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5월호

막강파워 도취, 무리수 연발… 대검, 왜 이러나

●촛불집회 체포영장 ●정기 인사 반대 ●거친 수사방식

  • 글: 조성식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airso2@donga.com

    입력2004-04-27 13: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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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역 없는 불법정치자금 수사로 국민의 성원을 받는 대검이 최근 ‘촛불집회 체포영장’등 일련의 무리수로 안팎의 비난에 직면했다. 검찰 개혁을 추진하는 강금실 장관과 검찰 위상 강화에 주력하는 송광수 총장의 힘겨루기는 어떻게 끝날 것인가.
    막강파워 도취, 무리수 연발… 대검, 왜 이러나
    놀랍게도, 법무부가 촛불집회를 주도한 시민단체 간부 4명에게 체포영장이 청구됐다는 사실을 처음 안 것은 검찰 보고를 통해서가 아니었다. 검찰 지휘를 받은 종로경찰서가 체포영장을 청구한 직후인 3월26일 오전 8시30분께, 정상명 법무부 차관은 총리실 소속 국무조정실 고위관계자로부터 이에 대해 문의전화를 받았다. 국무조정실이 법무부보다 먼저 이 사실을 알게 된 것은 경찰 보고계통 때문이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있던 정 차관은 공안 업무를 다루는 법무부 검찰3과장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보았으나 모르기는 3과장도 마찬가지였다. 사전에 검찰로부터 아무런 언질을 받지 못했던 3과장은 부랴부랴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로 전화해 그 사실을 확인했다. 그 와중에 대검 공안부에서 전화로 그 사실을 알려왔다. 3과장으로부터 보고를 받은 강 장관은 매우 당황해했다.

    ‘촛불 체포영장’ 청구 전날 정례회식

    체포영장 청구의 적절성 여부와 별개로 이 사건이 화제가 된 것은 검찰이 ‘중대한 시국사건’의 경우 법무부에 사전보고해온 관행을 깨고 독자적으로 일을 처리했기 때문이다. 강 장관은 법리적 다툼을 떠나 이 일로 송 총장에 대해 ‘배신감’ 비슷한 감정을 느꼈던 것으로 알려졌다. 체포영장 청구 전날이자 검찰이 경찰에 영장 청구를 지시한 날인 3월25일 두 사람은 각자 휘하 간부들을 대동하고 저녁식사를 함께했다. 일종의 정례회동이었다. 분위기도 괜찮은 편이었다. 그런데 이 자리에서 송 총장은 당시 가장 큰 현안이었던 촛불집회 체포영장 청구에 대해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 이 사건으로 기정사실화된 강 장관과 송 총장의 갈등에 대해 대검의 한 간부는 “두 분 모두 자존심을 굽히지 않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법무부 관계자는 “두 분의 생각이, 특히 시국관에서 차이가 큰 게 사실”이라며 두 사람의 갈등이 필연적인 것임을 시사했다.

    “송 총장은 보수적인 검찰 조직에 오랫동안 몸담아온 분이고 민변 출신인 강 장관은 어찌 보면 그 반대편에 섰던 분이다. 강 장관이 처음 부임했을 때의 충격은 많이 해소됐고 극단적인 거부감도 사라졌다. 하지만 근본적인 시각 차이는 어쩔 수 없을 것이다. 특히 공안부서 검사들과는.”



    촛불집회 체포영장 사건을 두고 검찰 안팎에서는 ‘대검이 무리수를 둔 것 아니냐’는 여론이 일고 있다. 이 사건을 비롯해 최근 대검의 행보나 대검 주변에서 발생하는 일들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이러한 우려의 본질은 불법대선자금 수사로 국민적 신망을 얻은 검찰이, 정치적 독립 등 위상 강화에만 치중하고 시대가 요구하는 개혁적인 검찰상 확립에는 소극적이지 않느냐는 것이다. 이런 문제 제기는 특히 검찰 개혁을 주도하는 법무부에 대검이 맞서는 듯한 양상을 보이면서 설득력을 얻고 있다.

