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문초등학교에서 열린 1박2일 뒷뜰야영 참가자들.
부회장 김규원씨는 초등학교 6학년 딸과 단둘이 체험학습과 역사 기행 다니는 걸 좋아한다. 그는 “대학 입시가 입학사정관제로 바뀌면서 어릴 때부터 아이에게 리더십을 길러주고 다양한 경험을 쌓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 모임에 가입하면서, 아이가 전교회장 등 학생 대표가 되는데 내 활동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 기대하는 마음도 품었다”고 말했다.
이런 ‘열성 아빠’들이 모인 아버지회는 학교에서 다양한 참여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조아모’는 7월 학교 운동장을 빌려 자녀와 함께 하는 1박2일 체험캠핑 ‘뒷뜰야영’ 행사를 열었다. 23명의 아버지와 자녀를 포함한 가족·교사 등 100여 명이 참가한 행사다. 김영도씨의 딸 지원양은 “야영하는 날 새벽에 비가 엄청 많이 왔다. 아빠가 빗속에서 이리저리 뛰면서 우리를 보호해주는 모습에 감동했다. 아빠와 많이 가까워진 것 같다”며 즐거워했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주관한 ‘2010 학부모 학교 참여 우수 사례’에서 우수상을 받은 서울 신동중학교의 ‘신동아버지회’는 지난해 7월 47명의 전문직 종사 학부모를 직업별 특별강사로 초청해 직업세계에 대해 소개하는 행사를 열었다. ‘신동아버지회’의 공식 회원은 70명. 하지만 각종 모임 때는 100명 이상이 참석한다. 학교 관계자에 따르면 명예교사, 동아리 지원 등 다양한 방식으로 재능을 기부하는 아버지들까지 포함하면 학교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아버지 수는 700~800명에 달한다.
아빠 회사 체험하기
서울 신사중학교도 5월 ‘진로의 날’ 행사를 열고 아버지 15명을 학교로 초청해 직업세계에 대한 특강을 진행했다. 둘째 아들이 이 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아버지회’ 회장 박봉권씨는 성형외과 의사로, 이날 의료계에 대한 특강을 맡았다.
“학부모가 학교에 신경 쓰는 만큼 아이는 자신감을 갖게 된다. 아이에게 아빠는 항상 내 옆에 있는 사람이라는 믿음을 주려 한다”고 말하는 박씨는 외교관을 꿈꾸는 큰아들을 위해서도 여러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학술대회 등 해외 세미나에 참석할 때 종종 아이와 동행하고, 해외에 나가면 현지 가정에서 홈스테이 하면서 아이가 외국 사람과 문화를 자연스레 접하도록 하는 식이다.
김현태 신사중학교 교무부장은 “우리 학교는 5년 전 서울지역 학교 가운데 가장 먼저 아버지 모임을 만들었다. 현재 학부모 40명이 참여하고 있으며, 내년부터 아버지 직장에 아이들이 찾아가 직접 진로를 탐색하는 프로그램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강성봉 서울시교육청 진로교육과장은 “요즘 학생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스스로 공부할 이유를 깨닫게 하는 것”이라며 “자신이 미래에 하고 싶은 일을 알아야 성취 동기가 생기기 때문에 교육청 차원에서 초·중·고 학생들의 아버지 직장체험 프로그램을 적극 장려하고 확대 지원할 계획”이라고 했다.
‘열성 아빠’가 많아지면서 지방자치단체와 정부 기구, 학교와 학부모 관련 단체들도 앞 다퉈 아버지교육 프로그램을 내놓고 있다. 호응도 뜨겁다. 지난 7월 전북교육청은 ‘닮은 듯 다른 두 남자,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타이틀로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하는 1박2일 해양캠프를 열었다. 도내 중고생 아들과 아버지 80명이 참석했다. 서울 용산구청은 6월 ‘두란노아버지학교운동본부’와 연계해 4주에 걸쳐 ‘열린 아버지학교’를 열었다. 주 1회, 하루 4시간의 강의였지만, 아버지 100여 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서울시교육청의 ‘2010 사교육 없는 자녀교육 성공 사례 공모전’에서 학부모교육기관부문 최우수상을 받은 서울 영원초등학교는 지난해 ‘아버지학교’를 열면서 정원을 30명으로 제한했지만 신청자는 49명에 달했다.
재단법인 ‘행복한 학부모’가 7월 개최한 제1회 아버지학부모포럼에도 주최 측 목표 인원 50명의 2배가 넘는 아버지가 몰려들었다. 이날 포럼에 참석한 손석현씨는 건설업체 대표로 초등학생과 고교생 두 아들을 뒀다. 전국 건설 현장을 다니며 일하느라 아이들 양육을 아내 손에 맡겨왔다는 그는 “큰아이가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조금씩 갈등이 생겼다. 아내의 권유로 참석했는데, 강사로 나선 문용린 교수의 ‘행복한 아이가 공부도 잘한다’는 말이 마음에 와 닿는다. 생각해보면 그동안 내가 독단적이고 권위적이어서 아이들과 대화가 잘 안됐던 것 같다. 어릴 때 아버지와 대화가 없었던 게 생각나고, 자식에게도 똑같이 한 것에 대해 반성을 많이 했다”고 고백했다. 포럼 참석 후 손씨는 마침 방학을 맞은 아들과 틈날 때마다 배드민턴을 치고, 자신이 일하는 건설 현장에도 아이를 데리고 간다. 그는 “아빠가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본 아들이 다가오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인다. 예전에는 얼굴이 마주치면 말도 없이 자기 방으로 들어갔는데 지금은 진로문제를 상의할 정도로 가까워졌다”며 뿌듯해했다.