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3월호

하늘의 감시자 보라매의 눈

  • 김기영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hades@donga.com

    입력2004-11-05 14: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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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국 하늘에 바늘 꽂을 틈도 허락할 수 없다” 하늘을 지키는 공군, 그 공군의 눈(眼)이자 두뇌인 공군 제30방공관제단. 철조망 없는 하늘의 영토를 지키는 부대. ‘하늘의 초병’ 공군 제30방공관제단을 찾았다.
    2001년 9월11일 늦은 밤, 우리 국민은 TV 화면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미국 뉴욕의 세계무역센터 빌딩이 테러단체가 납치한 여객기의 공격을 받고 무너지는 충격적인 장면을 되풀이해 방송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세계 최강국이라는 미국에서 어떻게 저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 저런 끔찍한 테러공격을 저지른 주인공은 누구인지, 또 미국은 앞으로 이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 나갈 것인지….

    이날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무수한 의문들이 떠올랐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절실한 의문은 ‘우리는 과연 안전한가’였을 것이다. 미국처럼 넓은 나라도 아니면서 남북한이 대치하고 있는 우리나라가 과연 9·11테러와 같은 공중 공격을 견뎌낼 수 있을 것인가에 사람들의 관심이 모아졌던 것이다.

    이런 의문에 대한 해답을 쥐고 있는 주인공이 바로 공군 제30방공관제단(이하 30단)이다. 우리나라 영공에 떠 있는 모든 항공기의 움직임을 24시간 365일 쉬지 않고 감시하는 ‘하늘의 눈’이 바로 30단이기 때문이다.

    30단장 성봉환 준장은 “9·11테러와 같은 사건은 우리나라에서는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365일 단 한순간도 방심하지 않고 물샐틈없는 경계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30단은 1955년 9월 미 공군으로부터 레이더 장비와 시설을 인수하여 비행관제경보대로 창설됐다. 그후 1957년 7월 경보전대(연대급), 1963년 9월 지금의 방공관제단으로 승격된 이후 한반도 극단의 섬은 물론, 전국의 고산준령에 위치한 관제부대를 거느린 대단위 부대로 발전했다.

    1983년 막대한 예산을 투입, 자동화 방공관제체제를 갖춘 중앙방공통제전대를 창설했다. 이에 따라 30단은 전국의 고산준령과 고도에 위치한 관제부대를 거미줄처럼 하나로 연결하여 각각의 관제부대가 관제한 모든 자료를 자동으로 중앙방공통제소(MCRC; Master Control & Reporting Center)에 전송하는 자동화 방공관제체제를 갖추고 있다. 1985년 7월부터는 방공관제체제의 자동화 작전과 수동작전을 병존 운영함으로써 한반도와 한반도 주변상공에서 활동하는 모든 비행물체를 감시·포착하는 능력을 보유하게 되었다. 2000년에는 제2 MCRC를 창설, 명실공히 2중·3중의 영공감시망을 갖췄다. 그 결과 “대한민국 하늘에는 바늘 꽂을 틈도 허락하지 않는 완벽한 영공감시를 하고있다”는 것이 30단의 자랑이다.

    30단의 임무는 크게 네 가지로 요약된다. 24시간 영공을 감시하는 ‘공중감시’와 적기가 영공을 침투할 때 이를 신속히 전파하고 공군의 비상대기 전투기의 긴급출동 및 방공 유도탄 발사 대기태세를 유지하는 ‘조기경보’ 임무, 침투해 오는 적기에 대해 목표지역 도달 이전에 원거리에서 격파하도록 유도하는 ‘요격관제’ 임무, 항공작전시 조종사의 안전하고 완벽한 작전수행을 위한 ‘항법보조’ 등이다.

    보통 때 한반도 상공에는 수백 대의 군용기가 비행하고 있다. 30단의 MCRC는 이 모든 항공기의 관제를 담당한다. 방공관제 임무는 보통 탐지, 식별, 요격, 격파 네 가지 절차로 나뉘는데 일선 관제부대의 스코프 상에 최초 항적(航跡)이 생성된 후 그 항적을 감시하는 것이 ‘탐지’이고 곧바로 ‘식별’단계에 돌입, 피아식별(彼我識別)을 마치면 어떤 무기를 사용, 공격할 것인가 하는 전술(무기)통제 임무에 들어간다. 이에 가장 적절한 전투기를 선정, ‘요격’임무를 부여하고, 임무를 부여받은 전투기를 관제해 적기를 ‘격파’하게 된다. 즉, 빠른 시간에 적기의 동태를 파악해 효과적인 대응 화기를 결정하고 가장 빨리 적기에 도달하게 하는 일이 방공관제작전의 요체인 셈이다.