    현재 법조계에서 거론되는 검찰 또는 대검 비판론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는 촛불집회 체포영장 청구과정에서 드러났듯 공안사건에 대한 경직된 대응방식이다. 대검은 이 사건을 통해 검찰의 시국관이 과거 공안정국 시절과 비교해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음을 보여줘 촛불집회에 자발적으로 참여한 수많은 시민을 놀라게 했다. 뒤에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이는 단순히 ‘민의가 반영된 평화로운’ 촛불집회에 제동을 걸었다는 ‘감성적인’ 이유로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법논리로만 따져도 논란이 될 소지가 충분하기 때문이다(‘민의가 반영됐다’는 표현은 각종 여론조사를 통해 드러난 압도적인 탄핵반대 여론을 감안하면 그리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둘째는 정기인사 연기에 대한 논란이다. 강 장관은 지난 2월 정기 인사철을 맞아 자신의 검찰개혁 구상을 뒷받침하는 대규모 인사를 계획했으나 송 총장의 결사반대와 이를 수용한 청와대의 만류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에 따라 검찰 간부 인사는 총선 이후로 연기된 상태다. 인사 반대의 주요 명분은 대선자금 수사가 진행중이라는 것과 총선에 대한 총력대응이었다.

    그러나 이 논리는 검사들로부터 그다지 호응을 얻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사 연기방침에 일선 검사들은 크게 동요했고 곳곳에서 불만이 표출됐다. 인사를 총선과 연계시킨 것에 대해 ‘검찰의 독립성 확보를 내세워 법무부에 맞서는 대검이 오히려 정치적 행보를 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까지 제기됐다. 이처럼 불만이 고조되자 송 총장은 대검 확대간부회의에서 인사 연기의 취지를 설명하고 검사들의 양해를 구한 것으로 확인됐다.

    셋째는 수사방식에 대한 문제 제기다. 먼저 잦은 영장 기각. 검찰 밖에서는 물론 내부에서도 말이 나오고 있다. 수사에 대한 열정과 의욕은 높이 평가받아 마땅하지만 무리한 인신구속 시도는 증거제일주의에도 반하는 것이거니와 시대 흐름인 인권우선주의에도 거슬리는 측면이 있다는 지적이다.

    아울러 수사과정에 자꾸 자살하는 사람이 생기는 사태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높다. 피의자가 ‘불명예’를 감당하지 못해 자살한 것을 수사기관 탓으로 돌릴 수는 없지만 적어도 도의적 책임은 피할 수 없으며 수사방식에 대한 자성 또는 점검이 있어야 한다는 의견이다.

    대검 비판론에 불을 지핀 촛불집회 체포영장 사건의 논점을 크게 둘로 나누면, 하나는 영장 청구의 문제점이고 또 하나는 보고체계를 둘러싼 법무부와의 갈등이다. 먼저 체포영장이 청구된 과정을 살펴보자. 체포영장은 검찰(서울중앙지검 공안2부)의 지휘를 받아 종로경찰서가 검찰에 청구하고 검찰이 다시 이를 법원에 청구하는 형식을 취했다.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는 대검 공안부의 지침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종로경찰서 수사과에 영장 청구 지시가 내려온 것은 목요일인 3월25일 오후였다. 이틀 뒤인 27일 광화문에선 주말을 맞아 대규모 촛불집회가 열릴 예정이었다. 종로서 수사2계장은 “검찰과 협의해 영장을 청구했다”면서도 “검찰 쪽에서 먼저 (영장) 얘기가 나온 게 사실”이라며 검찰이 주도적 역할을 했음을 내비쳤다.

    애초 경찰은 영장 청구에 반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체포영장 청구요건에 미흡하다는 이유에서였다. 경찰은 그동안 불법집회 관련자에 대해서는 통상 3회 이상 출석요구를 한 다음 이에 불응할 경우 체포영장을 청구하는 원칙을 지켜왔다. 잡아들이기에 급급했던 과거 공안정국 시절의 강압적인 체포방식을 지양한 것이다.

    최열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 등 촛불집회 주도 혐의를 받고 있던 4명의 시민단체 간부들은 경찰의 1, 2차 출석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이에 경찰은 3차 출석통지서를 보냈다. 시한은 3월30일. 따라서 검찰이 영장 청구를 지시한 3월25일에는 아직 닷새의 말미가 남아 있었다. 종로서 수사과장은 “경찰이 영장 청구에 반대한 게 사실이냐”는 질문에 “아직 출두시한이 있으니 한 번 더 출석 요구를 해보고 판단하자는 취지였다”며 “담당 검사에게 그런 얘기를 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수사2계 실무자는 “그 얘기는 더 이상 안 하려고 한다. 상당히 민감하고 심각한 사안이다”며 말을 삼갔다.

