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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대 출신 주성하 기자의 북한 잠망경 ⑨

북한 젊은층의 사랑방정식 집중 분석

불시 소지품 검사 해보니 여학생 가방에서 피임약이 우수수…

  • 주성하│동아일보 국제부 기자 zsh75@donga.com│

북한 젊은층의 사랑방정식 집중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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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에서 뜬 ‘겨울연가’

이 같은 변화에는 최근 중국을 통해 피임용품이 급속히 유입된 것과 무관치 않다. 불과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북한 여성들이 이용할 수 있는 유일한 피임도구는 ‘고리(루프)’였다. 이것도 결혼한 뒤 애를 여럿 낳아서 더 이상 임신을 원치 않는 여성에 한해 병원에서 제한적으로 해주었다. 하지만 지금은 돈만 있으면 장마당에서 콘돔이나 피임약을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다. 이는 청소년들의 일탈을 조장하는 중요한 원인이 되고 있다. 여기에 성교육이 전무한 북한의 학교 교육과 성폭력 범죄에 대해선 어디 가서 하소연할 데 없이 금기시하는 북한의 사회 분위기도 일탈을 방치하고 있다.

참고로 한 가지 덧붙일 점은 북한의 성문화가 문란해진다고 해도 이는 과거와 비교해볼 때 그렇다는 것이다. 평양 같은 대도시가 아닌 농촌이라면 이야기는 또 달라진다. 전국적으로 일반화해보면 북한은 여전히 남한과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건전하고 보수적이다. 최근 북한의 대학가에서 눈여겨볼 점은 남자 선배와 여자 후배의 결혼이 늘고 있다는 점이다. 예전에는 거의 볼 수 없었던 일이다.

몇 달 전 탈북한 평양 출신의 한 남성은 최근 북한 대학가의 풍속도를 이렇게 묘사했다.

“요즘은 학생들이 서로 ‘아무개 동무’라고 부르지 않고 ‘아무개 씨’라고 부르는 것이 보통입니다. 남한 영화나 드라마가 남긴 영향입니다. 그 영향이 참 치명적입니다. 남한 드라마 ‘겨울연가’가 대학생들 속에서 인기가 높아 사랑과 연애의 표본이 되고 있습니다. 요즘에는 동창끼리 연애는 많아도 결혼까진 거의 가지 않습니다. 물론 선배 중에는 대학 때부터 박사원(대학원)까지 같이 다니고 10년 동안 연애한 끝에 결혼한 커플도 있긴 합니다.



요즘엔 동창보다는 남자 선배와 여자 후배가 결혼하는 일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제 동생의 대학 학급처녀들 중 2명이 선배와 결혼했습니다. 요즘 10년씩 군에서 복무하고 대학에 온 제대군인들은 그동안 급격히 변한 직통생들의 세계관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여학생들과의 연애는 물론 직통생 남자들에게도 따돌림을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다가 제대군인들은 3학년이나 4학년이 되면 세계관이 완전히 바뀌게 되고 여자를 보는 눈도 생길 뿐 아니라 몸값도 상당히 높아집니다. 그러나 졸업하면 가치가 순식간에 곤두박질치기 때문에 어떻게 하든 졸업 전에 간부집 딸을 잡느라 정신이 없지요. 결혼할 때가 되면 아무리 이전에 가까웠던 여자가 있어도 순식간에 차버리고 힘 있는 여자와 결혼합니다.”

결혼을 통한 신분상승

마지막 대목은 약간의 설명이 필요한 것 같다. 요즘 북한에선 자녀가 대학에 가면 집에서 상당히 많은 뒷바라지가 필요하다. 명목상 북한은 무료교육을 표방하지만 이는 허울뿐이다. 학교에서 대주는 것이 없고 걷어들이는 것들뿐이라 먹고 입고 사는 것 외에도 학교에 내는 것이 많아 상당한 돈이 든다.

1990년대에도 기자가 대학에서 한 달 쓰는 돈이면 남은 가족 3명이 두 달은 먹고살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더 심각하다고 한다. 집에서 뒷바라지해줄 능력이 없는 가난한 직통생은 대학 다니기를 포기하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당장 장가갈 나이의 제대군인들은 집에서 대주지 못하면 스스로 해결하려고 한다. 그러기에는 결혼이 가장 손쉬운 방법이다. 가정형편은 좋지 않지만 운이 좋아서 또는 실력이 있어서 대학에 추천을 받은 제대군인들은 가장 먼저 자신의 대학생활을 후원해줄 수 있는 여성과 결혼하려 한다. 그래서 북에선 남자의 대학 뒷바라지를 해주고 졸업시킨 뒤 결혼식을 올리고 사는 여성이 상당히 많다.

하지만 여성들도 바보는 아니다. 1~2학년 제대군인은 기피대상이다. 이왕이면 3~4학년에서 골라야 4년을 뒷바라지할 필요 없이 1~2년만 하면 된다. 이런 까닭에 북한에서 3~4학년 제대군인의 몸값이 가장 높다고 하는 것이다.

졸업하면 가치가 곤두박질치는 이유도 비슷한 맥락이다. 대학 다닐 때 높은 간부의 사위가 되면 좋은 직장에 배치받아 출세가도를 달릴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하면 배치부터 잘 받지 못한다. 물론 제대군인의 집 자체가 권세와 돈이 있는 집안일 수 있지만 이런 사람들은 대학 때 결혼할 여자를 찾느라 애를 쓰지 않고 다만 연애 상대를 찾을 뿐이다. 졸업한 뒤 가치가 떨어지는 제대군인은 집안이 가난해 장가로 팔자를 고쳐보려다 실패한 사람들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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