    최근에 30단의 역할이 돋보였던 작전이 1996년 5월23일의 북한군 조종사 이철수 소령의 귀순이었다. 그날 오전 10시43분, 30방공관제단 MCRC에 북으로부터 남쪽으로 고속 남하하는 이상 비행 항적이 포착됐다. 당시 MCRC에서 근무하고 있던 이기영 중사(당시 28세, 현 준위)는 북한 온천비행장으로부터 남쪽 15마일 공역에서 최초 포착된 이상항적을 그 출발지에서부터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의 항적이 옹진반도 쪽 상공으로 직진하는 것을 확인하고는 통상적인 북한 공군의 훈련이 아님을 직감, 보고 조치했다.

    이기영 준위는 “북한의 경제난 등으로 귀순기 포착의 가능성을 염두에 둔 훈련을 지속적으로 실시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항적이 나타나 살펴보니 갑자기 고도를 낮추며 남쪽으로 돌진, 귀순기임을 직감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MCRC에서는 즉각 중부전선에서 초계 비행중이던 F-16기 편대에 요격임무를 부여했고, 이어 수원기지의 F-5E기 편대 및 F-4E기 편대를 차례로 비상출격시켜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이상항적은 계속 고속으로 남하, 오전 10시49분께는 북방한계선(NLL)을 통과해 남쪽으로 진입했다. 50분경 출동한 F-16기 편대가 레이더를 통해 남하하는 비행기가 미그기임을 확인했다. 53분쯤에는 육안으로 확인할 만큼 이상항적에 접근했다.

    F-16기가 미그기에 접근하자 미그기는 랜딩기어(착륙바퀴)를 내린 뒤 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귀순하겠다는 의사표시였다. MCRC는 F-16기에 미그기를 중부기지로 유도할 것을 지시하고, 비상출격한 F-5E기는 이들을 엄호했다. 또한 F-4E기는 강화도 남단 상공에서 북쪽 길목을 차단, 북한의 추격에 대비했다. 이처럼 후속조치들이 일사불란하게 펼쳐지는 사이 미그기는 중부기지에 안착했다. 최초 포착 후 26분이 지난 11시9분이었다. 이날의 작전은 공군의 방공관제 작전의 중요성을 만방에 알린 쾌거로 남아있다.

    일선 관제부대에서 주관제는 장교가 담당하며 부사관과 병사가 팀을 이룬다. 한시도 틈을 줄 수 없는 업무 특성상 4개의 근무조가 24시간 교대 근무를 실시한다.

    레이더 콘솔 내에 항적이 나타나면 60초 이내에 피아를 식별해야 하는데, 2급 이상의 기량을 가진 장병들은 10초 이내에 이를 판독할 수 있다. 또한 자동화 방공관제 체제 도입 이후에는 이 시간이 8초 이내로 단축돼 신속하면서도 한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방공관제임무 수행이 가능해졌다. 방공관제업무의 최일선에서 근무하는 장병들을 만나기 위해 취재진은 해발 1100m의 ○○산 정상에 자리잡은 공군 제8145부대를 방문했다. 기자가 도착한 날은 바람 한 점 없는 화창한 날씨였는데 부대장 한진국 중령은 “어제까지만 해도 체감기온이 영하 22℃까지 떨어졌었는데 오늘은 날씨가 좋다”며 기자 일행을 반겼다. 산 아래 마을과 달리 부대가 있는 정상에는 사방이 눈천지였다. 한중령은 “한겨울 눈이 많이 올 때는 사람 키 높이 만큼 눈이 쌓이기도 한다”고 말했다.

    ○○산 관제부대 작전실을 찾았다. 입구에는 ‘부릅뜬 그 눈빛에 오천만은 안도한다’는 구호가 적혀 있었다. 새삼 긴박감이 들었다. 사람의 얼굴도 알아보기 힘든 어두컴컴한 작전실, 북부지역의 하늘을 나는 모든 항적을 추적·표시하는 여러 개의 레이더스코프에 이동중인 항공기의 항적이 별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레이더스코프에는 현재 한반도 상공을 날고 있는 모든 비행기들의 움직임이 나타나 있었다. 이상항적을 찾아내기 위해 스코프를 주시하는 통제사들의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작전실은 한시도 비워둘 수 없는 이 부대의 핵심 중의 핵심. 따라서 4개 조가 24시간 쉬지 않고 작전실을 지키고 있다고 한다.