    서울경찰청의 한 간부는 “검찰이 왜 그렇게 했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고 검찰의 태도를 강하게 비판했다.

    “체포영장은 3회 이상 출석요구에 불응하거나 출석요구에 불응할 우려가 대단히 높거나 도주 또는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는 경우에 한해 청구된다. 3차 출석시한이 남아 있었던 데다 기한 내 출두 의사를 밝혔다면 요건 불비로 영장이 기각될 수밖에 없다. 법원의 기각사유도 그것 아닌가.”

    이 간부는 또 “법집행도 중요하지만 국민의 법감정도 중요하다”며 “대검 공안부가 시대착오적으로 일하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촛불시위가 중대한 사건이긴 해도 대검이 나설 일은 아니었다. 경찰이 독자 처리하거나 지휘기관인 서울중앙지검 공안부와 협의해 결정해도 충분한 사안이었다. 그런데 대검이 나섰다는 데 문제가 있다. 야권의 공격을 의식해 정치적 판단을 한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만하다. 경찰 실무자 입장에서도 이해가 안 됐을 것이다. 주말에 대규모 집회가 예정돼 있는데 영장 집행을 강행하면 당연히 충돌이 일어나지 않겠나. 법리적으로도 현실적으로도 무리한 청구였다.”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3차 출석시한이 남아 있는데 영장을 청구한 이유가 뭐냐”는 질문에 “대상자들이 불응의사를 명백히 표시하고 촛불시위도 탄핵이 철회될 때까지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공표해 출두할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답변했다.

    이와 관련, 최열 대표 등과 함께 경찰로부터 출석요구를 받았던 김기식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분명히 사전에 출두의사를 밝혔다”며 “명백히 정치행위를 한 검찰이 영장 기각으로 비난을 받자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3월26일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이혜광 부장판사는 “피의자들이 두 차례 출석요구에 응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나 3차 출두시한인 30일까지 출석하지 않을 것이라는 데 대한 검찰 소명이 부족하다”고 영장기각 사유를 밝혔다.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체포영장 청구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했다.

    “비록 기각되긴 했지만 영장 청구는 불법인 촛불집회를 사실상 중단시키는 효과를 냈다. 또 집회를 주도한 사람들이 자진 출두의사를 밝힌 것도 그 때문 아닌가.”

    이에 대해 김기식 사무처장은 “사실 그때쯤 내부적으로는 주말집회를 끝으로 촛불집회를 자제한다는 방침을 정했다. 하지만 대외적으로 알릴 경우 악용당할 것을 우려해 경찰에 그런 얘기를 하지 않았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영장 청구와 상관없이 자율적으로 결정했다는 얘기다.

    흥미로운 것은 검찰 내부에서도 체포영장 청구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들린다는 점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대검 일부에서도 반대하고 서울지검과 경찰에서도 반대했다는데 왜 그런 무리수를 뒀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송 총장 개인의 시국관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검찰 일각에서 제기된 ‘송 총장 1인 작품설’에 무게를 두는 주장이다. 이 간부는 또 “3차 출석시한 전에 체포영장을 청구한 것도 문제다. 선거운동 확산을 차단한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공식 선거운동이 4월2일부터임을 감안하면 설득력이 약하다. 또 물리적으로도 체포영장을 집행하는 것은 무리였다”고 지적했다.

    모 지검 고위관계자는 “보수 세력의 입김이 작용한 결과”라고 잘라 말했다. 서울중앙지검 간부도 “검찰의 보수주의 성향과 현 지휘부의 성격을 드러낸 것”이라며 이런 해석을 내놓았다.

    “보수세력은 촛불시위로 점화된 탄핵반대 여론이 그대로 굳어지면 열린우리당이 의석 과반수 이상을 차지하는 1당이 될지 모른다는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렇게 되면 강 장관이 추진하는 검찰개혁 법안들이 국회에서 일사천리로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 대검으로서는 달갑잖은 상황이 전개되는 것이다. 체포영장 청구엔 그런 흐름을 차단하고 견제하려는 의도가 있지 않았나 싶다.”

