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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신동아 창간 80주년 특집 ‘국민이 원하는 국회의원’ 여론조사의 함의

기성 질서 비판하고 색깔 분명한 인물 원해

  • 고성국|정치평론가·정치학 박사 bdm65@daum.net

신동아 창간 80주년 특집 ‘국민이 원하는 국회의원’ 여론조사의 함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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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아 창간 80주년 특집 ‘국민이 원하는 국회의원’ 여론조사의 함의

1996년 4월 총선 서울 선거에서 신한국당이 선전한 뒤 자축하고 있다.

정치권 물갈이의 모범적 사례로 간주되는 1996년 15대 총선을 보자. 15대 총선 물갈이의 출발점은 그 한 해 전에 치러진 지방선거에서의 여당 참패였다. 15개 광역시도에서 5개밖에 건지지 못하고 충격적 패배를 당한 여당은 곧이어 다가올 총선의 참패를 예감하고 사즉생(死卽生)의 각오로 선거준비에 나섰다. 김영삼 당시 대통령에게 항명했던 이회창 전 총리를 영입하는 극약처방도 모자라 당명(黨名)을 신한국당으로 바꾸고 이우재, 이재오, 김문수 등 민중당 지도부를 받아들였으며 홍준표, 맹형규, 정의화 등 각계의 스타급 인사를 영입했다.

이들 외에도 참신한 신인을 대거 내세워 무려 42%의 현역교체율을 기록할 만큼 대대적인 물갈이를 단행했다. 이렇게 영입된 정치신인에 대해 중앙당 차원에서 조직적인 지원이 이루어졌고 청와대 또한 적극적으로 나섰다. 지금 한나라당 주요 정치인 대다수가 이때 영입돼 정치에 입문한 사람들이다. 홍준표의 말대로 ‘YS 키즈’인 셈이다.

1996년 vs 2012년

15대 총선 물갈이에서는 다음의 세 가지 요소가 중요했다. 첫째, 물갈이를 기획하고, 새 인물을 발굴하고, 후보를 지원해 총선 승리를 이끌어낸 강력한 기획집단이 존재한 점이다. YS의 차남 김현철씨와 이원종 청와대 정무수석, 강삼재 신한국당 사무총장으로 이루어진 당시 여권의 3각 축은 매우 효율적으로 작동했다. 기획-발굴-지원까지 이른바 ‘물갈이의 일괄공정’을 혼란 없이 일사불란하게 밀어붙였다.

둘째는 범(汎)여권의 절박한 위기의식이었다. 1995년 지방선거의 참패로 공황상태에 빠진 민자당은 당명을 바꿀 만큼 성역 없이 변화와 쇄신으로 돌진했다. 교체대상이 된 현역의원들 또한 거의 예외 없이 시대적 대세와 흐름에 순응했다. 교체에 반발해 탈당하거나 무소속 출마를 강행한 사례는 거의 없었다. 변화와 쇄신에 대한 국민적 요구가 인물교체와 물갈이로 자연스럽게 연결된 결과였다.



셋째는 김영삼 대통령이 물갈이와 세대교체를 강하게 밀어붙인 점이다. 그는 이전부터 “깜짝 놀랄 만한 젊은 대선후보”라는 발언을 통해 세대교체를 기정사실화하고 있었다. 최연소 국회의원이자 40대 기수론의 주창자답게 물갈이에 누구보다 적극적이었다. ‘YS 키즈’의 탄생은 김 대통령의 적극적 의지가 없었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1996년과 2012년의 상황은 몇 가지 점에서 유사하나 더 많은 부분에서 다르다. 여론이 매우 좋지 않고 그로 인해 여권 현역의원들이 선거전망을 비관적으로 보고 있는 점만 빼면 사실 거의 모든 부분에서 다르다. 우선 현 여권에선 세대교체에 확고한 의지를 가진 김영삼과 같은 존재가 없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런 의지가 없을 뿐 아니라 설혹 있다 하더라도 그 영향력의 크기에서 당시의 김영삼 대통령에 비견될 수 없다.

박근혜와 한나라당, 고단한 상황

1996년의 김 대통령에게 가까운 존재는 오히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박 전 대표는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적어도 대외적으로는 세대교체 의지를 표명하지 못하고 있다. 우선 박근혜의 대선 전략이 범여권의 단합에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여권이 분열되는 순간 대세론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에 범여권을 하나로 묶어 관리하는 것은 박근혜에게 필수불가결한 전략적 요처다. 어떻게 설명되고 포장되건 세대교체는 정치적 갈등을 유발하게 되어 있다. 이것이 박근혜가 세대교체를 공개적으로 선언하지 못하는 이유다.

또한 지금의 한나라당은 박 전 대표가 세대교체를 선언하는 순간 2008년의 ‘공천학살’ 악몽에 함몰될 수밖에 없는 취약한 구조를 안고 있다. 박근혜도, 한나라당도 2008년의 공천 트라우마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7·4 전당대회를 보면 이점이 분명해진다. 박 전 대표는 자신에게 전략적으로 가장 유리한 원희룡 의원을 대표로 선택하지 못했다. 친이계의 대표성을 담보한 원희룡이 대표가 되었다면 “책임은 친이계가, 성과는 박근혜가”라는 ‘아름다운 구도’가 가능했을 것이다. 원희룡이 ‘6·3 청와대 회동 정신 실천’을 구호로 내세우고 이명박과 박근혜의 화해를 주창한 것은 ‘박근혜 대통령’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친이계의 전환에 따른 구체적인 시그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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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국|정치평론가·정치학 박사 bdm65@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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