    통제사들의 맞은편 벽에는 벽 전체를 가리는 투명한 상황판(플라팅보드)이 있었고, 그 뒤에는 전시수라 불리는 관제병들이 부지런히 뭔가를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보통 관제는 자동과 수동으로 나눌 수 있다. 자동관제시스템의 작동이 안될 경우에 대비해 관제부대에서는 통제사들이 직접 수동관제를 실시해 비상시에 대비한다. 수동관제체제일 경우, 통제사는 스코프에 나타난 항적을 포착해 10초 내에 피아식별을 한다. 피아식별이 끝나면 그 좌표를 전시수에게 불러주는데 작전실 전방 프리팅보드 뒤에 있는 병사들이 직접 항적의 움직임을 그려 관제를 실시한다. 그러니까 투명판 뒤에서 뭔가를 쓰고 지우는 병사들은 바로 수동관제에 대비해 한시도 쉬지 않고 대기하고 있는 관제병들인 것이다.

    작전실의 각종 첨단기기들을 둘러보고 있는데 상황판 뒤 병사가 능숙한 솜씨로 ‘신동아 기자 일행을 환영한다’는 글자를 써보였다. 그런데 전시수들은 상황판 뒤편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앞쪽에서 글자를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거꾸로 글자를 써야 한다. 따라서 신병이 배치되면 그들은 능숙한 관제병이 되기 위해 수주간 글자를 거꾸로 쓰는 연습을 한다.

    일상적으로 글자를 거꾸로 쓰다보니 전시수들 가운데는 제대할 무렵이면 제대로 쓰는 것보다 거꾸로 쓰는 것이 더 빠른 병사들도 있다고 한다. 애인에게 거꾸로 쓴 편지를 보내기도 한다는 것이다.

    현황판에 좌표화하는 동시에 레이더상의 항적은 MCRC로도 송신되기 시작했다. 만약 일선에서 이상항적을 잡아내 이를 MCRC로 송신할 경우 10여 초 뒤면 MCRC의 통제사들은 이상항적을 식별하고, 즉시 근처에 초계비행중인 전투기를 찾아 이를 요격케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게 된다.

    작전실을 나와 찾아간 곳은 정비실. 이곳에는 초대형 레이더가 1년 내내 24시간 쉬지 않고 돌아가고 있었다. 마치 거대한 기계가 작동하는 공장 같은 분위기였는데 이곳 레이더에서 포착된 정보가 작전실 레이더스코프에 점과 좌표로 기록된다. 작전실과 마찬가지로 레이더의 이상유무를 파악하고 점검하는 정비병들이 1일 4교대로 쉬지 않고 근무하고 있었다.

    “만약 이곳 레이더가 멈추면 어떻게되냐”고 묻자 한진국 중령은 “그럴 경우가 없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면서 “우리 부대 인근에도 관제부대가 있는데 서로 겹쳐가면서 관제업무를 하기 때문에 설령 한 곳이 멈춰도 관제망에 구멍이 뚫리는 경우는 절대 없다”고 말했다.

    공군 제8145부대는 1966년 5월에 창설되어 1967년 9월부터 본격적으로 지방관제소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8145부대의 주요임무는 중부 내륙지역의 영공방위를 위한 레이더 포착자료를 송신하고, 원격 공지통신을 지원하며 그와 관련된 장비를 정비·관리하는 것이다. 공중에 떠있는 물체를 레이더를 통해 감지하여 이 정보를 상위부대로 이상 없이 전송하는 것이 바로 부대의 주요임무인 것이다. 이를 위한 시스템들은 사람의 조작을 거치지 않고도 레이더 포착자료를 자동으로 MCRC로 전송하도록 세팅돼 있다.

    8145부대는 지난해 12월 레이더 무중단 5주년 기록을 세웠다. 5년이라 하면 짧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첨단 장비인 까닭에 레이더 장비는 미세한 오차로도 중단될 수 있다. 그런 민감한 장비를 5년간 한번도 세우지 않았다는 것은 장병들이 얼마나 사명감을 갖고 세심한 노력을 기울였는지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해발 1100m ○○산 정상에 자리잡은 부대인 까닭에 부대원들의 가장 큰 적은 어쩌면 자연환경일 수도 있다.