    한편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대검 지침을 받아 영장을 청구한 게 사실이냐”는 질문에 “누가 먼저 안을 냈느냐는 중요치 않다”면서 “공안사건의 경우 전국적인 통일성과 형평성이 요구되므로 대검과 긴밀한 협의를 거친다. 일방적 지시로 보는 건 옳지 않다. 최종적으로 대검과 협의해 결정했다고 보면 된다”고 밝혔다. ‘신동아’는 대검 안창호 공안기획관에게 이와 관련해 질의서를 보냈으나 안 공안기획관은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았다.

    촛불집회 체포영장 사건을 둘러싼 법무부와 대검의 갈등은 보고체계와 관련해 주도권 다툼의 양상을 띠고 있다. 법무부 관계자들은 “마땅히 사전에 보고해야 할 사안”이라며 대검의 ‘의도성’에 주목하고 있다. 반면 대검은 “사후보고로 충분하다”며 법무부 측의 문제제기를 무시하고 있다.

    법무부측에서 경위조사를 하겠다는 얘기가 흘러나오자 대검측은 언론을 통해 반박논리를 폈다. 감정싸움으로까지 치닫던 양측의 갈등은 송 총장이 3월30일 출근길에 기자들에게 “조사하려면 아랫사람을 하지 말고 나를 직접 조사하라”고 강하게 반발하면서 정점에 이르렀다.

    이후 법무부측에서 대응수위를 낮추면서 사태는 소강국면으로 접어들었다. 그러나 비록 겉으로 봉합은 됐지만 양측의 갈등은 해소된 게 아니라 잠시 물밑으로 들어갔을 뿐이라는 게 검찰 안팎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장관과 총장의 힘겨루기도 중요한 원인이지만 촛불집회 체포영장 사건에서 드러났듯 보고체계 규정과 관행에 대한 양측의 시각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영장 청구는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본다. 문제는 사전에 보고를 안 한 것”이라며 대검의 법령위반을 지적했다. 법무부에서 근거로 삼는 규정은 법무부령인 검찰보고사무규칙 8조다. 이 조항에 따르면 각급 검찰청의 장은 ▲소요의 발생, 기타의 사유로 사회적 불안을 조성할 우려가 있는 경우 ▲정당·사회단체의 동향이 사회질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는 경우 ▲정부시책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만한 범죄가 발생한 경우 ▲검찰업무에 참고가 될 사항이 있는 경우 법무부 장관에게 보고해야 한다.

    “법령에 사전보고 규정은 없다”

    문제는 ‘보고’의 의미가 사전보고인지 사후보고인지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촛불시위 체포영장 사건에 관련된 서울중앙지검 간부는 “영장을 청구함과 동시에 법무부와 대검에 보고를 했다”며 “사전·사후보고를 구분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법령에도 사전보고 규정은 없다”고 사전보고가 의무사항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대검의 한 간부는 “관행의 문제지 규정의 문제는 아닌 듯싶다”고 해석했다.

    위 서울중앙지검 간부는 또 “체포영장 청구는 출석을 담보하기 위한 절차적 수단일 뿐 신병처리나 사법처리를 염두에 두는 구속영장과는 다르다”며 “통상적인 일 처리절차까지 법무부에 사전보고하라는 건 말이 안 되지 않냐”고 되물었다. 대검 간부도 “정보보고는 수사절차의 하나일 뿐”이라며 “그 규정의 의미는 중대한 사건의 경우 발생·수리·처분보고를 하라는 거지 영장 청구를 포함한 수사과정 전반을 보고하라는 건 아니다”는 견해를 밝혔다.

    규정만으로 따지면 이 같은 해석에 일리가 있어 보인다. 이에 대해 법무부 관계자는 “규정의 해석에 관한 문제”라며 “규정이 명확하지 않다면 그 규정을 만들어놓은 취지와 관행에 따라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법무부 장관은 일반적 수사지휘권을 갖고 있다. 정보보고 규정의 취지가 무엇이겠는가. 국정 전반에 관한 조율 차원에서 검찰의 보고를 의무화한 것이다. 그렇기에 사후보고는 의미가 없다. 그럼 지금껏 아무런 법적 근거도 없이 중대 사안에 대해 사전 보고해왔단 말인가. 체포영장과 구속영장 차이도 큰 의미가 없다. 대상자가 누구이고 어떤 상황에서 청구됐는지가 관건이다. 구속영장이라도 중대한 사안이 아니라면 사전보고는 하지 않는 게 관례였다.”

