마다 중환자실 주치의로 근무하던 시절의 일화가 떠오른다. 아흔이 다 된 할머니가 인공호흡기를 장착했음에도 갈수록 폐렴이 악화되고 혈압이 떨어지면서 설상가상 소변량도 줄고 있었다. 폐암과 당뇨 등 기저질환이 많아 승압제 투여와 체외순환장치 및 투석을 해도 살아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점을 보호자들에게 설명하고 연명치료를 더는 하지 않겠다는 동의서를 받았다.

    이런 때 등장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름하여 ‘큰아들’이다. 사업 실패로 수년간 연락이 두절됐다가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달려온 큰아들은 그간의 불효에 대한 죄책감에 이대로 어머니를 보낼 수 없다며 이미 받은 동의서를 모두 뒤엎었다. 결국 환자가 누워 있는 중환자실 바깥 보호자 대기실에서 큰아들과 작은아들이 서로 멱살 잡는 싸움이 벌어졌다. 여동생들이 말리자 작은아들이 소리쳤다.

    “우리 엄마 똥오줌 내가 다 치우고 병원비도 내가 고생해서 다 냈어. 형은 10원 한 장 안 보태줬잖아! 돌아가실 때 다 돼서 와놓고 이제 와서 큰아들 행세야? 엄마 힘들어하는 거 안 보여? 나을 가능성도 없는데 이대로 계속 중환자실 치료시키면 그 많은 병원비 형이 다 낼 거야?”

    작은아들의 일갈이 인권과 도덕적 당위성만을 주장하며 존엄사를 반대하는 종교인들에게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자신이 책임질 것이 아니라면 함부로 개인과 가족의 결정에 참견할 일이 아니지 않나.

    웰다잉에 대한 사회적 합의

    요즘엔 ‘존엄사’보다 ‘돌봄’이라는 단어가 비중 있게 다뤄지고 있다. 최근 이슈가 된 간호법 문제도 어찌 보면 고령화 시대에 돌봄 의료 인력 확대를 통해 노인의 수명 연장에 방점을 두는 정책을 추진하다 불거진 것이다. 하지만 고통받는 환자가 ‘존엄한 마지막’을 거부했을 때 겪는 지옥 같은 시간을 매일 봐온 나는 정책 패러다임을 ‘돌봄’에서 웰다잉(Well-Dying), 즉 존엄사로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존엄사를 고려하지 않은 채 ‘돌봄’만을 추구하려다 모두가 불행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혈관 여기저기 꽂혀 있는 주삿바늘, 목 깊숙이 박힌 기도관, 맛을 느끼지도 못한 채 콧줄로 주입되는 경관식, 기저귀를 한 채 엉덩이에는 낫지 않는 욕창을 달고 항생제내성 세균만 양산하는 무의미한 치료. 이렇게 무한정 연장되는 삶은 과연 ‘존엄’한가. 운 좋게 회복하더라도 다시 길고 고통스러운 와상 기간이 반복되는 것일 뿐 결코 건강하던 젊은 때로 돌아갈 순 없다. 이런 치료를 지속하도록 강제하는 것은 외려 개인의 존엄한 인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보호자의 고통도 고려해야 한다.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이 있다. 힘들어하는 환자를 간병하며 보호자의 심신도 피폐해지고 경제적 곤란에도 직면한다. 간병 문제로 인한 존속 살인이나 동반자살 소식이 여러 차례 기사화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강제적으로 생을 ‘연장당한’ 노부모를 모시느라 자녀들이 평생 유모차는 못 끌어보고 휠체어만 끌다 정작 자신은 고독사하는 시대는 막아야 하지 않을까.

    이런 안타까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국가가 책임지고 재정을 투입해 돌봄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분들이 있다. 하지만 건강보험 재정을 지탱하는 국민도 고려해야 한다. 일종의 누진소득세로 근근이 유지 중인 건강보험 재정은 고령화 시대를 맞이하며 고갈돼 가고 있다. 이런 상태에서 조력존엄사가 시행되지 않으면 지금의 20대가 나중에 1인당 4명 이상을 부양해야 한다는 연구 결과도 나온다. 이를 보조하기 위해 무작정 국가재정만 투입하다간 경제 전반의 활력이 저하될 수 있다. 한정된 건강보험 재정과 국민 세금이 ‘환자의 존엄한 삶이 유지되는 시점까지’만 지원돼야 하는 이유다.

    조력존엄사 도입 주장은 결코 ‘삶에 대한 비하, 죽음에 대한 예찬’이 아니다. 한 번뿐인 소중한 삶에서 고통을 줄이려는 것이기에 도리어 진정한 생명 존중에 가깝다. 생하는 것 모두가 멸하는 것은 거부할 수 없는 진리다. 죽음에 대한 논의를 터부시할 게 아니라 품위 있고 존엄한 죽음, 웰다잉(Well-Dying)에 대해 사회적 합의를 이루기 위한 걸음을 내디뎌야 한다.


    박은식
    ● 1984년 출생
    ● 한양대 의과대학 졸업
    ● 前 한양대병원 내과전문의
    ● 前 신촌 세브란스병원 소화기내과 전임의
    ● 現 내과 전문의·호남대안포럼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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