    우선 여름에는 매우 다습한 기후, 빈번한 뇌우(雷雨), 그리고 집중호우가 문제다. 1년의 절반 가량은 구름에 둘러싸여 지내는 이곳 부대의 특성상 습기에 민감한 전자장비들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 때문에 기계가 있는 정비실과 작전실에서는 여름에도 난방을 하는 진풍경을 볼 수 있다고 한다.

    또한 고지대인 까닭에 뇌우가 산의 아래쪽에서부터 부대를 향해 올려치는 이색 광경도 볼 수 있다. 그만큼 뇌우와 부대와의 거리가 가깝기 때문에 부대 주변에 뇌우띠가 형성됐다는 기상예보가 접수되면 각종 전자장비들을 보호하기 위해 부대에 비상이 걸리기도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큰 문제는 집중호우다. 장교와 부사관 등 영외자들이 거주하는 관사와 부대까지의 거리가 거의 15㎞에 이르는데 이 산길이 비포장상태여서 집중호우 때 쉽게 길이 쓸려나가기 때문이다. 이럴 때면 전 부대원들이 만사를 제쳐놓고 도로복구에 나서야 한다. 도로를 복구해야만 정상적으로 부대를 운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겨울에는 혹한과 폭설이 부대원들을 괴롭힌다. 고산지대의 특성상 10월 중순이면 첫눈이 내려 이듬해 4월까지 겨울이 6개월 이상 지속된다. 기온은 1월을 기준으로 보통 영하 15℃에서 20℃, 여기에 초속 20노트의 바람이 불면 체감기온은 영하 50℃까지 떨어진다. 이 때문에 부대내의 철 난간 등 구조물에는 자칫 손이 달라붙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겨울이면 새끼줄을 감아놓는다. 이 정도 기온에서 숨을 쉬면 콧속의 물기가 순간적으로 얼어붙는 느낌이 들 정도라고 한다.

    이런 날씨에는 야외활동은 당연히 제한해야 하지만 그럴 수만은 없는 사정이 있다. 바로 엄청나게 퍼붓는 눈을 끊임없이 치워야 하기 때문. 눈이 1m 이상 건물에 쌓이면 눈의 무게로 건물이 붕괴될 수도 있어 반드시 제설작업을 해야 한다. 또 보급품 수송 등 작전도로를 확보하기 위해 제설작업이 필수적이다.

    관사와 부대간의 도로에 쌓인 눈을 치우는 일은 영외자들의 몫이다. 출퇴근길 눈 치우기 작업은 겨우내 계속된다. 출퇴근 차량에서 영외자들이 모두 내려 눈을 헤치고 올라가기 위해 특별히 제작된 체인을 장착하는 모습은 겨울철의 또 하나의 볼거리다.

    이런 부대 특성상 무엇보다 중점을 두는 것이 신병(新兵) 관리다. 신병이 전입해오면 1주간의 전입교육, 7주간의 적응·자립교육 등 총 8주간의 집중관리기간을 설정해 운영하고 있다. 최근 전입한 나중근 이병(24)은 “공군은 모두 비행단에서 근무하는 줄만 알았지 이런 산속에 공군부대가 있는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처음에 부대에 도착했을 때 이곳의 자연환경에 매우 놀랐고 이런 곳에서 어떻게 군생활을 하나 솔직히 걱정을 했습니다만 어려운 환경에서 충실히 근무하는 선배 장병들의 모습과 특히 저와 같은 신병들에게 많은 관심과 애정을 쏟아주는 영외자 분들을 보면서 용기를 내 군생활에 임하고 있습니다. 특히 가족적이고 따뜻한 부대 분위기가 너무나 좋습니다.”

    부대장 한진국 중령은 “워낙 오지이다보니 ‘산사나이’처럼 살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주변 여건이 어려운 만큼 서로를 형제처럼 의지하며 마음만은 따뜻하게 살아가는 것이 산사나이들의 세계라는 것이다. 그래서 한중령이 내세운 부대운영 방침이 ‘인화’와 ‘단결’이라고 한다.

    ○○산 정상에 우뚝 자리잡은 공군 제8145부대. 이곳에서 열악한 근무환경, 자연의 매서움과 맞서 싸우면서도 부대원들은 맡은 바 임무를 묵묵히 수행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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