    이에 대해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가장 중요한 것은 수사의 독립성이다. 그 점에서 정보보고가 사전 조율을 뜻하진 않는다고 본다. 그렇게 해석한다면 시대착오적 발상”이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서울중앙지검의 다른 간부는 의견을 달리했다.

    “장관은 총장을 통해 구체적 사건을 지휘할 수 있다. 그런데 지휘라는 건 사전에 알아야 가능한 것 아닌가. 수사 독립 차원에서 사전보고를 하지 않겠다는 논리라면 총장에게도 보고하지 말아야 한다. 검사 개개인이 독립성을 가진 단독관청이기 때문이다. 총장이 수사지휘권을 갖는 것은 수사에 대한 감독과 견제 차원이다. 마찬가지로 중요 사안을 장관에게 보고하도록 규정한 것은 검찰수사를 견제하기 위한 것이다. 이는 수사 독립성과는 별개 논리다.”

    막강파워 도취, 무리수 연발… 대검, 왜 이러나

    정몽헌 전 현대아산 회장, 남상국 전 대우건설 사장, 안상영 전 부산시장(좌측 부터)

    법무부의 또 다른 관계자도 “검찰이 그런 이유로 사전보고를 하지 않겠다면 장관이 대국회, 대국민 차원에서 어떤 사건에 대해 책임져야 할 이유가 없다. 그 논리라면 앞으로 총장이 국회에 나가서 답변해야 할 것이다”고 대검 논리를 공박했다.

    참여정부 출범 이후 검찰이 겪은 의미 있는 변화 중 하나가 청와대 직보체계가 사라졌다는 점이다. 예전엔 중요한 사안인 경우 일선지검으로부터 보고를 받은 대검이 법무부는 물론 청와대로 직접 보고했다. 특히 공안사건은 거의 예외 없이 사전 협의를 거쳤다. 심지어 안기부에까지 통보해주는 경우도 있었다.

    한 검찰 간부는 “아침에 대검에 사건을 보고한 담당검사에게 오후에 청와대에서 직접 문의해오는 경우도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참여정부가 들어선 이후 청와대 보고라인은 완전히 끊겼다. 유일하게 남은 것은 장관 보고채널이다. 이 점에서 촛불집회 체포영장 사건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사건과 관련해 마지막으로 짚어볼 것은 이른바 음모론이다. 음모론은 송 총장이 강 장관 흔들기 차원에서 의도적으로 이 사건을 일으켰다는 시각으로, 이를 공개적으로 발설한 사람은 참여연대 집행위원장인 차병직 변호사다.

    차 변호사는 3월30일 참여연대 홈페이지에 ‘송광수를 조사한다’라는 칼럼을 통해 대검의 촛불집회 체포영장 사전보고 누락을 법령위반으로 단정하는 한편 “나를 조사하라”는 송 총장의 발언을 상급자인 장관에 대한 항명으로 규정했다. 차 변호사는 “강금실의 법무부 장관 기용으로 국민이 기대하는 것은 검찰 개혁”이라며 “송 총장은 강 장관이 총선에 동원되기를 기대해 개혁적 파격인사를 결사적으로 막았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송 총장은 강 장관이 총선에 출마하지 않자 목표를 수정했는데, 그것은 “총선 직후 예상되는 전면 개각 때 강 장관이 경질되도록 하는 것”이며 “이번 항명은 그 전략의 하나”라는 것이다.

    차 변호사의 글은 일부 검사들로부터 공감을 얻고 있다. 한 검사는 “차마 입에 담을 수는 없지만 공감이 가는 글”이라고 조심스레 말했다. 모 간부는 “추측만으로 쓸 수 없는 내용이다. 기본 사실관계는 다 맞다. 강 장관과 교감이 있는 듯싶다”고 분석했다. 또 다른 간부는 “총장은 임기가 보장돼 있지만 장관은 그렇지 못하다. 자꾸 트러블이 생기면 옳고 그름을 떠나 그 자체가 장관 경질을 검토하는 명분이 된다. 그런 차원에서 의도적으로 문제가 불거지도록 한다는 느낌이 든다”고 차 변호사의 글에 공감을 나타냈다.

    대검측은 일부 언론을 통해 “명예훼손에 해당하는 터무니없는 얘기”라고 불쾌감을 드러냈지만 공식대응은 삼가고 있다. 차 변호사는 “대검측으로부터 항의를 받지 않았냐”는 질문에 “다 사실인데 항의할 수 있겠냐”고 반문했다. 그는 “송 총장의 ‘의도성’에 관한 증거가 있냐”는 물음엔 “근거를 댈 순 없지만 많은 법조계 인사들과 검찰 출입기자들로부터 들은 얘기로 다 사실일 것”이라고 답변했다.

    대검 비판론에 가세하는 또 하나의 ‘사건’은 검찰 간부 정기인사 연기다. 검찰의 한 간부는 “인사가 연기된 데 대해 다들 입이 나와 있다. 특히 고검 소속 검사들과 지방 근무 검사들의 불만이 크다”고 귀띔했다.

    검찰 주변에서는 지방에 근무하는 간부들이 대통령 탄핵소추가 결정된 날 술을 엄청 마셨다는 우스갯 소리가 나돈다. 총선 이후로 인사가 연기된 마당에 탄핵 사태로 대통령의 인사권이 정지됐으니 어느 세월에 인사가 있겠느냐고 푸념하면서 거하게 한잔씩 했다는 것이다.

    검사 정기인사는 2월과 8월 두 차례다. 인사 연기를 비판하는 검사들에 따르면 이제까지 총선을 이유로 정기인사를 연기한 전례가 없다는 것. 총선을 앞두고 인사가 연기된 적이 있긴 했지만, 그것은 중간에 총장 교체에 따른 후속인사 등으로 정기인사가 불필요해진 탓이지 총선 때문에 연기된 것은 아니라는 것.

    “총선과 정기인사가 무슨 상관이냐”

    인사 불만 여론이 높자 송 총장은 3월2일 대검 확대간부회의에서 인사 연기 배경을 설명했다. 매달 확대간부회의석상에서 총장이 한 얘기는 일종의 ‘지휘서신’ 형태로 정리가 돼 검찰 내부통신망에 올려진다. 인사 연기에 대한 송 총장의 주요 발언은 이렇다.

    ‘인사가 미뤄진 이유는 대검 중수부가 전개하고 있는 불법정치자금 수사의 중대성과 4·15 총선 대처 때문이다.’

    ‘일부 언론에서는 중수부 사기 저하를 방지하기 위해 인사를 연기한 것이라는 보도가 있었으나 그건 사실과 다르다.’

    ‘인사가 연기돼 일선에서 불편하고 불만스러운 점이 있더라도 현재 검찰이 처한 상황을 이해하는 마음을 가져주면 고맙겠다.’

    법무부 주변에서는 대검이 불법정치자금 수사를 이유로 인사를 반대하자 대검 중수부 수사팀을 제외하고 인사하는 방안을 검토했다는 얘기가 들린다. 하지만 대검측에서 “중수부 검사들의 사기를 저하시킨다”는 이유로 역시 반대해 그마저 무산됐다는 것이다.

    이 문제에 관해 기자와 얘기를 나눈 검사들은 대체로 인사 연기 논리를 수긍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촛불집회 체포영장 논란과 관련해 대검 논리에 공감을 표시한 검사도 인사 문제에 대해선 비판적인 견해를 드러냈다. 서울중앙지검 간부의 설명이다.

    “특히 지방에 근무하는 검사들의 불만이 높을 수밖에 없다. 당연히 인사가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아이들 전학 문제나 전세 계약 등을 그 시기에 맞춰놓았기 때문에 차질이 빚어질 수밖에 없다. 수사 진행을 이유로 인사를 연기한다는 데에 상당수 검사는 동의하지 않는 것으로 안다. ‘수사는 당신들만 하냐’는 반발심도 작용하고 있다. 후임자가 잘 마무리할 수도 있지 않은가.”

    수도권 모 지검 고위간부는 “도대체 총선과 검찰 정기인사가 무슨 상관이냐. 그것이야말로 정치적인 행태 아니냐”며 총선 연계론을 비판했다. “검사들 사이에서 송 총장은 여전히 신망이 높다”고 송 총장에 대한 신뢰를 표시한 경인지역 모 지검의 간부는 이렇게 말했다.

    “수도권 지역의 부장들은 그나마 다행으로 여긴다. 지방에 근무하는 부장들의 불만이 클 것이다. 솔직히 인사만 갖고 얘기하자면 대검이 비판 받을 만하다. 말이 안 되기 때문이다. 대선자금 수사중이라는 것도 인사를 연기할 만한 사유는 못 된다. 전례도 없고.”

    지방 대도시 검찰청에 근무하는 한 중견간부는 “연기사유에 일리가 있다고 말하는 검사들도 있고 그렇지 않다는 검사들도 있다. 각자의 이해관계나 성향에 따라 평가가 다르지 않겠냐”며 신중론을 펴기도 했다. 그는 “대선자금 수사는 특별한 측면이 있다”며 대검 논리를 이해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서울중앙지검 간부는 강 장관의 2월 인사계획이 좌절된 데 대해 재미있는 분석을 내놓았다.

    “사실 장관이 자초한 측면이 있다. 기회 있을 때마다 혁명적 인사를 하겠다느니 깜짝 놀랄 인사가 있을 거라느니 하면서 검찰 간부들을 불안하게 하지 않았나. 혁명적 인사란 단순히 말하면 잘나가는 사람은 끌어내리고 못 나가는 사람은 끌어올리는 것 아닌가. 그러면 현재 잘나가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그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쓸 수밖에 없고 나아가 인사권자를 바꾸려는 발상까지 하게 된다. 전두환이 왜 12·12를 일으켰나. 검찰 내에서 강 장관의 총선 차출설, 경질설이 흘러나오는 곳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편 검찰 수사방식에 대한 비판은 매우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자칫 검찰의 불법정치자금 수사성과에 흠집을 내려는 의도로 비칠까 우려해서다. 안대희 중수부장이 이끄는 수사팀이 더할 나위 없는 성과를 낸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검찰은 1년 가까이 진행된 불법정치자금 수사과정에서 수많은 사람을 구속했다. 그런데 옥의 티라고 할까, 지나친 자신감이 빚은 방심 또는 과욕이라고 할까. 아니면 피의자 인권보호를 강조하는 시대 흐름에 뒤쳐진 것일까. 검찰은 몇몇 중요 인사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가 기각당하는 민망한 모습을 보였다. 검찰의 한 고위간부는 “지금까지 수사성과가 좋아서 그렇지 사회적으로 이목을 끄는 중요한 인물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가 증거부족으로 기각당한 것은 사실은 문책감”이라고 일침을 놓았다.

    부영 이중근 회장, 여택수 청와대 전 행정관, 김성철 부산상공회의소 회장(부산지검), 한나라당 박상규 의원에 대한 구속영장 기각이 대표적인 사례다. 지난해 나라종금 로비 재수사 당시 안희정씨에 대해 두 차례 구속영장을 청구했다가 기각당한 것도 기억할 만하다.

    여론 의식한 무리수

    법원의 영장 기각 사유는 대부분 증거나 검찰의 소명 부족이었다. 이 점에서 “증거를 보강해 재청구할 거면 왜 처음 청구할 때 신중하지 않았냐”는 비판은 타당해 보인다. 증거인멸이나 도주의 우려가 없다는 점도 주요 기각 사유였다.

    수사기법 문제로 볼 여지도 있지만, 본건으로 안 되면 별건으로 구속하는 것에 대해서도 여론을 지나치게 의식한 처사라느니 구속만능주의라느니 하는 지적이 있다. 대선자금 관련 조사를 받은 강금원 창신섬유회장을 배임 혐의로 구속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서울중앙지검 한 간부는 “영장 청구는 전적으로 법적으로만 판단해야 한다. 여론을 의식하면 무리수가 나온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부영 이 회장에 대한 영장청구 과정에도 문제가 있었다”며 “신중하게 영장을 청구하는 데 주력해야지 기각되고 나서 기자들에게 ‘깜짝 놀랄 만한 내용이 있을 것’이라는 등 정치적 멘트를 왜 했는지 모르겠다. 조금씩 불안한 구석이 엿보인다”고 말했다. 또 다른 간부는 “무리한 영장 청구는 결론을 미리 내놓고 밀어붙이는 안대희식 수사의 부산물”이라고 평했다.

    반면 강력통인 지방의 한 간부는 두 사람과 다른 의견을 들려줬다.

    “수사 내용을 자세히 모르는 상태에서 영장 기각만 갖고 비난하면 안 된다. 수사를 안 해본 사람들이 그런 얘기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심 없이 일하는 것 아니겠는가.”

    수사 도중 자살자가 속출한 것도 검찰을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남상국 전 대우건설 사장, 안상영 전 부산시장, 정몽헌 전 현대아산 회장 등이 목숨을 끊었다. 세 사람 모두 대검 중수부의 불법정치자금 수사와 관련돼 있었다.

    특수통인 서울중앙지검 모 간부는 “두들겨 맞고 자살하는 사람은 없다”며 “언어폭력 등에 의한 모욕감과 수치감이 자살 동기가 됐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안상영 시장의 경우 부산구치소에서 호송버스를 타고 서울로 올라온 후 하루 동안 아무런 조사도 받지 않고 검찰 구치감에 갇히는 수모를 당했다. 황태자로 살아온 정몽헌 회장은 호되게 추궁당하면서 엄청난 굴욕감을 느꼈을 것이다. 또 남 사장의 경우 대통령 발언에 따른 공개망신이 자살의 직접적 계기가 된 것은 분명해 보이지만 그 전에 이미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다.

    수사방식 개선 계기 삼아야

    위 검찰 간부는 “캐낼 것이 많은 거물급 피의자들에 대한 수사는 장기전을 준비하고 수사팀과 상호 교감과 심리적 유대를 형성해야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피의자들이 자살하는 것은 수사팀이 그런 시도에 실패했다는 것을 뜻한다”고 지적했다.

    반면 법무부 소속의 한 간부는 “수사방식을 반성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면서도 “자살을 모욕적 수사방식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자살은 전염성을 가진 일종의 사회병리현상이므로 한 피의자의 자살이 다른 피의자에게 영향을 끼쳐 연쇄자살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

    대검 중수부장, 서울지검장을 역임한 유창종 변호사는 “안타깝기 짝이 없는 일”이라면서 “홍경령 전 검사 사건처럼 물리적 충격을 가해 죽는 건 안 되고 심리적 압박을 가해 자살하도록 하는 건 괜찮다는 얘기냐”며 수사방식 개선을 강조했다. 남 전 사장 변호를 맡기도 했던 그는 “차제에 대검의 수사기능에 대한 재검토가 있어야 한다”고 대검 개조론을 폈다.

    “검찰의 주 임무는 수사를 잘하는 것이 아니라 수사지휘를 잘 하는 것이다. 수사 잘하는 것이 검찰 본연의 임무인 것처럼 오판하다 보니 그런 부작용이 생기는 것이다. 사회가 검찰의 기능을 오도하고 있다. 대검에 중수부가 있는 것은 언론사에서 사장실 옆에 별도의 기자실을 둔 것이나 마찬가지다. 검찰이 수사지휘 기능과 인권 옹호 기능에 충실하기 위해서는 형사부를 강화해야 한다. 반면 중수부는 폐지하고 특수부는 축소해야 한다.”

    서울중앙지검 간부는 “중수부 폐지는 오래 전부터 얘기돼온 것이다. 하지만 안대희 부장의 성공적인 대선자금 수사로 그 얘기가 잠시 들어간 상태”라고 말했다. 법무부가 구상중이거나 입법 예고중인 검찰개혁안의 핵심은 유 변호사의 검찰 개조론과 맞닿아 있다. 법무부 관계자는 “검찰 조직개편의 핵심은 수사지휘 기능을 강조하고 인권 옹호 등 준사법기관으로서의 위상을 회복해 검사들로 하여금 법률전문가로서의 영역을 갖게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비록 노 대통령과 강 장관이 길을 터주었다는 평이 뒤따르긴 하지만, 송 총장은 지난 1년간 조직을 안정적으로 이끌면서 정치적 중립성 확보에 근접하는 등 검찰 위상 강화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대선자금 수사로 국민적 신뢰를 회복한 검찰이 부정부패 척결 못지 않게 주력해야 할 일은 시대에 맞는 개혁적인 검찰상 구현이다. 국민 앞에 겸손한 자세로 자기 개혁을 하는 것이다. 국민은 독립적인 검찰수사를 원하는 것이지 통제 받지 않는 검찰권력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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